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11
백희연은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작업에 집중하는 척했다.
“호환..? 그..글쎄요.”
호환도 잘 안 되는데 다른 프로그램을 익힐 생각이 없다는 것은, 확실히 지난 삶의 백희연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익힐 필요가 없겠지. 어차피 SYP로 돌아갈 텐데···. 여기 스파이 짓 하러 왔다는 게 너무나 투명하네.’
확신을 얻었으니 이제 현장 검거만이 남았다고 생각하던 찰나,
정기석 선배가 작업실로 들이닥쳤다.
“선배님! 새 앨범 컨셉은 뭐로 정해졌어요?”
백희연이 정기석을 반갑게 맞이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건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요. 일단 여기 담긴 2개 곡, 1차 편곡이랑 믹싱 좀 부탁해요. 두 분이 하나씩 분담하면 될 것 같네요.”
정기석은 이렇게 말을 쏟아내며 선오에게 USB부터 건넸다.
어쩐 일인지 백희연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허나 백희연은 끈질겼다.
“선배님, 그전에 앨범 컨셉부터 알아야···”
“1차 편곡 맡길 건 보너스 트랙이고, 다른 한 곡은 믹싱인데 앨범 컨셉까지 필요 있나? 누가 편곡하고 누가 믹싱 할래요?”
그녀는 정기석 선배의 태도에 빈정이 상한 듯 입술을 오므렸지만, 정기석도 선오도 백희연을 신경 써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선오는 그녀가 어떻게 나오나 지켜볼 생각으로 물었다.
“희연 씨는 뭐 하고 싶어요? 편곡, 믹싱?”
편곡은 음악이 지루하지 않게 멜로디를 변형하고 다양하게 구성하는 작업으로, 보통 가수들이 보컬 녹음을 하기 전에 1차 편곡이 이루어졌다.
믹싱은 녹음과 최종 편곡까지 마친 후에 여러 악기의 소리와 보컬의 목소리가 잘 어우러지게 밸런스를 맞추는 작업이었다.
백희연의 반응은 이번에도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했다.
그녀의 관심이 다른 데에 있다는 것이 극명하게 느껴졌다.
“아무거나요. 129님이 먼저 고르시면 남는 거 할게요.”
선오는 당연히 믹싱을 택할 생각이었다.
일단 백희연에게 덫을 놓기 위해서는 더블비 멤버들이 녹음하기 전의 음원인 편곡을 맡겨야만 했다. 게다가,
‘이번 새 앨범 음악제작팀에 들어간 선배들 중에 믹싱에 특화된 사람이 없어.’
선배들의 믹싱 실력이 이때 기준으로는 프로 수준이기는 했으나, 선오는 지난 삶에서 지금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믹싱 작업을 해왔었다.
때문에 선오 입장에서는 아쉬운 실력들이었다.
선오가 실력 발휘하기에도, 더블비의 새 앨범 결과물을 위해서도, 백희연에게 덫을 놓기 위해서도 믹싱을 고르는 게 맞았다.
“제가 믹싱할게요.”
“좋아요. 그럼 희연 씨가 편곡하고 모레.. 아니, 주말이 껴있으니 3일 후에 결과물 봅시다.”
정기석은 그렇게 말을 던지고는 바삐 작업실을 나섰다.
선오는 재빨리 작업실 컴퓨터에 USB를 꽂았다.
“어떤 곡일지 너무 궁금하다! 우리 곡부터 다 들어보고 해요! 제가 맡을 음원은 뭐예요?”
역시나 백희연은 작업보다는, ‘더블비의 새 앨범에 들어갈 곡이 어떤 곡일까?’를 알고 싶어서 혈안이 된 사람 같았다.
“잠깐만요. 이 음원들 희연 씨가 쓰는 시퀀서랑 호환 안 될 텐데···. 맞죠?”
“네, 변환해야 해요. 일단 곡부터 먼저 들어보고···”
“그럼 제가 변환부터 해서 드릴게요.”
절대로 백희연의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는 선오였다.
대신 손을 바삐 움직이며 미리 준비해온 덫을 깔기 시작했다.
받아보지 못한 대우
* * *
잠시 후,
백희연은 작업실에서 나와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끼이이익——
화장실 문을 꽉 닫고는 안쪽 칸 하나하나를 전부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백희연이었다.
“두식 선배, 제가 메일 드린 거 잘 받으셨죠?”
– 어. 근데 좀 이상해. 내가 전해 들은 거랑은 곡 스타일이 좀 달라.
“네? 곡 전달받자마자 보낸 건데···.”
– 내가 다른 팀이지만 예전에 대충 들은 거로는 더블비 앨범에 발라드곡이 없댔거든? 퍼포먼스 위주의 앨범 이랬던 거 같은데···. 그래서 발라드 작곡하는 애들은 그 팀에 안 넣었어.
