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45
‘비트가 치어리더 컨셉 같기도 하고, 뭔가 힘이 나는 응원가 같다. 좋은데? 익숙한 듯 색달라.’
작곡을 잘 모르는 김록기의 평이었다.
어쩌면 더 그래서 신뢰해도 좋았다.
결국 대중에 가장 가까운 것은 여기서 음악을 할 줄 모르는 김록기 였으니까.
‘129의 곡이라는 것을 알고 들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곡 자체가 듣기 좋다···. 걸리는 게 없이 편안하잖아. 계속 듣고 싶고, 끝나가는 게 뭔가 아쉽고···.’
김록기의 머릿속에는 어느새 선오가 회의 때 이야기했던 이미지가 그려지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생머리를 흩날리며 2대2로 농구를 하는 소녀들 혹은 골목길에서 수다를 떨며 꺄르르 웃는 4명의 장면, 힙합 스포티나 청바지를 입고 자유로운 모습들.
“129 작가, 수고 많았습니다. 바로 기획팀원들, 그리고 조영준 대표님과 이야기해보죠.”
그렇게 3분 30초 정도 되는 곡을 다 듣자마자 곧장 이 USB를 받아서는 성큼성큼 회의실을 다시 나서는 김록기였다.
* * *
결국 음악 엔터 산업의 핵심이자 프로듀싱의 중심은 ‘작곡’이라고 했던가.
핵심이 해결되니 그다음은 속전속결이었다.
선오의 곡이 빠르게 싱글 앨범에 실리는 것이 결정되자마자 JK엔터의 시간은 더욱더 바쁘게 흘러갔다.
조규태를 제외한 작곡가 정기석, 박황, 그리고 유은주는 자신의 곡인 것처럼 선오의 곡에 매달렸다.
의도가 더 효과적으로 구현되고, 듣기에 더 나은 곡이 될 수 있게 매만지는 작업에 투입된 것이다.
그 안에서 선오의 다음 역할은 작곡가로서 직접 녹음을 보는 보컬 디렉팅이었다.
‘디렉은 129가 직접 해야지. 우리 중에 129보다 디렉 잘 보는 사람 없잖아.’
덕분에 다른 3명의 작곡가들이 작업실에서 편곡으로 머리를 맞댈 동안,
선오는 녹음실에서 유리아이 멤버들과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자아, 좋습니다. 나영 씨, 여기 정박으로 잘하셨는데, 이번에는 더 자유로운 영혼 느낌으로, 엇박으로 한번 가볼게요.”
유리아이 멤버들, 특히 리더 나영과의 호흡은 이제 편안했다.
“나영 씨, 레슨 열심히 받았나 봐요? 포텐셜 녹음할 때보다 피치가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정말요? 저 쉬는 동안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이런 칭찬 듣고 싶어서요.”
배시시 웃는 나영이었다.
그녀를 비롯한 유리아이 멤버들 역시 이제는 선오를 완전히 의지하고 있었다.
“근데 작가님, 이거 치어스(Cheers)가 가제인 거면 아직 곡 제목은 미정이에요?”
“네, 아직 못 정했어요. 후렴구에 치어스가 반복이 되니까 이걸로 하는 게 맞는 거 같긴 한데···. 치어스는 제목으로 하기에는 뭔가 좀 의미가 약하잖아요? 아직 고민 중이에요.”
“그러면 작가님, 프리 코러스에 이 가사를 제목으로 하는 건 어떨까요?”
“어떤···?”
“내 세상의 중심은 너야.”
선오의 눈을 똑바로 보며 확신에 찬 듯 말해오는 나영이었다.
“줄여서, 내중너.”
선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해보았다.
내 세상의 중심은 너야.
조금 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이때였나? 드라마나 영화든 음악이든 이렇게 긴 제목이 유행이던 시기가 있었어. 곡이 뜨면 오히려 알아서 줄임말을 만들어 쓸 거야. 유행어처럼.’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자체로 임팩트도 있고, 유리아이가 대중들에게 하는 말이 되기도 하며, 반대로 대중들이 유리아이에게 그런 감정을 갖길 바란다는 의미 부여도 됐다.
“으음···. 좋은데요? 빈말이 아니라 정말 제목으로 괜찮을 거 같아요. 다 같이 얘기해봐야겠어요.”
“저는 이 가사가 처음부터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내 세상의 중심은 너야.”
나영이가 선오를 향해 빙긋 웃었다.
“그리고 이 음악이 저나 유리아이의 중심이자, 사람들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정말 좋거든요.”
* * *
선오가 처음 만들어냈던 원석의 곡은, 이후에도 선오를 비롯한 4명의 손으로 2차 편곡, 믹싱, 마스터링을 거치면서 점점 더 진화했다.
그리고 그 진화의 결정체 ‘내 세상의 중심은 너야’가 세상에 공개되는 날.
그동안 태평하고 심드렁하게 과정을 지켜만 보던 조규태 팀장은, 오늘만큼은 야근을 자처했다.
