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3
“다들 고생하셨겠네. 형도.”
“그러니까 잘 해봐 인마. 그놈의 음악.”
“고마워. 정말로.”
이런 응원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선오가 감동한 얼굴을 하자, 지선재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이 올라갔다.
“짜식···. 그렇게 좋냐? 좋아?”
지선재는 어릴 때부터 띠동갑 막내 선오를 아꼈다.
막냇동생은 자신과 달리 아버지에게 반항도 할 줄 알고, 자기만의 소신과 꿈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으며, 흥미로웠고, 대단해 보였더랬다.
한편으로는 막내가 부럽기도 했다.
지선재 자신도 음악이나 미술 같은 ‘딴짓’에 관심이 있었으나 딱 취미 정도로 그쳐야 했다.
집안과 아버지를 거스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라면 절대로 못 할 일들을 하고 전혀 다른 길을 가는 동생을 언젠가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열렬히 응원하고 있었다.
지선재는 씨익 웃으며 선오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본가 돌아온 거 환영한다. 얼마 만이야···. 중딩 이후로 처음인가? 유학 갔다 들어오자마자 독립하겠다고 다시 나갔으니까, 맞지?”
이내 자리를 비켜주었다.
“아버지 좀 늦으신대. 이따 봐.”
작업실 문이 닫혔고,
선오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가족이라는 게 원래 이런 건가?”
이 엄청난 것들을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퉁 칠 수 있는 관계. 기분이 묘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이런 집안이니까 가능한 거겠지? 돈이 좋긴 좋구나.”
지난 삶이자 미래에는 이런 장비들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보급화됐지만, 지금 2007년의 사정은 달랐다.
“이게 다 얼마야···.”
과거, JK엔터의 작곡가로 입사했던 신입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과 비슷한 시기였던 그때는 회사 작업실 장비를 상전처럼 모시고는 했다.
‘작업실에서 음료는 절대 금지야.’
‘주니어는 물도 금지. 이 안에서 물은 시니어는 달고 마셔.’
다시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땐 그랬었다.
아니, 지금도 일선 현장에서 다른 평범한 음악인들은 그러고 있을 것이다.
“이 집 식구들한테는 해당 안 되는 얘기겠지만.”
어느새 선오는 자신도 이 집 식구의 일원이 된 것에 묘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방음 시공도 최고로 했나 보네.”
코르크 냄새 같은 건 나지 않았다.
의자도 엄청 편했다.
뒤에서 보드라운 손이 나와 선오의 몸을 받쳐주고 안아주는 것 같았으니까.
앉자마자 맥 프로의 전원을 켜고,
“보자···. 시퀀서는 어떤 걸 썼나?”
화면을 살폈다.
“역시 프로툴이구나. 이때 되게 비쌌는데.”
현대의 음악은 디지털로 이루어진다.
미디(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
전자 악기와 장비들을 연결하여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전반의 과정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필요한 가장 첫 번째 장비가 바로 시퀀서 혹은 DAW(Digital Audio Workstation)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음악인들이 쓰는 로직, 프로툴, 큐베이스, 에이블톤 등의 음악 제작 프로그램을 뜻했다.
사진작가들이 포토샵을 하고, 영상 만지는 사람들이 프리미어를 쓰듯이 말이다.
때문에, 종종 영감을 떠올리기 위해 손으로 직접 멜로디 라인이나 코드를 오선지에 끄적거리는 행위 말고는 컨트롤러, 마우스, 키보드 그리고 디지털 피아노를 두드리는 것이 음악 작업의 전부였다.
이에 연결된 시퀀서와 각종 기기로 작곡-편곡-레코딩-믹싱-마스터링에 이르는 과정을 전부 해내는 것이었다.
“프로툴 좋긴 좋아.”
시퀀서 중에서 프로툴은 오디오 깡패라고 불릴 만큼 에디팅에서는 최고였다.
“근데 지금은 2007년이잖아? 오디오 에딧 말고는 아직 로직이지.”
