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60)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60화. 수상한 아드리안 공작(60/214)
60화. 수상한 아드리안 공작
2023.12.30.
<또 실패했나?>
마법 통신구 너머로 서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상대에게 얼굴이 보이는 것도 아닌데 댈러스 후작은 면목이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 난리를 쳤는데도 그 이벨린 여자를 죽이지 못했어. 어떻게 할 거지?>
“제가 다시 한번 기회를…….”
<대체 그대가 무슨 재주로?>
아까보다 더 딱딱해진 목소리가 그를 타박했다.
<그동안 공들여 황후궁에 심어 놓았던 첩자들도 다 색출됐어. 사실 지난번 키쉬 이파리가 우리의 회심의 수단이었지. 그런데 실패했어.>
“…….”
<이번엔 황후가 외출을 한다고 해서 다시 계획을 세웠는데, 뭐? 또 실패? 당분간 황후는 외출을 자제하겠지. 한다고 해도 경계가 엄청 강화될 거고. 그리고 폐하께서 앞으로도 묵인해 주실 것 같나? 이렇게 연달아 난리를 쳤는데?>
“제 불찰입니다.”
<당분간은 몸을 사리도록 해. 기회는 또 오겠지. 괜히 나서지 말란 소리야.>
“알겠습니다.”
<내가 먼저 연락할 때까지 연락도 하지 말도록.>
“하지만…….”
댈러스 후작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마법 통신구의 빛이 꺼졌다.
“젠장.”
댈러스 후작은 마법 통신구를 번쩍 들었다가 조심히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책상 위에 있던 잉크병을 던졌다.
잉크병이 깨지며 카펫이 까만 잉크로 물들었다.
놀라서 달려온 집사가 심상치 않은 후작의 분위기를 확인하곤 조용히 다시 나갔다.
댈러스 후작이 이를 으득 깨물었다.
“또 그 애야.”
로제테 아드리안. 아드리안 공작의 막내딸이자, 천재라고 불리는 마법사.
그 아이가 사사건건 댈러스 후작의 계획을 방해했다.
아드리안 공작 일만 해도 우연인 줄 알았다. 그런데 황후궁에서 키쉬 나무 이파리를 찾아내더니, 이젠 그녀를 사고에서 구하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악연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아드리안인 이상 황후랑 계속 인연을 이어갈 테고, 본의 아니게 그녀를 지키는 일도 다시 생길 터였다.
‘역시 이번에 그 애를 확실히 죽였어야 했어.’
마음 같아서는 아예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로제테를 해치워 버리고 싶었다.
사실 이번에 공연장 자체를 무너뜨린 것도 자연스럽게 오필리아와 로제테를 동시에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그 와중에 조슈아까지 죽는다면 더더욱 좋고.
그런데 소란은 소란대로 피우고, 세 사람 모두 멀쩡히 살아 있으니 골치가 아팠다.
‘일단 그 로제테인지 뭔지 하는 애부터 처리해야 할 텐데.’
그러나 현재로선 로제테를 죽이는 건 힘들어 보였다.
아드리안 공작이 그 누구보다 싸고도는 데다가 로제테 본인 또한 제 몸을 지킬 힘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자칫해서 꼬리를 밟히면 아드리안 공작가와 전면 승부를 하게 될 터였다. 그런 위험은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로제테 아드리안을 사교계에서 쫓아내는 방법이 또 있을 것이다.
“그렇지, 그러면 되겠어.”
댈러스 후작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보좌관을 불렀다.
‘황실만 엮이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 * *
“꼬맹아, 그 망할 헉슬리가 또 이상한 거 보냈어.”
로제테의 방에 쳐들어온 루카스가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삐삐는 시끄러움을 참다못해 베개 밑으로 숨었고, 로제테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야, 야, 야. 꼬맹아. 일어나 보래도!”
“무슨 일……, 흐암, 이에요?”
“헉슬리인지 뭔지 하는 애가 뭔가를 또 보냈다니까!”
“또요?”
로제테가 졸린 눈을 비비며 한숨을 쉬었다.
‘대체 언제까지 보내려는 거야?’
