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78)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78화. 의문의 아이, 미하엘(1)(78/214)
78화. 의문의 아이, 미하엘(1)
2024.01.17.
황궁에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났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가족들과 아침 식사를 하는데, 로제테에게 의외의 사람이 초대장을 보냈다.
로제테는 편지에 있는 익숙한 인장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댈러스?”
혹시나 해서 보낸 사람 이름도 확인했다. 엘리샤 댈러스라고 적혀 있었다.
‘정말 초대장을 보냈네?’
물론, 검술 대회에서 만났을 때 엘리샤가 티파티에 초대하겠다고 하긴 했다.
그러나 로제테는 그게 빈말인 줄로만 알았다. 이렇게 진짜 보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체 무슨 의도일까? 좋은 의도는 아닐 것 같은데.’
로제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인장을 확인한 이자벨이 은근하게 물었다.
“거절할 거지?”
로제테가 앓는 소리를 냈다.
‘원래는 그래야 하는데…….’
로제테는 며칠 전 도서관에서 돌아가는 길에 조슈아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댈러스 후작이 입양 신청을 밟으러 올 때가 됐는데, 오지 않는다는 말. 로제테가 입양되었을 때와는 다른 상황에 마음이 찜찜했었다.
‘이건 좋은 기회야.’
직접 가서 그 아이를 찾아보면 어떨까.
“갈래요.”
“뭐?”
이자벨이 당황했다.
“로즈, 티파티를 초대한다고 모두 갈 필요는 없어. 네가 골라가면 돼.”
“알아요. 그냥 제가 가고 싶어서 가려는 거예요.”
이자벨이 잠시 로제테의 속뜻을 파악하려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관찰했다. 그러나 평소답지 않게 단호한 로제테의 얼굴을 보고 포기했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네 뜻대로 해.”
“네.”
“대신 네가 아드리안이라는 것을 늘 잊지 말고.”
“알았어요.”
로제테는 이제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 후 엘리샤의 티파티에 가는 날, 이자벨은 아예 직접 나서서 로제테가 꾸미는 것을 지도했다.
그녀가 시키는 대로 꾸민 로제테는 그 어느 때보다 미모가 도드라졌다.
거울에 비친 로제테를 본 이자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이 정도면 엘리샤 댈러스의 코를 눌러 줄 수 있겠어.”
조셉의 에스코트를 받아 마차에서 내린 로제테가 댈러스 저택을 올려다보았다.
‘여긴 오랜만에 오네.’
살짝 주황빛이 도는 댈러스 저택은 로제테의 기억과 똑같았다.
처음에 댈러스 후작과 이 저택에 왔을 때에만 해도 그녀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
‘물론, 그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어.’
어린 로제테가 겪은 것은 지옥이었다.
로제테는 이번에 댈러스 후작이 데려왔다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남자아이가 자신과 똑같은 길을 걷길 원하지 않았다.
사실, 마차에서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저택을 보고 겁에 질리는 건 아닌가 했는데, 다행히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할 수 있어.’
그리고 지금 그 아이를 구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로제테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는 안으로 향했다.
익숙한 얼굴의 하녀가 그녀를 정원으로 안내했다. 남들보다 늦게 온 로테제를 못마땅해하는 기색이 얼굴에서 드러났다.
‘이건 예전과 똑같네.’
엘리샤가 과거와 똑같이 로제테를 무시하니, 그 밑의 하녀들이 그녀를 똑같이 무시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로제테는 그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빙긋 웃었다.
“안내해 줘서 고마워.”
하녀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네, 뭐…….”
로제테는 계속해서 웃는 얼굴로 걸어갔다. 이미 열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제가 너무 늦었네요.”
로제테가 말하자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로 쏠렸다. 시선 대부분이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오늘 로제테는 일부러 예정된 시간보다 살짝 늦게 왔다.
