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39
저절로 눈이 떠질 만큼 말이다.
바로 옆 벤치에 어린 남자아이가 엄마와 앉았는데, 손에 커다란 솜사탕을 들고 있었다.
선오는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눈을 몇 번 끔벅거리던 아이는 들고 있던 솜사탕을 조금 떼어서 내밀었다.
선오가 그 솜사탕이 먹고 싶어서 쳐다봤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냐. 아저씨 괜찮아.”
손사래를 쳤지만, 아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솜사탕을 내밀었던 그 손을 선오 쪽으로 더 길게 뻗었다.
“이거 지인짜 달콤해, 형아.”
결국,
“고마워. 잘 먹을게.”
그렇게 솜사탕을 입에 넣으니 머리가 띵 해질 정도의 달콤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 순간.
“그래, 솜사탕!”
머릿속에 한 방이 떠오른 것이다.
선오는 곧장 아지트로 달려갔다.
가면서 떠오른 멜로디를 놓치지 않으려 계속 흥얼거렸다.
‘스마트폰, 빨리 좀 보급돼. 애플! 분발하라고.’
과거로 돌아온 삶을 살면서 가장 불편한 게 바로 이거였다. 녹음 어플이었으면 끝나는 건데 말이다.
그렇게 전속력으로 아지트에 도착한 선오는 곧바로 맥 앞에 앉아 로직을 다시 켰다.
— 솜사탕처럼 달콤해 팝!
— 팝, 파팝, 허니팝!
— 네 달콤함에 살살 녹아 허니팝!
내친김에 보컬까지 입혀서 데모처럼 만들어보았다.
이 부분의 후킹이 살려면 선오가 생각한 느낌대로 직접 보컬을 구현하는 게 가장 좋았으니까.
“이건 프리코러스로 쓰자. 그럼 코러스는 더 강한 후킹으로···.”
그렇게 영감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 강렬해, sweet Light!
— 달달하게 빛나, 너의 LED!
— 아찔하게 팝! 달콤하게 팝! 팝, 파팝, 허니팝!
물꼬가 터지니 뚝딱이었다.
마치 머릿속에 영감의 홍수가 난 것 같았다.
멜로디를 여자 키로 다듬고, 비트를 더 강렬하게, 더 나은 다른 소스는 없는지 이것저것 입히는 과정.
그렇게 편곡과 믹싱까지 순식간에 마칠 수 있었다.
“이건 된다. 분명 돼.”
귀에 쏙쏙 꽂히는 세련된 후킹.
유리아이가 솜사탕을 먹는 안무.
선오는 자신 있었다.
벌써부터 월요일 회의가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얻는 게임만 할 차례
* * *
“와···. 후킹 미쳤다.”
“뭐냐? 이번 CM송은 이걸로 끝났네.”
월요일의 JK엔터 회의실.
선오가 준비해온 코러스와 프리코러스에 CM송 팀원들은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팝, 파팝, 허니팝! 파, 파팝, 허니팝!”
“훅이 내 귀에 냅다 꽂혀 박힌다 아주.”
“한 번 들었는데 멜로디가 내 뇌 안에 갇혀서 못 빠져나와.”
“이거 훅이 무슨 마약이야? 수능 금지송 그런 거에 오르겠는데요?”
선오도 자신은 있었지만 이렇게 뜨거운 반응까지는 생각지 못했기에 쑥스러운 감이 없지 않았다.
기 싸움이나 시기 질투는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블라인드 테스트고 뭐고 할 필요도 없이 다 까놓고 빠르게 협업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는 작곡가도 노래를 잘 해야 하는 시대군요. 정말이지 그냥 이걸로 바로 미니 광고 찍어도 될 거 같은 퀄이다···.”
“백호전자가 허니팝의 최장점으로 내세운 전면 LED 라이팅에 대한 부분도 확실하게 어필이 되겠네요.”
오직 좋은 곡을 완성하는 것에만 효율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박황 선배도 리더로서 중심을 잘 잡아주었다.
“그럼 129가 써온 프리코러스랑 코러스를 갖고, 이걸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인트로, 벌스, 아웃트로, 브릿지를 찾아서 붙여보자.”
그렇게 다른 팀원들이 준비해온 조각들에도 전부 귀 기울여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며,
“다들 열심히 써왔네.”
박황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입이 귀에 걸릴 듯이 함박웃음을 짓는 그였다.
“선배가 써오신 브릿지가 129의 코러스랑 기가 막히게 딱 붙는데요?”
“그러게. 확장 코러스로 변주되기 전에 확실한 발판이 되어 준달까? 궁합 좋다.”
