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28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차는 이든킴이었다.
“천하대 교정 들어와서 형 만나기 전에, 다른 형을 먼저 만났는데, 일렉 기타 끌고 가시길래 말 시켰거든요, 근데 같은 음유 참가자인 거 알고는 확 눈빛이 변하더라고요. 근데 형은 처음부터 아니었어요. 경계하는 눈빛도 아니고 뭐랄까 편안하고 여유롭달까?”
선오는 그런가 싶어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형이랑 친해지려고 하는 거예요. 게다가 키 크고 잘생김!”
헛소리에는 반응하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대신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말을 돌리는 선오였다.
“근데 나보다 먼저 만났다는 형이 혹시 이든 씨 뒤에 있는 저 사람이에요?”
이든킴이 뒤를 돌아서 선오가 일러주는 곳을 바라보자, 그사이 길게 늘어난 배식 줄에 강찬교가 있었다.
“아뇨. 저분 아까 카메라 찾던 분이잖아요.”
“맞아요. 끝까지 카메라 찾다 늦은 건가? 방금 전에 식당 들어왔는데 이든 씨 발견하고서 자꾸 힐끔거리길래요.”
“저를요?”
“네, 지금도. 혹시 아는 사람 아니에요? 버스킹하다 봤다거나.”
“아닌 거 같은데···. 에이, 형 보는 거 아닐까요? 너무 잘생겨서?”
“··· 거기까지만 해요. 오그라드니까.”
“넵! 하하하. 형, 칭찬에 약한 타입이시구나.”
만약 이든킴이 친한 사이였다면 선오는 이미 그의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고도 남았을 것 같았다.
* * *
음유 음악경연대회 2차 실연.
객석에는 5명의 심사위원이 착석해있었는데, 가운데에서 방형만이 푸짐한 풍채로 중심을 잡아주는 모양새였다.
심사가 물 흐르듯 진행되었고,
드디어 오늘 2차 실연 심사의 끝자락,
조감독이 대기실에 홀로 남아있던 선오의 이름을 불렀다.
“20번 참가자, 129님. 무대 뒤에 대기해주세요.”
선오가 대기실을 나와 무대 뒤로 가보니,
19번 이든킴이 덜덜덜 떨고 있었고,
무대 위에서는 18번 강찬교가 실연 중이었다.
그때,
“헐···. 삑사리···.”
강찬교가 하이라이트 고음부에서 돌이킬 수 없는 음이탈을 크게 냈다.
이든킴이 이를 듣고는 놀란 기색이었다.
“많이 떨리나 봐요. 후우···.”
덩달아 심호흡을 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시작하는 이든킴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긴장한 기색은 전혀 없던 그도 막상 무대 뒤에 서니 떨리는 모양이었다.
강찬교의 실연이 2절 후렴에 다다르며 끝나갈 기미가 들리자, 이든킴은 기타를 잡고 있던 손까지 떨기 시작했다.
그것을 눈치챈 선오가 한마디 건넸다.
“평소에 늘 하던 버스킹이라고 생각하면서 편안하게 해요.”
그런데,
띵————
돌연 날카로운 파열음이 났다.
“어···. 끊어졌어요···. 1번 줄···.”
이든킴의 기타 줄 하나가 끊어진 것이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선오 또한 당황했다.
“기타 줄 체크 제대로 안 했어요?”
자기도 모르게 다소 화가 난 목소리가 먼저 나갔다.
이든킴이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길 바랐으니까.
그래야 그를 이겼을 때 진짜 실력으로 이겼다고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환경적 요인이나 어쩌다가 운이 좋아서 이기고 싶지는 않았다.
“어제 6개 싹 다 갈았어요. 그것도 홍대에 기타 장인 형님이, 저 이거 나간다고 선물로 제일 좋은 줄로 직접 갈아주셨는데···. 이상하다, 왜 이러지···. 아침에 리허설 땐 완전 멀쩡했는데···.”
이든킴이 멘붕 상태에서 횡설수설 늘어놓는 말을 듣는 동안, 선오의 머릿속에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맞다. 지난 생에도 기타 줄이 끊어졌댔어. 그래서 나중에 이든킴이 대상 받고 인터뷰했었잖아. 줄 1개가 끊어지는 바람에 줄 5개만 갖고 코드 옮겨서 쳤다고. 그게 계속 회자됐고.’
이든킴이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대기실 기타 케이스에 새 줄이 있으니까 지금이라도 얼른 줄을 갈아···”
대기실로 가는 문쪽으로 돌아서는데,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19번 참가자, 이든킴 님의 무대입니다.”
강찬교의 실연이 모두 끝나고 말았다.
그가 잔뜩 구긴 얼굴로 무대에서 내려왔고,
이고은 감독이 이든킴을 향해 손짓했다.
“코드 바꿔서 치면.. 괘..괜찮을 거야..!”
