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119
“(선하 없는 뉴욕 재미없어서 어떻게 살아···.)”
“(뭐래···. 됐고. 얼른 가. 겨울에 만나.)”
지선하의 철벽에 손을 흔들며 유유히 사라지는 토니였다.
그가 가고 나자 지선하가 물었다.
“토니 완전 K팝 덕후지?”
“그러네.”
“아까 말했던 유리아이 그 곡을 콘서트장 나와서도 계속 흥얼거리더라니까. 한 번 듣고 어떻게 외웠냐고 물었더니, 원래 좋아하던 곡이었대.”
“그래?”
듣기에 기분이 좋은 말이었다.
‘휘슬’은 유리아이 정규 1집 준비 당시, 시대를 앞서가는 곡임을 알고서도 욕심이 났기에 끝까지 고집했던 곡이었다.
나름 실험적인 시도를 하면서 공을 많이 들인 곡이었고, 다행히 사내 반응도 나쁘지 않아 수록할 수 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래서 그 곡 선오 네가 쓴 거라고 귀띔해줬거든. 그러니까 뉴욕 가기 전에 한 번 또 만나고 싶다고 난리잖아. 근데 그동안 네가 너무 바빴고, 또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잖아? 그래서 나도 말을 못 하고 있다가 이제 네가 한숨 돌리는 거 같아서 말 꺼낸 거였어.”
“고마워, 누나. 신경 써줘서.”
지선하가 씨익 웃으며 남은 칵테일 잔을 비웠다.
“더 시켜줘?”
“아니. 우리도 이제 슬슬 일어나야지.”
“근데 누나.”
“응?”
“토니랑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마.”
선오는 진지하게 말을 꺼냈지만, 지선하는 눈을 흘기며 장난스레 대답했다.
“아우, 또 그런다. 걱정 마!”
“누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토니가 누나를 보는 눈빛이 장난이 아니라니까. 원래 남자는 남자가···”
“나도 알아, 아는데. 걔 원래 여러 여자한테 다 그래.”
“그래? 누나한테도 그게 보일 정도구나?”
“야, 나도 선수거든. 이 누나를 숙맥으로 보구···. 말했잖아, 나 동족 혐오한다고. 토니는 남자로 안 보여. 난 건실한 남자가 좋거든.”
이 말에 선오가 빙긋 웃었다.
전생의 지선하가 어떤 결혼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았기에 안심할 수 없었던 선오였다.
허나 저렇게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니 이상한 양아치나 망나니한테 코 꿰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선오 너나 잘하세요. 일만 하지 말고 여자도 만나고 다니라고.”
선오는 그저 피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어? 아직 20대라 걱정이 없다 그거지? 너 영원히 20대일 거 같아? 금방 지나간다.”
“그래서 지금은 일에만 집중하는 거야. 이 시간이 금방 지나갈 걸 아니까.”
못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차는 지선하였다.
“그래, 지금은 중요한 때긴 하지. 스튜디오129를 처음 차렸고, 걸그룹 런칭도 잘 해내야 하고···. 응원할게. 내가 도울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
선오도 이미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휴학해서 올해 연말까지는 한국에 머물리로 한 지선하.
‘누나가 워낙 마당발이니 뭐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 * *
“동욱아, 너는 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했길래 뒷통수 칠 걸 전혀 모를 수가 있냐?”
한편, 강남 어느 지하에 있는 룸 술집.
여의도의 큰 손과 손을 잡고 JK엔터의 지분을 모아왔던 굿엔터의 하동욱은 조영준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오홀딩스에게 완전히 당한 후 잠시 잠적했던 하동욱이었다.
끝끝내 그를 찾아낸 조영준이 그에게 한참 퍼부었다.
“형···. 지금 제일 큰 피해자는 저예요. 굿엔터 다른 이사 형님들한테 완전히 손절 당하고 갈 데도 없다고요···.”
거의 울먹이는 하동욱이었다.
하지만 조영준은 기가차다는 듯이 비웃으며 반응했다.
“굿엔터한테 손절 당한 건 동욱이 네 탓이지, 인마! 네가 하이걸즈 리더 애랑 놀아나서 그런 거잖아. 어떻게 회사 애들을 건드리냐? 여자가 그렇게 없냐?”
“······.”
하동욱은 아무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조영준은 더욱더 씩씩거렸다.
“피해자 같은 소리 하네···. 야, 너 내가 그날 JK엔터 대회의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129인지 지선오인지 그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내 앞 지나서 단상 위로 올라갔을 때 내 기분을 네가 알아? 씨발···.”
“··· 죄송합니다. 준비한다고 준비했는데 그날 지오홀딩스가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건 모두가 마찬가지였기에 조영준도 수긍이 가는 바였다.
조영준의 지분을 사가며 JK엔터의 주주명단에 등장한 지오홀딩스 차도경은 그 이후 단 한 번도 JK엔터의 이사회나 주주총회에 나타나지 않았을뿐더러, 그 어떤 의사결정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때문에 누가 봐도 그저 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로 보였다.
