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59)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59화. 안토니 헉슬리의 첫사랑(59/214)
59화. 안토니 헉슬리의 첫사랑
2023.12.29.
과거를 기억하는 이 아이가 있어야 미래를 바꾸기 쉽다, 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진짜 말 그대로 이 아이를 잃고 싶지 않았다.
제 옆에서 어쩔 때는 어른스럽게 또 어떨 때는 여덟 살 아이처럼 웃는 로제테가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신기했다. 이 아이를 만난 지 아직 반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런 마음이 들 수 있나?
아니면 사실 자신이 생명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박애주의자였던가.
알 수 없었다. 그저 눈앞에 로제테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평소 찾지 않던 아쉘라 여신에게 감사할 정도로.
그러나 조슈아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조금 퉁명스럽게 답했다.
“널 죽게 내버려 두면 스승님이나 다니엘이 날 가만히 놔둘 것 같아?”
“아…….”
“아마 스승님이라면 황실을 뒤엎을지도 모르지.”
농담조로 중얼거린 조슈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스승님이 올 때까지 쉬고 있어. 나는 상황을 해결하러 가 볼 테니.”
“저, 그런데 안토니는 어떻게 됐나요?”
“이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 생각이 나나?”
픽 웃은 조슈아가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치료받고 있어. 안토니 헉슬리도 발목뼈가 부러진 모양이야. 헉슬리가엔 부러진 뼈를 치료할 마법사가 없어서 아마 황실 마법사가 오면 치료받을 거다.”
“네에. 그래도 다행이네요.”
“그럼 쉬고 있어.”
조슈아는 그렇게 떠나갔다. 혼자가 되자 로제테는 급격하게 피곤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나가 고갈될 때까지 마법을 쓴 여파였다.
‘그래도 이제 마나 코어가 좀 커졌다고 내상을 입거나 기절하지는 않는 모양이야.’
대신 수면향을 피워 놓은 것처럼 잠이 쏟아졌다.
로제테는 무거운 눈을 깜빡이다가 제 옆을 지키고 서 있는 실버와 삐삐를 발견하고는 눈을 감았다. 두 패밀리어가 있다면 안심할 수 있었다.
실버가 금방 숨을 쌕쌕거리는 로제테의 옆에 엎드렸고, 삐삐는 그런 실버의 머리 위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잠들 듯 말 듯 할 때.
“야, 괜찮아?”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안토니 헉슬리였다.
로제테는 눈을 뜨고 옆을 바라보았다. 목발을 짚은 안토니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로제테는 그를 머리부터 발까지 훑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다행이야. 심하게 다친 것 같지는 않네.”
“너는 지금 웃음이 나와?”
안토니가 엉거주춤하더니 간신히 로제테의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입술을 거의 떼지 않고 중얼거렸다.
“그므으.”
“……?”
로제테가 못 알아들은 기색을 내비치자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맙다고, 이 바보야!”
“으응. 당연한 일을 한 거였지만 말이야.”
“그게 어떻게 당연한 일이야. 자칫하면 네가 죽을 뻔했는데. 그리고…….”
안토니가 조금 더 작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널 그렇게 놀렸잖아. 나라면 그렇게 도와주지 못했을 거야. 그런데 너는 날 도와주고도 생색 한번 내지 않고……. 내가 널 잘못 봤었나 봐.”
안토니가 머리를 긁적이며 속삭였다.
“미안해. 너랑 네 패밀리어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엄청 대단해.”
“으응.”
로제테는 조금 찔렸다. 그녀도 안토니에게 거짓말을 한 게 있었던 것이다. 안토니가 사과까지 한 마당에 그를 더 속이고 싶지 않았다.
“사실 나도 네게 미안한 게 하나 있어.”
“뭔데?”
“아까 그 불 말이야. 사실 삐삐가 아니라 내가 한 거야.”
“뭐어?”
“지금도 파이어볼을 날린 것은 후회하지 않지만, 네 머리카락을 태운 건 미안하게 생각해.”
로제테가 아직도 탄 자국이 남아 있는 그의 머리카락을 보며 눈썹을 축 내렸다.
안토니가 코밑을 매만지며 멋쩍게 말했다.
“뭐, 따지고 보면 내가 잘못한 거니까. 머리는 또 금방 자라니까 걱정 마.”
