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131
다른 연예인 패널들은 일반인 출연자와 대조될 수 있게 신비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간혹 개그맨이나 개그우먼들이 표정을 풀며 개그를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안에서 제 차별화 포인트를 ‘예쁜데 털털한 여동생’ 정도로 두면···.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저.”
어느새 천희나의 두 눈이 자신감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패널분들, 지금 바로 스탠바이 해주세요! 슛 들어갑니다!”
세트장이 분주하게 돌아가는 사이,
바깥에는 짧디짧은 겨울의 태양이 이미 저버린 채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서울 광화문 모처의 어느 룸 술집.
이곳에서는 지금 세 사람의 밀회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또르르르르———
상석에 앉은 조영준이 양주병을 들고는 언더락잔 3개를 채웠다.
그의 양옆에는 익숙한 얼굴 하동욱과, 새로운 얼굴 하나가 앉아있었다.
표정을 바꿀 때면 얼굴에 그늘이 질 만큼 조명이 어두운 이곳.
조영준이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리며 잔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김 기자님.”
“저도 좋은 형님들과 이렇게 한잔하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3개의 잔이 어두운 조명 아래 경쾌하게 부딪혔고,
“다음부터는 강남에서 뵙지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에이, 김 기자님 오늘도 마감하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우리가 태양일보 근처로 오는 게 맞지.”
조영준의 입꼬리가 다시금 비릿하게 올라갔다.
김 기자로 불린 새로운 얼굴도 미소로 응대하더니, 가방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
“동욱이 형이 말씀 주신대로 129라는 프로듀서에 대해 조사를 좀 해봤습니다.”
“벌써 뭔가를 찾아낸 거예요?”
잔뜩 반색하는 조영준.
서류 봉투를 열어보는 그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이건···. 지오 홀딩스···?”
봉투 속의 서류를 찬찬히 읽어 내려가던 조영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게 뭡니까?”
“129 프로듀서의 본명이 ‘지선오’라고 하셨죠?”
조영준이 서류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서류는 지오홀딩스 내부 문건입니다. 외부로 절대 공개된 적 없는 문건이요. 그런데 그 서류에 따르면 지오홀딩스의 실질적 소유주 이름이 ‘지선오’입니다.”
JK엔터의 1대 주주인 지오홀딩스였다.
그리고 그 지오홀딩스의 차도경 대표가 지목한 JK엔터의 공동 대표 129의 본명이 지선오였고.
그런데, 이 문건은 그 지오홀딩스의 실질적 소유주가 지선오라고 말해오고 있었다.
어안이벙벙한 얼굴이 된 조영준과 하동욱을 보며, 김 기자가 말을 이었다.
“둘 중 하나입니다. 동일 인물이거나, 동명이인이거나.”
김 기자의 말에 룸 안에는 잠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말없이 양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조영준과 하동욱이었다.
이에 김 기자가 다시 입술을 뗐다.
“지금 두 분께서는, 지오홀딩스의 실질적 소유주와 129가 동명이인일 가능성보다는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높게 보시는 거겠죠.”
조영준과 하동욱은 대답 대신 굳은 얼굴로 언더락잔만 비웠다.
“그렇다면 왜 129는 지오홀딩스를 소유했음에도 정체를 숨기고 자기 회사는 차도경에게 맡긴 채로, 본인은 JK엔터에 입사해서 이렇게 공동 대표 자리까지 차지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면밀히 조사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 기자가 기자답게 요목조목 따지고 들자,
조영준과 하동욱의 안색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네···. 뭔가 캥기거나 숨기는 게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하동욱이 김 기자에게 이렇게 되물었고, 조영준 또한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축 처졌던 입꼬리를 다시 치켜올리며 입술을 뗐다.
“사실 나를 JK엔터에서 내쫓은 건, 표면적으로는 김록기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지오홀딩스였거든.”
그랬다. 그 당시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프리미엄을 주고 지분을 빼앗아 간 이가 바로 차도경이자 지오홀딩스였으니까.
