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2)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2화. 되돌린 시간(2)(2/214)
2화. 되돌린 시간(2)
2023.11.02.
‘여신님, 감사합니다.’
로제테는 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언니, 언니가 저번에 산 분홍색 원피스 있잖아.”
“응.”
“그거 당분간 안 입으면 안 돼?”
“그거야 어렵지 않은데, 갑자기 왜?”
로제테는 재빨리 그럴싸한 이유를 지어냈다.
“그건 얇잖아. 그걸 입고 나갔다간 나처럼 열감기에 걸리고 말 거야.”
“아, 그러려나.”
“응. 언니, 내가 아파 보니까 느낀 건데 아픈 건 정말 끔찍해. 그러니까 그 원피스는 봄이 오면 입자. 그리고 그 옷을 입을 땐 항상 나랑 같이 다녀.”
“왜?”
“언니가 예쁜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
로제테가 최대한 아이다운 척 말하자 제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옷이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알았어. 앞으론 우리 로즈랑 나갈 때만 입을게. 아니지. 그냥 안 입을래. 생각해 보니 그 옷은 나보다 너에게 더 어울릴 것 같아. 안 입고 놔뒀다가 네가 조금 더 크면 줄게.”
“그럴 필요는 없는데.”
“아냐, 언니는 로즈가 입는 게 더 좋아.”
헤헤, 웃는 제인을 보자 로제테는 코끝이 다시 한번 찡해졌다. 그녀는 제인의 품에 다시 와락 안겼다.
“언니, 당분간은 마을에 나가지 말고 나랑 있자.”
제인이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토닥였다.
“우리 로즈가 아프더니 어리광이 많아졌네? 알겠어. 당분간은 어디 안 가고 로즈랑 있을게.”
“약속이야.”
로제테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제인이 망설임 없이 그 손가락에 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래, 약속.”
맞닿은 제인의 손은 따뜻했다. 그녀가 죽어 갈 당시 차갑게 식었던 손과는 달리, 온기가 있는 손.
로제테는 제인의 손을 꽉 잡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제인을 반드시 구하고 말 거라고.
그리고 과거와 달리 댈러스 후작을 피해 그녀와 행복하게 살 거라고.
* * *
“……제테.”
“으음.”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목소리에 로제테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몸이 나른하고 잠이 쏟아져서 방해받지 않고 이대로 쭉 자고 싶었다.
그러나 불청객은 그녀가 잠을 자도록 놔둘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야, 로제테!”
버럭 고함 소리가 들리더니, 로제테는 이불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나마 몸을 감싸 주던 이불이 사라지자 찬 공기에 몸이 시렸다.
“잠깐만 일어나 봐.”
로제테는 우악스러운 이 남자애의 목소리를 바로 알아들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를 괴롭히던 주드 녀석이었다.
이번에도 괴롭히려고 그러나.
과거로 돌아와서 다시 만난 친구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반가움보다는 짜증이 더 컸다. 대꾸하는 로제테의 목소리가 저절로 뾰족해졌다.
“왜애? 뭔데 자는 사람을 깨우고 그래애?”
그러나 잠기운 때문에 목소리가 제 뜻과는 달리 축 늘어졌다. 주드 녀석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야, 너 지금 바보 같아.”
“지금 나 놀리려고 온 거야아?”
“아니, 그게 아니라.”
로제테는 실눈을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주드가 안절부절못하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제인 누나 어디 갔어? 아까부터 안 보이던데.”
로제테는 하품을 하며 건성으로 대꾸했다.
“마을, 흐암, 에 갔는데.”
“나도 누나가 마을 가는 건 봤는데 아직도 안 왔어?”
‘아직도’라는 말의 뉘앙스가 이상했다. 로제테는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겨울의 석양을 보다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분명 제인이 마을로 떠났을 땐 해가 중천에 떠 있는 한낮이었다.
“주드, 언니가 나간 지 얼마나 됐어?”
“어? 음, 한 한 시간 됐나? 아니, 이제 두 시간?”
