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42)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42화. 입궁(42/214)
42화. 입궁
2023.12.12.
솔직히 말하면 로제테는 평생 가족들에게 모든 사실을 비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 비밀로 하고 싶었다.
그런데 조슈아를 만나고 마음이 변했다.
‘가족들을 속이는 것은 싫어.’
먼 미래에, 모든 싸움이 끝나고 나면 가족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아빠나 오빠가 용서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가족들이 사실을 알고 날 미워한다고 해도…….”
애정이 가득했던 두 눈이 경멸로 물들어 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목이 멨다. 최대한 덤덤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그건 다 내 업보니까. 하지만 지금은 안 돼. 가족들을 무사히 구하는 게 먼저니까.”
로제테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니까 나 안 쫓겨나도록 정말 노력할 거야. 황후님의 독살도 반드시 막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도와줘야 해, 삐삐. 알겠지?”
[삣!]긴장이 풀린 탓일까. 슬슬 눈이 가물가물해졌다.
하품을 한 번 한 로제테가 어눌해진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꼭, 모두를 지킬 거야. 아빠도, 오빠도, 이자벨 언니도…….”
그리고 조슈아, 그 남자도.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한 로제테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삐삐는 그런 로제테에게 이불을 덮어 주려고 이불을 물고 끙끙 씨름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베개에 누워 잠을 청했다.
* * *
그날 이후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로제테는 정해진 시간에 노이어 부인과 셀린느의 수업을 들었다. 수업 시간 외에는 루카스나 멜로디와 놀았다.
아드리안 공작의 말 덕분에 더 이상 잘하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았다. 굳이 시키지도 않은 예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두 선생님이 시키는 것만 열심히 따라 했다.
‘그래도 잘한다고 칭찬 들었어.’
댈러스 후작에게 맞지 않기 위해, 혹은 칭찬 받기 위해 노력하던 과거와 달리 로제테는 이제 수업 자체를 즐겼다. 그녀가 느끼기에도 긍정적인 변화였다.
멜로디와 그녀의 오빠인 조셉하고도 꽤 친해졌다.
특히 조셉은 기사 서약을 앞두고, 로제테에게 서약을 하겠다며 아예 대놓고 떠들고 다녔다. 루카스는 그런 그를 더욱 강하게 경계했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단 한 가지만 제외하면.
‘그런데 왜 황자님은 연락을 하지 않는 거지?’
로제테를 보겠다며 저택을 우악스럽게 쳐들어올 때는 언제고, 조슈아에게서는 일주일째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곧 연락한다더니, 오늘도 늑대는 안 오려나 봐.’
매일 자기 전 창문에 앉아 늑대를 기다리던 로제테는 오늘도 창문 근처를 서성이다가 침대로 올라갔다.
그렇게 잠이 들었을 때였다.
[삐이잇!]로제테의 머리맡에서 자던 삐삐가 무언가를 감지하고는 날개를 세차게 파닥였다.
“삐삐, 조용히…….”
잠결에 중얼거리던 로제테는 눈을 번쩍 뜨고 달려가 창문을 열었다. 동시에 조슈아의 패밀리어가 단숨에 창문을 뛰어넘어 들어왔다.
“늑대야, 오랜만이야!”
로제테가 반가워하자 늑대가 그녀의 허리춤에 얼굴을 문댔다. 늑대의 목에 걸린 목걸이에서 단호한 조슈아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만.>
그 말과 동시에 로제테와 늑대가 몸을 굳혔다. 조슈아가 명령하듯 말했다.
<조만간 황성으로 와.>
“황성이요? 하지만 제가 어떻게?”
<곧 알게 될 거야. 너도 거기서 놀지 말고 얼른 돌아와.>
털이 복슬복슬한 꼬리로 슬금슬금 로제테의 발목을 건드리던 늑대가 강아지처럼 낑낑거렸다.
<지금 당장 돌아와.>
늑대가 도와달라는 듯한 눈으로 로제테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라고 뭘 할 수 있을 리가 있나.
로제테는 미안하다고 속삭이며 늑대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다음에 또 보자, 늑대야. 조심히 가.”
한 번 더 끙끙 앓는 소리를 낸 늑대가 이내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그다음 날 아침.
로제테는 조슈아의 말뜻을 이내 알 수 있었다.
“뭐가 와요?”
“황후 전하의 편지.”
이자벨이 조금 전 집사장이 직접 건네준 편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로제테가 편지에 찍힌 밀랍 인장을 흘끔거리며 되물었다.
“황후님이 보낸 편지인지 어떻게 알아요?”
“여기 찍힌 인장을 보면 알 수 있어. 너도 나중에 예절 시간에 배우게 될 거야.”
“얼른 배웠으면 좋겠어요. 궁금해요. 그런데 황후님께서 언니에게 직접 초대장도 보내시나요?”
우리 언니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다니! 로제테는 조금 들떴다. 반면 이자벨은 별것 아니라는 투로 답했다.
“응, 종종 보내셔.”
“종종이요?”
“응. 아, 말 안 했었나? 돌아가신 어머니와 황후 전하께서는 절친한 친구셨어. 황후 전하는 우리 세 남매의 대모님이기도 하고.”
“말 안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말했으니 됐네. 아무튼 그래서 종종 어머니와 함께 전하를 뵈러 황성에 갔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초대장을 보내셔도 거의 찾아뵙지 않았지만.”
로제테는 살짝 쓰게 웃는 이자벨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안 갔는데요?”
“그냥. 황후 전하께서 나 같은 꼬맹이와 할 얘기가 뭐가 있어. 괜히 방해만 될 뿐이지. 그래서 안 갔는데…….”
착실히 답을 하며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이자벨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로제테의 옆에서 버터에 구운 감자를 오물거리던 루카스가 끼어들었다.
