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77)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77화. 재회(2)(77/214)
77화. 재회(2)
2024.01.16.
로제테는 어느새 삐삐를 소환하여 실버와 놀라고 놔둔 뒤 도서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삐삐를 머리 위에 얹은 실버가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
잠시 후, 로제테는 두꺼운 책 몇 권을 갖고 조슈아의 맞은편에 앉았다.
책 표지를 넘겨 목차를 살펴보았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글씨가 꼭 눈에서 튀겨져 나가는 것 같았다. 맞은편에서 빤히 쳐다보는 조슈아 때문이었다.
로제테가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왜, 왜 그렇게 보세요?”
“그냥. 좀 신기해서.”
“뭐가요?”
“분명 마지막에 봤을 때보다 컸는데, 왜 더 작아 보이지?”
“그건!”
로제테가 고개를 들며 항의했다.
“황자님이 저보다 더 많이 크셔서 그렇지요.”
조슈아가 픽 웃었다.
“이제야 좀 보나?”
“네?”
조슈아가 의자 등받이에 등을 느른하게 기댔다.
“그나저나 직접 보는 건 오랜만이군.”
“그러게요. 오랜만이네요, 황자님.”
잠깐의 침묵 끝에 로제테가 다시 고개를 숙이며 얘기했다. 그동안 실버를 통해 몇 번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제대로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그 얘기는 이미 하지 않았나?”
“그래도 직접 얼굴 보고 얘기하는 건 처음이잖아요.”
“우리가 지금 얼굴 보고 얘기하는 거 맞나?”
로제테가 다시 얼굴을 들었다.
“그래, 이게 얼굴을 보고 얘기하는 거지.”
“…….”
놀림 받은 기분에 로제테가 입술을 삐쭉이자, 조슈아가 그녀의 이마를 검지로 꾹 눌렀다.
“그나저나 이제 뭘 해야 하지?”
“네?”
“어린애와 어떻게 놀아 줘야 할지 모르겠는걸.”
“어린애 취급하지 말아요!”
로제테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적어도 황자님은 제가 어린애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시잖아요. 제가 이래 봬도…….”
“알아. 스무 살까지 살다 돌아온 거.”
“…….”
“하지만 말이야. 내가 어마마마와 함께 지내면서 느낀 건데, 몸이 어려지고 주위 사람들의 보호를 받고 지내니까 진짜로 어린아이처럼 느껴지더군. 너도 그렇지 않았나?”
“그건 그래요.”
로제테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처음엔 자신이 스무 살까지 살았다는 자각이 있었다. 고아원 주위에서 죽어 가던 제인을 살릴 때까지만 해도 그랬던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아드리안 저택에 왔을 때까지는.
그런데 아드리안 공작과 삼 남매의 예쁨과 극진한 보호를 받고 자라다 보니 진짜로 사랑받는 막내가 된 것 같았다.
“어떨 땐 지금에 너무 안주해서, 댈러스 후작가에서 지내던 일이 꿈처럼 느껴지고는 해요.”
“……또 그 얼굴이군.”
“네?”
조슈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로제테의 뺨을 감싸쥐었다. 그의 엄지가 메마른 그녀의 눈가를 쓸었다.
“제 얼굴이 어떤데요?”
“글쎄.”
조슈아가 눈을 살짝 찌푸렸다.
“꼭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인데.”
로제테가 눈가를 더듬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안 울어요.”
“그래, 그런 것 같군.”
조슈아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대체 댈러스 후작가에서 어떻게 지냈길래 과거 얘기만 나오면 그런 표정을 짓는 거지?”
“그…….”
로제테는 입술을 달싹였다.
‘말해도 되나?’
로제테 댈러스로서 지냈던 과거는 썩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말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아니,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가족들은 몰라야 하는 이야기니까.
그런데 단 한 사람, 과거를 공유한 조슈아에게만은 말할 수 있었다.
로제테의 마음속에서는 부끄러운 과거를 말하기 싫다는 생각과 조슈아에게만은 털어놓고 싶다는 충동이 공존했다.
‘정말 말해도 괜찮은 걸까?’
로제테가 고민하는 사이 조슈아가 은근하게 물었다.
“말하기 어려운 일인가?”
“글쎄요.”
로제테가 쓰게 웃었다. 조슈아는 가만히 그 표정을 내려다보았다.
‘또 저런 얼굴을 하는군.’
조슈아는 로제테가 댈러스가에 있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직감적으로 그녀가 좋은 대우를 받지 않았다는 것과 후작에게 철저히 이용당했다는 것만 알았다.
그 외엔 로제테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전혀 몰랐다.
그가 알고 있는 건 회귀 후의 로제테였다.
그의 앞에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도, 아드리안을 지켜야 한다고 소신껏 말하던 당찬 소녀.
동시에 다시 만난 여덟 살의 로제테는 딱 그 나이 대 아이 같았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는 세상의 모든 근심을 다 짊어진 성인으로 보였다. 아이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
그것을 보니 새삼 자신들이 시간을 거슬러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조슈아의 시선을 묵묵히 받던 로제테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딱히 황자님께 들려드릴 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요.”
“그런 이야기가 따로 있나?”
“그래도요. 귀하신 분인데.”
조슈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넌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다 알면서도 그런 소리를 하나?”
“그렇지만…….”
로제테는 말을 흐렸다.
‘하긴 그래.’
조슈아는 높은 곳에 있었지만, 또 그만큼 험한 꼴도 많이 보며 살아왔다.
어릴 적 어머니를 잃었고, 갑자기 나타난 이복동생과 목숨을 걸고 힘겨누기를 하고, 끝내는 아드리안 공작과 다니엘마저 잃었다.
