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46
막내가 사이다를 시원하게 들이켜고는 말했다.
“작가님은 진짜 저희 은인이세요. 저번 타이틀곡부터 반응이 너어무 좋잖아요. 헤헤.”
“여기 모인 사람들이 다 같이 만든 거죠. 유리아이 여러분들이 무대에서 잘해주기도 했고요.”
“그래도···. 출발은 음악이니까요.”
조용히 와서 사이다만 홀짝이던 리더 나영이가 불쑥 한마디를 건넸다.
그녀의 말에 선오는 아무 대꾸도 않고 그저 귀를 기울였다.
그냥 그렇게 됐다.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똑 부러지고 진지한 말투.
어딘가 차가운 어조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그 안의 내용은 따뜻한 말들.
“엔터 산업의 시작이자, 중심은 역시 음악인 것 같아요.”
이에 선오가 씨익 미소지었다.
그러자 나영이도 같이 배시시 웃었다.
“제 말이 맞죠? 녹음 때 말씀드렸던 거요.”
선오는 순간 물음표를 띄웠다가 이내 그녀에게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이 음악이 저나 유리아이의 중심이자, 사람들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정말 좋거든요.’
그때 생각을 하니 빙긋 웃음이 지어졌다.
“그럼 나는 우리 대중들 세상의 중심이 유리아이가 되길 바랄게요. 앞으로 쭈욱.”
진심이었다.
특히나 지난 생에 첫 정규 앨범이 망하고 별 성과도 없이 계약 기간을 보내고는 일반인의 삶으로 돌아갔던 나영을 떠올리면 더욱더 그랬다.
‘그냥 선하게 열심히 살면서 실력도 갖춘 사람은 무조건 잘 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
그런 세상에서 울려 퍼질 나의 음악.
선오가 그리고 있는 세계는 그랬다.
그리고 지금, 그런 세상을 자신의 판 안에서 하나씩 만들어나가고 있는 선오였다.
* * *
한편, 유리아이 팀의 팀장이었지만 오늘 회식 자리에 끼지 못한 조규태는,
“씨발 놈. 내 전화를 씹어? 차단했어?”
쾅쾅쾅——
쾅쾅쾅쾅쾅쾅——
누군가의 집을 찾아가 문을 부술 듯 두드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야! 이 개새끼야! 너 안 나와? 내 전화 안 받아? 계속 두드릴 거야. 네 해명이랑 사과 들을 때까지, 계속!”
쾅쾅쾅——
쾅쾅쾅쾅쾅쾅——
경비원과 이웃 주민들로 보이는 이들이 조규태를 말렸으나 아랑곳하지 않는 그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잠시 후,
끼이이익——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슬리퍼를 끌고 나왔다.
“선배, 이거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자다가 깜짝 놀랐네. 인터폰으로 민원 엄청 들어···”
퍽——
조규태가 그의 면상을 강타했다.
“야, 이 씨발 놈아. 너 처음부터 페이크였지? SYP에서 레트로 장르 손절했다는 거 순 뻥이었지? 그렇지 않고서야, 오늘 나온 걸리쉬 신곡은 뭔데!!”
맞아서 얼얼한 볼을 만지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는 상대는,
바로 조규태가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굿엔터 소속 후배였다.
“하···. 선배도 참···. 선배가 했던 짓은 생각 안 하시나 봐요?”
“뭐? 뭔 개소리야 또.”
“저번에 유리아이 정규 앨범 때. 기억 안나요?”
상대가 이렇게 말해오자 조규태는 뭔가가 생각난 듯 침을 꼴깍 삼키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때 유리아이 정규 앨범 정보 줄 테니까 SYP 정보 내놓으라고 구걸하셨던 거, 기억하시죠? 그때 유리아이는 무조건 R&B라고 호언장담하셨었는데···. 결과는 어땠었죠?”
조규태는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오···. 제가 진짜 그때 회사에서 얼마나 우스운 꼴이 됐는지 아세요? 근데 그때 선배는 뭐랬더라···. 앨범 컨셉이나 장르야 하루아침에도 바뀔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러지 않았어요?”
얼른 변명거리라도 찾아보려 부리나케 머리를 굴렸지만 생각나는 게 없는 조규태였다.
조금 전까지 그를 말리느라 근처에 있었던 경비원과 이웃 주민들이 상황 파악을 하려들며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근데 지금 이렇게 남의 집 앞까지 찾아와 뭐 하는 짓이세요? 고작 하루아침에도 바뀔 수 있는 문제로다가?”
“아니···. 그때 일은 나도 유감인데···. 그러니까 내 말은···.”
