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142)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142화. 당신이 있어 감사해(142/214)
142화. 당신이 있어 감사해
2024.03.21.
로제테는 이 눈치도 없는 두 패밀리어를 흘겨보았지만, 삐삐와 실버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높였다.
안 그래도 죽이 잘 맞는 커플이었는데, 이럴 때엔 더 호흡이 잘 맞았다.
실버의 말을 들은 조슈아는 로제테에게 따로 재촉하지는 않았지만, 편지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강렬했다.
로제테가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황자님은 원래 편지에는 별로 관심 없으시지 않았나요?”
“내가?”
조슈아가 금시초문이라는 투로 답했다.
“그러니까, 제가 그동안 편지해도 답장도 제대로 오지 않고, 또…….”
“그건 황궁에 보는 눈이 많아서 그렇지. 그대 편지는 언제나 잘 보고 있었어.”
변명인지, 해명인지 모를 말을 한 조슈아가 작게 덧붙였다.
“내가 언제나 그대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면 믿어 줄 건가?”
“황자님이, 제 편지를요?”
“그래.”
조슈아가 실버를 슬쩍 곁눈질하자 실버가 꼬리를 흔들며 컹, 하고 짖었다. 조슈아가 로제테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즐거워했다는 것을 자신이 증명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황자님이 내 편지를 기다리고 계셨다니.’
마음을 담은 편지를 주기 민망한 것과는 별개로 기분이 조금 들떴다.
“그러니 이제 편지를 주지 않겠어?”
로제테는 망설이다가 편지를 쥔 손에서 힘을 조금 풀었다. 그걸 기민하게 눈치챈 실버가 편지를 재빨리 낚아채 조슈아에게 건넸다.
조슈아는 삐삐의 발자국으로 가득한 편지 겉면을 훑어보다가 조심스럽게 인장을 뜯었다.
사실 편지에는 별내용은 없었다.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조슈아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말이 담겨 있었을 뿐이었다. 길이도 그다지 길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삐삐의 편지와 별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도 조슈아는 그 짧은 편지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황자님을 늘 걱정하는 로제테로부터’라는 마지막 인사말을 작게 중얼거린 조슈아가 편지를 접어 품에 넣으며 살짝 미소 지었다.
로제테는 괜히 민망해져서 중얼거렸다.
“편지가 길진 않지만 그래도 내용은 진심이에요. 저는 황자님께서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
과거와는 달리요.
차마 하지 못한 그 말이 로제테의 입속에서 맴돌았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존경하는 스승과 친애하는 친우를 모두 잃고 차디찬 돌바닥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던 당신이 앞으로는 걱정 하나 없이 행복했으면.
로제테가 미처 편지에는 쓰지 못했던 그 말을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조슈아가 물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황자님도요?”
“그래.”
조슈아가 로제테의 뺨에 흘러내린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 주며 작게 속삭였다.
“그대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제가요?”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로제테는 조슈아가 ‘나도 마찬가지’라고 할 때, 스스로의 행복을 비는 줄 알았다.
“이제 와 말하는 거지만, 그날 그대는 무척 슬퍼 보였었지.”
설명하지 않아도 ‘그날’이 언제를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조슈아는 로제테가 시간을 돌리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었던 때를 말하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행복을 비는 이 순간, 두사람은 같은 과거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을 되돌아오고, 서로가 똑같은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안 뒤 로제테와 조슈아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마지막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어쩌면 서로 의도적으로 그날의 기억을 피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로제테는 슬픔이 무겁게 내려앉았던 그날 밤, 조슈아가 어떠한 마음으로 자신을 보았는지, 그리고 그런 그의 눈에 비쳤던 자신의 모습은 어땠는지 전혀 몰랐다.
10년이 넘도록 열리지 않았던 판도라의 상자가 지금 이순간 열리고 있었다.
“솔직히 얘기한다면 가증스러웠어. 그동안 많은 이를 죽인 그대가, 결국엔 내 소중한 사람들까지도 앗아간 그대가, 곧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조슈아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로제테가 그의 입장에 처했었더라도 같은 생각을 했을 테니까.
일례로 댈러스 후작이 자신의 앞에서 울면서 죄를 뉘우친다면?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로제테는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이어지는 조슈아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나는 그대를 용서할 수 없었지만, 그대가 속죄한다면 스승님과 다니엘은 널 용서할 거라고 생각했어. 두 사람은 나와 달리 착하고 마음씨가 넓으니까.”
-네가 죽는다고 두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넋을 기릴 수는 있겠지. 그대도 일말의 죄책감이 있다면, 죽는 순간까지 속죄하도록.
그때, 저런 마음으로 그 소리를 했었구나. 로제테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아련해졌다.
