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34
“가사는 그대로인데, 뭐랄까 세기말 느낌이 하나도 안 나니까 괜찮네? 요즘 곡 같고.”
원곡 ‘ET’는 원래 에일리언 컨셉의 무대와 의상으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음악이었다.
그런데 지금 공연되고 있는 129의 무대는 동화나 힐링 게임 속 판타지 세계가 떠오르는 컨셉이었다.
“와아···. 이거 첼로인가? 바이올린?”
원래는 테크노의 튀는 비트가 있던 자리를 EDM과 클래식 현악기 선율의 조화로 풍성하게 편곡했다.
덕분에 곡의 분위기가 조금 더 무게감 있게 펼쳐지고 있었다.
“와···. 퀄 미쳤다. 무슨 판타지 영화 음악인 줄?”
시작 전 온리든이 가졌던 물음표는 이제 느낌표로 바뀌었다.
너와 나 함께하던 이 공간
이제는 나 혼자 빛나고 있어——
내 한숨 별이 되어 떨어지네——
원래 여전사의 절규였던 것이, 129라는 판타지 기사의 기도처럼 들렸다.
“고음이나 랩을 지르지 않고, 읊조리듯 허밍할 줄은 몰랐네. 129가 음색이 끝내주는구나. 달달해···.”
선오는 딱 자신의 음색이 최적으로 들리는 음역대가 많이 나오도록 편곡을 했더랬다.
그 의도가 보는 사람들에게 통한 것 같았다.
온리든의 광대가 승천하듯 올라가서 내려올 줄을 몰랐으니까.
저 별자리 안에 너는 어디에 있을까—
어느 자리가 너의 자리일까—
“진짜 좋다···. 이거 돈독랜드에서 음원 내주겠지? 맨날 듣고 싶어.”
어느덧 4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129가 인사를 하자, 곧바로 심사위원석 화면이 함께 교차되어 나왔다.
“129님의 무대 잘 봤습니다. 원곡의 매력이 확실한 곡이라서, 원곡 이상으로 좋다고는 말을 못 하겠네요.”
뾰로통한 투로 입을 연 이는 방형만이었다.
그는 원곡 ET가 나왔던 당시 원곡자와 함께 현업에 몸담고 있었더랬다. 그때 1세대 아이돌의 댄스 음악을 다수 작곡했었으니까.
그래서 이 곡의 진가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원곡만큼 좋아요. 상상도 못 했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결의 컨셉과 다른 장르로, 작곡가로서 크나큰 모험을 용기 낸 점도··· 칭찬해주고 싶고요.”
방형만의 심사평을 듣던 온리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온리든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다른 심사위원들과 감독을 비롯한 스텝, 그리고 대기실의 다른 참가자들 또한 어안이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방형만이 칭찬? 방금 칭찬이라고 했어? 뭐야···. 칭찬도 할 줄 아는 사람이야?”
방형만은 아이돌이나 K팝 가수들의 팬들 사이에서 저승사자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독설로 내 가수, 내 돌을 죽여서 저세상으로 데려갈 정도의 파급력을 지닌 자였기 때문이다.
무대 위의 선오 또한 귀를 의심했다.
평소에는 질문이나 비판으로 일관하던 사람이, 지난 미션에서 침묵을 보여준 것에 이어 지금 칭찬을 하고 있다.
이게 지금 꿈인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129에 대한 심사평이 끝나고 모두가 벙쪄있는 사이, MC가 마이크를 들었다.
“다음 무대가 또 기다려지는데요? 이번에 만나볼 무대는 이든킴의 ‘냐옹’ 입니다.”
이에 온리든은 빵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냐옹? 세일러걸? 푸하하핰.”
앞선 129의 무대에서 완전히 환기되는 느낌의 밝고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예 다른 분위기라서 다행이다. 안 그러면 129랑 비교되잖아. 이든이한테 좋을 게 없지.”
이내 이든킴의 무대에 집중하는 온리든이었다.
내 새끼의 공연에 임하는 온리든의 자세는 사뭇 달랐다.
모니터로 빨려 들어갈 듯했으니까.
버스킹만 하던 이든킴이 이렇게 큰 무대를 하는 건 처음이었으니 혹여 실수라도 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이었다.
“미쳤다. 왜 이렇게 귀여워? 심멎···. ”
걸그룹이 추던 고양이 컨셉의 댄스를 내 아이돌이 추는 모습이라니.
심각한 눈빛으로 응시하던 온리든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다행히 눈에 띄는 실수는 없이 무대가 잘 마무리됐다.