마을까지는 아이들의 걸음으로 왕복 20분이 걸린다. 제인은 로제테가 걱정돼서 빨리 온다고 선언했으니, 진작 왔어야 했다. 두 시간이나 밖에서 있을 이유는 없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렸다.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심장이 쾅쾅 뛰었다.
“어? 로즈? 야, 로즈! 어디가?”
로제테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주드가 따라오며 소리를 질렀지만, 무시하고 달렸다.
평소 주드보다 뛰는 속도가 느렸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금방 그를 따돌렸다. 신발을 신을 새도 없어 맨발로 뛰어나온 바람에 발바닥이 아팠지만 차마 멈출 수가 없었다.
‘제인 언니!’
제발, 지금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기를! 하지만 자꾸만 차오르는 불안감에 두 눈에 눈물이 고여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바닥에 있는 돌부리를 보지 못해 그만 돌부리에 걸려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얘, 괜찮니?”
한 여성이 그녀를 일으켜 주며 물었지만 로제테는 그녀에게 겨우 고개만 까딱인 뒤 다시 달려갔다. 그리고 마을에 다다랐을 때, 그녀가 마주한 광경은 참혹했다.
“어디서 나쁜 것만 배워서!”
“배운 것이라고는 도둑질하는 것밖에 없든?”
마을 사람들이 작은 광장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를 삥 에워싼 뒤 돌을 던졌다.
거리가 멀어서 중앙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보이지 않았지만, 로제테는 그녀가 제인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제인이, 불과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자상하게 웃던 제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과거 보았던 광경과 똑같았다.
‘제인 언니는 분명 다른 옷을 입었는데, 왜?’
그런데도 왜 또다시 이런 일을 당하는 걸까?
로제테는 뒤늦게 깨달았다.
‘옷은 그저 핑계였구나.’
사람들은 정말로 제인이 도둑질을 했다고 믿는 게 아니었다. 그저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올해는 작년보다 강수량이 적어 수확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생활고를 겪는 사람들도 나왔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 자기보다 아래라고 여겼고, 또 그걸로 자신이 더 낫다는 우월감을 얻게 해 주었던 고아 제인이 행복한 것이 그저 못마땅했던 것이다. 새 옷은 그저 핑계였다.
새 옷이 아니라면 그녀가 가진 돈, 그게 아니라면 그녀가 산 간식. 핑곗거리는 얼마든지 많았다.
그것을 시간을 거슬러 온 지금에야 깨달았다. 애초에 제인을 보호하려고 했던 계획은 이룰 수가 없는 꿈이었다. 어떻게 피하려고 했어도 제인은 똑같은 일을 당했으리라.
하지만 바뀐 것이 있다면 로제테였다. 그녀는 잔뜩 독이 오른 사람들이 무섭다며 숨어서 벌벌 떨던 과거의 겁쟁이가 아니었다.
로제테는 악을 지르며 사람들 사이로 뛰어 들어갔다.
“우리 언니 괴롭히지 마! 이 악마들아!”
“얘는 또 뭐야?”
“뭐, 악마?”
로제테는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가서 제인을 안았다. 제인은 피를 흘리면서도 종이봉투를 소중하게 감싸 안고 있었다.
이것 또한 과거와 같았다. 제인은 분명 종종 그랬듯 로제테를 위해 그동안 모았던 돈으로 간식거리를 사러 나온 것이었다.
바보같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동생이 뭐가 예쁘다고. 서러움을 담은 눈물이 제인의 피 묻은 이마 위에 뚝뚝 떨어졌다.
“어, 언니. 눈 좀 떠 봐. 응? 언니이.”
아무리 불러 보아도 제인은 미동이 없었다.
시간을 돌려 겨우 다시 찾은 행복이었다. 댈러스가에서 지낸 12년보다 제인과 함께 보낸 이틀이 훨씬 행복했다. 이번엔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할 수 있을까.
모두 제 잘못이다. 자신이 미리 이렇게 될 줄 알고 제인을 붙잡았더라면…….