“그러니까 129가 지선오가 맞다면, 어떤 목적에서건 JK엔터를 주무르기 위해서 였을 거야. 아니면 나한테 앙심을 품고 나를 내쫓기 위해서였거나.”
“에이, 형. 그건 너무 갔네. 너무 형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식의 사고방식 아닌가? 형이 129한테 무슨 원수를 진 것도 아니고.”
하동욱이 피식 웃으며 말했고,
김 기자가 눈을 빛내며 말을 받았다.
“처음부터 JK엔터를 주무르기 위한 모종의 목적이 있었다라···. 그래서 신입으로 입사해서 차근차근 올라왔고, 그 사이에 지오홀딩스를 통해 JK엔터의 지분을 모았다···. 확실히 뭔가 수상하네요. 그 모종의 목적이 뭐였는지를 캐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같은 말에 흡족한 표정이 된 조영준이었다.
그리고는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는지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그였다.
“어쩌면 129의 본명이 지선오가 아닐 수도 있지 않나? 지선오라는 지오홀딩스의 실질적 소유주의 꼭두각시 같은 인물일 수도 있지 않냐는 뜻이야.”
이에 김 기자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 가능성이 없진 않겠네요. 지선오라는 인물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로, 지오홀딩스는 차도경에게 JK엔터는 129에게 맡긴 셈이라고 치면 말이 되긴 하니까.”
하동욱이 언더락잔 3개에 얼음을 보충하며 입을 열었다.
“둘 중 뭐가 됐든 수상하다, 뭔가 뒤에서 구린내가 난다, 이게 오늘의 수확이네요.”
“그렇지. 동일 인물이라고 해도 수상하고, 지선오가 129한테 자신의 본명을 빌려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고.”
이러한 조영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양주를 잔에 따르는 하동욱이었다.
또르르르르르르———
그는 이 잔을 다시 조영준과 김 기자에게 내밀며 물었다.
“김 기자는 이런 지오홀딩스 내부 문건 같은 건 어디서 어떻게 얻은 거야?”
“하하···. 그건 영업비밀이라···. 자세한 건 말씀 못 드리고요, 경제부 선배한테 코칭을 좀 받았습니다.”
김 기자가 방어하자 조영준은 오히려 그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듯 껄껄껄 웃었다.
“그래. 이러니까 우리가 광화문까지 와야 하는 거야. 김 기자님 같은 분한테 이렇게 건설적인 이야기를 들으려면 말이야.
“맞습니다. 역시 태양일보는 태양일보네요.”
“에이, 우리 김 기자님 능력이 출중하신 거지. 태양일보가 그 덕을 보는 거고.”
“이제는 형이랑 제가 그 덕을 보게 될 거고요.”
조영준과 하동욱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김 기자가 쑥스러운 듯 빙긋 미소 지었고,
그런 그를 향해 조영준이 봉투 하나를 꺼내어 스윽 내밀었다.
“우리만 김 기자님 덕을 보면 쓰나. 상부상조. 김 기자님도 우리 덕을 볼 수 있게 내가 물심양면 도울게요.”
“야유···. 뭘 이런걸.”
김 기자가 손사래를 치자,
“취재비예요. 넣어둬.”
그의 바로 앞까지 봉투를 내미는 조영준이었다.
이에 5만 원권으로 두툼하게 채워진 봉투를 받아 든 김 기자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후속 조사도 더 빠르고 정확하게 가져오겠습니다.”
“그래. 궁금하다. 129가 정말 지선오가 맞는지. 동일 인물이면 JK엔터로 왜 기어들어 온 거며, 지선오가 따로 있는 거면 목적이 대체 뭔지.”
하동욱이 답답하다는 투로 투덜댔고, 조영준은 김 기자를 향해 하동욱을 비웃기라도 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피식 웃었다.
그런 그를 보며 김 기자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제 영준이 형님께서도 동욱이 형님처럼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그게 저도 편합니다.”
