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121
선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마도 6명 내외의 멤버들을 한 명씩 데려오게 될 겁니다만, 사실 오늘 같이 온 고세미라는 친구가 제게는 가장 걱정인 아이입니다.”
“네, 제가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다만 저는 환자와 진료실에서 나눈 이야기를 발설하지 않을 의무가 있습니다. 보호자이시긴 해도, 환자의 내밀하고도 사적인 영역까지 대표님과 공유할 수는 없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선오는 짧게 대답했다.
예상했던 바였으니까.
대신 의사의 책상 끄트머리에 놓인 작은 화분이 흐트러져 있는 것을 보고는 바로잡아 주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화분 앞, 의사는 보이지 않는 위치에 소형 녹음기를 하나 올려놓았다.
그것은 작은 레고 모양이었기에 언뜻 녹음기로 보이지는 않았다.
선오가 진료실을 나왔고,
고세미가 진료실로 들어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고세미는 한참을 진료실 안에서 나오지 않았고, 중간중간 꺽꺽거리는 울음소리도 새어 나오는 듯했다.
딸깍——
굳게 닫혔던 진료실 문이 열렸을 때,
그 안에서 나오는 고세미의 두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물을 마시고 선오의 옆에 앉은 고세미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싱긋 웃었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개운해 보였다.
잠시 후, 간호사의 부름에 선오가 다시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으면서 동시에 녹음기를 회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두 세번 더 진료를 해봐야 확실한 진단명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지금으로서 가장 유력한 것은 우울장애입니다. 흔히 우울증이라고 하는 거죠.”
의사의 말에 선오는 놀랍지 않았다.
아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는 편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뭔가 병명이 나왔다는 것은 치료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이번 생에는 고세미의 자살을 막을 수 있겠다 싶은 희망이 커졌다.
“고세미 환자분의 케이스는 일반적인 우울증이 아닌 비정형 우울증이라고 해서, 겉보기에는 잘 웃고 외부의 자극에도 정상적으로 반응해서 자칫 우울증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본인도 자각하기 힘들고요.”
그랬다. 그래서 다른 직원들에게도 더더욱 이 문제를 공유할 수가 없었다.
고세미는 성격이 다른 멤버들에 비해 차분한 것 외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기본적인 기분 자체가 우울한 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어서 에너지가 과도하게 저하된 상태입니다. 본인이 늘 시도 때도 없이 졸린 상태라고 말했고,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고요.”
“우울증이 생긴 어떤 계기가 있는 건가요?”
선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고,
의사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복합적입니다. 외부의 자극이나 심리적인 문제에 의해 발병했을 수도 있고, 선천적으로 세로토닌 수치 조절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요. 환자 개인사는 밝힐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 상태가 꽤나 오랫동안 지속이 되어왔다는 겁니다.”
“치료 기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이것에 선오의 첫 걸그룹의 데뷔 일자가 정해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환자분에게 맞는 항우울제를 빨리 찾는다면 3개월이면 눈에 띄게 좋아질 거고 6개월 정도면 약을 끊어도 될 정도가 될 겁니다. 여러 항우울제를 시도하는 기간이 길어진다면, 더 걸릴 거고요.”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상당히 실력이 있는 의사라고 소개를 받은 터라 치료 기간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무엇보다 고세미에게 치료의 의지가 보였으니까.
그녀는 병원을 나와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비로소 입을 열었는데,
“제가 우울증이라니···. 다른 연습생 친구들보다 쉽게 지치길래 그냥 체력이 약한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녔나 봐요.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어요. 치료받으면 체력도 더 좋아진다니까요!”
씩씩하고도 굳은 결심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고세미를 며칠 전부터 데뷔 멤버끼리 묶고 있는 회사 근처의 새 숙소에 내려준 후, 선오는 자신의 아지트로 들어섰다.
손만 씻고는 주머니에서 레고 녹음기를 켜고 듣기 시작했다.
편모슬하에서 자란 데다가 어머니에게 지속적인 폭언과 학대를 받았던 고세미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 세미 씨는 언제가 가장 즐거워요?
의사의 질문.
다른 물음에는 대답을 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던 그녀가 이것에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할 때요. 그 순간만큼은 현실은 사라지고 제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거든요.
고세미에게 음악은 피난처였던 것이다.
선오 또한 그 기분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오선지의 어린 시절 또한 음악이 도피처였으니까.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할 때, 나에게도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면 늘상 이어폰을 끼던 그 시절에 말이다.
녹취록을 듣던 선오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졌다.
고세미에 대한 연민인지, 오선지에 대한 연민인지 모를 감정.
선오는 조용히 작업실로 들어가 컴퓨터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는 로직 프로그램을 켰다.
악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슴 속에 휘몰아치는 이 감정을 음악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Lazy Heaven”
그냥 순간적으로 이런 제목이 떠올랐다.
어둡거나 무겁지 않은, 정반대로 경쾌한 느낌의 음악이었다.
짧게 끊어지는 기타와 드럼으로 펑키한 느낌을 주고, 거기에 레게 리듬으로 마무리 처리를 하며 쏟아냈다.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레게? 레게 팝?”