“아냐. 브릿지는 내 것보다는 은주가 써온 게 낫지 않아? 신스를 잘 썼잖아.”
네 곡 내 곡 할 것 없이 한마음 한뜻인 이 팀의 분위기가 선오는 편안하고 좋았다.
“그럼 2가지 버전으로 만들어 볼까요? 129의 프리코러스, 코러스를 가지고서 2곡을 만드는 거죠.”
코러스는 선오의 것으로 만장일치였으나 다른 파트에서는 오히려 ‘내 것보다 네 것이 더 낫다’는 식의 논의가 계속되는 바람에 이 같은 의견이 튀어나왔다.
“좋네. 2가지 버전으로 데모 만들어서 광고대행사랑 백호전자에 보내자. 그들도 선택권을 주면 좋아할 것 같고.”
박황의 말에 팀원들은 화이트보드 가운데에 기다란 선을 그어 반으로 나누었다.
“퍼즐 맞추기 꽤 재밌는데요?”
“얼른 맞춰보자. 기대된다. 2곡이 어떻게 완성될지.”
이렇게 일을 즐겁게 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한편, 이쯤이면 회의가 끝났을까 싶어서 아점이나 이른 점심을 제안하기 위해 회의실 앞에 왔던 김록기 이사는, 회의실에서 새어 나오는 행복한 작업 소리에 발길을 돌렸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면서 말이다.
“비서 시켜서 간식이나 넣어줘야겠네. 이따가 이른 저녁을 거하게 사주는 게 낫겠어.”
* * *
바야흐로 한민족의 대명절인 추석.
지평학은 지평그룹을 차린 이래로 차례고 제사고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기에, 오늘 같은 명절은 그저 지평가 식구들이 모이는 날이었다.
재벌가라고 별다른 것은 없었다.
가족들이 함께 밥 한 끼 맛있게 먹는 게 전부였다.
다른 것이 있다면 지평가 이모님들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 음식이 지나치게 맛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선오의 젓가락질은 오늘도 멈추지 않았다.
‘육전이며, 깻잎전, 생선전, 동그랑땡, 부추전···.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네.’
그런 선오를 지평학과 윤희애 여사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화기애애한 식사 가운데 지평학이 대뜸 질문을 던졌다.
“막내야, ‘미녀는 자연을 좋아해’는 어떻게 돼가고 있냐?”
“하하. 안 그래도 지금 쓰고 있습니다.”
“잘 부탁한다.”
선오야 자신이 벌려놓은 일이고, 좋아서 추석 연휴에도 일을 택한 것이지만, 아버지나 지선재 형 역시도 집에서 일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의 삶에서는 재벌가가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사는 줄은 몰랐다.
두 사람의 모습에 선오는 계속 고민하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입을 열었다.
“아버지, 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추석 이후에 우려하던 미국발 경제 위기가 올 것 같아요.”
추석 연휴가 끝나고 주식 장이 열리던 날.
그 시점이 목전에 다가온 지금, 선오는 어렴풋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검은 화요일’로 도배된 그 날의 신문 기사를 말이다.
지평학은 선오의 굳은 표정을 보더니 숟가락을 잠시 내려놓았다.
“··· 이것도 미국에 가 있는 네 동창한테 들은 거냐?”
“네···.”
물론 지평학 역시 회사 직원들을 통해 미국 월가 상황을 주시하도록 일러두었기에, 9월 들어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보고 받은 바 있었다.
그래도 선오가 그 시점을 저렇게 말해오는 것은 놀라웠다. 그것도 저렇게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이다.
어쩐지 그 말에 의심하기보다는 대비책을 궁리하게 되는 지평학이었다.
“··· 그건 그렇고. 백호전자 CM송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지평학의 입에서, 그것도 추석 명절 식사 자리에서 ‘백호전자’ 라는 네 글자가 나오자 윤희애 여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지선재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선오도 아버지가 이렇게 대놓고 진행 상황까지 물을 줄은 몰랐다.
“아···. 데모 2개 만들어서 대행사랑 백호전자에 보내놓은 상태입니다.”
“그 2개 중에 선오 네가 쓴 곡도 있냐?”
“팀원들이랑 협업해서 썼습니다. 코러스 부분, 그러니까 광고에 메인이 되는 후렴 부분은 제가 썼고요.”
“그래? 그럼 우리 곡을 백호전자 것보담은 잘 써야 한다. 그건 알고 있지?”
지평학이 먼저 이렇게 농담조로 말해오자,
놀란 얼굴로 지켜보고 있던 지선재도 안심하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아버지도 참.”
