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50
앞에는 포토월이 놓여있었다.
“129 작가님, 주먹 쥐고 파이팅 한 번 부탁드릴게요.”
“훤칠하게 잘생겼다! 이쪽 보고 한 번 웃어주세요!”
“오른쪽도 한 번 봐주세요!”
기자들이 선오의 얼굴을 알아보고 이것저것 주문을 해왔다.
선오는 익숙지 않은 경험에 신기함 그리고 약간의 흐뭇함을 느끼며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지이잉——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고,
[첫 시상식 데뷔 축하해요. 내가 선물을 하나 준비했으니, 내일 저녁은 시간 비워두고요.]김록기 이사의 문자였다.
“선물?”
선오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데,
“어머, 안녕하세요. 129 작가 맞으시죠?”
선오에게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다가온 이는 이슬 작곡가였다.
“언제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같이 노미네이트 되다니⋯. 덕분에 오늘을 엄청 기다렸잖아요, 나.”
덕분에 선오는 더더욱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 되었다.
‘이슬 선배님이 나를?’
굉장한 투자처
“내가 너무 오바했나? 초면에.”
이슬 작곡가가 배시시 웃었고,
선오는 아니라고 괜찮다고 엷게 미소지어 보였다.
“그냥 곡이 내 취향인데 신인이라길래 궁금하잖아요.”
“저도 선배님 음악 좋아하고 완전 팬이라 언젠가 한 번 뵙고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평소에 이런 칭찬은 숱하게 들을 텐데도 이슬은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었다.
“유리아이 앨범이 정규 1집부터 퀄리티가 확 좋아져서 눈여겨봤더니, 129 작가의 이름이 띄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음유 대상을 수상하더니, CM송도 괜찮게 터트리고, 정글오디오 출신이라고도 하고⋯. 참 양파 같은 사람이구나 했어요.”
“까도까도 계속 뭐가 나오는?”
“그렇죠. 하하.”
이슬 작곡과의 농담 섞인 인사는 유쾌했다.
“암튼 우리 시상식에서는 페어플레이하자구요. 애프터 파티 때 또 얘기해요.”
* * *
잠시 후 서울가요페스티벌 시상식.
유리아이는 이곳에서도 유일하게 본상과 신인상의 영광을 동시에 거머쥐며 주목받았다.
한편, 작곡상 트로피는 이슬 작곡가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모든 시상식이 끝난 후 이어진 애프터 파티.
선오는 자연스럽게 이슬 선배와 합석했다.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고마워요. 후배 작곡가 상대로 이렇게 이겨 먹어도 되나 모르겠어. 그래두 129 작가는 나보다 앞으로 받을 날이 많으니까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섭섭하긴요.”
누가 들으면 50대는 된 것 같은 투로 말하는 이슬 작곡가였지만, 그녀는 아직 30대 중반인가 후반에 불과했다.
앞날이 창창하다는 뜻이었다.
“선배님과 나란히 노미네이트 된 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상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분위기가 좋았기에, ‘다음번에는 저도 상 받을 수 있게 분발하겠습니다.’라는 농담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입 밖에 꺼내지 않은 선오였다.
“그나저나 이번에 마음고생 좀 했겠어요?”
“네?”
“걸리쉬 사태 때문에요. 언론이고 팬들이고 계속 유리아이랑 비교했잖아요. 처음에는 마치 유리아이 팬들과 JK엔터가 허위사실 유포한 것처럼 몰고 가기도 했고요.”
이에 선오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이런 문제는 또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티스트나 뮤지션끼리 싸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문제는 차트나 법망이라고 봅니다. 순위 지상주의가 괴물을 낳는 거라면, 순위 대신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낼 생각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이슬 선배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었다.
선오는 자기도 모르게 속 이야기를 너무 편하게 늘어놓았나 싶어서 당황하려던 찰나,
“정말 형만이 오빠가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할 만 하네요.”
무슨 말인가 싶었다.
“방형만 오빠가 129 작가 칭찬을 그렇게 했거든요. 음악을 잘 쓸 뿐만 아니라 음악적 소신도 확실한 친구라면서요. 그 오빠가 원래 잰체 잘하잖아요. 철학, 소신 이런 거 엄청 따지고. 하하하.”
이슬 선배가 웃음을 터뜨렸고, 선오도 빙긋 웃었지만 머릿속에는 방금 그녀가 한 말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방형만 선생님 같은 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는 것이 몹시도 의외였으니까.
그것도 칭찬을 말이다.
“JK엔터는 어때요? 잘 해줘요, 129 작가한테?”
돌연 핸드백을 열더니 명함 하나를 꺼내어 내미는 그녀였다.