이후 참가자들의 무대도 볼만했다.
하지만 맨 마지막 투표창을 마주한 온리든은 고민할 게 하나도 없었다.
“투표권이 2장이네? 그럼 뭐.”
이든킴 그리고 129에게 투표를 끝낸 온리든은, 두 후보의 사진을 물끄러미 번갈아 보았다.
“기분이 묘하네···.”
온리든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 같았다.
오랜 원픽이자 본진이 바뀔 수도 있는, 덕질 인생의 크나큰 위기 말이다.
* * *
1위. 94점: 129 [네티즌 28점+심사 66점]
2위. 93점: 이든킴 [네티즌 30점+심사 63점]
···
7위. 78점: 시스탑 [네티즌 30점+심사 48점]
···
이튿날.
마지막 미션의 심사 결과가 떴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든킴이 옆자리 129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씨익 웃었다.
어제 분위기로 선오가 1위가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기에 반전은 없었다.
선오의 이번 심사위원 점수는 만점은 아니었으나 최고점이었다.
애초에 60점을 넘은 참가자가 상위 2명뿐이었더랬다.
한편, 하위권 참가자들도 이미 어제 심사평을 통해 예상한 듯 체념한 얼굴이었다.
시스탑의 두 자매나, 굿엔터 출신, SYP 출신 역시 그랬다.
“다음은 3차 경연의 최종 점수 보시겠습니다. 첫 번째 미션과 두 번째 미션의 합산 점수입니다.”
이고은 감독이 리모컨을 눌러 화면을 넘겼다.
1위. 184점: 129
1위. 184점: 이든킴
···
5위. 169점: 시스탑
···
“3차 경연의 1위는 129님과 이든킴님이 공동으로 차지하셨습니다.”
짝짝짝짝짝——
이고은 감독이 먼저 박수를 치자,
다른 스텝들과 참가자들도 모두 손뼉을 움직였다.
“모두 푹 쉬시고 모레 수상 무대에서 뵙겠습니다. 수상 명단은 1차 서류 때 제출하신 데모곡에서부터 2차 경연, 3차의 두 번의 미션까지 지금껏 치르신 모든 과정을 합산하여 결정됩니다.”
드디어 음유 음악경연대회의 모든 과정이 끝이 나고 마지막 왕관을 쓸 일만 남겨두고 있었다.
* * *
“여보, 선오가 무지 잘하고 있나 본대요? 싸이랜드인가 거기 뜬 영상 봤어요?”
장충동 지평가의 본가.
윤희애 여사는 후식 과일을 서재로 내오며,
신문을 읽고 있는 지평학에게 말을 시켰다.
지평학은 이에 눈길도 주지 않고는 뚱한 반응이었다.
“여즉 안 보셨어? 인터넷에 129라고 검색해봐요. 그러면 우리 선오 얼굴이랑 영상이 뜬다니까.”
여전히 반응이 없는 남편을 향해 윤희애 여사는 계속해서 재잘댔다.
“인물도 훤하고, 어릴 때도 노래 곧잘 했지만, 기타도 잘 치대요? 음악도 자기가 직접 만든 거라 하고.”
“그럼 뭘 하나. 멀쩡한 지씨 이름 놔두고 129가 뭐야, 129가! 크흠···.”
지평학은 선오가 예명을 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윤희애 여사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었다.
“그러면. 지평 그룹 막내아들 지선오다! 이러면 그 회사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거 같아요? 원래도 의전 받는 거 끔찍하게 싫어하는 애가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사람 참···. 나는 그게 마음에 안 든다 이 말이야! 요상한 이름 달고 남의 회사에 가가지고 말이야···.”
윤희애 여사가 의외라는 듯이 입술을 오므렸다.
“그럼 여보도 선오가 그 JK엔터인가 다니는 거에 관심은 있었다는 말이네요?”
“관심은 무슨···. 크흠···.”
지평학은 다시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선오가 본명으로 활동하기를 바라면 지원 좀 해줘요.”
“······.”
“그렇잖아요. 자기 회사 차리고 싶어서 저러는 게 당신은 안쓰럽지도 않아요? 예명으로 회사에서 인맥 모으랴, 무슨 대회 나가서 업계에 실력도 인정받으랴, 투자해서 자금도 마련하랴···. 얼마나 기특하고 짠해요! 정말 내가 말을 다 안 해서 그렇지 속상해 죽겠다니까···.”
