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30)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31화. 돌발 행동(1)(30/214)
31화. 돌발 행동(1)
2023.12.01.
기별도 없이 황자가 찾아왔다. 정확히는 황자궁에서 사람이 오기는 했지만, 서신을 받은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조슈아가 직접 말을 몰고 저택에 나타났다.
집무실에서 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아드리안 공작과 이제 막 옷을 갈아입은 다니엘이 놀라서 뛰어나왔다.
“황자 전하, 연락도 없이 갑자기 어쩐 일이십니까?”
아드리안 공작이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말에서 뛰어내린 조슈아가 시종에게 말고삐를 넘겨주며 웃었다.
“하하, 연통은 보냈는데 못 받으셨습니까?”
이번엔 다니엘이 대답했다.
“받았습니다. 5분 전에 말이죠.”
“어쨌든 나보다 연통이 먼저 왔으니 연락도 없이 온 건 아니지 않나?”
다니엘은 어깨를 으쓱이는 조슈아를 보며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이런 분이 아니신데.’
특별한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조슈아는 장차 제왕의 자리에 오를 남자였다. 비록 아직 황태자에 책봉되지는 못했지만 어릴 적부터 제왕학을 배웠다.
감정 또한 절제해야 한다고 강요받았다. 당연히 충동적인 행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조슈아가 갑자기 들이닥치다니? 그는 연락했으니 됐다고 뻔뻔하게 주장했지만, 사실상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다니엘은 고작 1시간 전에 그를 만나고 귀가한 참이었다.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 남으셨습니까?”
“딱히 그렇다기보다는 스승님께서 괜찮은지 내 눈으로 확인하러 왔어. 겸사겸사 이자벨과 루카스도 보고.”
조슈아가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소문의 막내 공녀를 봐도 좋겠군.”
그제야 그의 목적을 알아차린 다니엘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로즈를 보러 오신 거로군.’
아직은 황족을 알현할 준비가 안 됐다고 거듭 말했는데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달려오신 거였다.
사실 그것도 조금 이상했다. 조슈아는 왜 로제테에게 관심을 보이는 걸까. 소문에 쉽게 휩쓸리는 성격도 아닌데.
“그나저나 언제까지 여기에 세워 둘 거지?”
조슈아의 말에 다니엘은 생각을 멈추고 그를 안내했다.
“들어 오십시오. 미처 다과를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응접실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양해해 주세요.”
“천천히 내오라고 해. 이미 차는 마시고 왔으니까 없어도 되고.”
두 아이가 저택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아드리안 공작이 시종에게 지시했다.
“아이들에게 황자 전하를 알현할 준비를 하라고 안내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아니다. 로즈에겐 내게 직접 가겠다.”
“네.”
공작은 그 길로 바로 로제테의 방으로 향했다.
* * *
그 시간, 로제테는 와이드 부인이 보내온 봄나들이 드레스를 구경하고 있었다.
“우와아, 아가씨. 이것 좀 보세요. 너무 예뻐요.”
조앤이 커다란 상자에서 연분홍빛 드레스를 꺼내며 감탄했다. 로제테가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웅얼거렸다.
“하지만 조앤. 나는 봄나들이 드레스를 주문한 적이 없는걸?”
물론, 아드리안 공작과 세 남매는 나들이 드레스를 꼭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로제테가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나들이를 갈 일도 없는데 낭비예요! 그리고 곧 더 포동포동해질 테니까…….’라는 게 이유였다.
이자벨은 이마를 짚으며 ‘그놈의 포동포동…….’이라고 중얼거렸고, 나머지 셋은 그저 웃었다.
그러나 이내 네 사람은 로제테의 의견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아드리안 공작은 당분간 로제테를 외부에 공개적으로 내보낼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와이드 부인이 주문하지도 않은 드레스를 보내온 것이었다.