백희연은 상대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고,
“그래요? 발라드 한 곡쯤 보너스 트랙으로 추가한 거 아닐까요?”
– 흐음···. 전체적인 앨범 컨셉이나 구성은 따로 전해 들은 거 없고?
“네···. 수습이라고 회의에 안 끼워주더라고요. 처음에는 교육의 일환이라고 참여시켜줄 것처럼 굴더니!”
그녀의 눈썹이 꿈틀댔다.
– 사수가 2팀 정기석이지? 걔가 그래. 되게 까탈스럽게 군다니까?
“제가 더 캐내 볼게요.”
– 하아, 내가 어떻게든 더블비 팀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희연이 네가 고생이 많다.
“아녜요, 선배.”
– 여튼 이 곡이 확실하다는 거지?
“네, 확실해요. 제가 곡 받자마자 메일 드린 거예요.”
또각— 또각— 또각—
그때, 가까워져 오는 구두 굽 소리.
백희연은 화장실 입구를 힐끔거리며 누군가 들어올까 눈치를 보았다.
– 이번에도 더블비한테 우리 애들이 밀리면 애들 마지막 앨범이 될 수···
“선배, 잠시만요.”
또각— 또각— 또각—
구두굽 소리는 다행히 화장실을 지나쳐 점점 멀어져갔다.
밖이 다시 조용해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백희연이었다.
“네, 계속 말씀하세요.”
– 아, 별거 아니고. 것보다 너랑 같이 입사한 129말이야. 어떻디?
“괜찮은 것 같아요. 협업도 잘하고, 성격도 담백하고요.”
– 그래? SYP에서도 걔한테 접촉했다던데 왜 JK를 택했는지 모르겠어.
생각지못했던 말에 백희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래요? 이렇게 만난 게 저도 아쉽더라고요. 같이 더 일해보고 싶은데···.”
– 아무튼 더 고생 좀 해줘. 문자는 되도록 하지 말고, 메일 보내고 받은 건 바로바로 잘 지우고.
“네, 들어가세요.”
백희연은 전화를 끊고는 거울을 똑바로 보며 낮게 읊조렸다.
“이번 일 잘 해내면 내 앞날, 내 커리어가 달라져. 정신 똑바로 차리자.”
* * *
어느덧 정기석이 수습 작곡가 2명에게 과제를 던져주고 고지했던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더블비 앨범을 준비하는 JK사내 작곡가들이 모두 회의실에 모두 모였다.
“첫 업무였죠. 편곡과 믹싱.”
맨 앞에 앉은 정기석이, 회의실 앞쪽에 선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백희연과 선오였다.
“네···.”
“곡이 좋아서 믹싱 작업이 즐거웠습니다.”
회의실을 메운 선배 작곡가들은 선오와 백희연에게 사실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더블비 앨범 준비로 다들 피곤에 찌든 얼굴이었다.
“자아, 다들 집중해주시고요. 들어보면서 피드백도 한마디씩 준비해주세요. 이건 더블비 앨범 작업이기도 하지만, 우리 수습 작가들 교육의 일환이기도 하니까요.”
정기석의 말에 다른 주니어, 시니어 작곡가들이 하나둘 의자를 고쳐앉는 시늉이라도 했다.
“129입니다. 먼저 발표하겠습니다. 곡 을 믹싱했습니다.”
선오가 자신의 믹싱 결과물을 틀었고,
스피커를 타고 음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회의실 안을 가득 메우는 풍성한 사운드.
휘몰아치다가도 잦아들며 듣는 이들과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인트로를 지나서 첫 번째 벌스에 다다르자,
‘뭐야, 이 녀석?’
‘오호. 이게 신입 솜씨라고···?’
회의실의 선배 작곡가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가사가 완전 선명하게 잘 들려.’
‘보통 신입들 믹싱할 땐 이펙팅에 너무 집중해서 가사가 묻히는 경우가 많은데···. 믹싱 좀 해봤나 보네.’
코러스 파트로 넘어갔다.
피곤에 찌들어 썩어있던 눈빛들이 어느새 또랑또랑하게 빛나고 있었다.
‘악기 하나하나가 다 살아있다.’
‘서로의 소리를 해치지도 않고, 악기마다 나서야 할 타이밍에 적절하게 등장해.’
‘뭐 하나 존재감이 묻히질 않네. 작곡 의도나 편곡 의도도 잘 살렸고.’
이제 두 번째 벌스.
선오의 옆에 선 백희연도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잔뜩 집중하는 눈치였고,
회의실 안의 사람들은 어느새 팔짱을 풀고서 몸을 앞쪽으로 기울인 채 몰입했다.
‘더블비 멤버들 음색이랑도 잘 어울린다.’
