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7)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7화. 새로운 가족(2)(7/214)
7화. 새로운 가족(2)
2023.11.07.
로제테가 목을 움츠렸다.
‘내가 온 게 싫다는 걸까.’
역시 그럴 수도 있겠지. 과거에 엘리샤도 이렇게 싫은 티를 냈었다.
과거엔 엘리샤의 적대감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미 한번 겪어 본 일이라서 그런가 예전만큼 속상하지 않았다.
‘난 속상하지 않아.’
아니, 사실 그건 거짓말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몇 번 겪어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었고, 여전히 마음이 시렸다.
그래도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자벨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저,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로제테는 자꾸만 작아지려는 목소리를 최대한 키워 말했다.
“마법도 잘할 수 있어요. 마법을 배우면요, 이자벨 님의 머릿결도 관리할 수 있고요, 또, 어, 또, 차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저 너무 싫어하지 마세요.”
과거 엘리샤가 로제테에게 시켰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을 듣던 이자벨의 표정이 요상해졌다. 그녀가 팔짱을 끼더니 새치름하게 말했다.
“넌 날 뭘로 보는 거야?”
“……네?”
“내가 널 하녀처럼 부려 먹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누가 널 싫어해?”
“……?”
말을 알아듣지 못해 눈만 깜빡이는 로제테가 답답한지 이자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잘 들어, 꼬맹아. 아드리안가는 대대로 기사들을 배출해 낸 검술 명가야.”
“네에.”
“너처럼 섬세하고 예민한 꼬맹이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
그렇다면 날 쫓아내려는 걸까. 겨우 마음을 다잡고 이곳까지 온 것인데. 로제테는 두 손으로 치마를 꽉 잡았다.
“그래도 괜찮아? 아침마다 연무장에서 기사들이 시끄럽게 훈련하고 그럴 거라고.”
“괜찮아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얌전하고 점잔 빼는 귀족가가 아니라는 소리야.”
“저는…….”
로제테가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래도 좋아요!”
이자벨이 앙칼진 눈초리로 로제테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로제테를 못 믿는 기색이 역력했다.
로제테가 이번에는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진짜 잘할 수 있어요. 열심히…….”
“누가 못 할까 봐 걱정한대? 나는……!”
나는?
로제테가 잘린 뒷말을 추측하며 눈을 깜빡이는데 이자벨이 한숨을 푹 쉬었다.
“좋아, 정 그렇다면 직접 한번 겪어 보도록 해.”
“정말요?”
“그리고 명심해.”
이자벨이 고개를 숙여 로제테와 눈을 맞췄다.
“네가 내 머릿결을 관리해 준다거나, 찻물 온도를 맞춰 줄 필요는 없어. 그래서도 안 돼.”
“하지만…….”
“이제부터 너는 내 동생이고, 아드리안가의 일원이야. 좀 더 당당해지라고. 안 그러면 아버지에게 말해서 다시 돌려보내라고 할 거야. 알겠어?”
“……네.”
“대답 더 크게.”
“……네!”
“그래.”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다니엘과 아드리안 공작이 서로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을 보며 흥, 소리를 낸 이자벨이 손을 들어 로제테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얌전해 보이는 얼굴과 다르게 손길이 꽤 거칠었다.
“그리고 앞으로 언니라고 불러. 이자벨 님이 뭐니?”
“정말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당연한 거 아니니? 저 멍청이는 루카스 오빠라고 부르고.”
“내가 왜 멍청이야!”
루카스가 투덜거렸지만 이내 방실거리며 로제테에게 다가왔다.
“동생이 생겨서 기뻐! 근데 우리가 지금 아침 훈련을 가야 하거든? 조금 이따가 아침 식사 시간 때 보자.”
“네……?”
“안녕!”
루카스와 이자벨은 절도 있는 발걸음으로 응접실을 나갔다. 시종일관 미소를 짓고 있던 다니엘도 훈련을 해야 한다며 떠났다.
폭풍 같던 시간이 지나고 응접실 안에 남은 것은 로제테와 아드리안 공작뿐이었다.
로제테는 헝클어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공작의 눈치를 살폈다.
“저어…….”
공작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대신 정리해 주었다. 로제테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대로 된 건가요?”
“문제라도 있니?”
“아뇨…….”
조금 더 반대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다니엘과 루카스는 전혀 반대하는 기색이 없었고, 그나마 깐깐하게 로제테를 살폈던 이자벨은 일단 그녀를 받아 준 것 같았다.
“그냥 얼떨떨해서요.”
“원래 환경이 바뀌면 그렇지.”
아드리안 공작이 그녀의 뺨을 살짝 문질렀다가 허리를 폈다.
“집사장이 네 방을 안내해 줄 거란다. 조금 이따가 식사를 할 테니 그때까지 쉬거라. 나는 훈련을 지시하러 가겠다.”
“저기.”
로제테는 뒤돌아서는 아드리안 공작의 옷소매를 잡았다. 아주 잠깐 무례한 제 행동에 혼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아드리안 공작은 웃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필요한 게 있나?”
“그게…….”
눈을 또르르 굴리던 로제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 앞으로 뭘 하면 되죠?”
“음?”
아드리안 공작이 이해하지 못한 듯 짧게 반문했다. 로제테는 더욱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러니까 저는 앞으로 여기서 뭘 하면 돼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공작이 큼지막한 손으로 로제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하구나.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
“저, 다 잘할 수 있어요. 마법도 열심히 배울 거고, 역사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또…….”
