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56)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56화. 안토니 헉슬리(56/214)
56화. 안토니 헉슬리
2023.12.26.
그럴 리가 없었다.
로제테는 이제 고아원에서 지내던 시절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물론 머리카락도 윤기가 흘렀다.
그런데 비루먹은 망아지라니!
하지만 처음 보는 남자애에게 따져 묻기엔 로제테는 아직 소심했다. 그녀는 조앤이 곱게 땋아 준 머리끝을 괜히 매만지며 웅얼거렸다.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랑 동갑이랬는데 키도 작잖아.”
“그건!”
딱히 반박할 수는 없었다. 로제테는 여전히 또래보다 살짝 작았으니까.
“그래도 많이 큰 거야.”
“뭐야, 그럼 그전에는 얼마나 작았다는 거야? 너 아드리안에 가기 전에 못 먹고 자랐어?”
“아니야. 그전에도 잘 먹었어.”
이름 모를 아이가 피식 웃었다. 비웃는 기색이 역력해서 로제테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넌 누구야?”
“나?”
그러자 남자아이의 얼굴이 요상하게 구겨졌다.
“날 몰라?”
“모르는데.”
“이 안토니 헉슬리를 모른다고?”
아, 이 남자애 이름이 안토니구나. 그런데 그게 뭐?
멍하니 생각하던 로제테는 무언가를 깨닫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헉슬리라면 엘리샤를 좋아한다고 따라다니던 애였는데?’
과거, 헉슬리 후작가에선 엘리샤에게 혼담을 넣었다. 그러나 댈러스 후작은 그것을 수락하지도, 거절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차일피일 미뤘다.
‘댈러스 후작의 궁극적인 목표는 엘리샤를 황후로 만드는 거였지.’
어찌 됐든 눈앞의 안토니라는 남자애가 엘리샤와 연이 있었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냐. 이제 나랑 아무 상관 없어!’
과거의 일과는 별개로 어쨌든 현재의 로제테는 안토니를 몰랐다. 그래서 용기를 갖고 말했다.
“모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사람들이 널 꼭 다 알아야 해?”
“뭐, 뭐어?”
“너도 내 이름을 몰랐잖아.”
“이게, 정말……!”
안토니가 로제테의 어깨를 휙 밀었다. 로제테가 순간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안토니는 물론, 구경하던 아이들마저 와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로제테를 일으켜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로제테가 혼자 씩씩하게 일어나서 안토니에게 반박을 하려고 할 때였다.
[삑!]뭐야? 누가 우리 로제테를 괴롭혀!
잠시 주위를 돌아보고 있던 삐삐가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날아왔다.
[삐잇!]야, 꼬맹이! 너 내 부리 맛 좀 한번 봐 볼래?
그런 삐삐를 본 안토니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 이 새는 뭐야? 너 이런 것도 데리고 다녀?”
“내, 내 패밀리어야!”
마법을 배우지 않는 아이라도 대개 패밀리어는 알고 있었다.
로제테는 자신이 패밀리어를 소환했다는 것을 자랑할 마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삐삐가 무시당하는 것은 볼 수 없었다.
‘삐삐가 패밀리어라는 것을 알면 적어도 무시하지는 않을 거야.’
삐삐도 그것을 알았는지 로제테의 어깨 위에서 가슴을 부풀렸다.
[삣!]엣헴. 내가 바로 로제테의 패밀리어, 삐삐올시다.
그러나 안토니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뭐? 패밀리어? 얘가?”
그러더니 아까보다 더 크게 웃어 젖혔다.
“푸하하학! 너 닮아서 패밀리어도 엄청 하찮아!”
[삐이…….]삐삐가 서러워했다.
내가 실버 같은 무서운 동물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뾰족한 이빨도, 날카로운 발톱도 없어. 날개도 다른 새에 비하면 너무 작아.
로제테가 삐삐의 턱을 간질였다.
‘비록 너는 뾰족한 이빨도 날카로운 발톱도 없지만, 내겐 그 어떤 패밀리어보다 훌륭한 패밀리어야.’
그렇게 속으로 말하자 그녀의 생각을 알아들은 삐삐가 반색했다.
[삣?]정말? 실버보다?