지금 시대에 프로툴이 최고라는 것은 믹싱과 마스터링에서만 통하는 이야기였고, 작곡, 편곡은 로직이 더 나은 선택지였다.
딸깍——
마우스를 움직여서 로직을 결제하고는 바로 설치했다.
간만에 낮은 버전으로 작업하려니 손이 버벅댔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선오의 손가락은 이내 단축키를 기억해냈다.
“어디보자···.”
가방에서 오선지 노트를 꺼냈다.
“동기를 조금 변형해서 반복하면 쓸만할 것 같은 탑 라인이 있었는데···.”
지선오가 끄적거린 멜로디나 코드가 적혀있는 노트였다.
“그래, 이거. 손보면 쓸만하겠어.”
노트에 적혀있던 설익고 투박한 멜로디.
선오는 한껏 집중한 얼굴로 이를 로직에 찍기 시작했다.
“쓰읍···. 아냐 아냐. 여기는 아예 이렇게 바꿔서 진행하는 게 훨씬 낫겠는데?”
조금만 고친다는 것이 자꾸만 손을 대게 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계속 만질수록 더 좋은 멜로디가 머릿속에 떠올랐으니까.
이상한 일이었다.
영감은 끊이질 않고 그다음, 그다음 멜로디까지 쭉쭉 이어졌다.
선오의 손은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라인을 따라잡느라 바삐 움직였다.
텅 비어있던 화면이 점차 음표와 코드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남이 쓴 멜로디 수정하는 거. 내가 제일 힘들어했던 건데 왜 이렇게 순조롭지?”
원래 새로운 멜로디 라인을 쓰는 것보다 남이 쓴 것을 수정하는 것이 더 까다로웠다.
지난 삶에서는 JK엔터 소속 가수들이 작곡에 참여한답시고 끄적거려 놓은 멜로디를 손보는 일을, 선지를 비롯한 퍼블리싱 팀원들은 가장 싫어했다.
어느새 화면 속에는 근사한 탑라인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썼던 탑 라인 중에 제일 괜찮은 것 같다.”
진심으로 그랬다.
선오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흥얼거렸다.
“따— 따단— 따라단, 따단——”
사람의 마음을 끄는 멜로디 라인.
뿐만 아니라,
“뭐야, 보컬도 나쁘지 않은데?”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음색이 꽤 괜찮다.
고음역이 약한 것만 빼면 상당히 들어줄 만 했다.
귀에 착착 감기는 목소리.
꽤나 좋은 악기였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자신이 쓴 멜로디, 자신의 음색에 감탄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웃음이 난 것이다.
다시 입을 다물고는,
“탑 라인은 이 정도면 쓸만할 거 같고, 트랙도 찍어보자.”
반주를 만드는 작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신이 났다.
단지 장비 체크만 하려고 앉았는데 어느새 쓸만한 곡이 하나 완성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랙 찍는 건 더욱더 뚝딱이었다.
탑 라인에 어울리는 비트와 각종 악기가 이미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이를 찍기만 하면 됐다.
“다 됐다.”
몰아친 영감을 처리하느라 온몸이 긴장한 상태였다.
선오는 심호흡을 깊게 하고는 기지개를 켰다.
“모니터해 보자.”
딸깍——
플레이 버튼을 누른 후 의자 뒤로 깊게 기대어 눈을 감았다.
스피커를 타고, 지금까지 찍고 쌓은 탑 라인과 트랙이 함께 어울려 그럴싸한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좋다···.”
재능.
이건 분명 재능이었다.
“내가 썼지만 진짜 좋아···.”
지난 삶에서 그토록 바랐지만, 항상 남의 것이었던 재능.
“따란—— 따다단, 따단— 따라란— 둥둥 탁!”
비트를 따라 심장도 덩달아 쿵쾅댔다.
뜻밖의 재능을 발견한 지금.
스피커를 타고 나오던 음악이 하이라이트에 다다른 순간.
