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5)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5화. 아드리안 공작(3)(5/214)
5화. 아드리안 공작(3)
2023.11.05.
그 후 로제테는 또다시 앓기 시작했다. 마법을 쓴 후유증이었다.
마법사들은 마법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몸속에 마나 코어를 만든다. 이 마나 코어가 마법을 더 쉽게 쓸 수 있도록 만들고, 마법을 쓰고 난 뒤의 후유증도 줄여 주었다.
그런 마나 코어도 없이, 한 번도 마법을 쓴 적 없는 몸으로 고위급 마법인 회복 마법을 썼으니 일곱 살 아이의 몸이 버틸 리가 없었다.
제인은 안절부절못하며 로제테의 곁을 지켰다. 식은땀으로 젖은 이마와 목을 차가운 물수건으로 닦아 주고, 스푼으로 로제테의 입에 물을 흘려 넣어 주었다.
로제테는 그런 제인이 고마웠지만, 고맙다고 말할 기운도 없었다. 그녀는 끙끙 앓으며 거의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신관들도 걱정하며 그녀의 몸에 신력을 불어 넣어 주었지만 소용없었다. 일반적인 열이라면 신력으로도 충분히 내릴 수 있었지만 로제테의 경우는 특별했다.
현재 마나 코어가 없는 로제테의 열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 마나가 스스로 가라앉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는 것. 둘, 조금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진 마법사가 마나를 인위적으로 잠재워 주는 것.
그러니 신관의 신력이 먹힐 리가 없었다.
신관들은 당황하며 의원을 불렀지만 의원이라고 별달리 할 수 있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해열제를 주기는 했지만 약을 먹어도 열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약도, 신력도 통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누워서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금방 가라앉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로제테는 몽롱한 정신으로 제인이 건네주는 물을 마셨다. 마나 코어가 없었지만 그녀는 몸속의 마나를 운용할 줄 알았다.
쉬는 동안 마나를 움직여 작게나마 코어를 만든다면 몸이 바로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변수가 있었다면 그녀의 몸이 생각보다도 더 약했다는 것이었다. 몸이 버티지 못하니 마나 코어를 만들지 못했고, 마나 코어가 없으니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도 하루 동안 푹 쉬었다고 어제보다는 열이 좀 떨어졌다.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와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준 제인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언니, 고마…….”
그러나 로제테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 때문이었다. 당연히 제인일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도 눈에 띄는 백금발. 아드리안 공작이었다.
순간 놀라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던 로제테는 그만 사레에 걸리고 말았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콜록거리는 그녀의 등을 아드리안 공작이 조심스럽게 토닥였다. 아이가 셋이나 있어서 그런 걸까.
로제테를 다루는 그의 손놀림이 퍽 익숙했다.
“괜찮니?”
“저, 끅, 그게…….”
“내가 놀라게 했다면 미안하단다.”
로제테는 숨을 고르려고 노력하며 고개를 휙휙 저었다. 귀족에게 사과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과를 하지 말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로제테는 그저 눈동자를 또르륵 굴리며 아드리안 공작이 빨리 나가기를 바랐다.
“잠깐 손을 잡아도 되겠니?”
그녀를 관찰하던 아드리안 공작이 불현듯 물었다. 로제테는 깜짝 놀라 그가 왜 그런 제안을 하는지도 모르고 일단 손을 내밀었다.
아드리안 공작이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의 손은 로제테의 것보다 족히 두 배는 컸고, 따뜻했다.
곧 공작의 손에서 흘러나온 따뜻한 기운이 로제테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의 마나였다.
“내가 마법사가 아니라서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구나.”
소드 마스터는 이례적으로 마나를 운용할 줄 알았다. 그의 마나가 로제테의 몸속에서 날뛰고 있는 마나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이윽고 로제테의 마나가 배꼽 부근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메스꺼웠던 속도 가라앉았다.
“이제 좀 괜찮니?”
다시 침대에 누운 로제테는 필사적으로 이불을 코까지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드리안 공작이 싱그럽게 웃었다.
“내가 그리도 싫으니?”
로제테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가 싫은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가 그를 싫어할 권리도 없었다.
“그럼?”
“…….”
“무섭니?”
끄덕끄덕.
“내가 귀족이라서?”
도리도리.
“그럼 왜 무서울까.”
“…….”
아드리안 공작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입양을 포기하마.”
로제테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대신 네가 네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후원을 할까 하는데, 어떻겠니?”
“후원……이요?”
“그래. 아드리안가의 후원을 받아 아카데미에 가면 마법을 배울 수 있을 거야.”
“…….”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선뜻 답할 수 없었다.
로제테가 말없이 눈만 깜빡이고 있자 아드리안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너만 좋다면 언제든지 아드리안가에 와도 좋단다. 그럼 푹 자렴.”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갔다. 동시에 로제테는 갑자기 나른해져서 잠이 들고 말았다.
* * *
아드리안 공작 덕분인지, 한숨 자고 일어난 로제테는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해졌다.
그녀는 아침을 먹고 아름드리나무 그늘 밑에 앉아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는 것을 구경했다.
먼지는 폴폴 날리고 시끄러웠지만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이 소란스러운 풍경이 꽤 그리웠다.
모순적이게도 로제테는 소란스러움 속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안녕?”
그때였다. 머리 위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웬 남자아이가 눈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연한 백금발에 보라색 눈을 가진 아이. 그는 꼬질꼬질한 고아원 아이들과 달리 머리부터 발끝까지 귀티가 났다. 누가 보더라도 귀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생김새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이의 표정에선 귀족 특유의 자신감이 묻어 나왔다.
