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24
박황 선배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팀에게도 선배에게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던 선오였다.
유리아이 앨범에 곡이 들어가는 2팀 작곡가 중에 자기 곡 녹음을 전부 끝낸 이는 없었고, 유리아이 앨범에 곡이 없는 선배들은 다른 가수의 앨범에 투입된 시점이라 선오가 나서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선오는 이미 자기 곡 녹음을 전부 끝냈으니까.
시계를 보니 녹음실에 들어가기 4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아무리 지난 생에 보컬 디렉터 수준으로 대타 디렉팅에 도가 텄대도 많이 촉박한 시간이었다.
지난주에 선오 본인 곡의 디렉을 준비하는 데에도 1곡당 한나절은 걸렸으니까.
‘시간이 없긴 하지만 다행히 아는 곡이니까.’
선오는 이어폰을 꽂고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한 손에는 4명의 유리아이 멤버들의 파트 분배가 적혀있는 종이를 가지고, 다른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며 시퀀서 파일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같은 곡이라도 지난 생의 음원보다 완성도 있게 레코딩 하고 싶다. 내 손을 거치는 거니까 뭐라도 더 나아져야 하지 않겠어?’
좋은 음악이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마무리 작업을 잘 해내고 싶은 선오였다.
한편,
선오가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힐끔거리는 이가 있었으니,
‘아무리 129라지만 이건 불가능이지.’
남민수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씨익 웃었다.
* * *
“어서 와. 맡아줘서 고마워. 박황은 2팀인데 갑자기 우리가 사고 처리반이 돼서 얼마나 골치 아팠던지···.”
약속된 녹음 시각.
선오가 녹음실로 들어가자 조규태 팀장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129가 한 곡 도와준대서 한시름 놨잖아. 수고 좀 해줘.”
조규태는 구시렁구시렁 대더니 팔짱을 끼고 녹음실 소파에 푹 기댔다.
‘아무리 129라지만 신인인데 디렉 경험은 별로 없겠지. 박황 곡을 얼마나 엉망으로 만들지···.’
이런 생각을 하며 흥미진진한 얼굴이 되어 있는 조규태였다.
그때, 남민수가 녹음실로 들어왔다.
“129님, 여기. ‘샤이걸’ 파트 분배가 약간 바뀌었다고 합니다.”
종이 하나를 건네는 남민수.
선오는 잘못 들었나 싶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고,
“··· 샤이걸..이요?”
“네, 샤이걸이요. 지금 디렉하실 곡.”
남민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답했다.
“······.”
“혹시 뭐 문제라도···?”
세상 친절한 목소리로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는 그였다.
아까는 ‘낙원’이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그것도 녹음실까지 와서 ‘샤이걸’로 바뀌었다?
게다가 저런 가식적인 표정.
이건 분명 남민수의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함정이었다.
선오는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하려는데,
“안녕하세요!! 작가님, 팀장님.”
4명의 유리아이 멤버들이 다 같이 들이닥쳤다.
“나영이 언니 콜 시간인 건 아는데,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저희도 응원하려고 미리 왔어요!”
그들의 등장에 선오는 하려던 말을 삼켰다.
괜히 녹음 앞두고 지금의 좋은 분위기를 해치는 것보다 디렉팅에 집중하는 편이 여러모로 낫겠다고 판단했으니까. 참교육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나영이 녹음실 부스 안으로 들어갔고,
“나영 언니, 아자자자!”
다른 멤버들이 뒤쪽 쇼파에 앉으며 순식간에 녹음실 안에는 조용한 긴장이 감돌았다.
“샤이걸 레코딩 시작하겠습니다. 나영 씨, 첫 파트 한번 편안하게 불러보세요.”
선오는 이제 한껏 집중한 얼굴이 되었다.
“느낌 좋아요. 근데 여기는 정박으로 들어가야 해요. 뒷부분도 스트레이트하게. 한 번 다시 갈게요.”
이 세상에 음악과, 아티스트와 나뿐인 시공간.
지금 선오에게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영 씨, 여기 고음 힘들죠?”
“맞아요. 음정도 너무 어려워요.”
“음정은 살짝 나가도 튠으로 맞출 수 있으니까 편안하게 하세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대신 박자를 조금 더 여유롭게, 발랄한 느낌을 살려주면 완벽할 거 같아요. 분위기는 기계로도 못 잡거든요.”
쇼파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던 조규태 팀장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크흠···. 반나절 만에 이렇게 디렉을 능수능란하게 본다고?’
마치 본인 곡을 보컬 디렉팅하는 것처럼 막힘이 없었다.
아니, 이건 본인 곡이라더라도 신입이 그것도 반나절 만에 준비해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디렉팅 진행 솜씨였다.