이번엔 로제테의 몸 위로도 돌멩이가 떨어졌다. 낄낄거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악에 받친 목소리가 무섭다.
“너네 같은 것 때문에 여신이 노하셔서 농사가 망한 거잖아!”
“너희가 버러지처럼 우리에게 빌붙어 먹고살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어!”
아니다. 빌붙어 먹고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로제테가 머물고 있는 고아원은 신전이 운영하는 곳으로, 대부분 귀족가에서 후원해 준 물품과 돈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에게 빌붙거나 구걸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자신들을 원망하는가.
그러나 로제테는 그들에게 따져 묻지 못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제인이었다.
“언니, 제발 숨 좀 쉬어 봐.”
숨만 쉰다면, 숨만 쉬고 있다면 제인을 살릴 수 있었다. 이제 자신은 과거의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꼬맹이가 아니었으니까.
그때 제인이 참았던 숨을 한 번에 토해 냈다. 로제테는 기쁨에 젖어 제인의 이마 위에 손을 얹었다.
‘잠깐, 정말 괜찮나?’
왠지 이 마법을 쓰면 댈러스 후작이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댈러스 후작에게서 벗어나 제인과 행복하게 살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도 그의 손에 또다시 잡혀갈 것 같았다.
그러나 고민은 짧았다. 지옥 속에서 살아도 제인만 무사히 살아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로제테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마나를 운용했다. 어린 몸으로 감당하기엔 거대한 마나라 손톱으로 내장을 긁는 것 같은 고통이 났다.
로제테는 목에서 치밀어 오르는 뜨끈한 무언가를 삼키며 제인에게 치료 마법을 썼다.
제인과 맞닿은 곳에서 빛이 나며 제인의 상처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돌에 맞아 찢어졌던 이마도, 넘어져서 깨진 무릎도, 신발이 벗겨져 돌멩이에 찍힌 발바닥도. 모두 흉터 하나 없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깨끗해진 이마는 이마에 묻은 피만 아니라면 다쳤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완벽했다. 제인은 눈을 뜨진 않았지만, 그저 잠든 것인지 숨소리가 골랐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성녀님?”
“성녀님이 나타나셨다!”
“성녀님, 제 아이도 아픈데 제발 한 번만 봐 주세요.”
로제테는 태도가 변화한 사람들을 보며 욕지기를 느꼈다. 제인을 치료하기 전에도 후에도 그녀는 똑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이전의 로제테는 경멸하고 멸시했으며, 지금은 경외하는 것일까.
분명 자신에게 돌을 던지던 이들이 왜 호의를 보이나.
로제테가 사람들에게 한 소리를 하려던 찰나였다.
“그대들은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가?”
분노한 목소리가 광장 입구에서 들렸다. 남자의 목소리는 큰 편이 아니었는데도 묵직한 저음 때문인지 광장이 꽉 찬 것처럼 느껴졌다.
로제테는 낯선 듯하면서도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남자가 제 앞으로 다가왔을 때 그녀는 경기를 일으킬 뻔했다.
“괜찮니?”
그녀에게 정중히 손을 뻗는 백금발, 보라색 눈의 남자는 분명 아드리안 공작이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보다 좀 더 젊은 얼굴이었지만 분명 아드리안 공작이 맞았다. 저 미려하고 특이한 머리색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과거 로제테의 마법에 죽은 남자이기도 했다.
동시에 생의 마지막 순간 제 앞에서 울던 조슈아가 생각났다. 왜 하필 지금 이 순간 그가 생각난 것일까.
“이름이 뭐니?”
조슈아의 얼굴을 떠올리던 로제테는 갑작스러운 아드리안 공작의 물음에 퍼뜩 현실로 돌아왔다.
“로제테……예요.”
“로제테라. 그럼 애칭은 로즈겠구나. 머리와 잘 어울리는 예쁜 이름이네.”
칭찬에도 로제테는 고맙다는 인사를 할 수가 없었다. 아드리안 공작을 마주친 뒤로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