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22
최종 제출 버튼을 누르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1차는 붙겠지? ··· 붙었으면 좋겠다.”
밤이 늦었지만 그냥 잠자리에 들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서 요즘 뉴스나 읽어볼까 하고 기웃거렸다.
유리아이 앨범 준비한다고 한동안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못 가졌던 만큼 오늘은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 부도라고?”
경제 뉴스의 큼지막한 헤드라인 하나가 선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 (속보) 미국 4위 투자은행 ‘불스텐리’ 부도」
기사 내용은, ‘불스텐리’가 1위 투자사 ‘JP체더스’에 주당 2달러로 매각됐다는 소식이었다.
“이제부터구나.”
등골이 오싹했다.
올해 8월인가 9월부터 본격적으로 터질 폭탄의 시작이었다.
작년에 미국에서 벌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것이 점차 손을 쓸 수 없는 지경까지 연쇄 도미노 작용을 일으키며 올해 8월인가 9월에 미국의 큰 투자사 하나가 더 파산한다.
이것을 필두로 미국 경제가 파탄 나는 것은 물론 전 세계 최악의 경기 침체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선오는 심각한 얼굴로 휴대폰을 들었다.
이제는 방어적으로 상황을 지켜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안 실장님, 늦게 죄송합니다만 급한 건이라서요.”
전화 너머의 안 실장은 언제나처럼 기합이 들어가 있는 목소리였다.
“원유에 투자했던 제 돈들 당장 내일부터 현금화해주세요. 8월까지 전부요. 네, 분산해서요.”
이를 기다렸다는 듯 반색하며 답하는 안 실장이었다.
원유가 최근까지 계속 오르고 있긴 했으나 안 실장은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가 달러에 대해서도 물어왔다.
“달러는···. 네, 달러도 처분해주시는데요, 이건 올해 말까지 천천히 나눠서 해주세요.”
달러는 조금 더 넣어둬도 된다는 판단.
이는 지난 생의 기억 하나를 떠올리며 내린 결정이었다.
PC방이었던 것 같다. 그때 와우를 하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대학생들의 대화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명문대 과잠바를 입은 대학생들이 미국발 경제 위기에 대해서, 그리고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달러가 강세를 보인다는, PC방에서 나누기에는 심상치 않은 대화를 나누다가,
‘아, 환율 미쳤네? 끝없이 올라! 전에 봐뒀던 BMW, 엄마한테 이번 주에 당장 사달라고 해야겠어. 환율 계속 이러면 차 가격 폭등할 거 같은데?’
라며 한 학생이 내뱉은 그 말이 신기하고 충격적이었더랬다.
비싼 외제 차를 당장 사달라고 하면 사줄 수 있는 부모님이 있다는 것.
솔직히 부러운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대화와 그 PC방의 느낌을 지금까지 이렇게 기억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실장님, 달러는 당분간 더 오를 것 같아요. 원유 처분에 신경 써주시고, 저번에 말씀드렸던 올해 하반기부터 들어가겠다던 미국 주식들이요. 그것도 계속 체크해주세요.”
선오는 전화를 끊고는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한강의 아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8월, 9월이 기대된다고 하면···. 나 너무 이기적인가?”
그맘때쯤이면 ‘위기라는 가면을 쓴 기회’가 코앞에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음유 음악경연대회 또한 3차까지의 대장정을 마친 후 최종 수상 명단이 뜰 시점이기도 했다.
“뭐래···. 일단 1차나 붙자. 발표 기다리면서 유리아이 앨범 작업에만 집중하고. 곡만 정해졌을 뿐, 이제 시작이잖아.”
선오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의도적으로 유리아이 타이틀곡 생각만 하려 애썼다.
“내 생애 첫 타이틀곡 ‘포텐셜’에 날개를 달아줄 사람. 작사가부터 찾아야지.”
작사가라는 단어를 내뱉자마자 순간 꽤 괜찮은 계획이 떠올랐다.
곧장 다시 작업실로 들어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정글 오디오에 접속했다.