‘응, 실버보다 훨씬 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삐삐가 청아한 노래를 지저귀었다.
그때까지도 안토니는 웃고 있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제 친구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야! 이리 와서 이것 좀 봐! 나는 패밀리어가 엄청 대단한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로제테를 삥 둘러싸고 그녀와 삐삐를 관찰했다. 삐삐는 최대한 몸이 커 보이도록 깃털을 잔뜩 부풀리며 쫑알댔다.
아이들의 놀림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던 로제테는 다시금 이자벨의 말을 떠올렸다.
-네 이름은 로제테 아드리안이야.
-그것만 기억해. 그러면 오늘은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 거야.
처음엔 아주 잠깐 댈러스 후작처럼 아드리안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말라는 소리인가 했었다.
그러나 로제테는 이내 그 생각을 떨쳐 냈다. 이자벨은 그런 뜻으로 말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자벨은 로제테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이름을 왜 새삼 말해 주었을까.
그건 바로.
‘날 지켜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었어.’
네 뒤엔 아드리안이 있으니 네 마음대로 하고 오라는 소리였다. 문제가 생기면 아드리안이 보호해 줄 테니까.
사실 애초에 아이들이 로제테를 무시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로제테가 아드리안이라는 것보다 평민 출신 꼬맹이라는 것이 더 크게 보였으리라.
그래서 그녀를 이렇게 놀려대는 것이었다.
만약 여기서 겁을 먹고 꼬리를 만다면 저들은 그녀를 더 얕볼 테다.
‘그럴 수는 없지.’
로제테가 어깨를 당당히 펴고 안토니를 노려보았다.
“내 패밀리어 무시하지 마.”
“뭐?”
“삐삐는 비록 몸은 작지만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능력 있는 패밀리어야.”
안토니가 순간 몸을 움찔했다가 다시 외쳤다.
“거짓말. 쟤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래?”
“그거 알아? 삐삐는 불도 뿜을 수 있어.”
“뭐?”
안토니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것을 본 삐삐가 부리를 최대한 크게 벌렸다.
[삐이잇!]그러나 작은 입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1초, 2초, 3초.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끝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안토니가 피식 웃으며 로제테의 이마를 꾹 눌렀다.
“야, 꼬맹이. 쪼끄만 게 어디서 거짓말이야?”
“꼬맹이라고 하지 마.”
그건 루카스 오빠만이 부를 수 있는 애칭이야. 그리고 가끔 조슈아 황자님도.
“어이구, 무서워라.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앨갰습니대’라고 할 줄 알았어?”
“삐삐.”
로제테의 신호를 받은 삐삐가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해 울부짖었다.
[삐이이익!]“그러니까 불은 무슨…….”
안토니가 비웃은 그 순간이었다. 삐삐의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삐삐의 몸에서 나온 파이어볼은 삐삐의 몸보다도 커져서 안토니의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갔다.
“힉!”
안토니의 구불거리는 적갈색 머리카락이 까맣게 그을렸다. 연기도 났다.
안토니가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쳤다.
“어, 어, 어, 어떻게?”
“내가 말했잖아. 삐삐는 불도 뿜을 수 있다고.”
[삑!]처음엔 놀랐던 삐삐도 이젠 의기양양해졌다.
“다른 것도 할 수 있는데 보여 줄까?”
“아니야! 괜찮아!”
안토니는 허겁지겁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로제테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아까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똑같았다.
‘친구를 사귀기는 틀렸네.’
그래도 슬프지 않았다. 로제테에게는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아드리안을 지키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나에겐 삐삐가 있으니까.’
로제테는 ‘내가 물리쳤어!’라고 기뻐하고 있는 삐삐를 쓰다듬었다.
당연히 삐삐가 뿜은 파이어볼은 로제테가 마법으로 만든 것이었다. 지난 몇 달간 마나 코어를 키운 덕분에 이 정도 마법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삐삐에게는 원래 그런 능력 같은 건 없었다.
‘아빠는 몸이 더 클 때까지 마법을 쓰지 말라고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아냐, 들키면 혼날 것 같은데.
로제테가 삐삐에게 작게 속삭였다.
“오늘 일은 아빠에게 비밀이야.”
[삐이.]“뭐가 비밀인데?”