마냥 귀하게 자랐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로제테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구구절절 얘기할 수는 없어서 간략하게 말했다.
“그냥 뻔한 이야기죠. 댈러스 후작은 저를 입양했지만, 철저히 도구로써 이용했어요. 저는 귀족이라면 당연히 배우는 교양조차 배우지 못하고 마법만 익혔죠.”
“…….”
“그 후에는 예상하시는 그대로예요. 저주나 다름없는 마법 때문에 댈러스 후작이 시키는 대로 했죠. 시간을 돌리는 바로 그 순간까지 말이에요.”
“그래서 그때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군.”
“그때?”
“기억 안 나나?”
의아해하는 로제테를 보며 조슈아가 더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네가 데뷔탕트를 치르던 날 말이다.”
로제테의 얼굴이 흐려졌다.
“아, 그날이요.”
“…….”
“죄송해요. 그날은 워낙 정신이 없어서…….”
로제테는 그날의 일을 상기했다.
그날은 모든 게 엉망인 날이었다. 댈러스 후작이 지시한 일을 처리할 때 말고는 저택에 나오지 않던 그녀가 유일하게 밖에 나갔던 날.
끔찍한 제 얼굴이 싫어서 가면을 썼다. 물론, 엘리샤가 옆에서 종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썼던 가면이 오히려 이목을 주목받게 했다.
온몸을 꽁꽁 싸맸지만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진 것 같았던 기억.
로제테는 가능하면 그날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나마 그날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정원에서 삐삐와 대화를 나눴다는 점이었다. 그때 제대로 정원에 나온 게 처음인 삐삐가 다양한 식물을 보고 신났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와서 도망치기 전까지는 행복했던…….
“어?”
로제테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
지금 돌이켜 보면 다른 귀족들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예복을 입고 있었다.
당시에는 의복에 무지해서 그 차이를 몰랐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건 황족이나 입을 법한 옷이었다.
젊었으니 그녀가 마주한 사람은 조슈아나 제 2황자인 루이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달빛에 은은하게 빛나던 머리색을 생각하면…….
로제테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 기억났어요.”
“뭐지?”
“저, 황자님과 전에 만난 적 있죠?”
“그야 당연히…….”
“아뇨. 감옥에서 말고요.”
로제테가 기억을 더듬었다.
“데뷔탕트를 하던 날, 정원에서 누군가를 마주쳤는데, 그때는 누군가가 와서 당황해서 그냥 도망쳤거든요.”
“…….”
“근데 지금 황자님을 보니 알 것 같아요. 그날 봤던 사람은 은발이었어요. 그리고 화려한 예복을 입고 있었고요.”
로제테가 조슈아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런 옷을 입을 만한 은발의 남자는 황자님밖에 없어요.”
조슈아가 멍하니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이제 기억하나?”
“진짜 황자님이었어요?”
“그래.”
“와, 몰랐어요. 전 황자님을 죽기 전에 처음 본 줄 알았거든요.”
“어쩐지. 그때 날 보고 인사도 하지 않고 도망가길래 괘씸하다 했더니, 나인 줄을 몰랐던 모양이군.”
“늦었지만 그날의 무례는 사과드릴게요.”
조슈아가 손을 들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
“뭐, 엄청 오래전 일이니 됐어. 딱히 기분이 상하지도 않았고. 그건 그렇고.”
조슈아가 화제를 바꿔 물었다.
“이젠 행복한가?”
정말 뜻밖의 질문에 로제테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네?”
“그때, 무척이나 슬퍼 보이던데.”
“그러니까…….”
“로제테 댈러스가 아니라 로제테 아드리안이라서 행복하냐고 물은 거다.”
로제테는 잠시 망설였다.
‘내가 황자님께 행복하다고 해도 될까.’
조슈아는 과거를 다 기억한다. 로제테가 아드리안가에 머무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비밀로 해 줄 것을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 언제 모든 진실을 밝히고 그녀를 쫓아낼지 모른다.
그런 그에게 아드리안이 되어서 행복하다고 하는 게 옳은 일일까. 그의 역린을 건드리는 건 아닐까.
하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그녀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네, 행복해요.”
“…….”
“태어나서 이렇게 행복한 적은 처음이에요. 처음엔 아드리안을 위해 시간을 돌렸지만, 이젠 저를 위해서 시간을 돌리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조슈아의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물론 황자님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못 할 것도 없지.”
“……네?”
“너는 이미 충분히 할 만큼 했어. 뭐라고 해야 할까.”
잠시 망설이던 조슈아가 확신을 담아 얘기했다.
“그래. 넌 이제 완벽한 백조가 된 것 같아. 더 이상 미운 오리가 아니야.”
그 순간, 로제테의 심장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에서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인정 받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조슈아 에른하르트에게서.
그녀 앞에서 오열하던 남자가, 아드리안을 떠나라고 하던 남자가 그녀에게 진정한 아드리안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가족들에게서 ‘너도 아드리안이야’라는 말을 들을 때하고는 다른 느낌이었다.
가슴이 벅차오르다 못해 온 세계가 뒤집어지는 느낌이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멀미가 났다.
분명 기분이 좋은데 목이 메고 눈물이 났다.
“흑…….”
로제테는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황자님.”
“…….”
“정말로 감사해요.”
조슈아는 삐삐의 위로를 받으며 투명한 눈물을 흘리는 로제테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직은 앳된 얼굴 위로 언젠가 정원에서 보았던 여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슬픈 표정을 하고 있던, 그러나 두 눈동자만은 반짝반짝 빛나던 분홍 머리의 여인.
그러자 기분이 이상해졌다.
조슈아는 그날 본능적으로, 앞으로 로제테와의 관계가 조금씩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