한편,
쇼파 뒤에 구석에 서서 지켜보던 남민수 역시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뭐야···. 129는 분명히 낙원으로 디렉 준비했을 텐데···. 설마 내가 이럴 걸 미리 알고 샤이걸도 준비해온 건가? 아냐, 그럴 리가 없잖아···. 낙원만 준비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었을 텐데···. 뭐지? 미친놈인가?’
선오의 디렉팅을 보면서 완전히 멘붕에 빠진 남민수였다.
허나 선오는 지금 이런 두 사람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엔지니어님, ‘우리 둘만의’ 이 마디는 지금 테이크 쓰고, ‘시간 사이’는 직전 테이크로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번 들어보고 갈게요.”
엔지니어와의 호흡도 문제없었다.
녹음 시간은 1분 1초라도 허투루 쓸 수 없었기에 초집중 상태로 몰두하는 선오였다.
“나영 씨, 좋습니다. 잠깐만 끊어갈게요. 으음···. 밴딩이 있어도 되는데 너무 깊으면 이 곡에는 안 어울리거든요.”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다시 해볼게요!”
이미 지난 주에 선오의 노래 3개로 디렉팅 호흡을 맞춘 바 있기에 유리아이와 선오는 이제 척하면 척이었다.
“와아, 너무 좋은데요, 나영 씨?”
“헤헤. 감사해요.”
“계속 가볼게요.”
녹음이 술술 잘 풀려가자 선오 또한 기분이 좋았다.
‘다행히 내가 샤이걸을 좋아해서 워낙 많이 들었으니 망정이지···.’
샤이걸은 지난 생에 유리아이의 망한 1집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고, 팬들 사이에서는 이후에도 꾸준히 회자되던 곡이었다.
‘녹음 잘 해내서 완성도를 더하고 싶은 곡이야.’
이제 선오는 더욱더 열정을 불태우며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여유롭게 녹음 부스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에 조규태 팀장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녹음실 분위기에 입을 삐죽거리며 입맛만 다셨고,
남민수는 오히려 본인이 더 당황해서는 똥줄 탄 얼굴이 되어갔다.
‘어쩜 저렇게 태연하게 잘 해내는 거지?’
* * *
우여곡절 끝에 유리아이 1집의 전곡 레코딩이 모두 잘 끝났다.
JK엔터 입장에서는 급한 불은 다 끈 것이다.
후작업인 믹싱과 마스터링이 진행되는 와중에,
“선배, 괜찮으세요?”
“괜찮아 보이냐? 죽을 것 같다 아주.”
선오는 2팀 선배들과 함께 이른 퇴근 후, 박황 선배의 문병을 왔다.
몸 여기저기에 붕대를 둥둥 감고 있는 박황의 모습을 보니 얼마나 큰 사고였는지 짐작이 됐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다.
“들었다. 129 네가 내 샤이걸 디렉 봐줬다고.”
“재밌게 했습니다. 제가 그 곡 되게 좋아했잖아요.”
“들어봤는데 좋더라. 빈말이 아니라 진심 너무 좋았어. 내가 직접 디렉 봐도 그 정도는 나오기 힘들지 않았을까? 고맙다, 정말.”
그가 동굴 같은 목소리로 인사를 해왔다.
박황 선배한테 이런 표정도 있었구나 싶었다.
이전의 삶에서는 팀도 달라서 친해질 기회가 없었으니까.
“지금은 일보다 선배 건강만 신경 쓰세요. 얼른 쾌차하셔야죠.”
“믹싱도 잘 부탁해.”
샤이걸의 믹싱도 선오가 자진해서 맡기로 했다.
이쯤 되면 1팀 사람들이 어떤 해코지를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샤이걸은 선오가 꼭 지켜내고 싶은 곡이었다.
“네, 최선을 다할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 안 해. 더블비 ‘Never gone’ 들어보니까 오히려 기대가 크다.”
“아, 그 곡···.”
더블비의 ‘Never gone’은 선오가 몇 달 전 수습 때 처음으로 받았던 일이었다.
첫 업무였기도 했고 정기석 선배가 작곡하고 편곡한 거라 선오도 심혈을 기울여 믹싱했던 기억이 났다.
“어. 딱 그 곡만큼만 부탁할게.”
박황이 선오를 보며 잇몸 만개하게 웃었다.
그런 박황에게 2팀 선배 중 하나가 다른 소식을 전했다.
“황아, 오늘부로 129 우리 2팀이다.”
“이야! 진짜? 아아···. 아파···.”
놀란 박황이 반색하며 벌떡 몸을 일으키려 했고,
“선배, 워워···. 가만히 누워만 계세요. 워워···.”
2팀 사람들의 부축에 박황은 자중하며 흥분한 투로 말을 이었다.