2주 전, 로제테가 사건을 해결한 이후 안토니는 아드리안가에 선물을 보냈다. 달콤한 디저트, 장난감, 머리 장식 등 귀족 아이들이 으레 친구들과 주고받을 법한 물건들이었다.
과분하다는 이유로 돌려보낼 수도 없어서 로제테는 그냥 그것을 받았다. 그런데 한두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선물 공세는 2주가 지난 오늘까지 계속되었다.
보답을 하겠다는 것인지 괴롭히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는 태도였다.
처음엔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았던 가족들은 이제 헉슬리 이름만 들어도 진저리를 쳤다.
특히 로제테를 끔찍이 여겨 조셉마저도 경계했던 루카스는 당장이라도 헉슬리 후작가에 쳐들어갈 것처럼 길길이 날뛰었다.
“어때, 꼬맹아. 그냥 받기 싫다고 돌려보내면 어때?”
루카스가 넌지시 물었다. 로제테는 여전히 반쯤 감은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그래도 친구가 준 건데.”
“친구는 무슨 친구! 다 들었어! 걔가 너랑 삐삐를 엄청 놀렸다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사과하면 다야? 아무튼 걔한테 편지해. 더 이상 선물 같은 거 보내지 말라고!”
“네에. 그래도 선물은 한번 봐도 돼요?”
“그걸 봐서 뭐 하게!”
“궁금하잖아요.”
끙, 앓는 소리를 낸 루카스가 어쩔 수 없이 허락해 주었다.
“알겠어. 먼저 내려가 있을 테니까 눈곱이나 떼고 나와.”
눈곱 같은 건 없는데.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로제테는 눈을 비비며 고양이 세수를 했다.
조앤의 도움을 받아 옷을 갈아입고 식당으로 내려가자 테이블 위에 올려진 상자가 보였다. 분홍색 상자는 보라색 리본으로 묶여 있었다.
로제테는 루카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그녀가 기부했던 인형이 들어 있었다.
참고로 로제테는 저택으로 돌아온 뒤 이 인형이 보고 싶어서 기부를 후회하기도 했었다.
“어?”
로제테가 두 손으로 인형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왜 여기 있지?”
소리 죽여 웃고 있던 다니엘이 답했다.
“헉슬리가 그걸 산 모양이네.”
“안토니가요?”
“그래. 아마 널 주려고 다시 산 것 같아. 네가 아끼는 인형이라는 소리를 듣고 말이야.”
그가 아드리안 공작을 바라보며 농담을 건넸다.
“저 정도면 로제테에게 꽤 진심인 것 같은데요?”
아드리안 공작은 조금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그것 참…….”
루카스는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뭐야!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내 용돈으로 사서 로제테에게 줄 걸 그랬어!”
아빠와 두 오빠가 착잡해하는 것을 알 리가 없는 로제테는 기뻐하며 인형을 꽉 안았다.
그걸 보던 루카스가 세바스찬에게 얼른 지시했다.
“세바스찬, 당장 편지지와 펜을 가져다줘.”
“네?”
“꼬맹이가 헉슬리가에 편지를 보내야 하니까! 선물을 거절해야 해!”
“알겠습니다.”
세바스찬은 곧 로제테에게 편지지와 펜을 가져다주었다. 로제테가 깃펜을 쥐자 루카스가 옆에서 팔짱을 낀 채로 지켜보았다.
“왜 봐요?”
“내가 보는 앞에서 써.”
“하지만 편지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면 안 돼요.”
“헉슬리에게 보내는 건 괜찮아. 게다가 난 네 오빠잖아!”
로제테가 듣기엔 전혀 말도 안 되는 논리였다.
로제테는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끝자리로 쪼르르 도망갔다. 루카스가 그녀를 따라왔다.
몇 번의 도망과 추격 끝에 루카스가 손을 들었다.
“알겠어. 안 보면 될 거 아냐. 하지만 꼭 선물을 보내지 말라고 해야 해.”
덕분에 로제테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편지를 쓸 수 있었다.
<앤서니 헉슬리에게.
안녕. 처음으로 네게 편지를 쓰네.
그동안 네가 보내 준 선물은 잘 받았어. 무척 고마워.
특히 오늘 선물이 무척 마음에 들어. 내가 아끼는 인형이었는데 기부해서 좀 그리웠거든.