보컬이 느낌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한 곡이었다.
리듬을 타는 것도 쉽지 않은데 코드나 곡 구성도 단순해서 보컬이 파워풀해야지 맛이 살아나는 그런 곡 말이다.
허나 이를 잘 소화하려면 여성 보컬치고도 높은음을 쉼 없이 구사해야만 했다.
“잘만 살리면 유니크하게 괜찮을 거 같은데···. 자유로운 느낌도 잘 살 거 같고.”
무겁게 때리는 드럼이 없고, 기타 솔로도 아주 간소하지만 비워진 그 사이로 파워풀한 보컬이 채워준다면 이건 먹힐 거라는 확신이 드는 선오였다.
딸깍———
그렇게 이 스케치 곡은 폴더로 들어갔다.
얼마전 토니가 보내온 곡들과 함께 말이다.
이는 이번 걸그룹의 음악적 컨셉을 구축하게 될 곡들의 모음이었다.
휘몰아쳤던 감정을 음악으로 게워낸 선오는 부엌으로 향했다.
또르르르르르르——
와인을 하나 따서 잔에 따르고는, 이를 들고 거실 창가에 서서 어느새 깜깜해진 바깥을 바라보았다.
각종 조명 불빛에 한강 변이 반짝이고 있었다.
“세미도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하나씩 지어나가다 보면 스스로 치유하는 법을 터득하게 될 거야. 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이 아니라, 음악적으로 승화하는 방법을 배우게 해줘야지···.”
지난 삶의 비극을 이번 삶의 희극으로 바꾸어 성공에 다다르는 일.
선오는 그 목표에 한 걸음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때문에 지금 마시고 있는 와인은 축하주였다.
그 중요한 한 걸음을 디딘 스스로에 대한 축하 말이다.
* * *
“팀명은 ‘다이스’로 하죠.”
오늘도 오전부터 회의가 열린 스튜디오129.
상석에 앉은 선오의 말에 팀장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주사위요?”
“네, 대중들에게는 던져서 어느 면이 나와도 만족스러움을 선사할 수 있는 그룹이라는 의미, 그리고 6개의 면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멤버들이라는 의미로요.”
여기까지 듣자 몇몇이 솔깃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특히 공희주 기획팀장과 유은주 홍보마케팅 팀장이 유독 그러했다.
“다이스···. 컨셉적으로 괜찮은 그림이 그려지는 팀명인데요? 마치 운동선수들처럼 무대 의상에 백넘버를 하나씩 부여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초면일 때는 대중들도 얼굴이나 이름보다는 숫자가 더 빨리 인식될 테니까요.”
“홍보 할 때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의미를 들으니까 각인도 잘 되는 것 같고요.”
이 같은 반응에 선오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우리 멤버들이 활동하는 동안 공정한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의미도 있어요. 주사위의 6면은 확률이 공정하잖아요.”
이 말에 다시금 회의실에서는 외마디 탄성이 흘러나왔다.
특히 김태웅 아티스트관리 팀장이 감동한 얼굴을 한 채로 생각했다.
‘아이돌을 이 산업의 구성품이라고 생각하는 보통의 프로듀서들이랑은 확실히 생각 자체가 다르구나···.’
맡은 업무의 특성상 아티스트를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많았다.
매니저들만큼 아이돌 멤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접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회사와 아티스트 간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온 김태웅이었으니까.
김태웅의 이런 생각을 알 리가 없는 선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데뷔는 우리가 만들어주는 거지만, 그다음부터 스스로 커나갈 수 있는 아티스트로 키우고 싶습니다. 주사위가 찌그러지지 않으려면 6개의 면이 모두 똑같아야 해요. 누구 하나 처지는 멤버 없이 각자의 매력과 실력으로 성장해서, 처음에는 작았던 주사위가 6면 골고루 커지고 거대한 주사위가 되는 날이 상상되는 그런 걸그룹을 만들 겁니다.”
짝..짝짝짝짝짝——
회의실에 돌연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한 사람의 손뼉이 모두의 손뼉으로 번져나갔다.
선오는 되레 당황한 얼굴이 되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피식 웃었다.
“대표님···. 완벽한 네이밍인 것 같습니다. 저희도 감동인데 멤버들이 들으면 정말 좋아할 것 같아요.”
“정말이지 소속감과 책임감이 팍팍 듭니다. 저희도 완벽한 주사위를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뛰겠습니다.”
갑작스러운 팀원들의 반응에 선오는 어안이벙벙했다.
이 정도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을뿐더러 지금도 과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예전 같으면 이렇게 중요한 사안은 김록기 대표님한테 먼저 보고했을 텐데···.’
그러고 나서 팀원들에게 공유했다면 반응을 조금 더 예상하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선오의 위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선오는 이제 보고를 받기만 하는 입장이었다.
회의실의 모두가 자신이 준비해온 서류를 들고 선오만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말해주듯 말이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오늘 이야기 나눌 안건들이 또 뭐가 있죠?”