“혹시나 1팀에 빼앗기면 어쩌나 했는데 잘 됐다, 잘됐어!”
“안그래도 조규태 팀장님이 129 자기 팀에 넣으려고 대표님이랑 나름 애 썼나 보더라고요.”
“아니, 사실은 며칠 전에 철이 형님이 전화하셨길래 내가 129 우리 팀에 넣어주면 빨리 나을 거 같다고 졸랐거든. 내 덕분인가?”
선오는 피식 웃었다.
박황이 이렇게 농담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나 싶었다.
“하하하. 129도 꼭 우리 팀 들어오고 싶다고 대표님이랑 이사님 같이 계실 때 면전에 대고 말했대요.”
그랬다.
이제 그런 의사 표현 정도는 할 군번이 되었다고 생각한 선오였으니까.
무엇보다 1팀 사람들과 같은 천장 아래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남민수한테는 아직 참교육할 게 남았지.’
선오는 1팀 이야기가 나오자 남민수를 떠올렸다.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이잉——
그때, 선오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진동했다.
꺼내어 확인해보니,
[129님, 축하합니다! 음유 음악경연대회 1차 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2차 실연 심사는 메일로 자세하게 안내해 드렸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그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소식이었다.
음유 음악경연대회의 2차는 심사위원들만 앞에 둔 무대에 올라서, 참가자들이 직접 자기 곡을 실연하고 평가받는 자리였다.
“선배님들, 저 음유 1차 붙었습니다.”
선오는 곧장 박황 선배와 2팀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공유했다.
“이야, 축하한다.”
“당연히 붙을 줄 알았지만 축하해!”
“이제 진짜 시작이네?”
“도울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
1차에 붙었다는 안도감과 설렘, 2차 심사에 대한 떨림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 * *
같은 시각 JK엔터의 1팀 사무실.
모두가 일찍이 퇴근을 하고 텅 빈 이곳에 고함이 울려 퍼졌다.
“아오!! 129가 녹음 디렉을 그렇게 잘 해낼 줄이야···. 씨발!”
큰 소리의 진원지는 팀장실이었다.
“남민수 이 새끼야! 그러니까 그때 왜 129한테 녹음 디렉을 맡겼어? 왜!!”
조규태 팀장은 앞에 남민수를 세워두고는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129를 데려올 틈이 남아있었는데! 디렉으로 걔랑 2팀이 더 친해져서 이 사달이 난 거잖아!!”
129를 2팀에 빼앗긴 게 분해서 괜히 남민수 탓을 하는 조규태였다.
“나는 분명 우리 1팀 애들한테만 메신저를 보냈는데, 남민수 너 때문이잖아, 너!”
남민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불똥이 이렇게 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 메신저를 받고 한가해 보이는 129가 눈에 띄어서 남민수가 129에게 먼저 물었던 건 맞았다.
솔직히 129를 골탕 좀 먹이고 싶었던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그때 분명 조규태 팀장도 반색하면서 129에게 맡겼다. 그것도 당일 저녁 녹음을 말이다.
남민수는 억울했다.
아니, 그것보다 조규태 팀장의 눈 밖에 난 지금 상황이 너무나 두려웠다.
“아···. 샤이걸이 너무 쉬웠나? 차라리 낙원을 맡길 걸 그랬나?”
조규태는 팀장실 안을 서성이며 신경질을 냈다.
남민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조규태의 노여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저어, 팀장님. 사실은···.”
사전에 129에게 ‘샤이걸’을 전하라하셨지만 ‘낙원’을 전했다는 이야기.
그렇게 해서 129에게 함정을 파고, 그와 2팀이 멀어지게 만들고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조규태에게 건네는 남민수였다.
“정말? 근데도 129는 그렇게 잘 해냈다고, 샤이걸 디렉을?”
조규태 팀장은 말문이 막힌 듯 허허허거렸다.
다행히 남민수에 대한 노여움이 조금은 풀린 것 같아서 안도하던 찰나,
쾅———
누군가 팀장실 문을 부술 듯 열고 들어왔다.
“이게 다 무슨 소리냐?”
다름아닌 조영준 대표였다.
조규태는 순간 굳어버렸다.
“혀..형? 퇴..퇴근 안 했어?”
“퇴근? 하는 중이었지. 근데 웬 개소리가 길게 들리네? 이게 다 무슨 소리냐고!!”
조영준 대표가 노발대발했다.
“야, 조규태! 이 미친 새끼야! 아무리 그래도 장난칠 게 따로 있지! 이번 유리아이 앨범이 회사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
“아니, 혀..형···. 잠깐 진정 좀 하고 내 이야ㄱ···”
조영준 대표는 잔뜩 흥분해서 조규태를 한 대 칠 기세였다.
“진정?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