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35)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35화. 가족의 의미(3)(35/214)
35화. 가족의 의미(3)
2023.12.05.
로제테는 이번엔 웃지 않았다. 대신 눈을 크게 뜨고 네 가족을 관찰했다.
다들 분홍 머리가 꽤 어울렸다. 특히 하얀 원피스를 입은 이자벨은 천사처럼 예뻤다.
로제테는 저도 모르게 제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분홍색이 저렇게 예쁠 수도 있구나.’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다들 내가 머리 색을 바꾸고 싶어 한다는 것을 들었나 봐.’
아마도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들은 로제테를 위해 머리 색을 바꾸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또다시 가슴이 몽글몽글 끓어올랐다. 이제는 말하기도 입 아프지만, 이럴 때마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듬뿍 났다.
다니엘이 얼굴을 붉히는 로제테를 보고 은근히 물었다.
“이제 한 가족처럼 느껴지니?”
“……네.”
로제테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신발 앞코로 바닥을 콩콩 두드렸다. 목 안쪽도 간질거리는 느낌이 났다.
루카스가 재잘거렸다.
“이 바보야! 머리 색 같은 건 달라도 우린 가족이라고! 그치, 누나?”
“뭐, 그렇지. 돌아가신 어머니는 갈색 머리셨는걸.”
“맞아! 머리 색이 다르다고 가족이 아니면 우리 엄마도 가족이 아니게?”
“그렇지만…….”
죽은 아드리안 공작 부인은 피가 이어진 가족이잖아요.
그렇게 쫑알거리려던 로제테는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을 굳이 입 밖으로 내뱉어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대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우리는 가족이에요.”
“그렇지!”
“저도 아드리안이에요!”
“맞아!”
루카스가 덩달아 신이 나서 로제테의 양 갈래머리를 잡고 휙휙 저었다. 그러다가 이자벨에게 혼이 났다.
“그런데 아빠, 언니, 오빠. 다들 계속 그렇게 살 거예요?”
다니엘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럴 생각인데, 왜? 싫으니? 별로야?”
“아뇨! 멋져요! 진짜로요! 하지만…….”
로제테가 웅얼거렸다.
“하지만 저는 아빠와 언니, 오빠가 백금발로 돌아가는 게 더 좋아요.”
“왜?”
“그야, 그게 원래 머리 색이니까요. 원래 있는 그대로가 훨씬 더 좋아요.”
다니엘이 웃으며 답했다.
“우리도 똑같아, 로즈.”
“똑같아요?”
“응. 우리도 지금 네 모습이 무척 좋아. 네 머리 색은 장미처럼 예쁘고, 얼굴도 귀엽고.”
“맞아, 맞아!”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
루카스와 이자벨이 맞장구를 치자 로제테는 너무 민망해졌다. 그녀가 두 손에 얼굴을 푹 묻었다.
그러나 빨개진 두 귀는 숨길 수 없었다. 세 남매와 아드리안 공작이 소리 내어 웃었다.
“으으, 앞으로는 머리 색을 바꾸겠다는 생각 안 할게요.”
“좋아! 그래야지, 꼬맹아!”
“그러니까 다들 얼른 백금발로 돌아와 주세요.”
“고개 들어!”
루카스의 외침에 고개를 들었을 때 로제테가 본 것은 원래의 머리 색으로 돌아온 네 사람의 모습이었다.
‘역시 다들 저게 더 어울려.’
로제테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봤는데, 저는 백금발이 안 어울릴 것 같아요.”
다니엘이 피식 웃었다.
“우리 막내는 백금발도 예뻤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분홍색이 더 예쁘지.”
그러고는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럼 식사하자.”
“네!”
로제테는 다니엘을 따라 쫄래쫄래 테이블로 걸어갔다.
그럴 때마다 결 좋은 분홍빛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 * *
“아버지!”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다들 디저트를 기다리고 있는데, 루카스가 손을 번쩍 들고 발언권을 기다렸다.
그는 아드리안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막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들었어요.”
이자벨이 냉소적으로 중얼거렸다.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지.”
“조용히 해!”
루카스가 붉어진 얼굴로 이자벨을 째려보았다. 이자벨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딱히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왜, 찔리니?”
“이잇!”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니?”
아드리안 공작이 중재했다. 루카스가 끊겼던 말을 다시 이어갔다.
“그래서 말인데요, 막내에게 상을 주는 게 어떤가요?”
“상?”
“네! 이를테면 로암 거리에 나가서 선물을 산다든가요!”
다니엘이 빙긋 웃었다.
“로암 거리에 가고 싶은 건 로즈가 아니라 루카스 너인 것 같은데.”
속마음을 들킨 루카스가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무튼요. 지금까지 막내는 제대로 밖에 나가 본 적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로제테가 아드리안 공작저에 온 지 석 달 정도 되었지만, 루카스의 말마따나 그녀는 저택 밖을 제대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아드리안 공작가 사람들이 워낙 싸고돈 탓이었다.
아직도 수도에서는 로제테 아드리안을 향한 관심이 뜨거웠다. 아드리안 공작은 혹시라도 그녀에게 해가 갈까 봐 사람들에게 노출을 극도로 꺼렸다.
그러나 저택에도 볼 것이 많고 할 것이 많았기 때문에 로제테는 별로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루카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그는 이젠 아예 로제테를 달달 볶기 시작했다.
“어때, 꼬맹아? 너도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
“저는 별로…….”
“뭐? 왜? 당연히 나가고 싶어야지!”
로제테는 루카스의 기세에 눌려 고개를 끄덕였다.
“나, 나가고 싶어요.”
“그것 보세요! 막내도 나가고 싶다고 하잖아요. 네?”