“부끄럽게도 나 또한 그때 할 수 있는 게 없었지. 고작 그대에게 내 분노를 쏟아 내는 게 전부였어. 그리고 선잠이 들었다가 깨어났을 때 과거로 돌아와 있었어.”
조슈아가 셔츠 단추를 하나 풀더니 차고 있던 목걸이를 잡아당겨 끊었다. 로제테는 삐삐가 대신 전해 준 목걸이를 손바닥에 놓고 관찰했다.
오팔을 연상시키는 보석으로 만든 팬던트였는데, 군데군데 살짝 까만 점 같은 게 있었다.
“이건……?”
“어떻게 내가 유일하게 과거를 기억하고 있냐고 물었었지? 나는 이 마법석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마법석이에요, 이게?”
로제테는 팬던트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팬던트에서 은은한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 어마마마께서 주신 이벨린 왕실의 가보야. 이게 언젠가 나를 구해 줄 것이니 늘 몸에 지니고 있으라고 하셨지. 항상 빛나던 이 마법석이 과거로 돌아왔을 때 까맣게 빛이 바래 있었어. 지금은 어느 정도 색이 돌아온 상태고.”
“그래서 황자님만은 제 마법의 영향을 받지 않으셨던 거군요. 그런데 왜 이걸 제게 말해 주시는 건가요? 황후님과 황자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은데.”
“그대에게는 말해도 될 것 같았어.”
조슈아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후 과거를 돌린 사람이 그대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도 나는 그대를 믿지 않았어. 그대가 아드리안에 있는 목적이 불순하다고 여겼지. 내 눈앞에 있는 건 그저 작고 소심한 아이였는데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거든.”
“이해해요.”
“그대에게는 상처였겠지만, 당장 아드리안을 떠나라고 했던 말을 했던 것은 후회하지 않아. 당시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었거든.”
그것도 이해했다. 조슈아의 말은 지금 생각해도 충격이었지만 로제테의 과거 행실을 떠올리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대가 그때 떠나지 않고 여전히 아드리안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 이젠 그대가 없는 아드리안은 상상도 할 수 없어. 혹시라도 나의 행동이 그대를 상처 입혔던 적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을 빌려 사과하고 싶어.”
로제테의 뺨이 불그스름해졌다.
그녀가 시간을 돌린 것은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사과를 받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녀는 모든 과오를 바로잡겠다는 자신의 신념 하나로 고대 마법을 썼다.
그러니 조슈아가 감사할 필요도 없었고, 사과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그렇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감춘 속마음을 그에게만은 속시원히 얘기하고 싶었다.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로제테가 입을 열었다.
“그날, 아버지, 그러니까 당시 아드리안 공작이었던 아버지는 제게 돌아가라고 하셨어요. 제가 딸 같다고 하시면서요. 그런 분을 죽일 수는 없었어요. 죽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돌아가려고 했는데…….”
“…….”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 후엔 어떻게 됐는지 생각도 제대로 나지 않아요. 다니엘 오빠를 만난 기억도 없거든요. 정신을 차렸을 땐 황자님께서 제 앞에 계셨죠.”
고개를 숙이고 있던 로제테의 눈에서 톡, 하고 예고도 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황자님이 우는 것을 보는 순간, 날 짓누르고 있는 공기가 너무 무거웠어요. 애써 외면하고 있던 나의 죄가 내 목을 조여 왔어요. 시간을 돌린 데엔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었어요. 그냥 내가 망친 사람들의 인생을 그들에게 다시 돌려주고 싶었어요.”
“…….”
“나 같은 건 어찌 돼도 상관 없었어요. 마법의 대가로 죽어도 괜찮았어요.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고, 살 가치조차 없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렇지만 황자님, 저는요.”
로제테가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치며 미소 지었다.
“그래도 그때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버지의 인생도, 다니엘 오빠의 인생도, 황후님의 인생도 바꿀 수 있어 좋았지만, 내 인생 또한 바꿀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그녀의 붉어진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제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황자님이라는 게 정말 다행이에요. 아니, 황자님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어서 정말 기뻐요.”
조슈아가 모든 것을 알고 있어 두려웠던 적이 분명 있었다. 그가 가족들에게 모든 사실을 폭로할까 봐 무서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곁에 조슈아가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고독한 싸움을 홀로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이렇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속죄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서.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이 조슈아 말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늘 결론은 같았다.
제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조슈아 에른하르트라서 좋았다.
로제테의 눈꼬리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홀린 듯이 보던 조슈아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가 조금은 차가운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훔쳤다.
“로제테.”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엔 열기가, 로제테를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욕망이 스며들어 있었다. 다른 것으로 착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감정이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조슈아의 갈망을 읽어 낸 로제테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곧 조슈아의 입술이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파르르 떨리는 로제테의 감은 눈 위에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