“됐고요. 경찰 부르기 전에 그냥 꺼져주세요, 내 인생에서.”
후배는 얼른 꺼지라는 듯 손등을 허공에서 휘저었다.
조규태는 굴욕감에 몸 둘 바를 몰랐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이 자리를 피하는 수밖에.
* * *
이튿날.
다들 들 떠 있는 JK엔터 식구들 사이로, 혼자 죽 쑨 표정을 하는 이가 있었으니.
건물 맨 꼭대기 층으로 향하는 조영준 대표였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책상 위에 올려진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지만 한숨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이내 소리를 지르고 마는 조영준이었다.
“아오···. 미친 새끼!!!”
그의 손에는 사직서가 들려있었다.
조규태의 이름이 적힌 사직서.
조영준은 이를 구기며 조규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너 이번에는 확실하다며! 믿어보라며!”
조영준은 조규태의 목소리를 듣자 더욱더 화가 났다.
“근데 이렇게 사직서 던지고 내빼? 너 진짜 미친 거지? 회사가 우스운 게 아니고 내가 우스웠구나?”
이런 놈을 오른팔이라고 믿고 중요한 일을 맡길 생각을 해온 스스로에게 화가 날 지경이었다.
“너 이 업계에 다시는 발 들일 생각 하지 마. 끊어, 이 미친놈아!!”
조영준의 절규이자 비명은 대표실 밖의 복도를 넘어 이사실까지 전해졌다.
이에 김록기 이사는 조용히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휴대폰을 꺼내고는 문자 하나를 보냈다.
[129 작가, 오늘 점심 같이합시다. 우리끼리 자축할 일이 또 생겼네요.]상대를 잘못 골랐어
“입에 맞아요?”
“그럼요. 맛있습니다.”
김록기는 선오를 데리고 청담동의 근사한 중식 코스를 대접했다.
그에게서 조규태가 사표를 냈다는 소식을 전해들으며,
전채 요리로 나온 해산물 냉채 접시를 이미 맛있게 비우고 있는 선오였다.
“걸리쉬 초동은 모레쯤 뜨겠지만, 분위기 보면 생각보다 약한 거 같죠?”
“네, 이사님. 아무래도 우려했던 것보다는 한시름 놓아도 좋을 듯합니다.”
이 같은 대화를 나누자 입맛이 저절로 돌았다.
“그래도 연말 시상 프로 전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음방 뿐만 아니라 예능이나 라디오 스케줄을 영리하게 잡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상대는 SYP엔터였으니까.
선오의 말에 김록기 이사가 미소를 지었다.
“129 작가는 참 빨라요.”
“네?”
“성장이 참 빠르다구요. 이제 정말 프로듀싱도 해봐도 될 것 같아요. 작곡만 하기에는 그 안목과 선구안이 아깝달까···.”
“아···. 감사합니다.”
갑자기 훅 들어온 칭찬에 선오는 피식하고는 묵례를 건넸다.
프로듀싱. 모든 작곡가들의 꿈이었다.
지난 삶의 오선지도 언젠가는 내 이름을 건 가수를 프로듀싱 할 수 있을 거라는 꿈에 부풀어 JK엔터에 입사를 했었다.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허나 이번 생에서는 너무도 쉽게 목전까지 다가온 꿈이었다.
선오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할 수 있었던 겁니까? 유리아이의 이런 컨셉이 먹힐 거라는 걸.”
김록기 이사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왔다.
선오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차분히 입을 열었다.
“항상 새 앨범을 준비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건, 익숙함과 새로움을 적절히 조합하는 일 같습니다.”
선오의 말에 집중하는 김록기였다.
“유리아이 정규 1집을 낼 때도 그 전의 싱글 앨범들에서 적절한 익숙함과 새로움을 찾아냈고, 이번 싱글도 정규 1집에서 출발했습니다.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음악적 성장과 변화를 꾀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록기는 조곤조곤 자신의 지론을 늘어놓는 선오의 말에서 힘을 느꼈다.
기존 앨범이 잘 됐을 경우, 다음 앨범을 준비할 때 당연히 회사도 아티스트도 부담을 느낀다.
그 부담이 자칫 오판을 낳기도 한다.
두려움에 안전한 길을 택하겠다고 기존의 앨범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고 아티스트에게 안 맞는 새 옷을 잘못 택하거나.
하지만 선오는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고 적절한 판단을 내렸다.
선오에게 정답에 가까운 대답을 들었지만 김록기의 궁금증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아직 입사한 지 1년도 안 된, 20대 초반의 젊다 못해 어린 작곡가가 어떻게 이런 선구안과 심미안을 가졌는지 여전히 신기하고도 놀라웠으니까.
