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117
부모 속을 썩이다 못해 까맣게 태워버리는 첫째 딸과 달리, 둘째 딸은 뭐 하나 안 예쁜 구석이 없었다.
둘째를 떠올릴 때면 항상 이렇게 웃음이 나는 그였다.
“첫째 녀석은 연락이 왔다 하면 사고 뒷수습이고, 둘째는 이렇게 기특한 연락만 해오니···.”
태 회장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평생 일군 태양일보를 망나니 같은 첫째 딸한테 맡기거나 나눠줄 수는 없었으니까.
반면, 둘째 딸은 태 회장의 자랑이었다.
아이비리그 그것도 언론인들의 꿈의 대학인 콜롬비아 대학을 자기 힘으로 들어간 데다가, 입학보다 졸업이 더 어렵다는 곳에서 언론과 경영 복수 전공을 훌륭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녀석한테 얼른 좋은 혼처나 정해지면 좋으련만···.”
하지만 운명은 이와 같은 회장의 마음을 알고서 장난이라도 치는 건지, 좋은 혼처 또한 둘째 딸에게 점지해버렸다.
“영은이는 더 오랫동안 내 품에, 우리 회사에 두고 싶은데 말이야.”
태영은의 말로는 지평그룹 측에서 결혼 후에도 태양일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배려해 준다고 했으나, 의심이 많은 태 회장으로서는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인품, 능력, 성실함, 현명함, 처세술···. 이렇게 완벽한 애를 그냥 시집보내버릴 수는 없지. 아무리 재벌가라고 해도.”
때문에 구체적인 혼담이 나오면 이 부분을 확실히 해둘 생각이었다.
사위가 될 지선재, 그리고 사돈이 될 지평학과 말이다.
“영은이가 지평그룹에 들어가서 시집살이하거나 안주인이랍시고 집에서 살림만 하는 꼴은 내가 절대 못 보지.”
그래서 태 회장은 요즘 둘째가 회사 일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몹시 흡족했다.
“결혼 전에, 가능하면 구체적인 혼담이 오가기 전에 우리 태양일보 안에 영은이의 입지를 확실하게 굳혀놔야겠어.”
마음이 급해진 태 회장이었다.
눈썹을 추켜세운 채로 입술을 한껏 오므리더니 인터폰을 눌러 비서실을 호출했다.
“지금 바로 편집국장이랑 연예부장 데려와. 오늘 자 JK엔터 관련 기사도 가져오고. 디지털 기사, 종이 신문 기사 전부!”
* * *
이튿날,
단 하루 만에 태양일보 연예면의 기사 헤드라인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JK엔터, ‘업계 2위 등극의 일등공신’ 129(지선오) 신임 대표이사···과제와 전망은?] [JK 젊은피 129(지선오) 공동대표, JK엔터의 혁신 책임진다] [ 129(지선오) 대표의 절차탁마···위기에 빠진 JK엔터를 구한 백기사]태양일보의 기사를 받아쓰던 영세 찌라시들도 점차 비슷한 논조를 가져갔다.
딸깍——
마우스를 클릭하고 휠을 내려가며 이를 유심히 읽어내려가던 한 소녀는,
“흐음···. 다들 우리 쌤을? 좋게 보고 있네?”
입술을 안쪽을 깨물며 턱을 괴었다.
“우리 쌤 작곡만 잘하시는 게 아닌가 봐? 완전 능력자구나.”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휴대폰을 들어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소녀였다.
[쌤, 정말 JK 대표님 되셨어요?]지이잉——
곧바로 온 답장에 기대하며 폰을 확인했지만,
[그게 중요해? 설이 너 오늘까지 보내기로 한 작곡 숙제는?] [오늘 아직 안 지났거든요!]“치이···.”
어느새 선오의 말에 농담조로 맞받아칠 만큼 커버린 윤설이었다.
윤설은 입을 삐죽이며 포털 사이트의 기사 창을 전부 끄고는 작곡 프로그램 로직을 켰다.
“마무리만 하면 되거든요!”
금방 두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미디를 배운지 반년도 채 안 되었다기에는 몹시 빠른 손놀림이었다.
모니터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하다가,
“끝!”
저장한 로직 파일을 첨부해서 메일로 보내고는, 다시 휴대폰을 든 설이었다.
[지금 보냈어요, 쌤! 이제 대답해주세요. 정말로 이제 JK 대표님 되신 거예요?]사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었다.