로제테는 어딘가 익숙한 그의 생김새에서 그가 아드리안가의 사람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의 외모가 아드리안 공작과 굉장히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아이라기보다는 소년에 가까운 외모에서 그가 첫째인 다니엘 아드리안이라는 것도 추측해 냈다.
다니엘 아드리안. 아드리안 공작과 더불어 그녀의 마법에 죽었던 남자.
로제테는 몸을 굳히며 달아날 곳을 찾았다. 도망친다고 과거가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모든 것을 회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채 일어서기도 전에 다니엘이 먼저 물었다.
“옆에 앉아도 되니?”
“그…….”
아뇨, 안 돼요. 그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이상하게도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로제테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다니엘을 올려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수락도, 거절도 할 수 없으니 그냥 침묵을 택한 것이다.
그걸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다니엘이 그녀의 옆에 앉았다. 로제테는 화들짝 놀라 옆으로 조금 움직였다. 다니엘이 잠깐 놀라더니 이내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미안. 싫다는 소리를 하지 않길래 앉아도 된다는 줄 알았어.”
“…….”
“내가 여기 있는 게 싫으니?”
로제테는 고개를 저었다. 앉아도 되냐는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었지만, 싫냐는 질문에는 금방 답을 할 수 있었다.
싫지는 않았다. 그냥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싫은 건 아니라서 다행이네.”
“…….”
“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었어?”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그의 의도가 궁금하면서도 로제테는 조용히 웅얼거렸다.
“그냥 구경하고 있었어요.”
“뭘?”
“아이들이 노는 거요.”
“왜 같이 안 놀고 구경만 하고 있어?”
“구경하는 게 더 좋아서요.”
분명 대화가 이어지고는 있는데 어딘가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따로 있는 걸까?’
로제테는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왜 우리 가문에 오기 싫은 거야?”
“네?”
“아니, 보통은 입양된다고 하면 가족이 생긴다고 좋아하던데…….”
상대가 아드리안 가문만 아니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로제테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무례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텐데도 그는 전혀 불쾌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래도 상대가 그나마 또래인 다니엘이라서 그런 것일까. 로제테는 조금 편하게 입을 열 수 있었다.
“공작님이 보내신 건가요?”
“응?”
“절 설득하라고요?”
“아니. 그냥 나 혼자 온 건데.”
다니엘이 어깨를 으쓱했다.
“동생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들어서 얼굴 보러 온 거야.”
“그런데 공자님은 싫지 않으세요?”
“뭐가?”
“보통 입양을 한다고 하면 아이들은 싫어하더라고요.”
로제테는 과거 댈러스가에 입양됐을 때를 떠올렸다. 그녀의 의붓오빠, 데릭 댈러스와 의붓동생, 엘리샤 댈러스는 로제테를 반기지 않았다.
그나마 데릭은 로제테를 무시해서 별 상관없었다. 문제는 여동생 엘리샤였다. 그녀는 아주 교묘하게 로제테를 괴롭혔다.
한번은 로제테의 방에 제 목걸이를 숨겨 두고는 로제테가 훔쳐 갔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로제테는 다락방에 갇히는 벌을 받아야만 했다.
‘그것 말고도 열거하자면 많지만…….’
아무튼 과거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로제테는 당연히 아드리안가의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다니엘에겐 이미 여동생이 있었다. 굳이 로제테를 반길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난 좋은데.”
“…….”
“벨과 루카스도 좋아할 거야.”
“하지만…….”
대답하던 로제테의 시선이 문득 다니엘의 다리로 향했다.
‘멀쩡해.’
과거 다니엘은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절었다. 늘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는데, 당연히 검도 쓰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검술 명가인 아드리안가의 후계를 이으면 안 된다는 반대 목소리가 있기도 했었다.
‘그 사고를 댈러스가에서 냈었지.’
아드리안가에서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지만 댈러스가에 몸담았던 로제테는 알고 있었다.
그 순간, 벼락같은 깨달음이 그녀를 덮쳤다.
‘내가 없어도 똑같은 미래는 반복될 거야.’
다니엘은 똑같은 사고를 당해 다리를 쓰지 못할 것이고, 댈러스 후작은 로제테의 대용품을 찾아 아드리안 공작과 다니엘을 죽일 계획을 세울 터였다.
최악의 경우엔 그들이 다시 죽을지도 몰랐다.
자신만 그 혼란을 피해 도망쳐도 되는 것일까.
그저 속죄하는 마음만 가지고 사는 것으로 모든 일을 끝내도 되나.
로제테는 낡은 치마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만약 자신이 아드리안가에 간다면? 모든 미래를 바꿀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선뜻 그러겠노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외면할 수 있을까. 먼 미래에 아드리안 공작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죄책감에 미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한 로제테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공작님께선 어디 계세요?”
“아버지? 아버지는 원장님을 보고 계셔.”
“공작님을 보러 갈래요.”
“그래? 같이 가자.”
자리에서 일어난 다니엘이 손을 내밀었다. 로제테는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을 잡았다. 검을 배우는 아이답게 다니엘의 손은 거칠었지만, 무척이나 따뜻했다.
로제테는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며 다니엘과 함께 원장실로 향했다. 두 사람이 같이 나타나자 안에 있던 아드리안 공작과 원장이 동시에 일어났다.
원장은 놀란 반면, 아드리안 공작은 자상하게 웃었다.
“로제테, 다니엘을 만난 모양이구나. 그래, 무슨 일로 왔니?”
로제테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쉰 뒤 선언했다.
“갈게요.”
“응?”
“공작님을 따라가겠어요.”
그래서 아드리안 공작가의 운명을 내가 바꿀 거예요.
로제테는 뒷말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