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44
“레트로의 인기는 반짝했으니 이제 한물갈 것이다···. 원래 복고는 어느 업계 어느 시대든 주류로 길게 이어지기보다 잠깐 눈을 돌리는 임시 방편이다···. 오케이. SYP의 기조가 그게 확실한 거지?”
상대의 대답에 조규태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고맙다, 후배님아. 내가 다음에 골프든 밥이든 근사하게 쏠게.”
전화를 끊고서 가만히 생각을 정리해보는 조규태였다.
굿엔터는 괜히 몇년 째 업계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게 아니었다.
굿엔터가 왕관의 무게를 견디고 유지하는 비법 중 하나는 바로 정보력이자 선구안이었으니까.
때문에 조규태는 한낱 신인 작곡가인 129의 주장보다는 굿엔터의 기조에 믿음이 갔다.
“129가 이번에는 완전히 잘못 짚었네. 하긴 입봉한 지 1년도 안 된 작곡가가 매번 옳을 수는 없잖아.”
선배로서, 팀장으로서 바로 잡아줘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 * *
“유리아이 정규 앨범만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그 사이에 걸리쉬도 레트로 앨범을 냈지 않나요? 이제 대중들은 식상하다니까요···.”
다음날, 같은 대회의실에 같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같은 평행선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 가요계에 불기 시작한 레트로 바람의 유행은 이제 초입일 뿐이야.’
선오는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올해를 시작으로 내년, 후년까지 이어지는 레트로 음악의 대세를 말이다.
게다가 조규태는 선오의 논점에는 반박하지 못하고 계속 같은 말만 하고 있었다.
‘이제 식상하다. 레트로의 시대는 끝이다.’라는 논지를 단어만 바꿔서 반복했다.
그 근거가 무엇인지, 그렇다면 아직 신인인 유리아이의 정체성을 이번 앨범에서 음악적으로 어떻게 확립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조규태는 왜 저렇게 확신에 차서 말하는 거지? 대체 뭘 믿고? 왜 저러는지 도통 모르겠네···.’
다른 직원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양쪽 주장대로 1곡씩 다 준비해서 2곡으로 후속곡까지 활동해버리면 됐겠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원래 유리아이 싱글 3집은 올해 없던 일정이었다.
걸리쉬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선전으로 급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연말 시상식 전에 싱글 앨범이 자리를 잡고 성과를 내려면 얼른 1곡을 만들어 안무를 짜고, 연습을 해서 뮤직비디오를 찍기에도 빠듯했다.
‘하아···. 미래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어째야 하나···.’
선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다.
결국 마지막 카드를 꺼내기로 한 선오였다.
지금처럼 하루하루가 촉박한 상황에서 유리아이의 1위와 신인상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뿐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이번 싱글이 ‘레트로’라는 유리아이의 정체성을 굳히는 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제 자리를 걸겠습니다.”
이에 회의실 안이 술렁였다.
“비록 직급도 경력도 낮은 작곡가지만, 제 모든 것을 걸고 확신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제가 틀린다면 책임지겠습니다.”
사표를 걸고 책임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모두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지는 가운데,
조규태도 결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저도 제 자리를 걸죠. 레트로가 이제 한물간 장르라는 것에 제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
한술 더 뜨는 그였다.
“두 가지 의견, 두 사람 모두 자리를 걸었습니다. 누구의 자리가 더 무게가 있을까요?”
이는 다른 직원들에게는 반협박처럼 들렸다.
조태규는 조영준 대표의 친척 동생이었으니 당연했다.
마치 자기 직급의 무게가 더 무겁고 자기가 더 중요한 사람이니, 본인 의견이 더 신빙성 있다고 말해오는 것 같았다.
그 누구의 손도 들어줄 수 없는 이 첨예한 상황 속에서, 회의실의 양팔 저울은 여전히 0점을 가리킬 수밖에 없었다.
그때, 또 다른 이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면 나도 129 작가의 의견에, 내 자리를 걸어보죠.”
그 누구보다도 무게감 있고 신뢰가 느껴지는 음성으로, 양팔 저울을 순식간에 선오 쪽으로 기울여줄 한 마디였다.
머니 코드
* * *
“··· 왜 그러셨습니까?”
선오는 지금 이사실에서 김록기 이사와 독대하고 있었다.
김록기에게 조금 전 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묻는 선오였다.
‘그러면 나도 129 작가의 의견에, 내 자리를 걸어보죠.’
물론 김록기 이사의 이 말 덕분에 더 이상의 시간 낭비 없이 회의가 정리됐고, 선오가 내놓은 의견대로 컨셉과 장르가 결정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건다는 말은 김록기 이사답지 못했다.
적어도 선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는 129 작가는 왜 그랬죠?”
“저야···. 제 의견에 확신이 있었고, 제 의견이니 제가 책임질 수 있고, 또 책임져야만 했으니까요.”
그리고 선오에게는 항상 뒤가 있었다.