침착하려 애쓰며 몸을 돌려 무대로 향하는 이든킴이었다.
“잠깐만요.”
선오가 그를 잡았다.
재빨리 자신의 기타를 벗어서 이든킴의 품에 안기듯 밀어 보냈다.
“액땜한셈 쳐요. 잘 될 거예요.”
“고..고맙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이든킴의 실연 심의가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19번 이든킴 입니다. 실연 곡은 ‘학교 곰이 땡땡땡’ 입니다.”
딩,딩,디잉— 단,단,따안—
다행히 난리 통을 겪은 것 치고는 의연하게 연주를 시작하는 그였다.
우리가 익히 아는 ‘학교 종이 땡땡땡’에서 변주된 어쿠스틱 기타의 인트로. 이는 곧 플럭 신스를 기타 소리로 구현한 듯한 반전 사운드로 이어졌다. 하우스 장르였다.
선오는 이를 들으며 안도했고 입가에 미소가 깃들었다.
어느새 슬쩍슬쩍 리듬을 타며 이든킴의 음악을 즐기기까지 했다.
‘이거 약간만 다듬고 EDM으로 신스 써서 편곡하면 차트 올킬 곡 하나 나오겠다.’
경쾌하고 산뜻했다.
가사는 딱 이든킴 본인과 어울리는 재기발랄하고 재미난 상상력이 돋보이는 내용이었다.
어릴 적 안고 자던 곰 인형이 칠판만 한 크기로 부풀어 커진 채로 학교에 나타나더니, 자신을 어깨에 태우고는 어른들의 세계를 구경 시켜 줬다는, 한여름 밤의 꿈같은 이야기였다.
‘가사가 재밌다. 음악이랑 어우러져서 황당하지 않고 이미지가 저절로 그려져. 감정을 이끌어내는 재주도 있고.’
여기에 청아하고도 감미로운 보컬까지.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주기에 완벽한 조화였다.
‘이걸 계산도 안 하고 기타로 즉흥 작곡했다는 거잖아?’
선오는 혀를 내둘렀다.
역시 이든킴은 천재였다.
‘이 고딩을 지난 생처럼 그냥 망길 걷게 놔두면 이건 범죄야 범죄!’
작곡가로서 참으로 욕심 나는 아티스트였다.
그런데,
“본인이 알아서 코드 바꿔 치겠다는데, 왜 그쪽 기타로 오지랖이세요?”
선오는 잘못 들었나 싶어서 두리번거렸지만,
무대 뒤에는 강찬교와 자신뿐이었다.
18번 강찬교는 실연 심의를 마친 후 나가지 않고 무대 뒤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가 말을 건 것이다.
“포텐셜? 그 곡으로 대중들한테 인정받았다고 여유 만만한 건가?”
아까 음이탈을 제대로 내서 그런지 잔뜩 꼬여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선오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눈을 감으며 이든킴의 실연을 감상했다.
“당연히 본인은 2차 통과하고 3차에서도 대상 탈 거라고 생각해서 도와준 거예요? 음유의 세계는 밖의 상업 논리랑 또 다른 거 모르시나···. 이든킴 쟤 버스킹 쪽에서 엄청 유명해요. 팬클럽까지 있을걸요? 2차 통과하면 네티즌 파워로 최소 금상은 타지 싶은데, 저런 경쟁자를 한가하게 도와주고 싶어요?”
강찬교는 선오가 이든킴을 도와준 게 몹시도 거슬린 듯했다.
“그쪽은 착해 빠진 호구세요, 아니면 카메라 있을까 봐 착한 척하는 건가?”
선오는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강찬교는 점점 더 흥분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음악 경연에 나와놓고서는 페어플레이? 설마 그딴 한가한 마인드세요? 이기기 싫은 사람처럼 왜 그러는지 진심 이해를 할 수가 없네···.”
“당연히 이기고 싶죠.”
계속되는 강찬교의 도발에 선오가 눈을 뜨고는 차분하고도 건조한 어조로 한마디 던졌다.
“이기고 싶으니까 도와준 거예요. 온전히 음악만으로 승부해서 이기고 싶으니까. 이든 씨가 실력 발휘를 못 한 채로 내가 이겨버리면, 이겨 놓고도 이긴 거 같지가 않잖아요.”
선오에게 이든킴은 바로미터 같은 존재였다.
이번 생의 실력과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이 두 사람의 무대 뒤 대화를 엿듣고, 아니 엿찍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어둠 속에서 적외선 카메라를 들고 선오와 강찬교를 잡는 카메라 감독이었다.
‘아까부터 완전 이슈각인데? 아까 기타 준 건 페어플레이 서사, 지금 이건 라이벌 서사 한 편 뚝딱이다!’
그는 숨을 죽인 채로 두 사람의 대화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중했다.
