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103
선오의 예상은 그랬다.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음악제작 2팀을 이끄는 정기석이 말을 이었다.
“아, 누구 말씀하시는지 알겠네. 형, 우리 팀에 걔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그냥 믹싱이나 마스터링 정도만 맡기고 있어요. 그러다가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애들한테 떠밀려서 알아서 사표 쓰지 싶어요.”
정글 같은 엔터테인먼트 생태계에서 실력이 없으면 도태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으니까.
박철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두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소주잔을 비웠다.
“콘서트 연출은 누구한테 맡기기로 했냐?”
일부러 화제를 돌리려는 듯이 선오에게 물어오는 박철이었다.
“··· 구지한 감독님 컨택 중입니다.”
삼겹살을 향해 젓가락질하던 세 사람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선오를 보았다.
“얼마 전에 탄산보이즈 콘서트 했던 그 연출자?”
“네.”
“그 감독님 안 할 텐데···. 이미 상반기에만 2개 했잖아?”
구지한 감독은 국내 콘서트 연출가 중에 몸값이 가장 비쌌다.
뿐만 아니라 그는 1년에 2개 공연만 가려서 연출하기로 유명했다.
그 외의 기간은 해외에서 체류하며 휴식하고 영감을 얻는 데에 쓴다는 인터뷰를, 선오도 읽은 적 있었다.
“섭외가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어요. 일단은 트라이 중입니다. 다른 분으로 하기에는 우리 콘서트가 단콘도 아니고 출연진이 많아서요.”
출연진마다 무대 컨셉도 확확 바뀔뿐더러, 무대에 오르는 인원도 계속 달라져서 노련하고 경험 많은 연출가에게 맡겨야만 했다.
“게다가 올림픽 체조경기장이 픽스되고 나니까 구지한 감독님 말고 다른 분은 안 떠오르더라고요.”
“그래도 그쪽에서 거절할 게 뻔한데? 플랜B는?”
“없습니다.”
너무도 확고한 선오의 말투에,
어느새 자기 일인 것처럼 잔뜩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박철, 정기석, 박황이었다.
“아니 너답지 않게 왜 그래···. 구지한 몰라? 백퍼 안 될 텐데···.”
“구지한이 연출하면 분명 대박 나겠지. 근데 칼같이 매년 2개씩만 연출하는 사람을 무슨 수로? 이미 국내에 없을걸?”
“그래. 구지한을 욕심낼 수는 있는데, 그럴 거면 플랜B도 같이 진행해야지.”
플랜B 정도는 지금이라도 당장 만들어내라면 낼 수도 있었다.
사실 플랜B가 없다기보다는 일부러 덮어두고 생각을 하지 않은 선오였다.
“저는 어떻게든 구지한 감독님을 모셔오고 싶어서요.”
선오의 손에는 이미 실마리가 쥐어져 있었으니까.
구지한을 설득해서 이번 JK엔터 콘서트의 연출자로 영입할 실마리 말이다.
데미안
* * *
“설득할 무기는 갖고 있는데···.”
선오에게는 구지한 감독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의 마음을 움직일 실마리가 있었다.
문제는 만남이었다.
띵———
선오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저벅저벅 걸어 들어간 곳은,
“어떻게 오셨죠?”
“연락 드렸던 JK엔터 콘서트 본부장 129입니다.”
구지한 감독이 소속되어 있는 공연기획사였다.
선오의 등장에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 안녕하세요! 본부장님.”
“이렇게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다른 일 때문에 근처에 왔다가 들렀습니다.”
다들 본부장이 직접 온 것에 대해 적잖이 놀란 얼굴이었다.
곧이어 대표로 보이는 이가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어서 오세요, 본부장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대표는 차를 홀짝이며 입을 열었다.
“연이어 송구스러운 말씀 드리게 되어 마음이 좋지 않지만, 이렇게 직접 오셔도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선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와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구지한 감독님은 지금 해외에 체류 중이시라 저랑도 연락이 거의 안 되세요.”
선오는 대표실 그리고 유리창 너머의 사무실까지 빙 둘러보았다.
어쩌면 구지한 감독을 만날 힌트를 찾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었으나, 딱히 무언가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하나 꺼내어 테이블 위에 내밀었다.
“메일로 드린 서류기는 한데, 드리고 가겠습니다. 감독님께 직접 우편으로도 전달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본부장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제 올해 공연은 연출 안 하려고 하실 거예요.”
