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33)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33화. 가족의 의미(1)(33/214)
33화. 가족의 의미(1)
2023.12.03.
순서대로 알파벳을 쓰라고 했더니, 로제테는 막힘 없이 줄줄 글자를 써 내려갔다.
혹시 순서를 외운 건 아닌가 싶어 무작위로 불러 주며 받아써 보라고 했더니 이번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아무리 다 외웠다고 해도 조금 머뭇거리는 기색이 있어야 했는데 로제테는 그런 기미가 전혀 없었다.
“어떻게…….”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입술을 쭉 내밀며 글자를 쓰던 로제테가 고개를 들며 웃었다.
“다 외웠다고 했잖아요.”
“진짜로 외우신 거예요?”
“네!”
로제테는 그에 그치지 않고 간단한 단어 몇 개를 공책에 썼다. 책, 연필, 나비, 꽃 등등. 짧은 단어였지만 놀라운 일이었다. 노이어 부인이 로제테의 공책을 들고 신음을 흘렸다.
“이걸 어떻게 혼자 외우신 건가요?”
“책에 있는 것을 그대로 따라 했어요.”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과거에도 로제테는 댈러스 후작의 닦달에 혼자 책을 보며 단어를 익혔으니까.
그러나 노이어 부인에겐 로제테의 말이 그저 충격이었다. 그녀는 성실하게 예습한 로제테를 칭찬해야 할지, 나무라야 할지 조금 고민했다.
‘성실한 것은 좋지. 하지만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무언가를 바라는 듯 올려다보는 아이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하셨어요.”
노이어 부인은 로제테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덧붙였다.
“하지만 너무 무리하시면 안 돼요.”
“무리하지 않아요. 저는 이게 재밌어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로제테는 늘 그래 왔듯 눈을 굴리며 노이어 부인의 눈치를 살폈다.
‘이게 아닌가?’
칭찬을 듣기는 했는데, 아무리 봐도 노이어 부인은 엄청 놀란 것 같았다. 별일 아닌 것 같은데.
‘나 잘못한 건가?’
로제테는 수업 시간 내내 끙끙 앓았다. 부디 혼나지 않기를 바라며.
* * *
노이어 부인은 수업이 끝난 뒤 곧바로 아드리안 공작에게 달려갔다. 그에게 자신이 발견한 놀라운 사실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서류 처리를 하고 있던 아드리안 공작은 모든 일을 멈추고 그녀를 맞이했다.
“그래, 로즈의 수업은 어떻지?”
“굉장하십니다.”
노이어 부인의 대답에 아드리안 공작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그러나 그는 이내 표정 관리를 하며 되물었다.
“어떤 점이?”
“그냥 모든 게 다 대단하십니다. 제가 지금껏 가르쳤던 학생 중 제일 영특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다니엘 공자님보다도 더요.”
아드리안 공작이 깃펜을 내려놓고 경청했다.
“다니엘보다?”
과거에도 노이어 부인은 다니엘을 가르치며 그의 비상한 머리에 감탄했다.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말을 했다.
노이어 부인이 뒤늦게 아드리안 공작의 눈치를 살피며 설명을 이어갔다.
“네. 이틀 만에 알파벳을 모두 익히셨습니다. 단순히 익힌 게 아니라 막힘 없이 단어를 읽으시고, 간단한 단어를 쓰시기까지 하더군요.”
아드리안 공작이 계속해 보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였다.
“거기에 학업에 대한 열정도 굉장하십니다. 이대로라면 공녀님 나이 대에 익혀야 할 지식을 금방 익힐 수 있겠습니다.”
소신껏 말을 마친 노이어 부인이 다시금 공작의 기분을 살폈다.
아드리안 공작이 로제테를 끔찍이 아낀다는 사실은 이미 온 저택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렇지만 친자식과 입양 딸이 같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혹시라도 다니엘 공자님보다 더 낫다는 말에 기분이 상하셨으면 어쩌지?’
그러나 걱정과 달리 아드리안 공작이 피식 웃었다. 언짢은 기색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지금 그는 자식 자랑에 기뻐하는 아버지처럼 보였다.
“잘 따라간다니 다행이군. 앞으로도 수고해 주게.”
“그런데 말입니다, 공작님.”
“뭐지? 문제라도 있나?”
“그게…….”
노이어 부인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공녀님께서 학구열이 높으신 건 좋지만, 너무 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과하다니?”
“제가 따로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미리 단어를 예습해 오셨더군요.”
무심코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공작은 진지한 노이어 부인의 표정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안 좋은 건가?”
“아뇨, 안 좋은 것은 아닙니다. 굳이 좋다, 나쁘다를 비교하자면 좋은 쪽에 가깝지요. 루카스 공자님처럼 수업을 빼먹고 도망 다니시는 것보다는 낫죠.”
“흠, 그건 그렇지.”
“다만, 뭐라고 해야 할까. 공녀님께는 초조해하시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무엇을 초조해한다는 거지?”
“빨리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라도 받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아드리안 공작이 미소를 지우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저택에 처음 왔을 때 로제테가 물은 적이 있었다.
-전 이제 뭘 하면 되나요?
마치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드리안 공작은 당시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포동포동해지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로제테는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매 끼니마다 열심히 식사를 하곤 했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 같긴 했지만, 가끔은 ‘포동포동해져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 자신의 입양을 반대하는 이자벨에게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마법도 잘할 수 있어요. 마법을 배우면요, 이자벨 님의 머릿결도 관리할 수 있고요, 또, 어, 또, 차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저 너무 싫어하지 마세요.
