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174)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174화. 북부행(3)(174/214)
174화. 북부행(3)
2024.04.22.
후폭풍처럼 거센 바람이 루카스를 덮쳤다. 그는 뒤로 밀리지 않기 위해 두 발에 힘을 주면서도, 눈을 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모래바람에 자꾸 감기려는 눈을 간신히 뜨고 앞을 바라보자 어느새 검을 손에 쥐고 상대방을 향해 달려드는 로제테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검은 오러를 두른 것처럼 밝은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꼬맹아, 위험해!”
루카스 또한 검을 검집에서 빼 들며 자세를 취했지만 로제테가 다시 한번 경고했다.
“오지 마요!”
[삣!]루카스는 날카로운 그녀와 삐삐의 목소리에 담긴 속뜻을 읽어 냈다. 그들은 그를 걱정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를 방해꾼 취급하고 있었다.
루카스는 튀어 나가려다 말고 초조한 마음으로 로제테를 지켜보았다.
확실히 지금 끼어들어 가 봤자 방해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로제테는 쉴 새 없이 상대를 향해 마법을 난사하며 칼을 휘두르고 있었으니까.
루카스가 잘못 끼어들면 로제테가 그를 공격하지 않기 위해 주춤거릴 테고, 그 틈에 공격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루카스는 초조하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검을 고쳐 쥔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우려와 달리 로제테는 잘 싸우고 있었다.
작고 가벼운 몸을 이용하여 신속하게 움직였고, 중간중간 마법도 적절히 사용하였다.
다만 루카스는 왜 그녀가 마법을 주력으로 사용하지 않고 검을 사용하는 것인지 의아했다.
상대는 팔을 크게 휘두르며 로제테를 공격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막혔다.
반대로 로제테 또한 열심히 공격했지만 생각보다 공격이 잘 먹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체 모를 상대의 피부가 강철처럼 두꺼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승부가 결정났다. 로제테는 어느새 쓰러진 상대의 몸 위에 두 발을 딛고 올라섰다. 상대는 몸을 버둥거렸지만 이미 두 팔이 잘린 상태라 그녀를 공격하지는 못했다.
잠시 상대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로제테가 검날이 아래로 향하도록 두 손으로 검을 쥐고선 팔을 높이 들었다.
이윽고.
푸욱!
로제테의 날카로운 검 끝이 상대의 목을 꿰뚫었다. 바르작거리던 상대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그제야 로제테가 긴장을 풀고는 아래로 내려왔다.
루카스가 서둘러 막냇동생에게 다가갔다.
“꼬맹아! 괜찮아?”
그녀의 양어깨를 잡고 살피던 루카스는 로제테의 왼쪽 뺨에 난 생채기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다쳤잖아.”
로제테가 손등으로 뺨에 살짝 흐른 피를 닦으며 멋쩍게 웃었다.
“아까 잠깐 스쳤나 봐요.”
“그러니까 오빠가 잡으려고 했는데!”
[삐삐삣!]삐삐 또한 속상하다는 듯 로제테의 뺨에 얼굴을 비볐다. 로제테가 삐삐의 부리에 입을 맞추고는 답했다.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어떻게 걱정을…….”
한 소리 하려던 루카스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쓰러진 괴물의 팔을 신발 앞코로 툭툭 두드렸다.
“이건 대체 뭐야?”
피부가 초록색인 괴생명체는 정말로 ‘괴물’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마물이요.”
“그건 나도 알아. 짐승은 아니잖아.”
“저도 어떤 마물인지는 모르겠어요. 마물에 대해서 알려진 게 많지는 않으니까요. 다만 조금 이상하기는 해요.”
“뭐가?”
“확실히 지능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어요. 마물은 원래 무지성적으로 공격한다고 알고 있거든요. 불리할 것 같으면 본능적으로 도망가거나, 아니면 무작정 달려들거나 한댔어요. 그런데…….”
루카스가 끼어들었다.
“네 공격을 피했지?”
“……네.”
우울하게 중얼거린 로제테는 마물 옆에 쪼그려 앉아 무기를 관찰했다. 루카스가 얼른 그녀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조심해. 혹시 다시 살아나서 달려들면 어쩌려고 그래.”
“그럴 일은 없어요. 숨통은 확실히 끊었거든요. 아무리 마물이라도 부활하지는 않을 테니까…….”
“야, 야.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험악하게 해?”
루카스는 태연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로제테를 보고 경악했다.
숨통을 확실히 끊었다니. 틀린 소리는 아니었지만 로제테의 입에서 나올 만한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루카스는 로제테가 정체 모를 마물에게 달려들었을 때부터 놀라웠다.
로제테는 지난 12년 동안 많이 컸지만, 루카스에게 그녀는 여전히 처음 보았던 8살 꼬맹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개미 하나 못 죽이게 생겨서는 망설임 없이 마물에게 마법을 날리고 겁을 휘두르다니. 만약 루카스였다면 아무리 상대가 사악한 마물이라고 해도 숨을 끊기 전에 살짝 망설였을 것이었다.
‘대체 아카데미에서 뭘 어떻게 배운 거야? 우리는 저렇게 가르친 적 없는데.’
로제테의 전생을 알 리 없는 루카스는 괜한 화살을 이벨린 왕립 아카데미에게 돌렸다.