“자, 잘못 온 게 아닐까? 다른 사람이 주문한 건데 내가 열어 봤다는 것을 알면 화를 낼지도 몰라.”
조앤의 눈에는 심각한 로제테의 모습마저 마냥 귀여워 보였다. 조앤이 웃으며 답했다.
“글쎄요. 잘못 온 것 같지는 않아요. 상자에 ‘로제테 아드리안 공녀님께’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그래도…….”
“여기 편지도 있네요. 한번 읽어 보실래요?”
로제테는 조앤이 건네는 상아색 편지를 뜯었다. 편지지에는 수려한 필기체로 짤막한 편지가 쓰여 있었다.
무심코 그것을 읽어 내려가던 로제테는 문득 아차 싶었다.
‘맞다, 나 아직 여기서 글을 배우지 않았어!’
아드리안 공작은 아직은 조금 더 편하게 지내라며 가정 교사를 붙여 주지 않았다. 글을 읽어야 할 일이 있다면 삼 남매나 조앤이 대신 읽어 주었다.
아마도 조앤은 모시는 아가씨에게 온 편지를 자기가 직접 뜯어 볼 수 없으니, 로제테가 뜯고 다시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조앤, 읽어 줘.”
편지를 도로 건네자 조앤이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 내어 편지를 읽어 주었다.
“사랑스러운 작은 아드리안 공녀님께. 갑작스럽게 선물을 보내 놀라셨을까 걱정 되네요. 혹시 잘못 온 것은 아닐까, 하고 고민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조앤이 “왜 아니겠어요.”라고 덧붙이며 웃었다.
“오늘 보낸 드레스는 제 새로운 뮤즈인 공녀님께 제가 드리는 선물이랍니다. 공녀님의 아름다운 머리 색과 잘 어울리는 색으로 만들어 봤어요. 부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요. 당신의 와이드 부인으로부터.”
내 머리 색이 아름다운가.
로제테가 미심쩍은 얼굴로 머리카락을 매만지는데, 편지를 접은 조앤이 제안했다.
“아가씨, 한번 입어 보실까요?”
“지, 지금?”
“그럼요. 원래 드레스 선물은 받자마자 입어 봐야 한답니다.”
로제테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상자에 반쯤 걸쳐져 있는 드레스를 관찰했다.
전에 듣기로는, 와이드 부인은 주로 아드리안 공작가의 의복을 전담해서 만든다고 했다. 공작의 옷도, 세 남매의 옷도 모두 그녀의 작품이었다.
다만, 다들 검을 쓰는 기사인지라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싫어했다. 그래서 네 사람의 옷은 고급스럽지만 단순했다. 와이드 부인은 그에 슬퍼했다고 한다.
이자벨에게 몇 번이나 티파티 드레스나 나들이 드레스는 화려하게 제작하자고 제안해도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그런데 로제테가 나타난 것이었다. 검을 쓰지 않아서 굳이 장식을 없앨 필요가 없는 데다가 이자벨이 나서서 화려하게 꾸미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
와이드 부인은 그동안 억눌러 왔던 예술혼을 로제테의 드레스에 불태우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 저 분홍색 드레스도 아이용 드레스답지 않게 굉장히 화려했다. 엘리샤 댈러스가 제일 아끼던 드레스보다도 더.
거기에 군데군데 붙어 있는 보석은 보석에 대해 잘 모르는 로제테가 봐도 굉장히 질이 좋아 보였다.
‘내가 저런 것을 입어도 될까?’
못나 보이지는 않을까.
지난 두 달 동안 로제테는 조앤을 비롯한 하녀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녀들은 로제테가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칭찬을 해 주었다. 자신감을 높여 주기 위해서였다.
그 노력의 결과로 로제테는 분홍색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살이 오른 얼굴을 보고 ‘나도 예뻐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외모보다는 행동에 더 자신감이 생겼다.
-잘 드셔서 너무 예쁘세요.