진짜, 진짜, 진짜 고마워.>
거기까지 썼던 로제테는 서슬 퍼런 루카스의 눈빛을 보고 밑에 작게 덧붙였다.
<하지만 이제 그만 보내도 괜찮아. 이미 충분히 과분한 선물을 받았어.
알겠지? 약속해.
그럼 이만 줄일게.
로제테 아드리안.>
편지를 다 쓴 로제테가 루카스의 도움을 받아 편지에 밀랍 인장을 찍고 난 뒤였다.
“주인님.”
세바스찬이 곤란한 얼굴로 아드리안 공작에게 다가왔다. 아드리안 공작이 읽던 신문을 접고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지?”
세바스찬이 난감한 얼굴로 로제테를 흘끔거렸다.
그의 신호를 눈치챈 아드리안 공작이 루카스와 로제테에게 지시했다.
“너희 둘 다 그만 올라가 보거라.”
아드리안 공작이 이렇게 아이들에게 명령조로 얘기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두 아이는 싫다는 소리를 하는 대신 서로 눈치만 보다가 군소리 없이 일어났다.
“알겠어요. 세바스찬, 이 편지는 헉슬리 후작가로 보내 줘.”
“네, 알겠습니다.”
로제테는 루카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데 로제테의 방까지 따라온 루카스가 의외의 제안을 했다.
“꼬맹아, 굉장히 흥미진진하지 않아?”
“뭐가요?”
“세바스찬이 분명 널 봤단 말이지. 네 얘기를 하는 게 아니겠어?”
“그런데요?”
“네 얘기인데 왜 널 내쫓았을까? 분명 냄새가 나. 수상한 냄새가.”
로제테는 코를 킁킁거리는 루카스를 무시하고 책상에 앉았다. 못다 한 숙제를 마저 하려는데 루카스가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엿들으러 가자.”
“네에?”
“아버지는 분명 집무실에 계실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지 엿듣자.”
“들키면 혼날 거예요.”
“괜찮아. 분명히 들키긴 하겠지만, 혼은 안 날 거야.”
루카스 또한 소드 마스터인 아드리안 공작을 속일 수는 없다고 단정 짓고 있었다.
“가자, 가자. 너는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긴 한데…….”
“자, 얼른!”
로제테는 결국 루카스를 따라 방을 나섰다. 두 아이는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아드리안 공작의 집무실로 향했다.
루카스가 먼저 문에 귀를 갖다 댔다.
로제테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사실……. 확인이…….”
“어떻게…….”
“……비밀…….”
“돌려…….”
“……다시…….”
아드리안 공작과 세바스찬이 말하는 게 들렸지만,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루카스가 얼굴을 찌푸리며 문에 좀 더 바짝 다가간 순간이었다.
달칵. 문이 열리는 바람에 루카스와 로테제는 집무실 안으로 우당탕퉁탕 넘어지고 말았다.
루카스 위로 엎어졌던 로제테는 서둘러 일어나 아드리안 공작의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 그는 크게 화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야, 내 허리!”
꼬리뼈 부근을 문지르며 일어난 루카스가 배시시 웃었다.
“아버지!”
“뭐 하고 있었던 거지?”
“그게……. 잠깐 아버지께 말씀드릴 게 있어서 왔는데! 중요한 대화 중인 것 같아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렇지, 꼬맹아?”
“네? 으응, 그랬어요.”
당연히 아드리안 공작은 믿지 않았다. 그러나 화를 내는 대신 아이들의 등을 조심스럽게 떠밀었다.
“얘기가 끝나면 아빠가 방으로 찾아갈 테니 가 있거라.”
“하지만 아버지! 꼬맹이가 들어야 하는 이야기 아닌가요? 꼬맹이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던데요!”
아드리안 공작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혹시 뭘 들었니?”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로제테가 얼른 부정했다.
“그냥 아까 세바스찬이 절 살피길래 제 이야기를 하는 건가 했어요.”
“그런 게 아니란다. 그냥 아빠에게 일이 있어서 그래. 그러니 걱정 말고 가 보렴.”
“네에.”
루카스는 여전히 아쉬운 얼굴이었지만 더 이상 버티지 않고 응접실을 나왔다.
로제테는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는 오빠의 손을 잡고 방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