돌이켜 보면 간단히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그 아이가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러신 것 같습니다. 제가 귀족가에 입양된 아이들을 몇 명 가르친 적이 있는데, 다들 잘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더군요. 로제테 아가씨는 그중에서도 유독 더 심하신 것 같고요.”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알겠나?”
“글쎄요.”
노이어 부인이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이 없는 투로 답했다.
“어쩌면 타고나신 성격이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알겠으니 이만 나가 보도록.”
“네.”
노이어 부인이 나간 뒤, 아드리안 공작은 서류에 집중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아이가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싫어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아드리안 공작 또한 로제테가 보이는 천재성에 기뻤다.
‘하지만 로즈가 부담감을 느끼면 안 되지.’
그는 결국 보좌관을 불러 물었다.
“로즈는 지금 어디 있지?”
* * *
아드리안 공작이 로제테를 찾을 무렵, 로제테는 멜로디와 함께 공부방에 있었다. 마법 수업을 듣기 위해서였다.
기초 수업은 따로따로 들었지만, 두 아이는 마법 수업만은 함께 듣기로 했다.
로제테가 강력히 주장했기 때문인데, 셀린느 또한 ‘함께 들으면 수업 능률이 더 올라가니까 좋죠.’라며 로제테의 말에 동조해 주었다.
“오늘부터 같이 수업을 듣는 거야, 멜로디.”
로제테가 멜로디의 두 손을 꼭 잡으며 속삭였다.
지난 한 달 동안 멜로디는 아드리안 저택의 고용인들이 지내는 숙소에서 오빠인 조셉 오서와 함께 지냈다.
그러나 틈틈이 본 저택에 와서 로제테와 어울린 덕분에 두 아이는 부쩍 친해졌다.
조셉은 ‘어떻게 아가씨와 멜로디가 친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멜로디를 단속하겠습니다!’라며 기겁했지만, 아드리안 공작이 괜찮다고 했다.
로제테가 또래 친구가 생긴 것에 굉장히 기뻐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볼살이 조금 오른 멜로디가 수줍게 웃었다.
“응. 근데 조금 걱정돼. 선생님이 무서우면 어쩌지?”
“괜찮아. 셀린느 언니는 다정하고 착해.”
“으응.”
두 아이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셀린느가 들어왔다.
“자, 두 사람 모두 제가 누군지 알죠?”
그렇게 시작된 첫 수업. 셀린느는 로제테와 멜로디를 책상에 앉히고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썼다.
“네, 언니.”
“…….”
밝게 대답하는 로제테와 달리 멜로디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낯을 가리는 것이다. 셀린느는 그런 아이를 보고 사람 좋게 웃어 보인 뒤 수업을 시작했다.
“자, 이제 우리는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배울 거예요. 마법의 가장 기초가 되는 수업은 역시 마나를 느끼는 것부터 시작되죠.”
셀린느가 로제테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물론 로제테 아가씨께선 지금도 훌륭하시지만, 기초부터 탄탄하게 하는 게 좋겠죠.”
“네, 언니.”
셀린느가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좋아요.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 볼까요?”
셀린느는 과감하게 이론을 생략하고는 실기로 들어갔다. 여덟 살 꼬맹이들에게 머리 아픈 이론을 설명해 봤자 이해하지 못할 것이란 게 이유였다.
그녀는 아이들의 납작한 아랫배에 손바닥을 갖다 대고는 직접 마나를 움직였다. 로제테는 태연했지만, 멜로디는 처음 느끼는 이질적인 마나 감각에 몸을 움츠리며 셀린느의 손을 피했다.
“괜찮아요. 처음엔 이상해도 곧 익숙해질 거예요.”
멜로디를 달랜 셀린느가 이번에는 로제테를 칭찬했다.
“마나 코어가 아주 잘 자리 잡았어요. 어쩜 혼자서 이걸 해내셨을까요. 저랑 수업을 듣고 훈련하다 보면 마나 코어도 더 크고 단단해질 거예요.”
“네, 언니.”
로제테가 두 뺨을 살짝 붉혔다. 그렇게 두 시간에 걸친 수업이 끝나 갈 때였다.
“수업이 끝났다면 잠깐 로즈와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문이 열리더니 아드리안 공작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빠!”
로제테가 반색하며 달려가자, 그가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마차 사고 이후, 로제테는 아드리안 공작과 부쩍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정말로 자신의 아빠가 되었다는 것도 실감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로즈 보러 왔지.”
아드리안 공작이 셀린느에게 가볍게 눈짓하고는, 로제테를 안은 채로 공부방을 나갔다. 로제테는 의아했지만 얌전히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아드리안 공작이 복도를 걸어가며 물었다.
“수업은 어떻니? 노이어 부인에게 들으니 잘 따라가고 있는 것 같던데.”
안 그래도 불그스름했던 로제테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던 로제테가 고개를 푹 숙이고 웅얼거렸다.
“재밌어요. 그리고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래, 그런 것 같더구나.”
어느새 정원에 들어선 공작이 로제테를 흔들 그네에 앉혔다. 로제테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었다.
“그런데 로즈,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니니?”
“무리요?”
“그래. 글자도 이틀 만에 다 익히고, 예습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로제테가 자신의 소망을 외쳤다.
“얼른 아드리안가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아드리안 공작이 로제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이미 훌륭한 아드리안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