허나 강찬교는 선오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계속 밀어붙였다가는,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 한 고등학생을 이겨 먹고 우쭐대고 싶어 안달 난 사람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무대 뒤에서 이런 대화가 오가는 사이,
무대 위의 이든킴은 자신의 실력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이든킴 쟨 저렇게 잘하는 친구가 어려서 그런가 왜 덤벙대? 이런 대회에서 기타 줄 체크도 제대로 안 하는 놈이 여기 있었네.’
이는 카메라 감독에게도 분명 의아한 상황이었다.
‘고은 누나한테 얘기해봐야겠다. 이든킴 2차 통과하면 3차 때도 이런 덤벙이 캐릭터로 편집해서 분량 뽑든지 해야지.’
어느새 4분 남짓한 시간이 훌쩍 지나고,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20번 참가자 129님의 무대입니다.”
이고은 감독의 호명에 선오가 무대 위로 올랐다.
무대에서 내려오던 이든킴이 입 모양으로 ‘고맙습니다’라고 뻥긋거리며 선오의 기타를 돌려주었다.
이든킴은 무대 뒤를 지켰고,
강찬교 역시 계속 남아있었다.
선오의 무대까지 다 듣고 나가려는 것 같았다.
팔짱까지 끼고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표정이었다.
“안녕하세요, 129입니다. 실연할 곡은 ‘북극성’ 입니다.”
선오가 착석하여 기타에 손을 얹었다.
시작은 단선율이었다.
A single star shines so bright ——
A north star shines so clearly ——
읊조리는 듯한 허밍 보컬이 최소한의 어쿠스틱 반주에 의지하여 무대 위를 채우기 시작했다.
발라드인가 싶었는데,
이어지는 사운드는 점점 더 풍성해졌고 bpm도 빨라졌다.
‘이건 락이야! 소프트락? 포크락인가?’
심사위원석의 방현만이 흥미롭다는 듯 안경을 고쳐 쓰며 집중했다.
하늘 넓은 어둠 속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
너의 빛은 나를 노래하게 해——
너의 빛은 나를 꿈꾸게 해——
이제 모든 심사위원이 선오의 음악에 완전히 반응하고 있었다.
‘이 친구 유리아이 앨범에는 작곡 크레딧만 올라가 있던데, 가사도 나쁘지 않네?’
‘이런 곡도 쓸 줄 아는구나. 유리아이 수록곡이랑은 전혀 다른 장르, 전혀 다른 느낌이다.’
어느새 그들은 펜을 잡은 손을 까닥거리거나, 발을 흔들거리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이곳 천하 예술관의 공연장은 이제 광활한 우주, 드넓은 밤하늘이 되었다.
지금 무대 위에서 홀로 별처럼 빛나는 선오가 곧 북극성이었다.
‘음색 좋고! 고음 시원시원하고!’
‘아주 반짝반짝 빛나네. 음악도 아우라도.’
‘기타 하나로 연주하는데 사운드가 빈 곳이 없잖아? 편곡을 아주 영리하게 했어.’
그렇게 심사위원들은 흐뭇한 얼굴로, 각자 앞에 놓인 체크리스트를 거의 다 채워나갔다.
한편,
무대 위의 선오는 조명 사이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심사위원석을 살폈다.
가장 가운데에 풍채가 좋은 남성이 눈에 보였다.
‘설마 방현만? 독설가로 유명한데···.’
하지만 재밌는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선오의 음악에 어떤 평을 할지 궁금했으니까.
이전의 삶에서라면 그에게 음악을 평가받는다는 상상조차, 기회조차 불가능했더랬다.
무엇보다 지금 두렵거나 떨리지 않았다.
내 음악에 완전히 몰입되는 느낌이 좋았다.
무대 위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이 순간이 즐거웠다.
어둠 속에서 기타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았고,
저기 나를 비추는 무대 조명이 마치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느껴졌다.
“진짜 짱이지 않아요?”
무대 뒤에서도 선오의 음악에 흠뻑 빠져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든킴이었다.
그는 옆에 팔짱을 끼고 선 강찬교에게 작게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 곡. 연주, 작곡, 작사, 편곡, 보컬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잖아요. 크으! 사기캐!”
강찬교의 얼굴은 점점 더 굳어갔다.
“저도 직접 연주하고 싶어지는 음악이에요. 나중에 허락해주시면 버스킹 때 해봐야지.”
이든킴은 강찬교의 썩어가는 표정 따위는 보이지 않는 듯,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진짜 강적은 여기 따로 있었네···. 상업 미디 음악만 잘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정반대까지 잘 해낸다고?’
강찬교는 얼굴을 잔뜩 구겼다.
이와는 대조적인 표정으로,
선오의 실연이 클라이맥스로 다다르자,
얼굴을 활짝 펴면서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심사위원석의 방형만이었다.
‘제법이네. 기억해둬야 할 이름이야,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