선오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공희주가 서류를 내밀었고,
“글로벌 오디션 공고를 완성했습니다.”
옆에서 유은주도 무언가를 내밀었다.
“데뷔 전에 멤버들 얼굴을 미리 알릴 방법을 찾아보라 하셔서 저희 홍보마케팅 팀원들이 몇 가지 안을 만들어왔습니다.”
이 두 서류를 훑어보던 선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머릿속에 여러 영감이 떠오르게끔 만드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무엇보다 이주의 ‘학폭 누명이라는 시한폭탄’을 데뷔 전에 제거할 수 있을 만한 아이디어가 생각나기 시작했으니까.
상부상조
“웹드라마는 이주를 두고 생각하신 거죠, 유 팀장님?”
선오의 물음에 유은주가 상기된 목소리로 답했다.
“네, 연습생 미팅 때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침 요즘 웹드라마라는 숏폼 콘텐츠가 생기고 있어서 한번 제안드려봅니다. TV드라마에 조연으로 얼굴을 내미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요.”
선오가 잠시 생각에 잠겼고, 미간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선오의 기억으로 웹드라마가 그래도 대중들에게 하나의 콘텐츠로써 기능할 수 있게 되는 건 2010년 중반은 넘어야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지금은 애매한데···.’
유은주가 선오의 표정을 읽은 듯 다시금 물어왔다.
“TV드라마 쪽을 더 알아볼까요, 대표님?”
“그게 좋겠습니다. 포맷보다 중요한 건 내용이니까요. 어떤 대본, 어떤 연출가, 어떤 배우들과 함께하느냐를 따져보아야 할 것 같네요. 이주는 연기 쪽으로 가닥을 잡고 더 알아봅시다.”
선오의 말에 공희주와 유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메모와 타이핑을 했다.
“예능에 단발성 패널은, 천희나를 내보내 보죠.”
선오는 다시금 유은주가 내밀었던 서류를 훑다가 입을 열었다.
전생에서 천희나의 인기 요인은 무해하고 찹쌀떡 같은 외모뿐만 아니라, 밝고 구김없는 성격 또한 큰 비중을 차지했었다.
“천희나가 잘 해낼 겁니다.”
순발력이나 유머 감각 또한 수준급이어서, 예능을 통해 대중들에게 펄레빗의 이름을 알렸던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펄레빗이 그나마 ‘가늘고 길게’라는 목표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천희나 덕분이었다.
선오가 확신에 차서 말하자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렇다고 예능에 적합한 다른 멤버가 더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대표님, 배지율은 JK엔터 입사 전에 잡지 모델 알바를 했었더라고요.”
“그래요?”
“저희가 대표님보다 연습생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아 반성 좀 하면서, 4명에 대해서는 많이 알아봤어요.”
공희주의 말에 선오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래서 잡지 표지나 특집 기사로 시작해서 모델 쪽으로 얼굴을 알려두면 어떨까 합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게 추진해주세요. 그 잡지 입장에서도 자기네 모델 출신의 성장기 같은 것을 기사로 다뤄볼 만 할 테니까요. 스튜디오129에서 걸그룹 데뷔를 앞두고 있다는 걸 알릴 기회를 만들어주세요.”
유은주와 공희주의 손이 또다시 빨라졌다.
*천희나: 예능
*배지율: 잡지 모델
*이주: 연기 (웹드라마 주연 or TV드라마 조연)
김태웅 팀장이 정리를 자처하며 이렇게 회의실 칠판에 적었고,
“이제 남은 건 고세미네요, 대표님.”
“고세미는 보컬이 강점이니까 여기 리스트 중에서··· 피쳐링 같은 건 어떨까요?”
두 팀장의 말에 선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고세미는···. 제가 조금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치료 결과를 보고 판단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피쳐링도 좋지만, 그녀와 다이스를 위해 그보다 더 좋은 무대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으니까.
“일단 팀장님들이 배지율 잡지 쪽 진행해 주시고요, 이주가 연기할 만한 작품도 알아봐 주세요. 천희나 예능은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넵!”
팀장들의 대답이 회의실에 짧고 굵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글로벌 오디션. 오디션 공고는 이대로 픽스하겠습니다. 번역만 다시 한번 검수받으시고, 빠른 시일 안에 띄워보죠.”
“알겠습니다, 대표님.”
팀장들은 어쩐지 활기가 가득한 얼굴들이 되었다.
이제 슬슬 바빠진다는 신호탄과 같은 말이었는데 말이다.
다들 워커홀릭인 대표를 닮아가는 듯했다.
“오늘 이야기 나온 사안들 진행하면서 예산은 얼마든지 오버 되어도 됩니다. 이번 걸그룹 ‘다이스’ 프로젝트에서 돈은 아끼지 맙시다. 우리 스튜디오129의 얼굴이 될 그룹이니.”
선오의 이 말에 비장함이 담겨 있었고, 이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다른 팀장들의 눈빛도 짐짓 진지하게 빛나고 있었다.
* * *
며칠 후, 아침.
[(스튜디오129의 글로벌 오디션이 떴네요. 되게 멋진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