“그래서···. 이렇게 당하기만 하고 짜져있을 거야?”
조영준이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던졌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하동욱이 얼굴을 들어 조영준을 보았다.
“129인지 지선오인지 뒷조사 시작해야지. 지오홀딩스랑 어떤 관계인지, 뭐 논란거리 만들어 낼 건덕지는 없는지.”
“그게···. 이미 찾아봤는데 뭐 나오는 게 없더라고요.”
“그럼 더 찾아야지. 뭔가 나올 때까지. 과거라든지, 집안이라든지.”
“돈이 좀 있는 놈인 건 알겠더라고요. JK엔터 근처 청담동에 자기 소유 주상복합 아파트가 있고요, 끌고 다니는 자차도 하이엔드급이고요.”
“더 수상한데···.”
조영준이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자,
“제가 더 알아보겠습니다. 129프로듀서를 캐보고, 지오홀딩스에 대해서도 더 찾아볼게요.”
“공동대표지만 그 새끼는 ‘스튜디오129’를 차려서 김록기랑 분업하기로 했다나 봐.”
“네, 들었어요.”
“그리고 거기서 런칭할 첫 프로젝트가 걸그룹이란다.”
“걸그룹이요?”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보는 하동욱이었다.
“형은 어떻게 그런 걸 다 아세요?”
조영준은 대답 대신 입꼬리 한쪽만 비릿하게 올려 보였다.
“그것도 조사해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지오홀딩스, 129 그리고 스튜디오129의 걸그룹.”
“그래. 그 3개 털다 보면 뭔가 우리가 무기로 삼을만한 게 나오지 않겠어?
이제 하동욱의 낯빛이 밝아졌다.
조영준은 그런 그의 앞에 놓인 잔에 양주를 따라주고는,
또르르르르———
건배를 청하며 말했다.
“동욱이 네가 지오홀딩스랑 129를 뒷조사해. 걸그룹은 내가 맡을게. 그 새끼가 걸그룹까지 성공시키는 꼴은 내가 절대 가만히 못 볼 거 같거든.”
이렇게 말해오는 조영준의 두 눈이 희번덕였다.
* * *
이제 청담동 거리에서는 완연한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은행 나뭇잎과 단풍잎이 흩날렸다.
이 풍경을 바라보며 미소짓던 선오는 트렌치코트를 여미며 JK엔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부터 JK엔터에는 콘서트 본부가 사라지고, 스튜디오129 푯말이 붙어 있는 사무실이 생겼다.
콘서트 본부 직원들이 전부 스튜디오129로 옮겨온 것이었다.
본인들이 먼저 자원해서 말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대표 피디님!”
당분간은 매일 회의로 하루를 시작하기로 한 스튜디오129.
선오와 팀장들 손에는 JK엔터의 데뷔조 여자 연습생 명단과 프로필이 들려있었다.
“스튜디오129의 이름을 내건 첫 번째 프로젝트인 만큼, 이번 걸그룹의 결말은 단 하나입니다. 무조건 성공.”
“데뷔 때부터 기선 제압을 확실히 시킬만한 기획을 만들어보겠습니다.”
공희주 기획팀장의 말을 받아 선오가 이어나갔다.
“좋습니다. 일단, 데뷔 전부터 멤버들 전부 따로따로 얼굴을 알릴 루트를 확보했으면 합니다.”
이에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선오에게 집중했다.
“다른 가수 뮤비나, CF, 혹은 드라마 단역이나 예능 출연 같은 방법으로요. 비중은 크지 않지만, 화제성을 만들 수 있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네, 다양한 루트를 생각하고 찾아내서 보고 올리겠습니다.”
“저희 홍보마케팅팀에서도 기획팀과 협력해서 방법 찾겠습니다.”
공희주 팀장과 유은주 팀장의 말에 선오가 빙긋 웃었다.
시작부터 호흡이 척척 맞았기에 무척이나 든든했으니까.
“그럼 연습생 분들 한 분씩 만나볼까요? 여자 연습생은 그동안 꽤나 적체되어 있던 걸로 아는데···.”
“맞습니다. 유리아이의 성공으로 신인 걸그룹 데뷔 일정이 미뤄지면서 그렇게 됐습니다.”
선오 또한 기억하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유리아이가 망했었기에 일찍 신인 걸그룹을 출범시켰던 JK엔터였다.
그때라면 이미 데뷔했었을 몇몇 아이들이 아직 연습생 신분에 머물러있었다.
‘결자해지. 유리아이를 성공시켜서 데뷔 밀리게 한 장본인이 나니까 내가 이 아이들도 성공시키면 되지.’
선오는 프로필을 다시금 훑어보며 생각했다.
프로필만 보고도 지난 삶에서의 모습과 일화가 떠오르는 연습생이 있는 반면, 그저 어렴풋한 기억 속에만 있는 이들도 있었다.
직접 대면해서 대화를 나눠보면 더욱더 선명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대박을 낼 수 있는 멤버라면 단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되었고, 반면 조금이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멤버는 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멤버 후보로도 들이지 말아야 하니까.