일종의 복수인 셈이었다. 비록 엘리샤가 늦은 건 클라라의 티파티였지만, 클라라의 일이면 그녀의 일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안 그래도 로제테를 아니꼽게 생각하는 아이들만 모였는데, 다들 로제테가 늦어서 더 심기가 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로제테는 아랑곳하지 않고 엘리샤에게 다가갔다.
“초대해 줘서 감사해요, 댈러스 영애.”
“저야말로 와 주셔서 감사해요.”
엘리샤가 웃으며 답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해 잘 아는 로제테는 엘리샤가 지금 굉장히 기분이 언짢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 사실에 즐거워졌다.
‘내가 엘리샤와 대등한 관계가 되다니.’
과거를 생각하면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로제테가 자리에 앉자 본격적으로 티파티가 시작되었다.
로제테는 엘리샤가 자신을 놀리려고 티파티에 부른 줄 알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댈러스 후작이 데리고 왔다는 아이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런데 엘리샤는 이상할 정도로 로제테에게 말을 걸었다. 호의적이지는 않았지만, 지난번처럼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로제테는 그게 이상했다.
‘왜 이러지?’
로제테는 적당히 엘리샤의 말을 받아치며 시간을 보냈다.
한참 티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였다. 아이들의 눈치를 보던 로제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파우더룸에 좀 다녀올게요.”
파우더룸은 화장실을 말하는 용어였다.
“다녀오세요. 저기 있는 하녀가 안내할 거예요.”
“아뇨, 괜찮아요. 혼자 다녀올게요.”
안내도 마다한 로제테는 정원을 가로질러 저택 안으로 향했다.
‘내가 여기서 지냈던 곳은 맨 꼭대기에 위치한 다락방이야.’
당연히 어떻게 가는지도,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안 들킬 수 있는지도 알았다.
‘아마 내가 있던 곳에 그 아이도 있을 가능성이 커.’
로제테는 비밀스러운 계단을 올라갔다. 과거에 갇혀 지내다시피 했던 다락방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벌써 5년 전 일인데도, 눈앞에 풍경이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났다. 심장이 조여 올 듯 아팠다.
‘괜찮아. 이제 난 로제테 댈러스가 아니니까.’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 어느새 다락방 입구에 다다랐다.
다락방 문에 손을 대고 마나를 느꼈다.
그런데 안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감고 마나를 느끼던 로제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왜 없지?’
로제테는 댈러스가에 오고 한두 달 정도는 거의 다락방에서 지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식사도 이곳에서 했다.
그녀가 이 방을 유일하게 벗어날 때는 댈러스 후작에게서 마법 수업을 들을 때였다.
그 이후에는 엘리샤 눈에 띄지 않는 선에서 이곳저곳 다니기는 했지만 초기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에 후작이 데려왔다던 아이도 아직까지는 이곳에 있어야 할 텐데.
다시 한번 안을 살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고리를 돌리자 문이 열렸다.
잠깐 놀랐지만, 로제테는 이내 고개만 살짝 집어넣었다.
그런데 안쪽에는 아이가 있기는커녕, 누가 살고 있다는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녀가 썼던 침대나 책상 대신 아무렇게나 방치된 상자나 잡동사니만 있을 뿐이었다.
‘왜 없지?’
이상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데 여기서 더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로제테는 하는 수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렇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무사히 정원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걸어갈 때였다.
“또 보네?”
갑자기 등 뒤에서 나른하면서도 앳된 미성이 들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던 로제테는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고는 더 놀랐다.
“너는……?”
언젠가 검술 대회에서 본 적 있는 은발 머리의 소년이었다. 아이는 가벼운 드레스 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질이 아주 좋아 보였다.
누가 보아도 하인이 아니라 귀족가의 아이였다.
‘이름은 미하엘이라고 했던 것 같아.’
그런데 대체 이 아이는 언제 어디서 나타난 걸까. 로제테가 저택 안쪽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을까.
그것보다 왜 얘가 여기 있는 걸까? 과거엔 한 번도 못 본 얼굴인데.
