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144)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144화. 이자벨의 상담(144/214)
144화. 이자벨의 상담
2024.03.23.
내용이 하나도 바뀌지 않고, 정확히 똑같은 내용의 꿈이 반복될 때마다 공작은 잠을 설쳤다. 매번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현실과 꿈이 구분되지 않아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대체 왜 이런 꿈을 꾸는 것일까. 아쉘라 여신은 대체 꿈을 통해 자신에게 무엇을 보여 주려는 걸까.
하지만 차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일이라 그냥 혼자서만 고민했다.
공작의 얼굴을 관찰하던 다니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제게 말씀해 주세요, 아버지.”
“그래, 걱정해 줘서 고맙구나.”
아드리안 공작은 조슈아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느라 처리하지 못했던 급한 서류만 처리한 뒤 집무실에서 나갔다. 다니엘은 조금 전 먼저 방으로 돌아간 참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던 공작은 문득 방향을 틀어 로제테의 방으로 향했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잠깐 망설이다가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로제테가 어릴 때엔, 특히 아드리안가에 입적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엔 밤에 몰래 이렇게 그녀를 들여다보고 가곤 했었다.
하루 아침에 낯선 곳에서 생활하게 된 막내딸이 행여나 잠을 설치며 울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제테가 사춘기에 들어선 뒤로는 가급적 출입을 삼갔다. 그녀를 배려했기 때문이었다. 로제테가 성인이 되고 아카데미에서 돌아온 뒤론 한 번도 불쑥 찾아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로제테가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로제테는 역시 자고 있었다.
[삐이?]공작이 침대로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낀 삐삐가 눈을 떴다.
날카롭게 울며 비상 상황을 알리려던 삐삐는 상대가 공작인 것을 알아차리고는 부리를 꾹 다물었다. 대신 공작의 어깨로 포르르 날아갔다.
“그래, 삐삐. 로즈 곁을 잘 지키고 있었구나.”
[삐이!]공작은 삐삐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삐삐가 의기양양해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앞으로도 로즈의 곁을 지켜 주렴.”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지만, 공작은 이 작은 새의 존재가 달가웠다.
기사인 공작은 패밀리어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듣자 하니 패밀리어는 주인의 감정을 공유하며, 누구보다도 주인을 각별히 여긴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로제테의 곁을 지켜 주었을 이 작은 새. 조슈아의 패밀리어인 늑대 실버처럼 강인한 능력은 없지만, 로제테를 생각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진심일 이 작은 새.
[삐삣.]삐삐가 ‘내 소중함을 알았다면 비스킷으로 보답하도록 해.’라고 말하는 것을 알 리가 없는 공작이 피식 웃고는 로제테의 옆으로 갔다.
아직은 앳된 기색이 남아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성인이었다. 그런데도 공작의 눈엔 그녀가 처음 만났을 적, 작고 여린 아이로 보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가 지켜 줘야 하는 아이로.
하지만 언젠가 로제테도 그의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생각하니 코끝이 살짝 시큰거렸다.
다니엘과 루카스, 심지어 같은 딸인 이자벨을 떠나보낸다고 생각할 때와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공작이 로제테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넌 늘 행복하기만 하렴.”
언제나 그랬듯 세상의 무거운 짐은 이 아비가 짊어질 테니.
너는 어릴 때 그랬듯이 근심 걱정 하나 없이 행복하기만 하면 된단다.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고,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단다.
그냥 너는 이대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지내면 돼. 나머지는 이 아비가 다 해결해 줄 테니까.
아드리안 공작은 삐삐를 베개에 내려 준 뒤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로제테를 만나기 전까지 그를 괴롭히던 악몽은 까맣게 잊힌 채였다.
* * *
조슈아의 고백을 들은 뒤, 로제테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황자라는 자리와 조슈아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에게 고민을 툭 털어놓고 상담을 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삐삐에게 조심스럽게 운을 떼어 보았지만 딱히 도움은 되지 않았다.
패밀리어인 삐삐는 인간들의 생태계에 대해 잘 모른다.
로제테가 속한 아드리안 공작가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또 황자인 조슈아가 얼마나 귀한 몸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저 삐삐에게는 자신의 주인인 로제테는 세상에서 제일 잘나고 좋은 사람이었고, 조슈아는 단지 친구 패밀리어인 실버의 주인일 뿐이었다.
그러니 ‘만약 내가 황자님을 좋아한다고 해도, 황후는 되기 싫어.’라는 로제테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했다.
참고로 저 고민에 삐삐는 ‘뭘 고민해? 너도 황후가 되면 되지! 오필리아도 황후 아니야? 그럼 맛있는 거 많이 먹을 수 있을 거 아냐!’라고 답했다.
로제테는 늘 삐삐에게 의지했지만, 이럴 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작은 새였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정원에 있는 흔들 그네에 앉아 책을 펴 둔 채로 상념에 빠져 있던 로제테는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이자벨이 목검을 어깨에 두른 채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 휴일이라고 들었는데, 조금 전까지 검술 연습을 하고 온 것인지 가벼운 연습복 차림이었다.