기사를 믿지 못해서 연락한 게 아니니까.
“그러면 저 데뷔도 시켜주실 수 있는 거예요···?”
윤설은 이같은 혼잣말을 문자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지워버렸다.
처음에 띄운 물음표만 적은 채로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지이이이이이잉———
선오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쌤.”
– 어, 선생님 공동대표됐어. 숙제는 지금 바로···
“쌤, 그러면요···.”
선오의 말을 가로지르며 튀어나온 윤설의 외마디는 금방 끝이 흐려지고 말았다.
그 안에서 행간의 망설임을 읽은 선오가 바로 되물었다.
– 그러면 뭐? 설이 너 데뷔시켜달라고?
윤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네!”
칼답을 내뱉었다.
– 너 하는 거 봐서.
“네에?”
– 설이 너 실력이 팍팍 늘면 후년. 실력이 아쉽다 싶으면 제대로 갖출 때까지.
“··· 그러니까 데뷔를 시켜주시기는 한다는 말씀이네요?”
– 당연하지. 그러려고 내가 바쁜 시간 쪼개서 이 고생하는 건데?
사춘기 여중생을 강하게 키우는 선오였다.
언젠가부터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수줍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선오에게 농담을 하거나 장난을 걸기 시작한 윤설이었으니까.
“꺄아아아아!!!”
– 어우, 귀 따가워. 뭘 그렇게 소리까지 질러? 새삼스럽게···. 설이 너한테 처음부터 약속했었잖아.
“그때 쌤이 ‘데뷔할 수 있어, 설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달렸지만’이라고 하셨지 반드시 데뷔시켜준단 약속은 안 하셨거든요!”
역시나 윤설은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이에 피식 웃고는 무심한 톤으로 말을 잇는 선오였다.
– JK엔터보다 더 좋은 곳에서 데뷔시켜줄게.
“더 좋은 곳? 굿엔터요?”
– 뭐? 야! 아니, 굿엔터보다 JK엔터가 더 좋은 회사야.
“에이, 무슨 소리세요. 객관적으로 굿엔터가 최고죠.”
요즘 윤설과 전화 레슨을 할 때면 매번 이런 식이었다.
– 암튼. 굿엔터나 JK엔터보다 더 좋은 곳에서 데뷔시켜줄 테니까 설이 넌 지금처럼 트레이닝에만 전념하면 돼.
“그 두 회사보다 더 좋은 곳? 그런 데가 있어요?”
– 있..게 될 거야.
선오는 여기서 말을 줄였다.
중학생 아이와 공유하기에 선오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은 너무나도 거대했으니까.
–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숙제 검사하려고 전화한 거야. 로직 파일 켜봐.
윤설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아까 저장했던 파일을 다시 열었다.
굿엔터나 JK엔터보다 더 좋은 곳이라니.
평소에 장난을 곧잘 치는 선생님이지만 이런 거로 허튼소리 할 분은 아니었다.
– 이번 숙제에서 제일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은 인트로였어. 아르페지오를 정말 잘 썼더라.
윤설의 상념을 깬 건 선오의 칭찬이었다.
“쌤, 벌써 다 듣고 전화 주신 거예요?”
– 굳이 플레이 안 해도 네가 만든 파일 살펴보면 귀에 들리지.
“우와···. 쌤, 짱!”
– 그럼 인마, 내가 미디 작곡만 벌써 20년 넘게.. 아니, 10년 가까이 해왔는데···.
하마터면 말실수를 할 뻔했다.
이를 넘기며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가는 선오였다.
– 암튼 인트로 아르페지오가 좋았던 이유는, 코드와 리듬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어서야. 설이 너 이거 의도하고 쓴 거야?
“으음···. 느낌적으로 그렇게 써야겠다고 쓴 건데···. 반 정도는 의도한 게 맞는 거 같아요. 이런 리듬감을 생각했으니까요.”
어느덧 윤설은 장난기는 지운 채 진지하게 레슨에 임하고 있었다.
– 그리고 브릿지 시작 부분 보자. 딴 건 괜찮은데 여기 초저음역대가 비었잖아?
“어? 어어···?”
윤설이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선오는 설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주었다.
– 그럼 여기서 어떻게 하면 될까?
“서브 베이스를 넣어볼게요.”
– 좋아. 16비트 요소 살려서. 리듬감 죽지 않게.