아드리안 공작은 기대감으로 가득 찬 루카스의 얼굴과 뒤늦게 살짝 들뜬 로제테를 번갈아 보며 고민에 잠겼다.
‘슬슬 밖으로 내보낼 때도 되긴 했지. 게다가 로암 거리만 잠깐 보고 오는 거라면 별일은 없을 테고.’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꾸나.”
“우와!”
로제테보다 루카스가 더 좋아했다.
“꼬맹아, 나가면 재밌는 것도 많이 하자!”
“네!”
로제테가 덩달아 신이 나서 대답했다.
그렇게 로제테의 공식적인 첫 외출 날짜가 정해졌다.
* * *
번화가인 로암 거리로 놀러 가리고 한 날 아침. 로제테를 씻겨 준 조앤이 분홍색 나들이 드레스를 입혀 주었다. 언젠가 와이드 부인이 선물해 주었던 것이었다.
이걸 언제 입어 보나 했는데 드디어 입게 되었다.
“와, 아가씨. 정말 예뻐요!”
로제테는 조앤의 감탄사를 들으며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그녀가 보기에도 예쁜 아가씨가 서 있었다.
인형 같은 모습이 신기해서 괜히 제자리에서 핑그르르 돌아보았다. 분홍색 머리카락과 드레스 자락이 허공에 솟구쳤다가 가라앉았다.
조앤이 박수를 짝짝 쳤다.
“나가면 다들 아가씨만 볼 거예요.”
“에이, 아니야.”
“정말이에요. 제가 언제 거짓말하는 것 보셨나요? 그럼 다들 기다릴 테니 나가 볼까요?”
“응.”
로제테가 조앤의 손을 잡고 1층 홀에 도착했을 때, 다니엘과 아드리안 공작이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로제테가 무슨 일이냐고 루카스에게 눈짓으로 묻자, 그가 속삭이며 답했다.
“아버지께서 일이 생기셨대.”
“일이요?”
“응, 그래서 못 나갈 수도 있대.”
“그렇구나.”
로제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조금 슬펐다. 기껏 차려입은 나들이 드레스가 아깝게 됐다.
곧 대화를 마친 다니엘과 아드리안 공작이 로제테에게 다가왔다.
“미안하게 됐구나, 로즈. 아빠가 급한 일이 생겨서 못 나가 볼 것 같아.”
아드리안 공작은 아이들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아버지였다. 그런 그가 외출 준비까지 하고는 이렇게 갑자기 취소한다는 것은 그만큼 급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네 아이는 모두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저 루카스가 조용히 물었을 뿐이었다.
“그럼 나중에 가는 건가요?”
태연한 척 물었지만 루카스의 얼굴엔 진한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그때 다니엘이 빙긋 웃었다.
“너희만 괜찮다면 아버지 없이 우리끼리 다녀오는 건 어때?”
“우리끼리?”
“응. 아버지께서도 허락해 주셨어. 호위를 몇 명 데리고 가면 안전할 테고, 또 우리끼리라면 외출한 적이 몇 번 있으니까. 로즈만 추가된 것뿐이잖아.”
“맞아! 우리는 이미 아버지 없이 나가 봤잖아! 로즈는 내가 잘 돌볼게!”
“형 말이 맞아요! 형 말 잘 듣고 얌전히 다녀올게요!”
아드리안 공작이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그래. 루카스, 네가 로즈를 잘 데리고 다녀야 한다.”
“당연하죠!”
루카스에 이어 다니엘도 덧붙였다.
“제가 애들을 잘 돌볼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아드리안 공작이 허리를 숙여 로제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같이 못 가서 미안하구나. 대신, 언니 오빠와 마음껏 즐기고 오렴.”
“다음에…….”
“응?”
로제테가 용기를 내어 속삭였다.
“다음에는 꼭 같이 가요. 약속이에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아드리안 공작이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래, 약속하마.”
* * *
솔직히 얘기하자면 로제테는 아드리안 공작이 같이 가지 못해서 굉장히 아쉬웠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이내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 풀렸다. 마차 창밖으로 보이는 로암 거리의 풍경 때문이었다.
“우와아.”
로제테가 창밖을 보며 저도 모르게 감탄하자, 루카스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때, 꼬맹아. 굉장하지?”
“네!”
“멋지지?”
“네! 엄청요!”
“나한테 감사하지? 내가 나가자고 했잖아.”
그의 말에 담긴 묘한 뉘앙스를 눈치챈 로제테가 루카스를 돌아보았다. 루카스는 무언가 바라는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로제테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루카스 오빠?”
루카스가 큼큼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뭐, 그런 걸 가지고.”
다니엘이 미소 지었고, 이자벨이 혀를 찼다.
두 사람의 시선을 눈치챈 로제테가 다시 한번 말했다.
“다니엘 오빠도, 이자벨 언니도 고마워요. 언니 오빠 덕분에 무척 좋아요.”
“네가 기뻐하니 오빠도 기쁜걸.”
“뭐, 언젠가는 한번 데리고 나오려고 했으니까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돌아오는 대답 또한 두 사람다웠다. 비록 반응은 상반됐지만 두 사람 모두 자신을 아낀다는 것을 로제테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빙긋 웃어 보이고는 다시 창문에 매달려서 바깥 풍경을 관찰했다.
‘정말 멋져!’
화려하게 꾸며진 건물과 거리를 돌아다니는 귀족들의 모습. 전생과 현생을 합쳐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고아원에 있을 때엔 이런 번화가에 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댈러스가에 입양된 뒤에도 저택에서만 지내다시피 했으니까.
과거엔 종종 로암 거리에서 쇼핑하고 놀고 왔다는 엘리샤를 부러워하기만 했었다.
과연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을까. 로제테의 작은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