“정말?”
“응.”
안도한 로제테가 밝게 웃었다.
“아무튼 너야말로 괜찮아서 다행이야. 고마워.”
그 순간, 로제테를 보던 안토니의 주근깨 가득한 코와 뺨이 불타오르듯 빨개졌다.
“뭐, 고마울 것까지야.”
“그리고 사람들을 불러 준 것도 고마워. 나는 혹시 네가…….”
“뭐어?”
로제테의 말을 자르고 안토니가 쏘아붙였다.
“넌 설마 내가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안 했을 거라고 생각했어? 너 내가 그렇게 못난 애로 보여?”
“아니, 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대체 이 안토니 헉슬리를 어떻게 본 거야? 내가 비록 널 못 알아보고 놀리기는 했지만! 널 해코지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로제테는 ‘정말 해코지할 생각이 없었던 거 맞아?’라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좋아. 내가 보란 듯이 꼭 너에게 보답하겠어! 헉슬리가의 사람은 은혜를 잊지 않거든.”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보답할 거야! 각오하라고.”
그게 각오까지 필요한 일인가. 대체 뭘 하려고.
로제테는 조금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안토니가 뭐라고 하려고 할 때였다.
“꼬맹아! 우리 꼬맹이 어디 있어?”
저 멀리서부터 루카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삐이!]삐삐가 재빨리 루카스를 찾아 날아갔다. 안토니는 화들짝 놀라서 목발을 짚고 일어났다.
“암튼 아드리안가로 편지 보낼게. 알겠지?”
“응? 으응. 알겠어.”
로제테의 대답을 들은 안토니가 도망치듯 사라졌다. 바톤 터치라도 하듯, 삐삐를 머리 위에 얹은 루카스가 달려왔다.
“꼬맹아! 너 괜찮아?”
순식간에 로제테 옆에 무릎을 꿇고 앉은 루카스가 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죽으면 안 돼, 꼬맹아!”
뒤에서 핀잔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죽긴 누가 죽어? 불길한 소리 하지 마, 바보야.”
이자벨이었다. 그녀는 다니엘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로제테에게 다가왔다. 같이 온 아드리안 공작은 로제테를 진찰한 의원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로즈.”
다니엘이 붕대를 감은 로제테의 머리를 매만지며 눈을 찌푸렸다.
“많이 아프지?”
로제테가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프지 않아요! 진짜예요!”
“그렇다면 다행인데…….”
“그런데 다 같이 오다니, 어쩐 일이에요?”
그때까지도 울던 루카스가 흐느끼며 답했다.
“아버지께서 혼자 가신다고 하길래 같이 간다고 떼를 썼어.”
“그렇군요.”
“우리 다들 네가 잘못된 줄 알고 엄청 놀랐어.”
루카스가 로제테의 손을 들고 젖은 제 뺨에 갖다댔다.
“앞으로 위험한 건 절대 하지 마.”
“으응, 알겠어요.”
“루카스, 잠깐만 비켜 보거라.”
어느새 이야기를 다 들은 아드리안 공작이 주치의와 셀린느를 대동하고 왔다. 루카스가 옆자리를 비켜 주자 셀린느와 의원이 로제테를 살폈다.
“확실히 다리는 부러지신 것 같군요.”
“그건 제가 치료할 수 있습니다. 다만 며칠간은 통증이 남아 있을 거예요.”
“그래, 알겠다.”
“그럼 아가씨, 잠깐 치료 좀 하겠습니다.”
셀린느가 의원이 가리킨 부분을 매만지며 마법을 썼다. 아릿한 통증이 느껴지던 다리에 화한 느낌이 들더니, 서서히 통증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 됐습니다.”
부러진 뼈를 치료하는 것은 고위 마법사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잠깐 사이에 조금 지친 셀린느가 이마에 난 식은땀을 닦아 낸 뒤 이번에는 로제테의 이마를 살폈다.
“치료하는 김에 여기도 치료하죠. 흉이 지면 안 되니까요.”
“네에.”
의원이 붕대를 조심스럽게 풀자 셀린느가 다시 치유 마법을 썼다. 그러고 나자 로제테는 놀라울 정도로 멀쩡해졌다.
그제야 아드리안 공작이 굳은 표정을 풀고 미소 지었다.