루카스가 속으로 아카데미를 욕하는 사이, 로제테는 마물이 놓친 검을 확인했다. 검은 이가 군데군데 빠지고 무뎌져 있었다. 관리가 엉망이고, 함부로 다뤘다는 증거였다.
상대가 마물이니 당연한 결과였지만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오빠. 이 검의 생김새, 왠지 낯익지 않아요?”
“…….”
루카스는 로제테의 질문을 듣기도 전에 이미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였다.
로제테는 그의 얼굴을 흘끔거리며 말을 계속 이었다.
“황실 기사단에서 주는 검과 모양이 비슷한 것 같아요.”
루카스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로 검을 집어 들었다. 손잡이 바로 윗부분 검 면이 무언가로 긁은 것처럼 잔뜩 생채기가 나 있었다.
“그래, 확실히…….”
루카스가 검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웅얼거렸다.
“낯이 익어. 마물이 토벌단에게서 이 검을 가로챈 걸까?”
“하지만 그럼 굳이 황실 기사단의 인장을 지울 필요가 없었겠죠. 지능이 그 정도로 발달했을 것 같지도 않고, 발달했다고 해도 인장을 놔두는 게 오히려 저들에게는 나을 거예요. 전리품이니까요.”
“그럼…….”
“아직 확신하긴 일러요, 오빠.”
로제테는 마물에게서 물러서며 삐삐를 손에 쥐려고 했다. 삐삐가 더러운 로제테의 손을 보고는 기겁했다.
[삐삣! 삑!]로제테는 마법으로 손을 씻은 뒤 삐삐를 잡아 옷 주머니에 넣었다.
[쀳!]“일단 다시 가도록 해요. 검은 혹시 모르니까 챙기고요.”
그녀는 말 안장에 올려 두었던 가방에 검을 집어넣었다. 가방은 루카스의 손바닥 두 개 크기 정도로 작았는데,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 있어서 기다란 검도 무리 없이 들어갔다.
루카스가 먼저 검집에 검을 집어넣고 말에 올랐다. 검에 묻은 끈적한 점액질을 털어 내던 로제테는 불현듯 제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살아 있는 생명체를 죽인 것은 오랜만이었다. 마물도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지칭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살아 숨쉬던 생명의 숨통을 끊은 것은 사실이었다.
조금 전까지 제 앞에서 살아 움직이던 마물이 제 손에 죽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다. 검을 타고 손끝에 전해지던 그 감각이 여전히 생생했다.
로제테는 살짝 떨리는 손바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주먹을 꽉 쥐었다.
‘괜찮아. 내가 죽인 건 사람이 아니야. 사람들을 괴롭히던 마물이었어.’
절대 과거와 똑같지 않아. 이건 다른 일이야.
이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한 일이야.
무고한 사람도 아니었고.
로제테는 심호흡을 하며 간신히 몸의 떨림을 진정시켰다. 모든 채비를 마치고 다시 말에 오르는데, 내내 그녀를 관찰하던 루카스가 말했다.
“앞으로 마물이 나오면 내가 잡을게. 꼬맹이 너는 나설 필요 없어.”
“아뇨. 괜찮아요.”
“너 지금 힘들어 보여. 너는 실전 전투에 참여한 적도 없잖아.”
“그건 오빠도 마찬가지잖아요.”
로제테의 반박에 루카스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대로 아직 기사단에 소속되지 않은 루카스는 실전 전투에 투입된 적이 없었다.
사실 그건 루카스뿐만 아니라 토벌에 참여한 대부분 기사도 비슷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제국은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정도로 강성했고 전쟁도 없었다.
국경 지역에서 자그마한 마찰이 있었던 게 전부였다.
“게다가 오빠는 저보다 고작 세 살 많을 뿐이에요. 오빠나 저나 아직 어리기는 마찬가지예요.”
“야, 세 살 차이가 얼마나 큰데? 너, 내가 너보다 더 많이 먹은 밥그릇 수를 무시하지 말라고.”
로제테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 살 차이가 적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릴 적에는 세 살 많은 루카스가 굉장히 커 보였지만, 아니 사실 지금도 체격으로 보면 그가 월등히 컸지만, 루카스도 분명 미숙했다.
로제테는 고삐를 잡은 루카스의 손이 살짝 떨리는 것을 바라보다가 그의 옆으로 말을 붙였다.
“아무튼 오빠야말로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괜히 마물의 독에 당하기라도 한다면 치료가 더 힘들어요.”
“그…….”
루카스는 뭐라고 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로제테가 말의 옆구리를 차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루카스는 재빨리 말을 몰아 로제테와 속도를 맞췄다.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자. 아까 왜 검을 주로 사용했어? 마법을 쓰면 됐잖아. 넌 검을 잘 쓰기는 하지만 마법 솜씨는 검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으니까 말이야.”
“…….”
“그리고 마법을 쓰는 편이 더 깔끔하기도 하고…….”
현실 감각이 없기도 하고.
로제테는 루카스가 차마 말하지 못한 뒷말을 들은 것 같았다.
“그냥요.”
로제테는 앞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거짓말이다. 그러나 로제테는 이 거짓말을 루카스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루카스의 말대로 마법만 사용해서 마물을 처리할 수도 있었다. 오히려 그 편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문득 떠오른 과거의 기억 때문이었다.
댈러스 후작에게 조종당해서 무자비하게 공격 마법을 쓰던, 로제테 댈러스의 모습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