쪽지함에 들어가 보니,
“와, 진짜 많이 쌓였네.”
다들 129가 입대했다고 생각했는지 위문 편지 같은 것들이 많았다.
쌓여있던 쪽지들을 정리하고나서, 보관함에 들어가 따로 넣어둔 쪽지 중 하나를 클릭했다.
벌써 몇 달 전에 나눴던 쪽지.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인물에게 간만에 쪽지를 쓰기 시작했다.
[음하나 작가님, 오랜만에 연락드립니다. 잘 지내시죠?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번에 상업 곡으로 데뷔를 하는데 작가님께 작사를 의뢰 드리고 싶어서요.]만약 이 제안을 음하나가 승낙한다면 그 혹은 그녀의 데뷔는 지난 삶보다 몇 년은 빨라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천재 작사가를 발굴하고 그 시작을 함께한 작곡가가 되겠지.”
생각만 해도 설렜다.
쪽지를 보낸 후, 정글 오디오에 오랜만에 접속한 김에 디깅이나 해보자 싶어서 정글러 녹음곡 게시판에 들어갔다.
“러프하지만 나쁘지 않네.”
괜찮다 싶은 곡의 게시물은 ‘스크랩’을 눌러 저장해두었다.
이렇게 모아두면 나중에 분명 쓸 데가 있겠다 싶었으니까.
그렇게 계속 디깅을 이어나가는데,
“어?”
쪽지함에 ‘new’ 표시가 떴다.
들어가보니 음하나의 답장이 벌써 와있는 게 아닌가.
[오와아~! 군 복무 중이신 거 아니었나요? 상업 데뷔라니! 축하드립니다! 저야 작사 의뢰해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129님 곡인데···!]선오도 얼른 답장을 썼다.
실시간으로 쪽지를 주고받을 기회였다.
[밤이 늦었는데 음하나님도 깨어 계시네요. 아무래도 음악 하는 사람들은 야행성인가 봐요.] [아, 저두 야행성은 맞는데 지금 제가 있는 곳은 낮이에요.]“어? 음하나 지금 여행 간 거야? 그럼 안 되는데. 시간 없는데.”
[제가 작사 의뢰 드릴 곡이 3개인데 조금 급한 건이라, 혹시 스케줄 가능하실까요? 그리고 규모가 있는 상업 프로덕션이라 계약서부터 쓰고 진행해야 할 것 같아요. 번거로울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음하나도 선오와 주고받는 쪽지함을 띄워놓고 있는 건지 답장이 바로바로 왔다.
[저 시간 많습니당. 백수거든요ㅎㅎ 게다가 저도 129님한테 묻어서 상업 데뷔할 수 있는 거잖아요? 무조건해야죠~! 다만 제가 해외 체류 중이라 계약서 주고받는 게 불편하실 수도 있어요. 물론 전 괜찮지만 129님이랑 그쪽 분들 입장에서요.]“아···. 음하나 아예 해외에 사는 건가?”
그래서 지난 삶에서도 그렇게나 정체를 꽁꽁 숨길 수 있었던 건가 싶었다.
지금은 아직 전자 계약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라 조금 번거로울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좋은 가사를 얻을 수만 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급한 만큼 계약서 사본만 먼저 이메일로 주고받으면 작사 일은 바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원본은 국제 우편으로 주고받고.”
훗날 K팝 전방위에 이름값을 떨치게 될 음하나.
멜로디나 비트의 음악성을 잘 살리면서도 이미지와 스토리가 떠오르는 가사로 머지않아 유명세를 탈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곡에 날개를 달아줄 작사가는 이 사람뿐이야.”
선오는 당장 내일 아침 일찍 회사에 가자마자 음하나와의 가계약을 진행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 *
‘프로 작가도 아니고 아마추어인데 이렇게 번거롭게 의뢰해야 하나?’
‘Reborn? 그 곡 가사 정글오디오에서 들었을 때 좋았어. 좋았는데···. 그래도 꼭 이 사람이어야 하는 거냐?’