윤희애 여사의 목소리가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자 지평학이 힐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당신도 이쯤 하면 됐어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데, 이번에 선오가 상 하나 타오면 못 이기는 척하고 지원 좀 해줘요. 그래야 편하게 지평가 막내 지선오 입니다, 하고 살지···. 안 그러면 계속 그 예명으ㄹ··· ”
“그만 좀 해라!”
윤희애의 말이 길어지자 지평학이 신문을 확 내려놓으며 한 마디 했다.
“내가 그러면 내 아들이 남의 회사에서 남 좋은 일 시키는 거 끝까지 보고만 있게? 나도 다 생각이 있다, 마누라야.”
돋보기안경을 벗고는 두 눈을 빛내는 지평학이었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 선오 그 녀석이 무슨 상을 타올지···.”
* * *
[ 제21회 음유 음악경연대회 ]천하대 천하예술관에는 현수막이 크게 걸렸다.
복도에 각종 화환이 줄지어 있었고, 무대도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지난번 2차 경연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주최 측의 카메라 말고도 각종 언론사의 카메라도 가득했다.
무대 위에는 대상 1명, 금상 1명, 은상 2명, 동상 2명, 장려 4명. 총 10개의 트로피가 빛나고 있었다.
참가자들의 이름이 하나씩 불리며 시상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이미 장려상 4팀은 호명이 되어 트로피가 전달된 상태였고, SYP엔터 소속의 작곡가도 이 중 하나였다.
“다음은 동상 시상하겠습니다.”
남은 참가자들은 지금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뒤에 불릴 수록 큰 상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스탑. 축하드립니다.”
시스탑 자매가 애써 웃는 얼굴로 동상 트로피를 받아들고는 인사했다.
다른 동상 수상자는 굿엔터 소속의 작곡가였다.
연이어 은상 2팀 시상이 이어졌고,
이제 끝으로 대상 1팀과 금상 1팀만을 남겨둔 상태가 되었다.
“두 참가자분 무대 앞쪽으로 나와주시겠습니까?”
으레 그렇듯, 마지막 두 명을 놓고 MC는 시간을 끌었다.
찰카카카카카칵——
찰카칵—— 찰카카칵——
객석에서도 각종 언론이 카메라 연사 셔터음을 터뜨렸고, 모두의 이목이 그 두 사람에게 쏠렸다.
“129님, 이든킴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두 분께 질문 하나씩만 하고 수상을 진행하려고 하는데요.”
무대 뒤의 스크린에 두 사람의 얼굴이 크게 잡혔다.
“오늘 대상 수상자는 누가 되실 거라 예상하십니까?”
MC의 질문에 이든킴이 먼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는 129형이 될 것 같습니다. 형이 꼭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 겸손의 표현이신가요?”
“그런 건 아니고 제가 여기 나온 건 유명해지고 싶어서였는데, 금상으로도 충분히 유명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이든킴 다운 단순 명쾌한 대답이었다.
“무엇보다 여기서 129형 같은 제 음악 인생 최고의 친구를 만난 것만으로도 만족하거든요. 제가 인정하는 최고의 음악인이 오늘 대상을 타는 걸 꼭 보고 싶습니다.”
이 말에 선오는 고맙기도 했고 뿌듯했다.
지난 생의 대상 수상자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것이었으니까.
다음 마이크는 자연스레 선오에게로 넘어왔다.
“제 음악과 이 친구의 음악은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편곡과 프로듀싱에 더 강점이 있고, 이 친구는 연주와 보컬에 더 강점이 있기도 하고요.”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말을 잇는 선오였다.
“하지만 이왕 여기까지 올라온 거 가장 무거운 트로피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선오의 솔직한 발언에
찰카칵—— 찰카카칵——
객석의 셔터음은 더욱더 요란해졌다.
“네, 그럼 바로 금상 트로피부터 전달하겠습니다. 제 21회 음유 음악경연대회, 금상에 빛나는 수상자는···.”
잠시 박진감 넘치는 효과음이 들려왔고, MC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선견지명도 있는 놈
“이든킴 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이든킴이 금상 트로피를 전해 받고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마지막으로 영예의 대상 수상자, 129님. 축하드립니다!”
선오도 가장 커다란 트로피를 받아들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찰카칵—— 찰카카칵——
두 사람이 나란히 선 모습에 객석에서는 격렬하게 셔터를 눌러댔다.
“우리 해냈네요.”
이든킴이 가까이에 대고 이렇게 말하자,
선오는 이 천하예술관에 처음 왔던, 그리고 이 아이를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의 내 실력이라면 과연 이 아이를 이길 수 있을까?’
싶었던 그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