공개 시각인 자정이 되기 훨씬 전부터 팀장실 컴퓨터 앞에 앉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긴장이 많이 됐는지 자기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고 다리를 덜덜덜 떨었다.
그렇게 자정이 됐고,
유리아이의 신곡 음원 순위 변화와, 커뮤니티 반응 및 댓글을 살펴보던 조규태 팀장의 얼굴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씨발···.”
그런 세상
조규태는 잠을 쫓으려 손에 쥐고 있던 커피 컵을 구겼다.
“씨발, 뭐야···.”
조규태의 기대와는 달리
유리아이 ‘내 세상의 중심은 너야’의 실시간 음원 순위는 쭉쭉 오르고 있었고.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도,
1. 유리아이
2. 내 세상의 중심은 너야
.
.
순식간에 점령해버렸다.
언론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유리아이 컴백, ‘내 세상의 중심은 너야’로 중심에 서다!」
「[이슈]유리아이, 신보 ‘내중너’ 선주문 이미 4만 장 돌풍!」
「(1보)유리아이, 새 싱글 ‘내세중’ 공개하자마자 음원 1위 기염」
「유리아이, 뮤직비디오 ‘내세너’공개로 새로움과 익숙함」
「유리아이, “걸리쉬한테 빌려줬던 왕관 되찾으러 왔어요!”」
「”역시 유리아이였다” 내 세상의 중심은 너야, 첫방 기대감 UP↑」
한편,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유리아이에 대한 반응은 열광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ㄴ 농구 하는 소녀들이라니 컨셉 미쳐따!!
ㄴ 내가 저 아이솔레이션 보려고 지금까지 안 자고 기다렸나봄..! 안무까지 미쳤네
ㄴ 음악이 귀에 감겨욧! 개좋다..
ㄴ JK열일에 해줘서 고맙고, 덕잘알 고마워
ㄴ 애들 보컬 실력 전체적으로 늘지 않았냐?
ㄴ 나영이 고음 무슨 일이야+_+ 언니 죽어..
ㄴ 내 세상의 중심은 너야! 치얼스~ 치얼스~
ㄴ 이번 음악이 완전 미친 게.. 눈 감고 들어도 유리아이 애들이 공 튀기는 거, 막 같이 하이파이브하는 거 이런 게 상상돼ㅋㅋ 다 구현해 놓음ㅋㅋ
ㄴ 뮤비 너무 청량하고 귀여워>_< 화장 거의 안 한 거 같은데도 울애기들 어쩜 이렇게 이쁘냐
ㄴ 삼촌 결심했다! 맘 먹었어 방금! 오늘부터 우리 유리아이한테 신인상 안겨주기로.
“안돼!!!!!”
조용한 새벽, JK엔터 사무실.
이곳에 조규태의 절규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랬어. 걸리쉬가 나와봐야 아는 거 아니겠어? 걸리쉬가 완전 다른 컨셉으로 신선하게 나와서 더 대박 칠 수도 있는 거고···.”
조규태는 사색이 된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간신히 정신을 다잡았다.
* * *
이튿날.
유리아이의 새 싱글 앨범 반응에 조규태만큼이나 당황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팀장님, 유리아이 새 싱글 반응이 장난 아닌데요?”
“급하게 준비한 퀄이 아닌데요 이거? 분명 올해 추가 앨범 계획 없다고 들었는데···.”
“뭘 물어. 이 정도면 일찍부터 극비리에 준비해온 거지. 우리 걸리쉬 엿먹이려고.”
바로 SYP엔터의 걸리쉬 팀이었다.
몇 달 전 미니 앨범으로 데뷔 신고식을 확실하게 치른 걸리쉬는, 연말 시상식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곧바로 새 싱글 앨범 준비를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발매 열흘을 앞두고,
유리아이의 신보에 이슈를 빼앗겨 버린 것이다.
“이제 곧 뮤직시티 유리아이 무대라고 합니다.”
“빨리 켜봐.”
띡——
TV 화면으로 유리아이의 ‘내 세상의 중심은 너야’ 첫 방을 모니터하기 시작하는 SYP엔터 직원들.
그들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었다.
화려한 화장기는 지우고 자연스러운 생머리를 찰랑거리는 소녀 4명의 무대.
내 세상의 중심은 너야——
치얼스—— 치얼스——
헐렁한 청바지를 입고 살랑거리며 춤을 춘다.
듣는 사람의 몸도 들썩이게 만드는 세련된 비트.
유리아이는 힙합 리듬을 기본으로 ‘각자의 인생을 응원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가사나 춤과 함께 당당한 매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중간중간 90년대 댄스 가요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라인도 들어가 있어서 친숙하고 편했으며 쉬웠다.