‘129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진행해보긴 할 텐데···. 의문이다.’
이름도 없는 신인 작사가에게 선오의 곡 3개를 모두 맡긴다고 하니 이러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특히 박철 팀장과 정기석 선배의 걱정이 심했다.
다들 이번 곡이 대박 나서 선오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우려도 큰 것 같았다.
하지만 김록기 이사의 한마디로 지체없이 계약이 이뤄질 수 있었다.
‘음하나라고 했나요? 습작 가사 나쁘지 않네요. 이번에도 129 후배님의 감을 믿어보죠.’
그렇게 계약은 속전속결로 체결됐고,
선오의 곡 ‘포텐셜’, ‘유성우’, ‘휘슬’까지 3개가 모두 음하나에게로 넘겨졌다.
이제 선오는 음하나와 매일 쪽지를 주고받았다.
[와아~ 그사이에 작곡 실력이 또 느신 것 같아요! 대박대박! 프로 데뷔 아무나 하는 거 아니네요! 제 가사가 이렇게 묻어가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열심히 해볼게요~!] [ㅎㅎ 과찬 감사해요. 포텐셜은 타이틀이라 제일 먼저 부탁드릴게요.] [포텐셜. 이거 지금 듣고 있는데 비트가 독특해요. 통통 튀는 에너지 같은 느낌을 구현하신 거죠? 이 부분은 가사로도 잘 살려봐야겠네요.]음하나와는 곡 수로 따지만 두 번째 협업인데, 이런 느낌이 좋았다.
작곡가의 의도를 읽어주고 충분히 살려주는 것.
[잘 부탁드립니다. 이 곡 부를 걸그룹이 이게 첫 정규 앨범이거든요. 연습생 생활도 길게해서 기합이 단단히 들어가 있어요. 그 아이들의 열정과 잠재력을 음악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선오가 비트와 멜로디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유리아이의 열정이자 본인의 열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음하나의 열정이 덧입혀질 차례였다.
“이번 생에는 이런 작사가랑 같이 일할 수 있어서 좋다. 너무 좋아.”
음하나는 역시 천재였다.
타이틀곡 ‘포텐셜’은 보내준지 단 하루만에 가사를 보내왔다.
[곡이 너무 좋아서 가사가 막막 떠오르더라고요. 훅은 3가지 버전으로 보냈으니 마음에 드시는 거로 골라 써주세요! 나머지 곡도 작업 들어가겠습니당]따끈따끈한 가사를 받자마자 감동이 밀려왔다.
이번에도 역시 이미지가 그려지는 가사, 곡의 특성에 맞게 반복되는 훅을 잘 살려준 가사였다.
“유리아이 애들이랑도 잘 맞을 것 같다.”
더 이상의 감탄은 나중으로 미루고,
선오는 바로 가이드 녹음을 해야 했다.
유리아이 멤버들도 기다리고 있을뿐더러, 타이틀곡이라 안무 팀이나 뮤직비디오 팀에도 얼른 곡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선오가 가진 악기 자체가 좋아서 가이드 녹음은 금방이었다.
“내가 들어도 음색이 귀에 착착 감긴다. 확실히 꽤나 들어줄 만 해.”
이건 자화자찬이라기 보다, 지선오이자 오선지로서 냉철하게 내린 판단이었다.
이렇게 단 2일 만에 가사와 가이드까지 나와버렸고, 완성된 가이드를 박철 팀장에게 메일을 보내자마자 바로 문자 메시지가 왔다.
타이틀곡 작곡가가 되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싶었다.
지난 생에서는 죽어라 노력해도 과정 과정이 장애물 투성이었는데 말이다.
* * *
이튿날.
유리아이 1집 타이틀곡의 가사와 가이드를 공개하는 자리가 열렸다.
오늘 무사히 곡이 통과되면 유리아이가 직접 녹음을 하게 되고, 안무 제작과 뮤직비디오 콘티 작업도 들어가게 된다.