“언제든 내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요.”
선오는 명함을 받아들었다.
“암튼 나는 우리 애들 챙기러 가봐야 해서, 정말 반가웠어요. 다음에 또 만나요, 우리.”
이슬 작곡가는 씨익 웃으며 선오에게 손을 흔들더니, 자신이 만든 보이 그룹이 앉아 있는 자리를 향해 유유히 사라졌다.
선오는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에게서 받은 명함을 소중히 잘 간직해야겠다는 직감이 스쳤다. 언젠가는 쓸 일이 있을 거 같았으니까.
* * *
이튿날 저녁,
청담동의 어느 스시 오마카세 가게.
선오는 이곳의 룸에서 김록기 이사와 마주 앉아있었다.
“노미네이트 축하하고,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요.”
“감사합니다. 이사님 덕분입니다.”
인사치레로 한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김록기 이사 같은 상사 아래에서 일했기에 마음 편하게 곡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물은, 다른 건 아니고.”
김록기 이사는 선오의 앞에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열어봐요.”
상자 안에는 명함이 쌓여있었다.
“이건⋯.”
“승진 축하해요. 이제 헤드 작곡가가 됐네요.”
선오는 그 명함 한 장을 꺼내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가 이렇게 벌써 헤드를 달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례적이긴 하죠. 초고속 승진 중의 초고속.”
김록기가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작곡가가 상업 데뷔 한 해에 바로 서울가요페스티벌 작곡상 노미네이트되는 게 더 이례적인 거 아닌가요?”
그리고 선오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마침표를 찍는 그였다.
“129 작가 정도면 뭐로 보나 헤드 직함 달아도 충분하다는 뜻이에요.”
선오가 지금 이렇게 감격스러운 얼굴을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헤드 작곡가라 하면, ‘프로듀서’가 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JK엔터에서는 헤드 작곡가로 6개월 이상 일하며 성과를 내면, 아티스트를 단독으로 프로듀싱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비로소 ‘프로듀서’로서 이름을 올릴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129 작가가 맡을 다음 업무는 헤드 작곡가라는 직함에 걸맞게, 프로듀싱이에요. 아직 단독 프로듀싱은 힘드니, 정확히는 프로듀싱을 서포트 하는 역할입니다.”
이에 선오는 두 눈을 빛내며 김록기의 말에 집중했다.
“선배 헤드 작곡가의 프로듀싱 업무를 서포트해서, 한 그룹의 데뷔부터 책임지게 될 겁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제 작곡을 포함하여 그 이상의 창작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듀싱에 한 발자국 디딜 수 있음에 설레기 시작했다.
“129 작가가 서포트할 선배는 정기석이가 될 거예요. 내 나름대로 궁합이 좋을 거 같은 두 사람을 신경 써서 묶은 겁니다.”
“감사합니다.”
선오는 정기석 선배의 스타일을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취향은 선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2가지만 가지고도 일이 수월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게 짐작 가능했다.
“그리고 어떤 그룹의 데뷔부터 책임지게 될 것인지는⋯. 정기석 작가가 복귀하면 직접 듣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지금 정기석 선배는 작년에 쓰지 못한 밀린 휴가를 끌어다가 유럽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설 연휴 끝나고 1월 마지막 주에 복귀할 겁니다. 그때 더 자세한 이야기 함께 나누도록 하죠.”
드르르륵——
때마침, 미닫이문이 열리며 종업원이 메인 스시를 서빙해주었다.
“오늘은 일단 우리끼리 맛있게 먹는 걸로.”
김록기가 자신에게 치우친 접시를 선오 쪽으로 밀어주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그가 자신을 보는 눈에 기대감이 가득 어려있다는 것을 선오도 느낄 수 있었다.
선오도 스시를 한 입 입에 넣었다.
기분 좋은 사람과 기분 좋은 일로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고,
입안에서는 스시가 살살 녹는 듯했다.
“그나저나 나영이 때문에 고민이에요.”
“나영 씨가 왜요?”
“어릴 때부터 매달 꾸준히 멘토링으로 보육원 봉사활동을 했었나 봐요. 연습생 때까지도요. 작년 말에, 아니지 이제 재작년이죠. 데뷔하고 스케줄 때문에 쉬었던 걸, 올해부터 다시 하고 싶다 하더라고요.”
이에 선오는 지난 삶의 기억을 떠올렸다.
얼핏 들은 적 있는 이야기였으니까.
“보육원 봉사요?”
“네. 근데 후원이나 기부, 아니면 단발성 멘토링이면 몰라도 매주, 매달 직접 가는 건⋯. 스케줄 문제도 있고, 아무래도 이제 주시하는 눈도 많아질 거라서 구설수에 휘말릴까 봐 고민하고 있어요. 이걸 허락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유리아이 정도면 이사나 대표가 직접 관리를 하는 게 맞았다.