윤설은 재빨리 손을 보기 시작하여 뚝딱 수정본을 만들어냈고,
“쌤, 들어보세요.”
곧장 선오에게 들려주었다.
한층 풍성해진 사운드였다.
브릿지에 힘이 실리자, 앞뒤의 코러스도 더욱 힘을 받아 전체적으로 곡의 완성도가 올라갔다.
– 잘 고쳤네. 내가 뭐 더 말할 게 없는데?
“정말요? 헤헤···.”
선오의 칭찬에 기분이 좋은지 배시시 웃는 윤설이었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과제는 안티 드랍이야.
“안티 드랍이요?”
– 래퍼런스 곡을 메일로 보냈거든. 지금 한번 들어볼래?
윤설은 잔뜩 호기심이 어린 얼굴로 얼른 선오가 보낸 첨부파일을 열었다.
숨을 죽인 채 그 음원을 전부 듣고는,
“알겠어요. 느낌적인 느낌.”
– 터질 것처럼 빌드업을 하다가, 끝에는 터트리지 않고 리듬을 잡아버리지?
“네네!”
윤설의 목소리가 잔뜩 상기되었다.
래퍼런스가 마음에 들었고 이번 과제에 관심이 생겼다는 의미였다.
– 이런 형식의 드랍을 ‘안티 드랍’이라고 해. 이번에는 이런 안티 드랍의 곡을 한 번 써보자. 3주.. 아니다, 한 달 줄게.
“엇. 한달 씩이나요?”
– 안티 드랍 쓰기 까다로워. 쓰다 보면 왜 한달 줬는지 알 거야.
“네에···.”
그렇게 통화를 마친 윤설은 다시 포털 사이트 기사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한편, 선오는 다시금 윤설이 보내온 과제를 살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게 미디 6개월 차라는 게 말이 돼?”
윤설의 음악성이 점점 무르익어 가는 것을 이렇게 목도할 때마다, 선오의 안에 없던 조급증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차도경 대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이나 모레 안 실장님이랑 셋이 저녁 어떠십니까?]* * *
이튿날, 신사동의 한정식집.
드르르륵——
음식 서빙을 모두 마친 종업원의 손에 룸의 문이 닫혔다.
이곳은 프라이빗한 식사 분위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오늘 차도경 대표와 안 실장을 만난 선오처럼 말이다.
선오는 종업원이 나가자마자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다가, 앞의 두 사람을 먹이는 것이 먼저겠다 싶어 꺼내려던 말을 잠시 삼켰다.
“많이들 드세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 집은 전복 요리가 일품이었다.
젓가락을 바삐 움직이다 보니 선오도 어느새 식사에 푹 빠져버렸다.
점점 접시가 점점 비워지며 세 남자의 젓가락과 숟가락이 오가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다가,
“도산대로 빌딩 신축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차도경이 먼저 운을 띄웠다.
“최종 컨펌 주신 설계도대로 진행하길 잘한 것 같습니다.”
“공사 기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지을 때 잘 지어놔야죠.”
사옥으로 쓸 건물이었기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선오였다.
꿈의 성지랄까.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것을 실현할 공간이었으니까.
“그리고 말씀 주신 굿엔터 지분 매수를 시작했습니다.”
“좋습니다, 차 대표님. 무리는 하지 마세요. 출혈을 감수하면서 까지 진행할 건은 아니니까요.”
“네, 출혈은 없습니다. 미국 주식이 많이 올라줘서 전혀 무리 아닙니다. 그리고···.”
차도경이 잠시 말을 고르더니 선오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일전에 대표님께서 귀띔해주셨던 게 대박이 났거든요.”
그가 무엇을 말해올 지 알기에 선오 또한 씨익 미소지었다.
다음 스텝
“지방 집값이 이렇게 가파른 상승세를 보일 줄은 몰랐습니다!”
선오에게 이처럼 말해오는 차도경의 목소리가 잔뜩 상기되어있었다.
“처음에 대표님께서 지방 부동산에 투자해보자고 말씀하셨을 때는 반신반의했죠. 수도권 집값조차 바닥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계속 추락 중인 시장에서 지방 투자라니, 싶었으니까요.”
이전의 삶에서 이맘때쯤의 오선지는 선배들의 심부름이나 대타로 지방 출장을 다녔다.
곡을 쓸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말이다.
당시 지방 광역시의 공연장을 답사한다거나, 행사를 따오는 일들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