“왜, 누나? 황후 전하께 무슨 일이 있으시대?”
“아니, 별일은 없으신 것 같아. 그냥 로즈를 보고 싶으시대.”
때마침 갓 짠 오렌지 주스를 마시던 로제테는 순간 사레에 걸렸다. 이자벨이 콜록거리는 로제테의 등을 무심한 듯 톡톡 두드렸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화, 황후 전하께서 저를요? 왜, 왜, 왜, 왜요?”
“왜긴 왜겠어. 진짜로 궁금하셔서 그러시겠지.”
“저를 왜 궁금해하세요?”
“말했잖아. 황후 전하께서 돌아가신 어머니와 절친한 친구셨다고. 그만큼 전하께선 우리 삼 남매를 각별히 여기셨어. 친자식처럼 생각하시고는 했지. 그런데 막내가 생겼다고 하니 당연히 궁금하시겠지. 그러니까 너도 인사드리러 가자.”
“그…….”
“권유가 아니라 강요야. 너에겐 선택권이 없어.”
편지를 접은 이자벨이 단호하게 말했다.
“황후 전하께서 네가 보고 싶으시대잖아. 그걸 거절할 수 있어? 적어도 난 못 해.”
“으으, 아니요. 저도 못 해요.”
“그럼 가는 거야. 사흘 뒤니까 준비해.”
“네에.”
대답하고 나서야 로제테는 이게 조슈아의 계획이란 것을 눈치챘다.
‘조만간 황성으로 오라던 게 이 소리였구나.’
그러니까 이번 방문은 단순히 황후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독살의 실마리를 찾으러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더 긴장됐다. 조슈아에게 큰소리 단단히 쳤는데, 막상 일이 닥치니까 두려웠다.
‘나, 잘할 수 있겠지?’
그런 로제테의 걱정을 듣기라도 한 듯, 이자벨이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 넌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까.”
“네?”
“예법 수업도 잘 들었고, 실제로도 많이 발전했잖아. 황후 전하 앞에서도 지금처럼만 하면 돼.”
편지가 온 순간부터 쌀쌀맞기만 하던 이자벨이 살짝 웃었다.
“게다가 나도 같이 가니까,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알겠지?”
아, 이제야 이자벨을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그녀는 표현에 능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니엘이나 루카스만큼이나 로제테를 아끼고 걱정하고 있었다.
무심한 듯하지만 뒤에서 지켜보고 필요할 때 받쳐 주는 것. 그게 바로 이자벨 아드리안만의 방식이었다.
로제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뭐.”
이자벨이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나 백금발 사이로 보이는 흰 귀가 언뜻 붉어져 있었다.
“딱히 걱정한 것은 아니고.”
로제테는 소리 죽여 웃었다.
이자벨 덕분인지 황후를 만나는 게 조금 전처럼 걱정되지는 않았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황성에 방문하는 날이 되었다. 조앤을 비롯한 하녀들은 아침부터 요란스럽게 로제테를 꾸미기 시작했다.
로제테는 살짝 굳은 얼굴로 거울 속의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늘 그녀는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하얀 원피스 차림이었다.
나들이 드레스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급스러운 소재로 만들어 피부에 닿는 감촉이 좋았다.
예쁜 옷을 입어서 기분 좋은 것과는 별개로 로제테는 지금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황후 전하 앞에서 실수하면 어쩌지? 또 독살을 못 막으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생각에 그녀는 황성에 가기도 전에 지치고 말았다.
로테제가 한숨을 푹 쉬는데, 이자벨이 방으로 찾아왔다. 그녀는 평소보다는 화려하지만 로제테보다는 간편한 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이자벨을 보니까 마음이 조금 놓였다.
“다 준비했어?”
“네.”
이자벨이 다가와 로제테의 목에 묶인 리본을 다시 한번 정리해 주었다.
“예쁘네.”
“네?”
“그럼 가자.”
“네!”
두 사람은 아드리안가에서 제일 화려한 사두마차를 타고 황성으로 향했다.
황성으로 가는 내내 마차 안에는 아무런 대화도 오고 가지 않았다.
로제테는 입을 열면 세게 뛰고 있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까 봐 걱정돼서 입을 꾹 다물었고, 이자벨은 생각이 많은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로제테는 그런 언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역시 묻지 못했다.
이윽고 마차가 황성에 도착했다. 경비병들은 마차에 새겨진 아드리안가의 문장을 보고 곧바로 마차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마차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을 때. 먼저 내리려던 이자벨이 흠칫했다. 로제테 또한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뒤늦게 놀랐다.
‘감시하러 온 건가?’
조슈아 에른하르트였다. 그는 지난번 아드리안 저택에 올 때와 달리 화려한 예복을 입고 있었다.
“공녀들의 에스코트는 내가 하지.”
조슈아가 이자벨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원래 두 아이를 에스코트하기로 되어 있었던 아드리안가의 기사들이 그의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서 있었다.
이자벨이 기사들에게 흘끔 시선을 주었다가 조슈아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요즘 전하께서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뭐, 그렇다고 해 두지.”
조슈아가 이번에는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로제테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대도 내려야 하지 않겠어?”
“저…….”
로제테가 도움을 청하는 얼굴로 이자벨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자벨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말했다.
“내리렴, 로즈. 전하께서 기다리시잖아.”
“네에.”
이자벨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로제테의 긴장한 몸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로제테는 허둥지둥거리며 조슈아의 손을 잡고 내렸다. 잡은 손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내리느라 중간에 발을 헛딛기까지 했다.
“이런. 작은 공녀는 조심성도 없군.”
조슈아가 로제테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빈정거렸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힘있는 팔이 로제테를 단단히 받쳤다. 너무 가까워진 거리에 로제테가 숨을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