“꺅!”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로제테가 소리를 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 조슈아가 서 있었다. 평소엔 이마를 덮었던 앞머리를 뒤로 넘겨 고정 시킨 채였다.
“노, 놀랐잖아요.”
로제테는 두근거리는 심장께를 움켜쥐었다.
“언제부터 오신 거예요?”
“글쎄. 네가 그 새는 불도 뿜을 수 있다고 했을 때부터?”
그럼 거의 다 본 거였다. 로제테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아빠에게 다 말할 거예요?”
“글쎄. 네가 하는 거 봐서.”
“으으.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어마마마가 여는 파티니 와 봤지. 네가 온다는 소리도 들었고. 그런데 아주 뜨겁게 데뷔한 모양이야. 말 그대로 정말 뜨겁게.”
로제테가 끙 소리를 냈다. 픽 웃은 조슈아가 테이블을 턱짓했다.
“가서 앉기나 해. 어마마마도 곧 오실 거야.”
“네.”
로제테는 시종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조슈아를 보다가 대충 아무 자리에 앉았다.
조슈아는 조금 뒤 특별히 마련된 화려한 의자에 앉았다.
곧 아이들도 하나씩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다들 로제테와 먼 곳부터 채웠다.
심지어 로제테 옆자리만 남자, 앉지 못한 아이들이 울상을 지었다.
이쯤 되자 로제테는 꼭 자신이 불청객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사고를 친 걸까.’
화가 나도 조금 참을 걸 그랬나, 하고 조금 후회할 때였다.
“뭐야, 다들 겁먹은 거야?”
타오를 듯한 붉은 머리를 가진 소녀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금발 머리의 소녀도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소심하기는. 저기로 가자, 테레사. 괜찮지?”
“응. 클라라가 좋다면 나도 좋아.”
두 아이는 보란 듯이 로제테의 양옆에 앉았다.
클라라라고 불린 붉은 머리의 아이가 턱을 괴며 로제테를 빤히 바라보았다.
“안녕?”
“으응? 안녕.”
“난 클라라 첼러. 첼러 백작가의 둘째야. 위에는 언니가 있어. 얘는 내 친구 테레사.”
“안녕? 나는 테레사 서던이라고 해. 나는 막내. 위로 오빠만 둘이야.”
첼러와 서던. 들어 본 적 없는 성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일단 과거 댈러스가와 얽힌 가문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괜히 호감이 느껴졌다.
“안녕, 나는…….”
“알아. 로제테 아드리안. 아까 저 바보 안토니가 대신 소개해 주던걸.”
클라라가 씨익 웃었다. 개구진 표정이 어딘가 루카스와 닮아 있었다.
“네 패밀리어 진짜 멋지더라. 불을 뿜다니. 꼭 동화책에 나오는 드래곤 같았어.”
테레사가 차분하게 속삭였다. 로제테는 이 착한 아이들을 속이고 있다는 미약한 죄책감에 휩싸였다.
고민하던 그녀가 두 아이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소곤거렸다.
“있잖아, 사실 삐삐는 불을 뿜지 못해.”
“뭐어?”
“하지만 아까 불을 뿜었잖아?”
로제테의 목소리가 더욱 작아졌다.
“그건 내가 한 거야.”
거짓말쟁이라고 싫어할까? 친구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로제테가 시무룩해하는데 클라라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더 멋져.”
“으응?”
“네가 벌써 그런 마법을 쓸 줄 안다는 소리잖아. 그렇지?”
“응, 그건 그렇지.”
“난 늘 마법사 친구가 갖고 싶었어.”
테레사가 조용히 동조했다.
“나도.”
“진짜?”
“응! 우리 첼러가는 대대로 기사 가문이거든.”
“우리 서던가는 학자 집안이야.”
“으응. 우리 아드리안은…….”
“알아! 훌륭한 기사 집안인걸!”
클라라가 씨익 웃었다.
“그래서 더 신기해. 아드리안에 마법사라니! 분명 네가 엄청난 재능이 있어서 공작님께서 널 데려오신 거겠지?”
사실이었지만 그 말을 직접 인정하기엔 쑥스러웠다.
“따, 딱히 그런 건 아니야.”
“그런 게 아니긴!”
클라라가 시원하게 웃었다. 듣기 좋은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