든든한 배경과 돈, 그리고 이제는 자신을 온전히 지지해주는 가족들까지 말이다.
하지만 김록기 이사는 JK엔터를 지켜야 했다.
끝까지 이 회사에 남는 것은 조영준이 아니라 김록기가 되어야만 했다.
때문에 지금 선오는 속상한 마음을 억누르며 김록기를 따라 이곳 이사실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129라는 작가에 대한 확신이 있고, 129가 내놓는 음악과 의견에 확신이 있어요. 이사로서 내 확신에 책임을 져야만 하는 거고요.”
여전히 굳은 얼굴을 하는 선오를 향해, 김록기가 이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우리가 이렇게 믿는 만큼, 우리의 확신대로 흘러갈 테니까요.”
김록기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선오 역시 그랬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은 여전했다.
“저는 다만···. 이번 싱글은 굳히기용 앨범인데, 뭐하러 다른 모험을 하느냐는 생각입니다. 조규태 팀장님의 주장을 아직도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조규태가 그러는 데에는 분명 뭔가 따로 믿는 구석이 있다거나,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조규태한테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는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단지 궁금할 뿐.
‘회사가 장난도 아니고, 대체 어떤 근거로 자기 자리를 걸면서까지 그런 주장을 펼치는 거지?’
미래를 아는 선오의 입장에서는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반면, 김록기는 그 이유를 알기라도 하는 것일까.
어쩐 일인지 태평해 보였다.
“나도 그래요. 조규태가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건, 이건 기회가 될 거라는 거죠.”
“기회..요?”
“하하하. 유리아이가 잘 될 기회라고 해두죠.”
기회. 그랬다.
김록기에게는 이것이 기회였다.
조규태를 회사에서 영영 치워버릴 기회 말이다.
그래서 조금 전 회의실에서 조규태가 자신의 자리를 걸겠다고 같이 도발을 벌였을 때,
‘이건 기회야. 내가 노렸던 판이 저절로 짜였잖아?’
라고 반색하며 이 판에 같이 발을 담근 김록기였다.
여차했을 때는 녹취록이라는 보험 같은 무기도 쥐고 있으니 두려울 게 없었다.
‘두 가지 의견에 세 사람의 자리가 걸린 게임. 여기서 목숨이 날아가는 건 조규태 한 사람이 될 거야.’
* * *
그날 저녁.
“야, 조규태. 너 회사가 장난이냐? 대표를 형으로 두니까 뵈는 게 없어?”
오늘 유리아이 싱글 팀 회의 때 벌어진 일을 전해 들은 조영준 대표가, 조규태의 집을 찾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있어 봐. 내 말이 맞다는 게 증명될 테니까. 회사가 우스운 게 아니라, 129 그 애의 말이 우스워서 내가 그렇게 확신을 걸고 말한 것뿐이야.”
조규태는 몹시 자신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오히려 조영준 대표를 향해 큰소리를 쳤다.
“잘 생각해 봐, 형. 이거 얻어걸린 기회야. 이번 기회에 김록기 이사 내쫓을 수 있다고.”
조영준이 무슨 말이냐는 듯 물음표를 띄우고 쳐다보자,
“그렇잖아. 129는 입사한 지 1년도 안 된 애가 뭘 알겠어?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김록기는 아니잖아. 이번 일 꼬투리 잡아서 없애버릴 수 있어.”
라며 당당한 조규태였고,
그런 그를 향해 조영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질문을 던졌다.
“너 확실한 거야? 이리저리 알아 보고 나서 회의 때 그런 의견을 피력한 거 같긴 하던데···.”
형의 물음에 조규태는 굿엔터 후배 녀석의 말을 떠올렸다.
그 후배와는 전에도 비슷한 도움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SYP의 신인 보이그룹에 대한 정보라든지, 공동의 적에 대한 정보를 서로 공유해서 회사에 큰소리칠 수 있게 해줬다.
게다가 그 후배와는 경쟁사의 직원이기 전에 돈독한 선후배 관계였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굿엔터에서 대우 잘 못 해주면 JK엔터로 옮겨 오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는 후배였으니까.
“어. 확실해. 믿어봐, 형.”
조규태는 입사한지 갓 1년도 안 된 어린 작곡가의 말보다, 업계 1위인 굿엔터의 정보력과 선구안을 믿고 있었다.
“회의 결과가 그렇게 되어버린 이상, 이번 유리아이 앨범은 잘 되지 못 할 수도 있어. 신인상도 모르겠고···.”
이렇게 말을 해오는 조규태는 어쩐지 걱정이나 우려보다 신이 난 목소리였다.
“근데 위기랑 기회는 같이 오는 법이잖아? 형은 이번에 이사실 비워지면 거기에 누구를 채워 넣을지나 고민하고 계셔.”
* * *
같은 시각,
“Gb메이저-Ab메이저-Bb메이저···.”