그래서 김록기에게 선오는 오래 붙잡아두고 싶은 인재였다.
그의 성장을 바로 곁에서 오래오래 지켜보고 싶었고, 자신이 도울 수 있다면 뭐든 해주고 싶었다.
“많이 들어요. 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추가로 맘껏 시키고요.”
이같은 김록기의 말에 선오는 빙긋 웃었다.
약간 민망했으니까.
말하지 않아도 이미 언제나 그 누구보다 잘 먹고 있는 선오인데, 김록기 이사는 항상 이런 말을 해왔다.
선오의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말이다.
“드디어 내일이네요. 유리아이가 걸리쉬랑 처음 붙는 음방.”
김록기 이사는 몹시 기대된다는 듯 두 눈을 빛냈다.
* * *
“생방송 뮤직시티! 이번 주에도 굉장한 무대가 이어졌는데요, 아쉽지만 이제 마지막 두 팀! 오늘 1위 후보들의 무대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MC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응원의 함성이 뒤섞여 들려왔다.
—— 유리아이! 유리아이!
—— 걸리쉬! 걸리쉬!
“먼저, 유리아이가 부릅니다, 내 세상의 중심은 너야!”
이제 무대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오프닝 포즈와 표정에서 여유가 느껴지는 유리아이였다.
4명의 소녀들은 농구공을 튀기듯 바운스를 타며 노래를 시작했다.
시작부터 나영의 청아한 고음이 무대 위를 채웠다.
안정적인 라이브로 다른 멤버들이 연이어 바톤을 넘겨받았고, 어느새 4명의 소녀들은 무대에 흠뻑 몰입하며 즐기고 있었다.
그 열정과 에너지는 무대 밖과 그 너머의 브라운관 밖까지 전해졌다.
내 세상의 중심은 너야——
치얼스—— 치얼스——
이제는 트레이드 마크가 된,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살랑이는 춤.
무대 아래의 팬들도 사이사이 열띤 응원의 목소리를 내주었다.
—— 내 세상의 중심은 유리아이!
—— 치얼스!
저절로 흥얼거리거나 몸을 들썩이게 하는 비트로 가득했던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버렸고, 이내 뜨거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청량하고 상큼한 에너지가 가득한 무대 잘 봤습니다. 다음은 컴백 첫 방송의 영광을 뮤직시티와 함께할 걸리쉬입니다. 러브 건!”
다음에 등장한 걸리쉬는 오늘 첫 방송이라 그런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레트로 복고.
그들의 지난 싱글 곡이나, 몇달 전 가요계를 강타했던 유리아이의 타이틀곡 ‘포텐셜’과 흡사한 톤의 곡이었다.
빵야, 빵야, 러브 건——
너의 심장을 노리는, 러브 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뭔가가 아쉬웠다.
‘무대 대형이나 안무도 지난번 싱글이랑 너무 비슷한데?’
‘그때의 인기를 다시 한번 리바이벌하고 싶은 건가?’
뭔가 발전된 모습이나 음악적인 성장 없이 답습하는 무대.
이를 가장 잘 알아차린 건 객석의 팬들과 브라운관 건너의 대중들이었다.
굳이 머리로 분석하지 않아도 피부로 먼저 느끼고 가슴이 곧바로 반응했으니까.
함성이나 에너지도 앞선 유리아이의 무대보다 확실히 약했다.
“생방송 뮤직시티! 이제 정말 오늘의 마지막 순간이 왔네요. 1위 후보 두 팀, 유리아이, 걸리쉬. 앞으로 나와주세요.”
오늘 출연진들이 모두 무대 위로 나온 가운데,
유리아이와 걸리쉬가 가장 앞쪽에, MC들의 양 옆자리에 섰다.
“이번주 뮤직시티. 1위의 주인공은 과연 누가 될까요? 결과, 보여주세요!”
화면에 두 팀의 점수가 나란히 띄워지기 시작했고, 디지털 음원 점수, 시청자 선호도 점수, 방송 점수, 음반 점수가 차례로 떴다.
그런데,
“··· 걸리쉬! 1위 축하드립니다!”
이를 전하는 MC들도 살짝 놀란 듯 보였고,
무대 아래의 팬들은 눈을 끔벅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것은 분명 이변이었다.
뮤직시티를 모니터하던 JK엔터의 전 직원이 이같은 이변에 발칵 뒤집혔다.
조영준 대표 역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휴대폰을 들었는데,
지이이이잉——
휴대폰이 먼저 진동했다.
발신인은 조규태였다.
“왜?”
– 형, 내 사표 수리 아직이지?
정말이지 뜬금없고 어이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