똑.똑.똑———
상념을 깨는 노크 소리였다.
“지선오, 아버지 오셨다. 밥 먹···.”
지선재가 문을 열자마자 흠칫 놀라서는 물었다.
“야···. 뭐냐? 이 음악 뭔데? 너가 만든 곡이야?”
지평 그룹의 막내
“어? 어어···. 내가 썼어. 어때? 이 곡 형이 듣기에는?”
타인에게 평가를 받을 때는 한없이 작아지는 법이었다.
“와우! 좋은데?”
지선재는 문고리를 잡고 그대로 멈춰있었다.
마치 얼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손가락을 절로 까딱거리게 만드는 비트와 저절로 몸이 두둠칫 움직이는 멜로디.
스피커를 타고 나오는 음악에 한껏 집중한 채,
지선재의 머릿속과 얼굴은 느낌표로 가득 찼다.
“이야···. 선오 너는 대체 어떤 음악을 하길래 맨날 집에 틀어박혀 있나 했는데···. 이런 곡···. 좋아···. 좋다···.”
그렇게 계속 듣기만 하다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그였다.
“진짜 좋은데?”
이 형 이런 캐릭터였구나.
생각했던 것보다 음악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야, 나 이거 파일 보내줘. mp3에 넣고 듣게. 아니다, 지금 바로 넣어줘.”
하며 주머니에서 mp3 플레이어를 꺼내어 건네는 지선재였다.
이를 받아서 슬쩍 살펴보니 그의 음악 취향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즐겨듣기’ 폴더에는 요즘 유행하는 가요나 팝송은 기본으로 다 들어있었고, 특히 힙합이 많았다.
그리고 ‘노동요’ 폴더에는 의외로 가사 없는 재즈곡이 많았다.
힙합과 재즈를 좋아하고 유행곡은 다 섭렵하고 있다? 한마디로 매우 대중적인 귀를 가졌다는 뜻이었다.
K-pop 시장은 보통 재즈와 힙합을 베이스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귀를 가진 사람이 내 음악을 좋게 들었다니.
‘이 곡이 대중적으로 뽑혔다고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모니터 요원으로 생각해도 되는 거겠지?’
선오가 mp3 플레이어만 살펴보고 있자, 지선재가 소리쳤다.
“뭘 그렇게 봐! 빨랑 넣어주기나 해.”
“나중에. 아직 미완성이야.”
선오는 그렇게 mp3 플레이어를 지선재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어안이벙벙한 채로 멈춰있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방문을 나섰다.
“밥 먹으러 가자, 형. 아버지 오셨다며.”
그랬다.
지평 그룹의 회장.
그를 면전에서 볼 생각을 하니 마른 침이 꼴깍 넘어갔다.
* * *
“막내는 아예 들어온 거냐?”
“네.”
젊은 지평학 회장은 혈기가 대단해 보였다.
뉴스에서 봤던 마지막은 휠체어를 타고 은퇴하는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상석에 앉은 그의 옆에서 어머니 윤희애 여사는 조용히 젓가락을 움직였고,
조금 전까지 흥분했던 지선재는 허리를 곧게 편 채로 식사에만 집중하는 얌전한 도련님이 되어있었다.
커다란 식탁을 가득 메운 음식들.
선오는 그 정성과 맛에 내적 탄성을 지르며 부지런히 숟가락과 젓가락을 댔다.
‘이제 매일 이런 진수성찬을 먹을 수 있는 거야? 다 맛있어. 특히 도미 조림, 최고다!’
그때,
“이번 대선은 어찌들 보고 있어?”
지평학 회장이 한 마디 던졌고,
지선재가 바로 젓가락을 내려놓고 답했다.
“아무래도 이변은 없을 거라 봅니다. 야당 후보한테 아무리 잡음이 나와도, 사람만 안 죽이면 당선될 분위기가 쭉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평학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그러더니 얼굴을 돌려 선오를 보는 그였다.
“선오는? 막내도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 애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