조영준 대표와 김록기 이사, 박철 팀장과 조규태 팀장, 음악제작 1팀과 2팀의 몇몇 작곡가들까지.
그리고 사내 뮤직비디오 팀까지 모인 자리였다.
마지막으로 회의실 문이 열리며,
“안녕하세요! 유리아이 입니다!”
네 명의 소녀들이 밝은 에너지를 내뿜으며 들어왔다.
선오는 그들을 보자마자 반갑고 짠하고 뭐랄까 여러 가지 복잡다단한 감정이 일었다.
‘이번에는 제발 잘 되자.’
특히 리더 나영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10년 넘게 연습생 생활을 버텨왔다.
허나 지난 삶에서는 유리아이 앨범이 망하고서, 계약이 종료되자마자 일반인의 삶으로 돌아갔던 그녀였다.
집안이 넉넉한 아이도 아니었기에 힘들게 살고 있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었다.
이번 앨범은 선오를 위해서도, 유리아이 멤버들의 인생을 위해서도 잘 되어야만 했다.
“타이틀곡 ‘포텐셜’을 작곡한 129입니다. 바로 틀겠습니다.”
회의실 스피커를 타고 명확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레트로 복고 사운드가 울려 퍼졌고,
이윽고 선오의 음색으로 담아낸 가이드 보컬이 흘러나오자,
숨겨왔던 우리 안의 포텐셜—
보여줄게 준비해온 스페셜 —
!!!!!
무심히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의 얼굴에 하나둘 느낌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녹음 디렉팅
‘가사가 제대로 붙으니까 곡이 더 사네.’
음하나와의 계약을 탐탁지 않아 했던 박철 팀장과 정기석은 흠칫 놀라는 기색이었다.
‘무명 작사가가 쓴 거라고 들었는데. 뭐, 나쁘지 않은 듯? 으음···. 아니, 솔직히 잘 썼다.’
1팀 조규태 팀장 또한 제법이라는 표정을 했다.
‘곡이랑 가사 궁합이 찰떡이잖아? 흥얼거리고 싶은 노래가 완성됐어.’
‘비트만 들을 때도 중독성 쩔었는데, 가사까지 붙으니까 나도 모르게 자꾸 입이 움직이려 그러네.’
회의실에 앉아 있는 음악제작 1팀과 2팀의 몇몇 작곡가들 얼굴 역시 곡이 진행되는 동안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놀라움과 부러움 그리고 기대감 같은 것들이 얽혀있는 얼굴이었다.
특히나,
‘이건 천재와 천재의 만남이다.’
김록기 이사는 고개를 숙이며 감탄했다.
상석에서 너무 좋아하거나 놀라는 티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자신의 반응만으로 평가나 결정이 좌지우지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허나 가사까지 입혀진 129의 ‘포텐셜’은 도저히 표정 관리를 할 수 없는 음악이었기 때문에 아예 고개를 숙이고 표정을 감추는 것을 택한 것이다.
‘역시 129의 감과 안목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은 것 같네. 아직 대중의 평가가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한편,
타이틀곡 자체를 지금 처음 듣는 뮤직비디오 팀과 유리아이 멤버들은 벅차오르는 심경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고 있었다.
‘뮤비 컨셉이랑 콘티가 막 떠올라. 곡 자체가 너무 좋아서 자극도 되고 영감도 주고···.’
‘음색 미쳤다. 작가님이 가수 출신이신가?’
‘와아···. 곡이 너무 좋잖아! 완전 꽂힌다.’
‘무대가 그려지는 곡이구나. 설레는데?’
‘이걸 우리가 잘 살릴 수 있을까? 진짜 좋아···. 이 가이드의 80퍼만 살려도 좋겠다···.’
특히 유리아이 리더인 나영이는 감격스러운 나머지 울컥하는 심정이었다.
쿵쾅거리는 비트에 심장도 덩달아 두근거리며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좋은 곡이면 우리 잘 될 수 있지 않을까? 잘 해내고 싶어!’
머릿속에 고생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며, 이 노래가 그 시간을 보상해줄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