“압니다. 그래도 전달만 부탁드려요.”
선오는 가볍게 묵례를 하고는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기획사 대표는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해주었다.
건물을 빠져나온 선오는 자신의 차에 올라타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지금 잠깐 통화돼?”
전화 너머의 상대는 형 지선재였다.
“저번에 탄산보이즈 콘서트 다녀와서 형이 그랬잖아. 그 공연 연출가 안다고.”
– 아니, 내가 아는 게 아니라 엄마가 아신다고.
“엄마가?”
그러고보니 장충동 본가에 식사하러 갔을 때 그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같았다.
당시에는 흘려들었던 이야기였다
– 정확히는 그분의 어머님이랑 우리 엄마랑 같은 봉사 모임에 다니시나 봐. 내가 요즘 콘서트는 몇 년 전이랑 차원이 다르다고 그러니까 엄마가 그러시던데?
“그래? 알았어. 고마워.”
곧장 통화를 마치고 어머니 윤희애 여사에게 전화를 거는 선오였다.
– 아들!
통화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전화를 받은 윤희애 여사.
“엄마, 형이 그러던데, 탄산보이즈 콘서트 연출했던 구지한 감독님네 어머님이랑 아는 사이세요?”
– 어? 아, 어어. 알지.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 같이 봉사를 오래 다녔는데, 얼마 전에야 밝히더라고. 왜 우리나라 제일 큰 공연장 매진시켰다고 떠들썩 했잖아.
“네, 맞아요.”
– 그 뉴스 보면서 내가 우리 첫째도 저기 표 어렵게 구해서 가는 것 같더라, 하니까 그 언니가 자기 아들이 그 공연 연출자라고 갑자기 그러더라니까.
“아···.”
드디어 방법을 찾은 것 같아서 눈이 확 뜨이는 선오였다.
전화 너머의 윤희애 여사는 재잘재잘 말을 이었다.
– 노총각 애물단지 아들이 하나 있다고는 들었는데 그런 인물인 줄은 몰랐지. 암튼 그 얘기에 그날 모임 사람들 다들 난리나고 그 언니가 밥 샀잖아.
어쩐지 이를 전하며 뾰로통한 말투가 된 그녀.
– 근데 선오야, 그런 얘기 들으니까 나도 입이 간질간질하더라? 우리 막내도 그쪽 일한다, 쿼드스텔라 만들고 작곡상도 탄 프로듀서가 내 아들이다 자랑하고 싶은데 꾹 참았어.
“하하하. 잘하셨어요, 엄마.”
머지않아 마음 편히 자랑 잔뜩 하실 수 있게 해드릴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으나, 삼켰다.
윤희애 여사가 되물었다.
– 그 콘서트 감독은 왜?
“소개 좀 해주세요.”
– 소개? 연락처 필요해?
“아마 지금 해외에 나가 계실 거예요. 해외 전화번호 같은 것 알 수 있을까요?”
– 그럼. 그 언니 신나서 말해줄걸?
“하하하. 부탁드려요.”
의외의 수확이었다.
윤희애 여사가 이런저런 사교 모임을 바삐 다닌다는 것은 알았으나 이렇게 구지한 감독과의 연결고리를 찾게 될 줄이야.
이런 게 재벌가 사람들의 인맥이라는 건가 싶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시동을 걸어 회사로 향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기분 탓일까. 운전대를 잡은 양손이 가볍게 느껴지고 오늘따라 차도 쭉쭉 더 잘 나가는 것 같았다.
* * *
JK엔터 콘서트 본부장실.
선오는 회사로 복귀하자마자 공희주를 호출했다.
“데미안 모티브요?”
선오의 앞에 선 공희주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이번 콘서트에는 구심점이자 대주제가 필요합니다. 여러 아티스트가 각자의 무대를 준비할 테지만,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끈을 찾아내야 한다는 거죠. 즉, 서사를 구축해서 컨셉화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말에 공희주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헤르만 헤세의 소설 을 모티브로 우리 아티스트 16명을 묶을 수 있는 성장 서사를 구축해보자는 말씀이신 거죠?”
“맞습니다.”
이내 공희주의 두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재밌을 거 같습니다!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녀가 상기된 투로 본부장실을 나서고,
선오는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역시 해외에 나가 있는 게 아니었네.”
엄마 윤희애 여사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생각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선오였다.
본부장실을 나서고는 방금 나간 공희주를 쫓아가 불러 세웠다.
