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52)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52화. 나는 네게 감사해(52/214)
52화. 나는 네게 감사해
2023.12.22.
조슈아는 가볍게 던진 말이라는 듯 그 이상의 말이 없었다. 로제테는 그런 그를 보다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조슈아가 툭 지나가듯 얘기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고맙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더군.”
“……네?”
그 말이 무슨 소린지 생각해보던 로제테가 조금 전보다 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미 하셨잖아요! 그때, 그 숲에서요.
“알아. 그것 말고 다른 거 말이야.”
“……다른 거?”
“네가 시간을 돌린 일 말이야.”
조슈아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계속 이어 말했다.
“네가 한 일이 나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어.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잃은 세계에서 불행하게 살고 있었겠지. 어쩌면 나 또한 잘못됐을지도 몰라. 다들 그걸 원했으니까.”
“그건…….”
아니라고 부정하려는데, 조슈아가 손을 들고 그녀의 말을 막았다.
“나는 아직도 정확히 네가 어떤 마음으로 시간을 돌렸는지는 모르겠어. 네 말대로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는지, 단순히 네가 살기 위해 그랬던 건지 헷갈려.”
“…….”
“그래도 넌 시간을 돌리는 데 성공했고, 나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줬어. 그것만으로도 나는 네게 감사해.”
로제테가 민망함에 구두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녀의 삶은 늘 비난으로 얼룩져 있었다. 사랑받고자 노력했지만, 그녀의 마법은 결국 많은 사람의 원망만 받았다.
심지어 가족조차 그녀를 외면했다.
시간을 돌리는 데 성공했어도, 과거에는 죽었던 여러 사람을 살렸어도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을 했기 때문에.
어차피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으니 그런 소리를 해 줄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를 원망한다고 했던 남자가 고맙다고 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드리안가에서 지내면서 과거보다 많은 감정을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생소한 감정이 남아 있었나 보다.
부끄러웠다. 목 안쪽이 간지러웠다. 로제테는 괜히 손톱으로 목만 긁다가 중얼거렸다.
“고맙다는 이야기를 받을 일은 아닌 것 같지만, 황자님께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에요.”
그러다가 문득 떠올랐다.
‘그런데 황자님은 어떻게 과거를 기억하지?’
그가 과거를 기억하지 못했다면 이런 소리를 듣지 못했을 텐데.
마법에 허점이 있었나? 혹시라도 조슈아 말고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이 또 있다면 어떡하지?
또 그게 댈러스 후작과 릴리스 공작의 사람이라면?
로제테가 사색이 되어 물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황자님은 왜 기억이 있는 걸까요? 만약에 마법이 잘못되어서 그런 거라면,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이 또 있는 거 아니에요?”
“아, 그거.”
걱정하는 로제테와 달리 조슈아는 태평했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마 나 말고는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거야.”
“그걸 황자님께서 어떻게 확신하세요? 저는 저 말고 없는 줄 알았는데요.”
“그건…….”
조슈아가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게 있어.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네에.”
로제테는 그를 캐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말해 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야기는 끝났으니 책이나 계속 보도록 해.”
“네!”
로제테는 그의 말대로 삐삐와 함께 식물도감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진지하게 뭔가를 생각하는 조슈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세요?”
“아아.”
조슈아가 무언가 말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너 같은 꼬맹이에게 말할 만한 일은 아니야.”
루카스가 로제테를 ‘꼬맹이’라고 부르는 것을 지적한 거였다. 로제테가 저도 모르게 발끈했다.
“저 꼬맹이 아니에요.”
루카스가 애 취급하는 건 괜찮았는데, 이상하게 조슈아가 그러는 건 기분이 상했다.
“저도 시간을 돌리기 전엔 스무 살이었어요.”
“딱히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는데.”
조슈아가 아주 작게 속삭였다. 로제테가 그걸 알아듣지 못하고 “네?” 하고 반문하자 그가 건성으로 손을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나는 스물네 살이었는데.”
“……그래서요?”
“네 살 차이가 얼마나 큰 줄 알고 있지?”
“그…….”
별것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었지만, 로제테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녀가 봤을 때 확실히 조슈아는 그녀와 체격 차이가 꽤 났으니까.
그녀는 새삼스럽게 조슈아를 살폈다. 그는 체격이 큰 아드리안가 사람들만큼이나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검술보다는 마법 수업에 더 집중하기 때문에 근육질 몸매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몸이 단단해 보였다. 로제테는 그런 조슈아를 보면 언젠가 백과사전에서 읽었던 재규어가 떠올랐다.
키도 로제테보다 머리통 하나는 컸는데, 그런 그에게 로제테는 꼬맹이로 보이는 게 당연했다.
‘시간을 돌리기 전에는 체격 차이가 더 났으니까.’
그래서 로제테는 꼬맹이가 아니라는 말 대신 다른 말로 그를 설득했다.
“그래도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어쨌든 저도 시간을 돌아왔으니까요. 머리를 맞대면 좀 낫지 않을까요?”
로제테는 그래도 조슈아가 말해 주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어마마마의 주치의를 누구로 삼을지 고민이야. 이번엔 믿을 만한 사람을 들여야 할 텐데 말이지. 과거엔 없었던 일이라 참고할 게 없어.”
“으음.”
로제테도 고민해 보았지만 바로 생각나는 사람은 없었다. 조슈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혀를 찼다.