무대 위의 유리아이는 지난 정규 1집 앨범에서부터 시작된 ‘레트로 감성’이라는 정체성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는 ‘정돈된 화려함’이었다면, 이번에는 ‘자연스러운 풋풋함’으로 차별화는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띡——
신경질적으로 화면을 꺼버린 걸리쉬 팀의 회의실에서는 긴장 섞인 정적이 감돌았다.
“······.”
“아무래도 바짝 긴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도 장르적으로 살짝 변주를 줄 걸 그랬습니다. 유리아이 때문에 묻히면 어쩌죠?”
“이제 와서 컨셉을 바꿀 수도 없고···. 하···.”
“솔직히 곡이 너무 좋습니다. 분명 레트로 감성인데 세련되고···.”
멘붕에 빠진 듯 우왕좌왕하는 팀원들.
그 가운데에서 팀장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얘들아, 걱정 말고 할 일 차분히 하면서 기다려봐라. 나한테 다 방법이 있으니까.”
* * *
“수고 많으셨습니다! 유리아이를, 위하여!”
앨범 발매 열흘 후,
JK엔터의 유리아이 팀은 고깃집에서 회식을 했다.
“초동 10만 장이라니···. 다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최고예요, 우리 팀!”
그랬다. 유리아이는 올해 걸그룹 초동 스코어 중의 최고치인 8만 장의 기록을 깨고 10만 장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심지어 이 8만 장도 지난 유리아이 정규 1집의 기록이었으니, 자체 신기록을 세운 셈이기도 했다.
모두의 표정이 환했고 잔뜩 흥분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걸리쉬의 새 싱글이 공개된 날이기도 했는데,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오늘 걸리쉬 신곡···. 생각보다 약하더라고요.”
“그러게요. 괜히 쫄았던 거 같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 낸 싱글에서 음악적인 발전도 없고, 비슷하게 복붙했는데···. 뭐랄까 오히려 퇴보한 느낌?”
걸리쉬의 신보는 업계 사람들 판단도 시원치 않았고, 지금 실시간 음원 순위가 올라오는 속도나 커뮤니티 반응을 봤을 때, 충분히 안심되는 정도였다.
“에이, 그래도 아직 첫날이잖아. 속단은 일러.”
“맞아요. 일주일 후에 초동 성적은 나와봐야 확실히 윤곽이 나올 거예요.”
다들 말은 이렇게 해도 입은 귀에 걸려있었다.
큰 이변이 없다면, 곧 있을 연말 시상식에서 신인상은 유리아이의 몫이라는 기대감이 생긴 듯했다.
치이이이익—— 치이익——
불판의 고기가 익어가면서 사람들이 배를 채웠고, 회식 분위기 또한 무르익어갔다.
이제 다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선오도 오랜만에 맥주를 마셨다.
“작가님, 저 술 한 잔만 주세요.”
선오의 앞에 소주잔을 내민 이는 안무가 손나라였다.
지난 정규 1집 ‘포텐셜’에서 합이 잘 맞았던 인연으로 얼마 전 허니팝 CM송 안무까지 같이 작업했던 이였다.
또르르르——
선오가 두 손으로 잔을 채워주었고,
손나라는 잔을 내밀며 짠!을 청했다.
“이번 안무도 참 잘 나왔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유리아이 애들이 잘 소화해줬죠. 그리고···.”
손나라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작곡가님 덕분이에요.”
선오가 눈을 끔벅거리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갑자기 새 싱글 나온다고 준비하라셔서 긴장하면서 대기 탔는데, 세상에···. 곡이 하루 만에 나왔더라고요? 덕분에 안무 고민하고 더 나은 거 만들어낼 시간적 여유가 있었어요. 어찌나 다행이고 감사하던지···. 이제 와 말씀드리는 거지만 정말 감사했습니다.”
손나라가 쑥스럽다는 듯이 전한 말에,
선오는 손사래를 치며 씨익 웃어넘겼다.
물론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이 담긴 말이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칭찬에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선오였다.
게다가 손나라는 이전의 삶에서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로 유명했기에 지금의 이런 순하고 편한 모습이 낯설기도 했다.
지금은 없는 직함이지만 훗날 모든 유명 아이돌의 뒤에 유능한 ‘퍼포먼스 디렉터’가 있다.
손나라 역시 그중 하나였다.
지금이야 한가하게 시간 내라면 내는 프리랜서 안무팀의 리더이지만, 미래에는 아니었다.
“저야말로 감사하죠. 비트를 너무 잘 살려주셔서 무대에서 곡이 돋보이게 해주셨잖아요. 앞으로도 같이 작업할 일 많을 거 같은데 계속 잘 부탁드려요.”
이번에는 선오가 짠!을 청했다.
기분 좋게 웃으며 원샷을 하는 손나라였다.
“작가님, 저희도 같이 짠!하고 싶어요오오.”
선오가 있는 테이블로 우르르 몰려온 4명의 소녀들. 유리아이였다.
이들은 손에 들고 있던 사이다 병과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니, 사이다가 채워진 잔을 내밀었다.
“감사했고, 앞으로도 미리 감사드립니다. 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