“잠깐, 잠깐만 얘야.”
아드리안 공작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단다.”
“네?”
이번엔 로제테가 영문을 몰라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떴다. 아드리안 공작이 한 번 더 강조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얘야.”
“하지만…….”
로제테는 과거, 댈러스가에 입양되던 날을 떠올렸다.
댈러스 후작은 로제테를 데려온 날부터 그녀에게 완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로제테를 최고의 마법사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로제테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가족들의 사랑이었다. 댈러스 후작은 그녀가 어려운 마법을 익힐 때면 그나마 부드러운 목소리로 칭찬을 해 주었다.
-그래, 잘했구나.
그녀가 잘할 때만 특별히 주어지던 칭찬. 이상하게도 칭찬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목이 타고 갈증이 났다. 그래서 로제테는 점점 더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랬기 때문일까. 당연히 아드리안 공작이 자신을 데려왔을 때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로제테가 이해할 수 없어 눈만 깜빡이고 있자 아드리안 공작이 설명을 덧붙였다.
“당분간 이곳에 적응하면서 편히 쉬거라. 마법 수업이나 기본 수업은 적응한 뒤에 차차 하도록 하자꾸나.”
“하지만…….”
“그동안은 그냥 아이처럼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지내거라.”
그가 로제테의 앙상한 손목을 보다가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잘 먹어서 포동포동해지면 더더욱 좋겠지.”
그러고는 집사장에게 로제테를 맡긴 뒤 응접실을 떠났다.
‘포동포동…….’
로제테는 가냘픈 제 뼈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고아원에 있을 때엔 사실 몸집이 작은지 미처 몰랐다. 고아원엔 워낙 먹을 것이 적었고 다들 몸집이 작았다.
그런데 아드리안가 사람들이 유독 몸집이 크다 보니 유독 더 비교가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먹어야지.’
키도 쑥쑥 클 거야. 아드리안가에 입양됐으니까 검도 배워 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아드리안 가문에 입성한 로제테의 첫 목표는 ‘잘 먹기’가 되었다.
* * *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로제테 아가씨.”
머리가 희끗희끗한 집사장이 로제테에게 허리를 숙였다. 로제테는 순간 놀라서 손을 휘저으려고 했으나, 이내 자신의 신분을 자각하고는 허리를 빳빳하게 세웠다.
“네, 아니, 응.”
집사장이 잘했다는 듯이 웃고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로제테는 그를 따라 복도를 걷고 계단도 올라갔다.
“저는 세바스찬이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응, 세바스찬.”
“아가씨께서 익숙해지시면 전속 하녀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는 하녀들이 돌아가면서 아가씨를 모실 겁니다.”
“응.”
“다들 아가씨를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 로제테는 그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렇지만 티 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표정 관리를 잘했는지 세바스찬이 별소리 없이 그녀를 방까지 안내했다.
“앞으로 아가씨께서 쓰실 방입니다. 이자벨 아가씨 옆방이지요.”
“응.”
“급하게 준비하느라 새 가구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차차 아가씨에게 맞춰 인테리어를 다시 꾸밀 겁니다. 자, 들어가시지요.”
세바스찬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던 로제테는 새어 나오는 탄성을 참기 위해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이게 정말 내 방 맞아?’
잘못 안내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방이었다.
그녀가 댈러스 후작가에서 쓰던 방의 다섯 배는 족히 될 정도로 큼지막한 방은 보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화려한 가구로 꾸며져 있었다.
테라스와 연결된 통 유리창에선 따뜻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성인 다섯 명이 자도 충분할 정도로 큰 침대엔 인형이 한가득 놓여 있었다.
이젠 인형 따위에 설렐 나이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실패였다. 결국 로제테는 저도 모르게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다 제 건가요?”
세바스찬이 미소를 띤 얼굴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혹시 마음에 안 드시는 게 있으시다면…….”
“아뇨!”
로제테는 서둘러 답했다.
“좋아요! 너무 좋아요.”
이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너무 좋아서 심장이 엄청 빨리 뛰었다. 이러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로제테는 세차게 뛰는 심장 소리를 숨기기 위해 세바스찬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그걸 어떻게 해석했는지 세바스찬이 살짝 뒤로 물러났다.
“제가 아가씨의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군요. 피곤하실 테니 이만 쉬십시오. 하녀들을 보내겠습니다.”
그가 물러난 뒤에 로제테는 푹신해 보이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솜을 잔뜩 넣어 만든 침대는 보는 것보다도 더 폭신했다. 그녀는 배가 통통한 토끼 인형을 안고 뒹굴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이런 것을 누려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들어가도 될까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왔다.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괜히 부끄러웠다.
“들어오세요. 아니, 들어와.”
문이 열리며 하녀 셋이 들어왔다. 각각 적갈색, 갈색, 검은색 머리를 가진 하녀였다. 그들은 최대한 태연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로제테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가씨.”
그러나 곧이어 들려오는 말에 로제테는 태연하게 반응할 수 없었다.
“목욕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목욕? 설마 알몸을 보여 주는 거 말이야? 로제테는 다시 쭈뼛거렸다.
“저, 그…….”
“네, 말씀하세요.”
“목욕은 혼자 하고 싶은데…….”
“네?”
“저, 어린애 아니에요. 전에도 혼자 잘 씻었고, 또…….”
그러다 뒤늦게 일반적인 귀족가의 영애들은 목욕 시중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렇게 깡마르고 볼품없는 몸을 보여 줄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