“해볼게요. 꼭 그렇게 해내야죠.”
“곡 완성되면 제일 먼저 애비한테 보내라. 대행사 통하지 말고 곧장.“
허니팝은 그때의 최선을 다해서 썼고,
‘미녀는 자연을 좋아해’는 지금의 최선을 다해서 쓰고 있었다.
‘지난주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잘 써보자.’
라고 자문하며, 아버지의 물음에 답한 것이 허투루 한 건 아니라고 위안해보는 선오였다.
가만히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윤희애 여사는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다.
‘역시 시간이 약인 건가···. 저 이 입에서 백호그룹 이야기를 저렇게 농담삼아 하는 날이 오다니···.’
시간은 앙금을 가라앉히고 상처를 아물게 했다.
그렇다고 상처의 흉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으나 그만큼 백호그룹에 대한 지평학의 마음이 전보다는 누그러진 것 같았다.
“다들 바쁘다? 어여 밥들 먹고 일들 하자.”
지평학은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맛있게 식사를 이어나갔다.
그래도 선오를 따라가지는 못했다.
선오의 밥그릇은 물론이고 그 주위의 반찬 접시가 빠르게 비워지고 있었으니까.
이를 물끄러미 보던 지평학이 한마디 했다.
“선오는 갈 때 전 싸가고. 너 식혜랑 송편도 좋아하지? 부엌에서들 듣고 있냐?”
지평학의 말에 부엌에서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 네에! 회장님!
“우리 막내가 생긴 것만 말랐지 엄청 많이 먹는다. 전이고 식혜고 송편이고 아끼지 말고 팍팍 싸 보내라.”
* * *
“대체 어느 선까지 떨어질 것 같습니까?”
“그.. 1400선이 지지선이 될 거라 봅니다.”
“네? 지금 이미 동시 호가에 1360을 부르고 있는데요?”
추석 연휴가 끝난 다음 날.
검은 화요일.
공황 그 자체였다.
증권가와 코스닥시장은 프로그램 매도를 잠시 중단시키는 사이드카가 발동됐고, 코스피지수는 1400선이 무너졌다.
오늘 증시 마감까지 회복하지 못한다면 1400선 붕괴는 1년 6개월 만의 일이 될 것이라고 언론은 떠들어댔다.
선오도 직접 보고 있었다.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 화면이 전부 파란 것을 말이다.
이 상황을 이미 알고 있던 선오 조차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지이이이이잉——
아니나 다를까.
안 실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혹감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 이렇게 파랗기만 한 건 처음 봅니다!
오늘 리만브라더스 지주사가 뉴욕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냈다. 무려 158년 역사에 빛나는 그룹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메릴린치가 94년 역사의 마침표를 찍고서 500억 달러에 뱅크오브아메리카로 팔린 날이기도 했다.
– 환율은 치솟고, 원유는 이례 없는 속도로 폭락 중입니다. 증시는 미장이고 국내장이고 전부 초토화고요.
씁쓸했다. 선오는 자산을 지키고 불렸으나, 누군가는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의자 빼앗기 게임 같은 것이었으니까.
얻은 사람이 있다면 잃는 사람이 있는 게임 말이다.
“안 실장님, 침착하게 제가 전에 말씀드린 미국 주식들 계속 주시해주세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곧 분할 매수를 시작할 겁니다.”
지난 생에는 잃는 게임만 했으니, 이번에는 얻는 게임만 할 차례였다.
* * *
검은 화요일이 지나고,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을 거듭하면서 각 기업의 총수들은 매일 시시각각 변하는 경제 상황을 보고 받고 있었다.
“증시는 당분간 계속 휘청일 것이고 회복 또한 쉽지 않겠지만, 미국 같은 대규모 경제 위기가 다행히 국내에는 오지는 않을 거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지평그룹의 회장실이 그랬고,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쪽도 비교적 방어력을 갖추고 있는 터라 동아시아의 경우 심각한 경제 위기는 피할 수 있을 겁니다.”
백호그룹의 회장실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 산업 구조의 해외 의존도가 높기는 하나, 한국의 외환 보유액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이라···. 회복은 시간 문제라는 관점이 대세입니다.”
패닉 그 자체였던 화요일 이후 점차 사람들은 이성을 찾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던 일을 하면서 그저 눈앞의 것에 대응하고, 한 치 앞을 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백호그룹의 지춘학 회장은 백호전자 3명의 사장과 조용히 오찬을 하며 국내외 경제 상황과 회사의 중요한 안건을 논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허니팝 출시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