그사이 잠깐 나갔던 아티스트 관리팀장 김태웅이 다시 들어와 선오에게 눈빛을 보내며 말했고,
“전원 준비 다 됐습니다. 한 번에 3명씩 같이 들여보내겠습니다.”
“자, 그럼 어디 한 번 만나보죠.”
선오의 이 말에 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세 명의 여자 연습생들이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3명의 목소리가 또랑또랑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이윽고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하는데,
“안녕하세요, 10년 차 연습생 세미 입니다.”
고세미. 그녀를 본 순간, 선오의 머릿속에 섬광 같은 기억 하나가 빛났다.
걸그룹의 승패
지난 삶의 고세미를 떠올리던 선오.
선오의 상념을 깬 것은,
“고세미 씨는 취미가 작곡이네요?”
공희주 팀장의 물음이었다.
고세미가 양 볼을 붉히며 대답했다.
“아···. 아직 제대로 된 곡을 쓸 줄 아는 건 아니구요, 이제 막 미디를 공부하기 시작해서 조금씩 쓰는 정도예요.”
자연 갈색 생머리와 연한 눈동자, 오똑한 콧날 덕분에 화려한 느낌이 드는 마스크의 소유자였다.
허나 아리따운 미모와 어울리지 않게 어딘가 어둡고 그늘이 진 얼굴이었고, 그래서 오히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다른 팀장들도 하나씩 질문을 던지며 고세미에게 관심을 보였다.
[고세미: 보컬 A+ 춤 A 랩 B+ 연기 B]그도 그럴 것이 10년 연습 생활을 헛되이 보내지 않은 듯, 고세미는 각 레슨 트레이너의 평점이 꽤나 높은 연습생이었으니까.
그 다음은, 고세미와 대조적으로 입사 기간이 가장 짧은 연습생이었다.
“안녕하세요. 2년 차 연습생 천희나 입니다.”
천희나의 프로필을 훑어보던 팀장들의 얼굴이 시큰둥했다.
[천희나: 보컬 B+ 춤 A- 랩 B 연기 C]하지만 오직 선오만은 천희나에게 관심이 있었다.
옆에 앉은 고세미와 대조적으로 동글동글 작은 이목구비.
대신 새하얀 피부와 포니테일로 높게 묶은 머리가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처음 실력은 부족했지만 데뷔 이후에 꾸준한 성장을 보여줬던 멤버였어. 무엇보다 소위 씹덕상이라고들 하는 귀여운 외모 덕에 입덕 멤버로 불리면서 팬들을 끌어모았었지.’
천희나에게 별다른 질문이 없자 마지막 연습생의 차례로 넘어갔다.
‘저 친구는 펄레빗으로 데뷔 못 해서 다른 2군 기획사로 이적해서 데뷔했었는데···.’
얌전하게 인사하며 빙긋 웃는 모습을 보자 그녀의 과거가 떠오른 선오였다.
‘데뷔는 했지만 임신 엔딩이었지···.’
선배 보이그룹 멤버와의 속도위반으로 임신 후 팀을 탈퇴하고는 곧장 결혼했던, 그래서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얌전한 고양이였다.
선오는 입술을 오므리며 그녀의 프로필을 뒤집어서 치워놓았다.
이제 다른 팀장들이 세 사람의 프로필을 보며 이런저런 질문을 골고루 던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선오는 가만히 그들을 관찰할 뿐이었다.
머릿속으로 전략을 세우면서 말이다.
특히 고세미를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미모에 가려진 음악적 천재성. 그리고 자살.’
고세미의 지난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랬다.
전생에 JK엔터가 내놓았던 차기 걸그룹 ‘펄레빗’은, 전생에 망했던 유리아이보다 오래갔지만 한방을 빵 터뜨리지 못하고 그냥저냥 애매한 입지를 유지했다.
한방이 없으니 ‘가늘고 길게 가는 걸그룹’이라도 지향하려는 듯했으나 고세미의 자살로 그 또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고세미의 음악성을 펼칠 기회를 충분히 준다면 자살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선오가 이 같은 상념에 젖어있는 사이,
세 사람이 꾸벅 인사를 하며 나가고는 그다음 연습생 3명이 들어왔다.
그들 중 1명은 펄레빗으로 데뷔는 했으나 실력적으로나 팬 서비스나 1인분을 전혀 못 하던 멤버였고,
나머지 2명은 전부 데뷔하지 못했던 연습생들이었다.
그 후에 JK엔터를 나가거나 계속 있으면서도 그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던, 그리고 지금 눈앞에 놓인 프로필 역시 평범한 이들이었다.
그들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그 다음 새로운 3명이 발을 들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를 건넨 연습생을 보는데 선오의 미간이 자기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저 친구 걸그룹은 못하고 나중에 배우로 데뷔하긴 했는데···.’
선오나 다른 팀장들과 한 번씩 눈을 맞추며 눈웃음을 치는 모습이 확실히 문제의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