-어쩜 웃는 게 그렇게 예쁘실까요? 아가씨처럼 잘 웃는 분도 없을 거예요.
-아가씨께선 무척이나 다정하세요. 모두 아가씨를 좋아한답니다.
조앤은 로제테가 반대로 외모에 집착할까 봐 걱정했고, 행동 하나하나에 칭찬했다. 그건 공작이나 삼 남매 또한 마찬가지였다.
과거, 댈러스 저택의 사람들이 로제테가 뭐만 하면 트집을 잡으며 험담하던 것과 정반대였다.
여전히 소심하긴 했지만, 이제 로제테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싫어할까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로제테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입어 볼래.”
“그럼 만세를…….”
로제테가 두 손을 번쩍 든 그 순간이었다. 노크 소리와 함께 아드리안 공작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빠!”
로제테가 그를 발견하고는 단숨에 뛰어갔다. 아드리안 공작이 웃으며 막내딸을 번쩍 안아 들었다.
“그래, 로즈. 뭐 하고 있었니?”
“드레스를 보고 있었어요! 와이드 부인이 봄나들이 드레스를 보내 줬거든요!”
“봄나들이 드레스?”
“네! 선물이래요!”
아드리안 공작은 참새처럼 재잘재잘 떠드는 로제테가 신기해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지난 두 달 동안 로제테가 부쩍 크는 모습을 보는 건 당연히 좋았다.
그러나 로제테는 몸보다 정신이 더 성장했다. 표정 없던 얼굴에 늘 미소가 자리 잡고, 어깨를 움츠리던 아이가 당당해진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빠?”
“아, 미안하구나. 무슨 얘기를 했지?”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물었어요.”
“꼭 이유가 있어야만 올 수 있니?”
“아뇨, 그건 아니지만요.”
로제테가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아드리안 공작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삐삐가 그녀에게 그러는 것처럼 공작의 뺨에 제 뺨을 살짝 갖다 댔다.
로제테의 등을 두드리던 아드리안 공작이 순간 멈칫했다. 그러나 그는 아이가 눈치채기 전에 자연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사실 할 얘기가 있어서 오긴 했지.”
“무슨 얘기요?”
“지금 황자 전하가 오셨단다.”
이번엔 로제테가 흠칫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황자 전하라면 조슈아 에른하르트 전하…… 말인가요?”
“그래. 어떻게 알았니?”
로제테가 더듬더듬 설명했다.
“그야, 황자님은 한 분이시고, 이 제국에서 황자님의 존함을 모르는 제국민은 없을 거예요.”
물론 그건 사실이었다. 원래의 여덟 살 로제테도 조슈아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다만, 지금 로제테에겐 그 이름이 다르게 와 닿았다.
조슈아 에른하르트. 로제테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자, 시간을 되돌리는 계기가 된 사람.
‘그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무엇 때문에 왔을까. 분명 조금 전 다니엘이 조슈아를 만나고 왔다고 들었다. 그런데 굳이 이곳까지 찾아왔다고?
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를 떠올리자 이제는 간신히 잊은 그날 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대체 왜 그랬지? 스승님과 다니엘이 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죽였어! 대체 왜!
온몸에 쏟아지던 분노. 흰 뺨에 흐르던 눈물, 파르르 떨리던 입술.
서늘한 감옥의 한기. 코끝을 스치던 죽음의 냄새.
모든 것이 괴로웠던 그날의 밤.
‘아냐, 아냐!’
로제테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었다. 두 손으로는 필사적으로 아드리안 공작의 셔츠를 움켜쥐었다.
꽉 쥔 오른손 밑에서 아드리안 공작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남들보다 느리지만, 강한 심장 박동.
로제테의 손에 멈췄던 이 심장은 그녀가 시간을 돌림으로써 다시 뛰었다.
로제테는 고개를 숙여 공작의 왼쪽 가슴에 귀를 갖다 댔다. 일정한 심장 박동 소리에 가까스로 진정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