“그럴까? 우리 김 기자가 편하다면 그렇게 해야지.”
다시금 껄껄껄 파안대소를 터뜨리는 조영준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형님들과 더 마시면 좋으련만, 내일 새벽 취재가 있어서요. 지선오에 대한 조사도 지금 바로 시작하고 싶고요.”
김 기자가 이렇게 말하며 일어나더니 깍듯하게 허리를 굽히자, 조영준은 더욱더 큰 소리로 웃어젖혔다.
“그럼. 우리 김 기자님이 가신다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어. 푹 쉬고, 취재도 잘 부탁해.”
“여부가 있겠습니까.”
“129인지 지선오인지 그 새끼가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얼른 알아내 보자고. 얼른 가봐.”
이제 129에 대한 뒷조사는 지선오에 관한 뒷조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조영준과 하동욱은 룸을 나서는 김 기자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기록을 한 번 깨볼까?
* * *
KBC 예능국 세트장.
“이번 혜성은 노래뿐만 아니라 평양 사투리도 꾀꼬리 같은데요. 혹시 우리 패널 중에 사투리 대결 가능한 패널 있을까요?”
카메라 여러 대가 동시에 돌아가고 있는 상황.
MC의 이러한 물음에 한 소녀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녀의 옷에는 ‘희나’라는 이름표가 커다랗게 붙어있었다.
“아, 희나 씨. 희나는 고향이 어디예요?”
“저 양산이요. 경남 양산.”
“어? 그냥 들었을 때는 사투리를 하나도 안 쓰는데요?”
“지금은 서울말 스위치를 누른 상태고요, 사투리 스위치를 누르면 또 달라져요.”
생글생글 재잘거리는 천희나의 모습이 메인 카메라에 클로즈업해서 잡히자,
멀찍이서 촬영을 지켜보던 선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MC가 피식 웃고는 되물었고,
“예를 들면요?”
“제가 요즘 제일 많이 부르는 이름이 ‘세미 언니’인데요. 이걸 양산 사투리를 쓰면 ‘세미↗ 언↗니↘’ 이렇게 되거든요.”
희나가 천연덕스럽게 눈을 깜박거리며 내놓은 사투리에 패널들 사이로 곳곳에서 웃음소리와 반응이 터져 나왔다.
“경상도 사투리가 이렇게 힐링이었나요?”
“너무 귀여운데요?”
“국민 여동생 아니고 경상도 여동생이네! 크크큭.”
MC 역시 희나를 보며 실실 웃더니,
“자아, 경상도 여동생은 앞으로 나오시고.”
천희나를 주인공인 평양 꾀꼬리 옆으로 불러세웠다.
“전라도 대표는 없어요? 아, 전라도 언니가 있네! 여기로 나오세요.”
한 개그우먼이 손을 들고 나왔고, 곧바로 3명의 사투리 대화가 시작되었다.
“팽양 꾀꼬리 언↗니↘도 한국 사람 아이가?”
천희나가 말을 할 때마다 패널들이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귀엽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늘 주인공으로 등장한 평양 꾀꼬리나,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개그우먼 패널에 비해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대는 천희나였으니까.
“그래, 내 갱상도 사투리 쫌 쓴다! 뭘 쓰든 우리 같은 한민족 아이가아~~?”
어느새 엄청난 환호와 박수를 받는 천희나였다.
그렇게 확실하게 존재감을 어필한 후, 다시 패널의 자리로 들어가 녹화를 마무리 지었다.
“수고하셨습니다아!! 1시간 후에 다시 슛 들어갑니다! 하모니카 신동이요!”
그러고 보니 혜성쇼는 엄청난 촬영 시간으로 악명이 높았다는 것이 선오의 머릿속에 새삼스레 떠올랐다.