“내가 뭐랬어? 꼬맹이에게 말해 봤자 소용없을 거랬지?”
“그냥 꼬맹이에게 말할 일이 아니랬지, 소용없다는 소리는 안 하셨는데요.”
“지금 내게 대드는 건가?”
“……아뇨.”
“그러고 보니 루카스가 종종 꼬맹이가 대든다고 했었지.”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로제테가 불퉁거릴 때였다. 풋, 하는 소리가 들렸다.
‘……?’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던 로제테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꽤 놀랐다.
늘 냉소적이던, 웃어 봤자 헛웃음만 터뜨리던 조슈아가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다니엘처럼 산뜻한 미소는 아니었지만, 꽤 보기 좋은 미소였다.
그러다 로제테는 뒤늦게 그가 웃고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 인지하고는 말을 더듬었다.
“왜, 왜 웃으세요?”
마찬가지로 그 물음에 본인이 웃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조슈아가 웃음을 지웠다.
“누가 웃었다고 그러지?”
“아니, 방금…….”
로제테가 손가락으로 제 입꼬리를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이렇게 웃으셨는데.”
“네가 잘못 본 거야.”
“하지만…….”
“잘못 본 거래도.”
조슈아가 정색했다. 로제테는 눈치껏 조용히 했다.
‘하지만 보기 좋았어.’
그녀가 지금껏 본 조슈아의 표정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이었다. 그가 로제테를 못마땅해 했으니 당연했다.
주로 눈이나 눈썹을 찌푸리거나, 입술을 삐딱하게 비틀거나, 한숨을 쉬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사실 그런 표정도 그가 가진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그런 게 어울려서 웃는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 본 그의 미소는 꽤 어울렸다. 봄날의 햇살 같지는 않지만, 겨울의 서늘한 바람 같지도 않았다.
이걸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웃는 것을 또 한 번 보면 알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하면 조슈아가 웃는 것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동안 아드리안가에서 지내며 잠시 사라졌던 로제테의 욕망이 마음속에서 다시 싹텄다. 누군가의 칭찬을 듣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그런 소망이.
‘다시 웃어 줬으면 좋겠다.’
머릿속으로 뭘 할지 생각해 보던 로제테는 어느새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언제든 놀러 오렴.”
“정말요?”
“그래. 종종 와서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나와 이런저런 얘기도 하며 놀자꾸나.”
“좋아요!”
수줍게 얼굴을 붉힌 로제테는 루카스와 함께 황후궁을 빠져나갔다.
조슈아는 창문 앞에 서서 두 사람이 멀어지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시선은 로제테의 뒤통수에 꽂혀 있었다.
오필리아는 그런 아들의 모습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빙긋 웃었다.
‘설마…….’
조슈아는 아드리안가의 세 남매가 황성에 찾아오는 것을 꽤 반겼다. 아무래도 어릴 적부터 외동으로 자라서 그런지 세 아이를 형제처럼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들이 떠나갈 때 미련을 보이지 않았다. 성격 탓이었다.
조슈아는 좋은 것도 싫은 척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어릴 적에도 세 사람이 돌아갈 때 창밖을 보며 아쉬워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가 오늘 처음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긴, 그 아이가 매력 있긴 했지.’
오필리아는 초여름에 갓 피어난 장미 같은 로제테를 떠올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싱그럽던 그 아이.
분명 오늘 처음 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조슈아가 그 아이에게 한눈에 반한 걸까.
오필리아는 웃음을 참으며 태연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니, 조슈아.”
생각에 잠겨 있던 조슈아가 그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마마마.”
“글쎄,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구나.”
“정말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조슈아가 그제야 창가에서 벗어나 오필리아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 것치고는 창밖을 꽤 진지하게 바라보던데.”
“그냥 장미꽃이 예뻐서 바라봤을 뿐입니다.”
“그래. 창문밖에 장미가 예쁘긴 하더구나.”
황후궁 응접실 창문에서 보이는 정원에는 여름 장미가 슬슬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황후가 농담 삼아 얘기한 ‘장미’가 다른 걸 의미한다는 것을 그녀도, 조슈아도 알았다.
그러나 조슈아는 못 알아들은 척 입을 다물었다. 오필리아가 이번엔 조금 짓궂게 물었다.
“조금 전 저 아이가 마음에 들었니?”
“아닙니다!”
반박하는 조슈아의 목소리는 그답지 않게 조금 날카로웠다.
황후는 그가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매사에 시큰둥하던 아이가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역시 뭔가 있나 보네.’
황후의 보라색 눈이 흥미롭게 빛났다. 그녀가 부채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럼? 마음에 안 드니?”
“뭐, 딱히 그렇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무심코 중얼거리던 조슈아가 무언가를 깨닫고 말을 흐렸다.
자신은 왜 로제테가 ‘마음에 안 드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을까. 그녀를 싫어할 이유는 많고 많은데.
‘하지만…….’
그는 지금껏 직접 보고 겪은 로제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자꾸만 보고만 싶고, 눈을 뗄 수 없는 그런 매력이.
물론 예쁘기는 했다. 그러나 외모로 따지면 이자벨도 그 못지않게 아름다운데 그녀에게는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조슈아가 로제테를 향한 제 감정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는데, 오필리아가 넌지시 말했다.
“그러고 보니 폐하께선 저 아이를 네 짝으로 눈여겨 보고 계시는 것 같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