“자, 이제 돌아가자꾸나.”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로제테를 안아 올렸다. 공작의 목을 꽉 끌어안은 로제테는 그의 얼굴 속에 담긴 걱정을 읽어 냈다.
소식을 듣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가족들이 얼마나 초조해 했을까.
“걱정을 끼쳐서 죄송해요.”
“그건 죄송할 일이 아니란다, 로즈.”
공작이 로제테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 아빠야말로 네가 무사해서 정말 고맙단다.”
로제테는 어리광을 부리듯 그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마차로 걸어가는 아드리안 공작의 뒤를 삼 남매가 졸졸 따라갔다.
살아 있어서, 가족들에게 슬픔을 안겨 주지 않을 수 있어서 고마운 날이었다.
* * *
로제테는 아드리안 공작에게 혼나지 않을까 봐 걱정했지만, 그는 혼내지 않았다.
그저 로제테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혀 준 뒤 “놀랐을 테니 푹 쉬거라.” 한마디만 했을 뿐이었다.
지레 찔린 로제테가 이불을 코까지 덮고 웅얼거렸다.
“저 안 혼나요?”
“혼나다니?”
“마법을 썼잖아요. 게다가, 다쳤고요.”
“로즈.”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는 건지 깨달은 공작이 침대에 앉았다.
“그건 혼날 일이 아니야. 네가 마법을 쓴 건 사실이지만, 넌 다른 아이들을 구하려고 했잖니.”
“…….”
“그리고 다친 건……. 아빠 마음이 무척 아프지만, 그것도 혼날 일이 아니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단다. 오히려 아빠는 네가 자랑스럽단다.”
“자랑스러워요?”
“그래. 네가 위험을 무릅쓰고 친구를 구한 거잖니. 그건 우리 가문이 추구하는 기사도 정신과 비슷한 거란다.”
“기사도 정신…….”
로제테는 괜히 흐뭇했다. 비록 그녀는 기사가 아니라 마법사의 길을 걷고 있지만, 가족들과 똑같은 것을 공유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여전히 마법은 더 배운 다음에 쓰자꾸나.”
“네에.”
“그래, 자거라. 아빠가 필요하면 부르고.”
“네.”
아드리안 공작은 로제테를 이불 위로 토닥여 준 뒤 방을 나갔다.
로제테는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 * *
<몸은 좀 괜찮나? 치료는 받았고?>
그날 밤, 예고도 없이 실버가 찾아왔다. 삐삐의 지저귐에 잠에서 깬 로제테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되물었다.
“뭐, 흐암, 뭐라고요?”
<치료 말이야. 받았냐고.>
“……뭐요?”
<치료. 설마 자다 깼나?>
“으으, 네. 실버가 올 줄 몰라서…….”
실버의 목걸이 너머에서 살짝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몸은 괜찮은 거 맞나?>
로제테는 여전히 잠에 취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며칠간은 조심하라고…… 하긴 했지만, 괜찮……아요.”
<걷는 것은 어떻고?>
“아직은 걸을 때마다…… 조금 아파요. 그은데, 괜찮아질 거랬어요.”
<그래, 다행이야.>
“황자님은요? 괜찮아요?”
<나? 지금 내 걱정을 하는 건가?>
“걱정이라기보단…….”
목걸이 너머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난 괜찮다.>
“실버는요? 다들…….”
<글쎄. 다들 좀 당황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더군. 설마하니 내가 열두 살에 패밀리어를 소환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야. 폐하께선 즐거워 보이셨고. 어마마마께선 너와 같이 지낸 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
“…….”
<그래서 당분간 좀 바빠질 것 같아. 사건을 처리해야 하기도 하고, 실버 때문에 여러 마법사를 만나야 할지도 모르거든.>
“…….”
<듣고 있어?>
“…….”
어느새 로제테는 실버에게 매달려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대충 상황을 파악했는지 조슈아가 조금 큰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공녀.>
“흐아, 죄송……. 너무 졸려서요.”
그녀가 눈을 부릅뜨려고 노력하며 웅얼거렸다.
<그래, 이만 자도록 해.>
“네에.”
로제테는 실버를 놓아주고 이불 속으로 꼬물꼬물 들어갔다. 그녀는 이내 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
<네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그 바람에 그녀는 조슈아가 작게 중얼거린 진심 어린 말을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