‘센스! 우리 더블비 애들이 노래 되게 잘하는 것처럼 돋보이게 해줬네?’
마지막 코러스에서 아웃트로까지 3분 30초가 끝이 났다.
“한 번 더 들어보죠.”
연배만으로는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시니어 작곡가가 정적을 깨며 말했다.
선오는 말없이 한 번 더 재생 버튼을 눌렀다.
고개나 다리를 비트에 맞춰 까닥이는 사람, 눈을 감고 멜로디에 취해 가사를 따라서 흥얼거리는 사람.
이제는 모두가 선오가 믹싱한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가장 신이 난 사람은 정기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이 곡 의 작곡가이자 편곡가가 정기석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저는 129 씨의 믹싱 결과물을 어제 아침에 받아봤습니다. 작업 속도가 굉장하죠?”
정기석은 이미 알고 있던 선오의 능력을 모두의 앞에서 한 번 더 되짚어주었다.
이에 다른 주니어, 시니어 작곡가들의 얼굴이 다시금 놀란 표정이 되었고,
정기석의 의도를 읽은 선오가 그에게 슬며시 미소지어 보였다.
“잘 들었습니다.”
아까 그 시니어 작곡가 선배가 먼저 입을 열었다.
“129님이 정글 오디오에 올린 곡이 있다고 해서 들어봤었어요. 작곡, 편곡은 그걸로 확인했는데, 믹싱까지 이렇게 수준급일 줄은 몰랐네요. 수고가 정말 많았습니다.”
“좋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오는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피드백을 건네오는 말투가 꽤나 정중했다.
한참 후배인 수습 작곡가를 향한 것인데도 말이다.
이는 선오가 이전의 삶에서 받아보지 못한 대우였다. 왠지 가슴이 찡 울렸다.
연장자가 물꼬를 트자 다들 한마디씩 던졌다.
“일단 굉장히 정성이 느껴지는 결과물이에요.”
“귀가 편안했어요. 잘 들었습니다.”
“내 귀로는 솔직히 믹싱 전문 엔지니어의 솜씨랑 다를 바 없게 들려요.”
이쪽 세계는 직급만큼 중요한 게 실력이었다.
실력자 앞에서는 예의를 갖추며 겸손해지는 게 이 업계의 생리였다.
지금 선오를 앞에 둔 선배들의 모습이 그러했다.
“이대로 그냥 마스터링만 간단히 손보고 앨범에 실어도 될 정도인데요?”
“정말 고퀄이네요.”
“믹싱 잘하는 놈들이 지금 전부 다른 팀에 가 있어서 걱정했는데···.”
몇몇 선배는 구세주를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선오를 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나중에 타이틀 곡 믹싱도 129 씨한테 맡기죠?”
“더블비 애들한테도 얼른 보내줘야겠어요. 좋아라 할 것 같네요.”
“그렇지. 자기들 노래 잘 부르는 것처럼 잘 뽑혔으니까. 오토튠 겁나 입혔는데 그것도 티 안 나고.”
조용하게 다운되어 있던 회의실에 어느새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집단이나 몇몇 또라이나 속이 꼬인 이들 또한 있기 마련이었다.
본인보다 튀는 실력자를 싫어하고 질투하는 족속들 말이다.
129의 입사를 아니꼽게 생각하던 그들은 분위기가 좋게 흘러가자 태클을 거는 대신 입을 오므리며 침묵을 택한 듯 보였다.
한편, 정기석의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모른 채로 흡족한 얼굴이었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129 후배님.”
그가 이번에는 백희연을 향해 물었다.
“백희연 씨는요?”
“그게···. 죄송합니다. 편곡을 아직 다 못 끝내서요···. 시간을 조금만 더 주세요.”
난처한 얼굴로 되레 불쌍한 표정을 짓는 백희연.
기가 찼다.
선오의 예상대로, 아니 기억대로였다.
지난 삶에서도 ‘첫 과제부터 손도 안 댄 불성실 무대뽀 신입’으로 소문이 쫙 퍼졌던 백희연이었다.
물론 나중에 SYP의 스파이였던 게 밝혀지면서 다들 백희연의 불성실함을 납득 아닌 납득했지만 말이다.
‘작업 시작도 안 해놓구선···. 애초부터 편곡을 제대로 할 생각이 없었겠지.’
본인은 힘들게 일 할 필요도 없고, 더블비의 앨범 작업 속도 늦어지게 시간도 끌고.
백희연의 불성실함에는 이유 아닌 이유가 있다는 것을 선오는 알았다.
백희연은 고개를 숙인 채 연기를 하고, 회의실 안의 선배들이 동요하여 웅성거리는 동안,
선오와 정기석의 두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두 사람은 침묵 속에서 서로 대화라도 하는 것처럼 의미심장하게 눈을 빛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