김록기 이사가 휴대폰을 열어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 친구들이 나영이가 꾸준히 멘토링하는 애들이래요. 나영이 말로는 음악을 좋아하고 재능도 있는데, 경제적인 이유로 꽃 피우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서 도와주고 싶다나⋯.”
이를 본 선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자연스레 한 남자 아이에게 시선이 갔다.
‘이 친구는⋯.’
선오는 애써 놀란 기색을 숨겼고, 김록기가 말을 이어나갔다.
“나영이 마음은 이쁘고 기특한데, 솔직히 나는 지금은 몸을 사려야 할 때라고 봐요. 안티들이나 경쟁사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거든요.”
그 말은 일리가 있었다.
“어떻게 하는 게 나영이와 유리아이한테 피해가 안 가게 좋은 일로 남을 수 있을지 고민이 되네요.”
이제 선오의 머릿속에서 모든 퍼즐이 명쾌하게 짜 맞춰지고 있었다.
‘진짜였구나. 나영이가 곤이를 오랫동안 멘토링 해줬다는 게⋯.’
훗날. 사진 속 한가운데 있는 ‘곤’이라는 아이는 솔로 가수로 데뷔한다.
데뷔곡 하나로 ‘국민 연하남’ 타이틀을 얻었던 그였다.
누나에 대한 동경과 사랑을 노래하는 컨셉으로 단숨에 모든 음악 방송의 1위를 석권하고 그해의 모든 상을 휩쓰는 스타가 될 것이다.
‘그리고는 나영이랑 열애설이 났었지.’
그랬다. 나영과 곤은 한 때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열애설의 주인공이었다.
사람들은 곤의 데뷔곡 가사와 엮으면서 둘을 가지고 자기들이 믿고 싶은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나영과 곤이 그 당시 해명이라고 내놓은 게, ‘아주 어릴 때부터 멘토와 멘티로서 맺어진 친남매 같은 사이일 뿐, 남녀 사이는 아니다’ 였다.
‘안 믿는 사람이 더 많았던 그 해명이 진짜였을 줄이야.’
선오는 김록기 이사의 휴대폰 속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그때 이런 사진 하나만 공개했어도 그 해명이 충분히 먹혔을텐데⋯.’
하지만 나영과 곤이 왜 이 사진을 숨겼는지 금방 깨달은 선오였다.
뒤에 걸린 현수막 때문이었다.
한 보육원과, 그리고 어느 익숙한 재단 이름이 함께 적힌 현수막 말이다.
나중에 유리아이 계약이 만료되고 해체된 후 밝혀졌던 사실.
나영이는 어릴 때부터 형편이 어려워 여기 이 재단의 도움을 오랫동안 받았다는 것이다.
‘그럼 곤이는 이 재단과 연계된 보육원 출신이었던 거구나.’
이 역시 대중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로, 사진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김록기 이사는 선오가 그답지 않게 스시를 앞에 잔뜩 두고도 젓가락을 움직이지 않자 이렇게 물어왔다.
“이사님, 이 봉사활동 관련해서요. 제가 나영 씨랑 직접 이야기를 해봐도 될까요?”
순간 선오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스쳤다.
안 그래도 지금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고민이 되는 시점이었다.
원유와 달러 투자로 이미 큰돈을 벌었고, 앞으로도 시간은 걸릴지언정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상당한 수익을 볼 예정이었다.
아버지의 신뢰까지 얻게 된 마당이라 선오가 당장 자신의 회사를 차리게 된다 해도 투자금이나 현금 흐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이제는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할지보다 어떻게 쓸지가 더 큰 고민이 되어버린 선오였다.
게다가 지난 생에 투자라고는 해 본적이 없었고, 금융 투자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 선오라 이 이상의 공격적인 방식은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지금 그 돈을 쓸 방법을, 아니 굉장한 투자처를 찾아낸 것이다.
그것도 선오 다운 방식으로 말이다.
* * *
“강곤! 잘 지냈어? 너 못 본 새에 키 많이 컸다?”
설 연휴를 맞아서 나영이는 보육원을 찾았다.
오늘은 그녀의 마지막 멘토링이었다.
129 작곡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도움을 받아 유리아이나 회사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으니까.
“나도 이제 고딩이잖아. 근데 누나는 역시 TV가 더 이쁘다.”
“뭐래!”
“이렇게 와도 되는 거야? 누나 이제 많이 바쁘지 않아?”
둘은 닮지 않은 것만 빼면 친남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또한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