혜성쇼가 동 시간대는 물론 전체 예능 시청률 1위를 찍을 때도 아이돌이나 연예인인들 사이에서 ‘너, 혜성쇼 들어갈래?’ 라는 말이 벌칙처럼 사용되었을 정도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물론 인기 아이돌이나 연예인에 한정된 배부른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선오가 이같은 상념을 깬 건,
털썩—–
근처로 와서 의자에 주저 앉는 천희나였다.
그녀는 한숨이 섞인 심호흡을 내쉬더니 이윽고 매니저가 챙겨준 샐러드 도시락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대표님, 계속 계시면서 봐주실 줄은 몰랐어요.”
“첫 촬영이니까. 이제 가서 일 보려고. 이따가 나디아랑 유이 올 때 다시 올 거야.”
“저 어땠어요?”
“첫 촬영 만에 캐릭터 확실히 잡힌 것 같다. 경상도 여동생으로.”
선오의 칭찬에 천희나가 안도한 듯 싱긋 웃어보였다.
“대표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힘이 나요. 저 밥값은 하고 있는 거 같아서.”
선오 또한 이제 안심할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어투로 말을 잇는 그녀였다.
“갱상도 여동생 컨셉 괜찮을 거 같죠? 국민 여동생 타이틀은 경쟁자도 많고 이제 흔하니까.”
“아마 분위기 처지거나, 일반인 출연자가 너무 긴장했을 때 MC가 희나 너한테 사투리를 시킬 거야. 그때마다 한 마디씩 센스있게 던져주고 임팩트 챙기면 돼.”
촬영을 지켜보다 보니 이전의 삶에서 보았던 혜성쇼가 이따금 떠오르던 선오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연예인 패널의 존재 이유는 그런 것이었다.
그날그날의 ‘혜성’ 즉 주인공은 따로 있지만, 중간중간 MC가 기회를 주었을 때 자기 밥그릇을 잘 찾아 먹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프로그램의 진행과 분위기 및 편집점을 잡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연예인 패널의 역할이었고, 선오가 지금껏 지켜본 천희나는 본인도 모르게 그러한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이런 게 타고난 끼지. 괜히 희나가 지난 삶에서 제일 인기가 많았던 멤버였던 게 아냐. 대중들은 매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니까.’
샐러드 도시락을 싹싹 비우는 천희나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흐뭇한 표정을 짓는 선오였다.
“매니저님, 희나한테 중간중간 간식도 좀 잘 챙겨줘요. 이제 2개 꼭지나 더 남았는데 오늘 같은 날은 다이어트 신경 쓰지 말고요.”
선오가 이렇게 주문하자, 매니저는 자신에게 끝까지 말을 놓지 않는 대표에게 허리를 숙여 더욱더 깍듯하게 모시는 모습이었다.
그들을 남겨두고 자리를 뜬 선오는 장영호에게 부탁하여 작은 사무실을 안내받았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노트북을 펼쳐 업무를 처리하기로 했다.
메일 업무부터 시작해서,
‘이제 슬슬 타이틀곡을 선정할 때가 됐어.’
그동안 자신이 쓴 곡과 토니한테 받은 곡을 모아 정리한 후 하나하나 다시 들어보았다.
머릿속으로 여러 이미지가 그려지고 있었다.
그렇게 6명의 소녀들을 각 곡별로 대입해보면서 여러 컨셉들을 끄적이는데,
지이잉———
[대표님, 나디아랑 유리 도착했고요. 이제 하모니카 신동 촬영은 끝날 기미가 보입니다.]어느새 매니저에게 문자가 왔다.
선오가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세트장에 복귀했을 때에는, 장영호PD가 나디아와 유이를 붙잡고 촬영 컨셉과 순서를 설명하고 있었다.
선오도 멀찍이서 이를 들어보았다.
“한국의 음악 시장과 연예계에 대한 동경을 보여주면 된다는 말씀이시죠?”
역시 나디아의 한국어 실력은 막힘이 없었다.
발음은 원래도 좋았는데, 멤버로 뽑히고 나서 그 사이에 어휘 구사력까지 일취월장했다.
“일종의 국뽕 심리를 만족시켜주는 컨셉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