로제테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아뇨, 고민 같은 거 없어요.”
[삣!]삐삐가 덩달아 시치미를 뗐다.
로제테와 삐삐를 바라보는 이자벨의 두 눈이 의심을 품고 가늘어졌다.
“아니라고 하기엔 고민이 잔뜩 있는 얼굴인데.”
손등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무심히 닦은 이자벨이 로제테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로제테는 저도 모르게 바짝 긴장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자벨은 로제테 쪽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옆에 놓여 있던 물병을 집어 들었다.
“그래서 무슨 고민이야?”
“고민 같은 거 없다니까요.”
“로즈.”
물로 목을 축인 이자벨이 낮게 그녀를 불렀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그렇게 살가운 언니는 아니야.”
“……?”
“다니엘 오빠처럼 상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루카스 그 얼간이처럼 이것저것 챙겨 주지도 못했어.”
“아니에요. 언니도 충분히……, 그러니까 나름의 방법으로 잘해 주셨어요.”
이자벨이 그것 보라는 듯 눈썹을 치켜 세웠다.
“너도 내가 살갑다는 소리는 안 나오잖아.”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자벨의 말처럼 그녀는 살가운 언니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로제테를 반기던 다니엘과 루카스와 달리, 이자벨은 그녀의 입양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뭘 하든 칭찬해 주는 다니엘과 하나라도 더 챙겨 주고 싶어 안달이 난 루카스와 달리 로제테를 특별히 잘 챙겨 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릴 적엔 이자벨에게 혼난 기억도 많았다.
하지만 로제테는 그게 그녀의 애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로제테가 조금 더 빨리 귀족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준 거였다.
오히려 그녀가 아드리안이라고 다시 여러 번 되새겨 준 것도 이자벨이라서, 그녀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빈말이라도 이자벨이 살갑다는 말이 나가지는 않았지만 지금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있었다.
“그래도 저는 그런 언니가 참 좋았어요.”
“뭐라는 거니.”
이자벨이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고개를 픽 돌렸다. 그녀가 부끄러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로제테가 풋 하고 웃었다.
“넌 뭐가 그리 좋다고 웃니?”
“그냥요.”
“아무튼 내 말은, 살가운 언니는 아니지만 지금 네 고민 정도는 들어 줄 수 있다는 거야.”
“……네?”
“루카스와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네가 그 얼간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 루카스나 다니엘 오빠에게는 말 못 하는 일인가 본데. 그렇다면 고민은 뻔하지. 이성 문제 아니겠어?”
아주 잠깐 사이에 이자벨은 문제의 본질을 완전히 꿰뚫고 있었다.
머리로는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이자벨의 말에 당황하여 로제테는 입만 벙긋거렸다.
이자벨이 알 만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떻게 알았냐고? 말했잖아. 뻔한 문제라고. 그래서 누구야?”
“아니, 그…….”
“너 그렇게 혼자 끙끙 앓은 지 며칠 됐잖아. 어차피 혼자 고민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차라리 속 시원히 털어놓기라도 해.”
“아니, 그러니까요, 언니.”
“사실 나도 그렇게 도움이 되진 못하겠지만, 두 남자보다는 낫겠지. 특히 루카스 걔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길길이 날뛰어서 방해만 될 걸.”
로제테는 무심히 말하는 이자벨이 굉장히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그녀라면 로제테의 고민을 털어놓아도, 설령 고민의 원인이 조슈아라는 것을 알아도 호들갑을 떨지 않고 객관적으로 답을 제시해 줄 것 같았다.
이자벨의 말처럼 그녀가 도움이 되냐, 안 되냐는 별개로 말이다.
‘물론, 언니에게 털어 놓으면 속은 좀 시원할 것 같기는 해. 그런데 황자님과의 대화를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을까? 그래도 황자님의 말인데.’
고민하던 로제테는 상대가 조슈아라는 것을 숨긴 채 이자벨에게 상담하기로 했다.
“언니, 지금 제가 하는 말은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돼요. 알겠죠?”
“내가 네 얘길 어딜 가서 하겠어?”
“아무튼 안 돼요.”
“그래, 알았으니까 얘기해 봐.”
로제테는 숨을 크게 들이쉰 뒤 입을 열었다.
“사실 전부터 신경 쓰이는 사람이 생겼어요.”
한번 물꼬를 틀자 그동안 혼자만 끙끙 앓던 생각이 술술 나왔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어요.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그 사람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요. 이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사실 아직도 알 수 없어요.”
이자벨은 맞장구를 치는 대신 진지하게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사람이 제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관심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사실 고백을 들었거든요.”
“그런데 뭐가 문제야?”
“제 선택 때문에 행여나 아드리안에 피해가 갈까 걱정이었어요.”
로제테는 저도 모르게 이자벨의 눈치를 살폈다.
네 가족 중 제일 아드리안을 각별히 여기는 사람은 이자벨이었다. 그러니 그녀라면 로제테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자벨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반문했다.
“그게 뭐가 문제라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