로제테가 살짝 당황해하고 있는데 아이가 다가왔다.
“오늘은 호위 없어?”
로제테는 그 아이에게 홀린 것처럼 답했다.
“으응. 티파티에 데리고 올 수는 없으니까. 다른 곳에서 대기 중이야.”
“아하.”
아이가 눈을 휘며 웃었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흰색에 가까운 속눈썹 때문인지 묘한 느낌을 주었다.
“내 이름은 기억해?”
“미하엘?”
“맞아. 너 똑똑하구나.”
미하엘이 조심스럽게 로제테에게 다가왔다.
“아직도 네 이름을 듣지 못했어. 알려 줄래?”
“로제테. 로제테 아드리안.”
로제테는 망설이다가 알려 주었다. 분홍색 머리를 가진 귀족 하면 누구나 다 그녀인 걸 아는데, 굳이 비밀로 할 이유도 없었다.
“로제테구나. 애칭은 로즈겠네?”
“응.”
“나도 로즈라고 불러도 돼.”
“안 돼.”
로제테가 딱 잘라 거절하자 미하엘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왜?”
“그건 가족들만 부르는 애칭이야.”
“하지만 애칭은 가족뿐만 아니라 친한 친구도 부르잖아.”
“그렇지만,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아직 가족밖에 없어.”
“내가 예외가 되면 안 돼?”
이상한 애였다. 고작 두 번 마주친 사이에, 그것도 말도 제대로 섞어 보지 않았는데 대뜸 애칭을 부르겠다고 하다니.
“그래도 안 돼.”
로제테가 다시 한번 단호하게 거절하자 미하엘이 “흐응.” 하는 콧소리를 냈다. 딱히 아쉬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넌 여기에서 뭐 하고 있던 거야?”
“정원으로 돌아가는 중이야. 티파티는 그쪽에서 하고 있거든.”
“흐음. 그럼 어디 갔다가 오는 건데?”
“파우더룸에…….”
“파우더룸은 저쪽인데 너는 이쪽에서 왔잖아.”
다 보았구나. 로제테는 낭패감에 볼 안쪽 살을 깨물었다. 이내 어설프게나마 거짓말을 했다.
“위치를 착각했어. 이 저택은 처음 와 보거든.”
“거짓말.”
미하엘이 딱 잘라 말했다.
“너 거짓말에 되게 서툴구나?”
“거짓말 아니야.”
“딱 봐도 거짓말인걸. 그거 알아? 사람은 거짓말을 할 때 보통 눈을 피한다고 하잖아. 그래서 거짓말인 것을 안 들키기 위해 일부러 눈을 더 뚫어지게 바라보기도 한대.”
“그런데……?”
“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안 그랬는데, 지금은 내 눈을 빤히 쳐다보고 있잖아.”
사실이었다. 로제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하엘의 붉은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건 네 눈이…….”
미하엘이 빙긋 웃었다.
“왜? 너도 내 눈이 신기해?”
“아니, 그게 아니라.”
로제테는 말을 가다듬었다.
“예뻐서 봤어.”
“……뭐?”
미하엘은 마치 ‘예쁘다’라는 단어를 난생처음 듣는 사람처럼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몇 초 뒤,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루카스처럼 개구지거나 호탕한 웃음소리가 아니라, 여름철 계곡에 흐르는 물처럼 청량한 소리였다. 상큼한 오렌지 향기가 날 것 같은 웃음소리.
도리어 당황한 건 로제테였다.
“왜, 왜 웃어?”
미하엘이 눈물이 대롱대롱 맺힌 눈가를 닦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넌 재밌을 줄 알았어.”
“뭐?”
로제테가 알아듣지 못해 되묻자 그가 목소리를 키웠다.
“내 눈을 처음 보자마자 예쁘다고 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왜?”
“왜긴.”
미하일에 조금 전까지 큰 웃음을 터트린 사람 같지 않게 냉소적으로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기괴하잖아, 내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