선오는 아지트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곡이 빨리 완성되면, 더 좋은 안무를 고민할 시간과 더 좋은 뮤직비디오를 만들 시간이 벌어지는 셈이었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의 협업이란 이런 문제였다.
“비틀즈 코드 진행 그리고, 슈퍼 마리오 비트.”
선오가 이번 유리아이 신곡을 작곡하는 데에 재료로 쓰기로 정한 것이었다.
이는 머니 코드의 변주였다.
음악에서 머니 코드(Money Chords)란, 말 그대로 돈을 벌어다 주는, 히트곡을 만들 수 있는 코드 진행을 일컫는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친숙한 멜로디를 다채롭게 만들 수 있는 코드들이라서, 어느 나라든 어느 음악 업계든 막론하고 상업적으로 정말 자주 쓰이는 코드 진행들을 말했다.
이제 선오의 손이 더욱 빠르게 건반과 키보드, 그리고 마우스 위를 오가며 음을 찍기 시작했다.
시작은 박수 소리와 챈트 같은 리듬을 넣어서.
마치 스포츠 경기의 응원가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레트로 힙합에 댄스 팝을 섞은 장르를 친숙하게 구현하는 나름의 전략이었다.
“여긴 찹 소리를 더 섞어보자.”
예, 예, 예——
하는 찹 소리를 넣으니 선오가 의도가 더 선명하게 구현되고 있었다.
그렇게 탑라인 작업과 비트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선오였다.
마치 처음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2개의 찰흙 덩어리가 점차 모양을 갖추고 합쳐지면서 1개의 근사한 조형물로 합쳐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올해의 내 마지막 곡이, 가요계의 대미를 장식해줬으면 좋겠네.”
처음부터 머니 코드를 골라 변주를 택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지선오가 되어 지금껏 곡을 쓰면서 상업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라지 않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대놓고 ‘히트곡’에 초점을 맞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쓰고 싶은 곡’보다 ‘무조건 히트할 곡’에서 출발한 첫 작업이었다.
“나 되게 간절하구나···.”
유리아이가 신인상을 타고 유리아이의 음악이 업계의 인정을 받는다면, 그것은 선오에게도 크나큰 상이자 확실한 인정이 될 것 같았으니까.
작곡가로서 처음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였다.
내가 쓴 곡을 처음으로 무대 위에서 불러준 가수, 내 첫 타이틀곡의 아티스트라는 것 말이다.
이 같은 생각을 이어나가던 선오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젓고는 다시 작곡에 집중했다.
“의미부여는 그만하고. 곡으로 보여주자.”
* * *
“하루 만에, 아니지 한나절 만에 이런 곡을 써왔다고···?”
“혹시 미리 써두고 이 곡 들이 미려고 어제 컨셉 회의 때 그렇게 열변을 토한 건 아니죠?”
이튿날 선오가 바로 새 곡을 가져오자, 음악제작팀 팀원들은 기함했다.
“곡 퀄리티도 심지어 미친 수준이잖아요···.”
유은주는 안 그래도 커다란 눈망울을 크게 뜨며 흥분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사람이 맞냐는 듯한 표정으로 선오를 바라보며 말이다.
‘곡은 좋네···. 그러면 뭐 해···.’
심드렁한 건 조규태 팀장 하나였다.
그의 이같은 표정을 대충 눈치챈 정기석이 입을 열었다.
“첫 곡이 빠르게 나왔으니 빠르게 결정을 보죠.”
팀장이 교통정리를 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자신이라도 나서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저는 다른 곡 쓸 필요 없이, 우리 5명이 다같이 이 한 곡에 매달려도 승산이 있을 거 같습니다.”
박황의 말이었다.
“물론 결정은 기획팀원들과 윗선들이 하시겠지만···. 이 한 곡으로 편곡에 붙고, 믹싱에 붙고, 이렇게 나눠서 협업하는 게 지금처럼 촉박한 상황에서는 가장 적당하지 싶어요. 그렇게 해도 좋을 만큼 굉장한 곡이 나왔다고 보고요.”
차분히 늘어놓는 극찬들 가운데에서,
선오는 몹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될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자신의 곡을 따져보며 자아검열을 했다.
“같은 생각입니다. 일단 다른 팀원들과 윗선에 제출해보죠?”
정기석이 이렇게 구심점처럼 구는 말을 하자,
“좋아. 그렇게 하지.”
조규태가 심드렁하게 한마디 보탰다.
허나 이미 다른 팀원들은 조규태를 팀장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았고, 조규태 역시 이 팀에 애정이 없어보였다.
똑똑똑——
마치 이같은 분위기를 중재라도 하려는 듯,
회의실 문을 두드린 것은 김록기 이사였다.
“벌써 신곡이 나왔다는 소문이 들려서 왔습니다. 들어보죠.”
잔뜩 상기되어있는 김록기였다.
곧 회의실 안에 선오의 곡이 다시금 울려 퍼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