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199)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199화. 청혼은 네가 아닌 내가(199/214)
199화. 청혼은 네가 아닌 내가
2024.05.17.
아드리안가 사람들과 손님들은 다 함께 다과를 즐기고 성대한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 화기애애했다.
그들 사이에선 그 어떤 근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포근했고, 웃음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식사가 모두 끝난 뒤, 사람들은 아드리안 공작이 말했던 것처럼 각자 짝을 지어 이야기를 하러 갔다.
다니엘은 이네스와, 이자벨은 로텐 경과 함께 갔고 루카스는 또다시 세상의 부조리함을 읊조리며 홀로 방으로 올라갔다.
로제테는 삐삐와 실버 그리고 조슈아와 함께 온실로 향했다.
이상했다. 조슈아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건 분명 처음이 아니었다.
어릴 적에는 실버의 도움을 받아 한밤중에 숲속에서 만난 적도 있었고, 성인이 된 뒤에도 종종 단둘이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한 달 만에 봐서 그런 걸까. 로제테는 지금 무척이나 긴장됐다. 몇 시간 전, 조슈아에게 달려들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어, 그러니까요.”
그녀는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황후님께선 잘 지내시나요?”
“어마마마께서야 더할 나위 없이 잘 지내고 계시지. 나에게 있었던 일과 그간 릴리스 공작가에서 어마마마께 했던 일들을 듣고 충격받으신 듯했지만 의연하게 버티고 계셔. 폐하께서도 이제 마음을 완전히 돌리셨는지 어마마마를 부쩍 자주 찾으시기도 하고.”
황제가 어마마마께 그렇게 다정하게 구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고, 조슈아는 작게 덧붙였다.
“그리고 네 걱정을 많이 하셨어. 시간이 된다면 어마마마께 편지라도 한 통 써 드려.”
“황궁이 혼란스러울 거라서 차마 편지를 보내지 못했어요. 편지를 보내도 괜찮다면 내일 당장 보내야겠네요.”
“그래. 어마마마께서도 무척 좋아하실 거야.”
로제테가 조금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2황자 전하와 릴리스 공작가는 어떻게 되었어요?”
“스승님이나 다니엘이 말해 주지 않았나?”
“해 주긴 했어요. 하지만 제가 충격받을까 봐 걱정하셨는지 자세히는 말해 주지 않았어요. 아빠는 이제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시는데도 여전히 절 아이 취급하신다니까요.”
“스승님과 다니엘이 그렇게 결정했다면 나도 그다지 말해 주고 싶지는 않아. 들어서 좋을 이야기도 아니고. 괜히 기분만 찝찝해질 거야.”
“그래도…….”
“간단하게만 말하자면 모든 게 잘 마무리되었어. 루이스와 릴리스 공작을 비롯하여 관련자들은 다 처형당했고, 그들 편에 섰던 귀족도 눈치껏 다 돌아섰지.”
로제테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이제 조슈아가 황태자에 책봉되는 건가요?”
“별다른 일이 없다면 아마도 그럴 테지. 다음 황위를 이을 사람은 이제 나밖에 없으니까.”
“다행이네요.”
“그건 그렇고.”
조슈아가 로제테에게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드디어 둘만 남게 되었네.”
식사 시간 내내 로제테만을 흘끔거리던 그가 피식 웃었다. 그는 아드리안 공작과 함께 테이블 끝에 있는 상석에 앉았는데, 그 때문에 로제테의 자리와는 제법 떨어져 있었다.
“그러게요. 음, 조슈아와 둘이 있게 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뭐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조슈아가 자연스럽게 로제테의 손을 이끌고 온실 한쪽에 놓인 자그만 원형 테이블에 앉았다.
“뭐든 말해도 돼. 밤을 새워서라도 들어 줄 수 있어.”
그의 커다란 손이 로제테의 손등을 덮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조금 식었던 손등에 닿는 따뜻한 온기가 기분 좋았다.
“여기까지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조금만 얘기하다가 들어가야죠.”
“피곤하긴. 마나 게이트를 이용하고 잠깐만 말을 탄 것뿐인걸. 그동안 못 본 것을 생각하면 밤을 새워도 모자라지.”
“으음, 그래도요.”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얼른 말해 보도록 해. 목소리가 듣고 싶으니까.”
로제테는 애정이 담긴 눈으로 지긋이 쳐다보는 조슈아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푹 숙였다.
“조슈아,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많이 달라진 거 알아요?”
“내가?”
“네.”
“어떤 점이?”
“일단 늘 미묘하게 날이 서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여유가 느껴져요. 표정도 더 부드럽고, 전보다 많이 웃고. 물론 이제 걱정할 일이 없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변화지만요.”
“또?”
조슈아가 손끝으로 로제테의 손을 느릿하게 문지르며 은근히 물었다. 그의 손끝이 맥박이 뛰는 손목 아래에 닿았을 때, 로제테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뭐라고 콕 집어서 설명하기 어렵지만, 전보다 더 그러니까, 음…….”
뭐라고 표현해야 적절한 말인지 알 수가 없어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솔직히 말했다.
“능글맞아졌다고 해야 할까요?”
“능글…….”