“공희주 팀장님.”
“네, 본부장님.”
“방금 말씀드린 컨셉안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선오의 표정에서 급한 건이라는 신호를 읽은 공희주.
“내일 퇴근 전까지 올리겠습니다.”
그러더니 곧바로 외근 신청을 하는 그녀였다.
* * *
– 1부. 두 개의 세상 –
– 2부. 새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
이튿날 퇴근을 1시간 남짓 남긴 시각.
공희주가 선오에게 내민 콘서트 컨셉안 초안은 훌륭했다.
“이거 제가 손볼 곳이 없겠는데요?”
초안 같지 않았다.
곧바로 윗선에 기안을 올려도 될 정도의 퀄리티였으니까.
“콘서트 컨셉을 1,2부로 나눈 것도 좋네요. 주인공 싱클레어가 겪는 빛과 어둠의 세상이 1부에서 각 아티스트의 다채로운 무대로 표현된다는 게 마음에 들어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본부장님이 말씀해주신 걸 문서화 한 것뿐인데요···.”
선오의 구체적인 칭찬에 공희주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무대를 2개로 나눠서 쓰는 것도 좋겠어요. 연출자랑 상의해봐야겠지만요.”
“네, 저도 컨셉안 쓰면서 그런 그림을 그려봤습니다.”
“2부에서는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색다른 무대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음에 듭니다. 공희주 팀장님 능력은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굉장하네요.”
컨셉안을 마저 읽어내려가는 선오의 고개가 저절로 절레절레 저어졌다.
“민망하네요. 저는 데미안을 고르신 본부장님의 안목이 굉장하다고 생각하면서 작성한 컨셉안 입니다.”
이에 선오가 빙긋 웃더니 컨셉안을 들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는 이거 가지고 지금 바로 대표님 뵙고, 내일 구지한 감독님 찾으러 가야겠습니다.”
“네? 구지한 감독님이요? 다른 분 알아보려고 했었는데.”
진작 포기한 거 아니었냐는 투로 되묻는 공희주였다.
“네, 그리고 거기에 공 팀장님도 같이 가는 겁니다. 내일 우리 둘이 출장이에요.”
“··· 어디로요? 해외 출장인가요?”
“아뇨. 아쉽지만 국내 출장입니다. 등산화 신고 만납시다.”
선오가 씨익 미소지으며 건넨 말.
이에 공희주는 더더욱 물음표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 * *
“헉헉···. 본부장님, 정말 이런 산골에 구지한 감독님이 계시다고요?”
다음날. 강원도의 어느 산속.
거의 등산복 차림을 한 선오와 공희주가 수풀을 헤치며 어디론가 향하는 중이었다.
“네, 이 방향 맞아요.”
선오는 스마트폰 지도를 살피며 대답했다.
“해외에 있다는 소문은 다 뻥이었나보네요? 후우···. 잠깐 쉬었다 가요, 본부장님.”
강원도라 서울보다는 덜 더웠지만 그래도 초여름의 산행은 쉽지 않았다.
커다란 바위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던 공희주가 대뜸 물었다.
“그런데 본부장님. 정말 우리 컨셉안으로 설득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공연 의뢰가 쏟아져도 매년 2개 할당량 채우면 은둔해버리기로 유명하잖아요, 구지한 감독님.”
구지한이 이런 곳에 있다는 것도 믿기 힘들고,
실제로 구지한을 만난다 한들 설득이 힘들지 않겠냐는 회의적인 물음이었다.
“설득···.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해내야죠.”
“물론 구지한 감독님 욕심나시는 건 이해해요. 어려운 콘서트가 될 거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연출자가 가장 중요하니까···. 체조경기장도 대관했으니 최고의 콘서트로 만들고 싶은 마음은 저도 마찬가지라서 여기까지 쫓아온 거고요.”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잇는 공희주였다.
“그런데 구지한 감독님 재작년인가 일전에 나라에서 의뢰한 무슨 공연도 거절하신 거 아시죠? 그 해 2년 할당량 다 채웠다고.”
이렇게 힘들게 찾아가는 것이 아무 소용 없을 거라는 듯한 회의적인 태도였다.
“일단 가보죠. 여기까지 왔으니까.”
믿는 구석이 있는 듯 확신을 지우지 않는 선오를 보며 공희주는 입을 한번 삐죽이더니 몸을 일으켜 다시금 그를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