“예쁘게 차려입었다면 심장이 멈춰 버렸을 거라는 말도 하고, 지금도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그랬잖아요. 예전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조슈아가 그녀의 손을 끌어가 손등에 입술을 눌렀다.
“그래서 싫은 건가?”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뭔가 조금 낯설기도 하고 그래서…….”
그가 그녀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진득하게 입을 맞췄다.
“로즈, 그 망할 결계 안에 갇혔을 때 어떤 생각이 든 줄 알아?”
“……?”
“하릴없이 시간만 흐를수록 어쩌면 무사히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 토벌대의 사기를 위해 차마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이 복잡했지.”
그 당시 조슈아가 느꼈을 절망을 로제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뒷일은 별로 걱정되지 않았어. 나는 할 만큼 했고, 스승님도 다니엘도 그리고 너도 내가 없어도 앞으로 일어날 위기를 잘 헤쳐나갈 거라고 믿었어. 너라면 분명 어마마마도 잘 지켜 줬을 테고.”
“…….”
“그런데 딱 하나. 아쉬운 게 있었어, 로즈.”
조슈아가 아예 로제테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손깍지를 꼈다. 가벼운 애정 표현이었지만, 동시에 그녀를 절대 놓지 않겠다는 집착이 담긴 행동이었다.
“분명 너는 내가 없어도 행복하게 잘살 수 있었을 거야.”
“아뇨, 그렇지 않아요. 나는…….”
“내 죽음에 슬프기야 했겠지. 하지만 아드리안은 곧 내 빈자리를 말끔히 채워 줬을 테고, 너에게도 다른 행복이 찾아왔을 거야.”
“…….”
“그런데도 나는 너에게 못 해 준 게 자꾸만 떠올랐어. 조금 더 내 마음을 표현할 걸, 조금 더 자주 얼굴을 볼 걸. 하다 하다 내가 과거에 네게 모진 말을 했던 것까지 후회되더군. 내 혀를 뽑고 싶어질 정도였어.”
부정하고 싶었다. 어릴 적 조슈아가 했던 말에 상처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건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로제테는 자신을 믿어 주고 의지하는 조슈아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박하는 대신 묵묵히 그의 말을 들었다.
“그러다 너를 다시 본 순간 다시 한번 기회가 왔다고 느꼈어. 네가 내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네가 황후가 되기 싫어 한다는 이유로 억누르던 내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기로 했지.”
“…….”
“확실히 네 말처럼 전에는 하지 않았던 말들이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똑같아. 전에도 지금도 너만 바라보고 있었고, 그걸 솔직히 표현하는 것만 달라졌지.”
그의 진심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이쯤 해서 로제테는 그동안 자신이 느꼈던 마음도 솔직하게 고백하기로 했다.
“있잖아요, 조슈아. 저도 그동안 생각을 많이 했어요.”
“……?”
“미하엘에게서 다니엘 오빠와 조슈아가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했어요. 정말로 두 사람을 다시 못 보면 어떡하나 싶었죠. 조슈아가 그랬던 것처럼 저도 해 주지 못한 것이 많이 떠올랐어요.”
로제테가 손에 힘을 주어 조슈아의 손을 마주 잡았다.
“황후가 되기 싫다는 이유로 조슈아를 제대로 사랑하지도 못했잖아요.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함께 있고 싶다는 말을 했을 거예요.”
“그 말은…….”
“솔직히 황태자비나 황후가 되는 건 아직도 두렵고 무서워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그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요. 제국을 위해서라면 저보다 더 현명하고, 제국민을 잘 돌볼 수 있는 이타적인 분이 어울리겠죠. 그렇지만요.”
로제테가 빙긋 웃었다.
“조슈아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뭐가 되든 상관없어요. 완벽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괜찮은 황태자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거고요. 그러니까…….”
“아니, 잠깐만. 거기까지, 로즈.”
“……네?”
로제테는 다급하게 제 말을 막는 조슈아를 보고 의문 어린 얼굴을 했다.
‘왜 막지?’
이다음에 할 이야기는 뻔했다. 황후가 되어서라도 당신 곁에 있고 싶다, 그러니 앞으로 평생 함께하자.
결혼도 하고 서로를 반씩 닮은 아이를 낳아 예쁜 가정을 꾸리자.
지금껏 한 번도 꿈꿔 본 적 없는 예쁜 미래였지만, 당신과 함께하는 무지갯빛 미래가 눈에 선하다.
그런 말을 하려고 했다. 조슈아 또한 분위기상 그녀가 그런 말을 꺼낼 것이란 것을 눈치챘을 터였다.
그런데 왜 막는 걸까?
조금까지만 해도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고 했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로제테가 황태자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조슈아가 자신을 두고 다른 여자와 결혼할 리가 없는데.
그런데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로제테는 혼란과 슬픔 그리고 미약한 배신감이 혼재한 눈빛으로 조슈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슈아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잠시 한숨을 쉬고 고민하듯 머리를 흐트러뜨리던 그는 로제테가 “조슈아?”라고 흔들리는 목소리로 부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나는 어쨌든 황자로서 어릴 적부터 철저한 수업을 받았고 의외로 고지식한 면이 있어.”
“……?”
“하아, 그러니까.”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던 조슈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청혼은 네가 아닌 내가, 제대로 준비한 곳에서 하고 싶다는 이야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