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69
지선하는 선오를 향해 빙긋 웃어주었고,
선오는 국장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할 말이 있지 않냐는 투로 말이다.
“··· 그, 그럼. 시간도 촉박하니 지금까지 나온 기획안으로 해보자고. 장 피디, 진행시켜.”
마지못해 내뱉는 것 같은 국장의 말은 선오가 의도한 그대로였다.
“네? 정말이세요? 정말 그대로 진행해도 되는 겁니까, 국장님?”
장영호 피디가 어안이벙벙해서 되묻자,
“그래. 뭐 하고 있어? 어여 내려가서 일 보지 않고? 기대가 크니까 잘 만들어보라고.”
국장은 태세 전환의 끝을 보여주었다.
“넵!!”
장영호가 감격한 얼굴로 129를 보더니 국장에게 꾸벅 인사를 했고,
“저도 가보겠습니다. 장 피디님 도와서 추석 시청률 1위 한 번 만들어보겠습니다.”
선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장실을 나오자마자 장영호는 속삭이듯 선오에게 물었다.
“국장님 이상한 건 알았지만···. 광고 하나로 이렇게 바로 승낙하실 거면서 똥고집은···.”
지선하가 누군지 모르는 장영호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방금 들어온 광고가 대기업 광고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20대로도 보이는 젊은 여자의 제안이었으니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잖아요. 어쨌든 기획안이 통과됐으니, 이제 쭉쭉 진행해보자고요, 피디님.”
“좋습니다! 제가 지금 바로 작가들 모아서 회의하고 결과 정리해서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선오와 장영호 피디는 의기투합하고는, 선오는 지하 주차장으로 장영호는 예능국 사무실 자리로 돌아갔다.
* * *
한편, 국장실에 남아있는 두 사람 사이에는 전혀 다른 성격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주희언니를 저희 오빠한테 소개해주고 싶어서 찾아뵙게 됐습니다. 이런 주선은 저도 처음이라···. 제가 국장님과 안면이 없는 것도 아니고, 먼저 국장님께 인사드리고 주선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조금 전과 달리 국장의 얼굴은 환하게 피어 있었다.
“하하하. 마침 우리 주희도 혼기가 찬 마당에 가릴 게 있나요? 기쁜 소식입니다.”
지선하의 정보에 따르면,
M프라임 예능 국장은 차기 사장 후보였다.
뿐만 아니라 국장의 장인이자 ‘주희 언니’라는 사람의 외조부가 명동 사채시장의 큰손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새언니 후보군으로 적합하다 판단한 지선하였다.
“그렇다고 결혼까지 정하고 만나는 ‘선’은 아니고요. 어디까지나 그냥 집안이 보장된 안전한 ‘소개팅’ 정도로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처음에는 부담스럽지 않게 만나다가 자연스레 결혼 얘기로 넘어가는 걸 원하는 것 같아요, 저희 오빠가.”
“아무렴요. 요즘 누가 촌스럽게 선을 보나요. 껄껄껄.”
국장은 기분이 좋은지 목소리가 커졌다.
“주희한테는 내가 잘 말해둘 테니 지평 일가 쪽에서 편하신 일정대로 진행해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오빠한테 주희 언니 연락처 전달할게요.”
각자 오늘 만남의 목표를 달성해서 그런지 지선하와 국장은 밝게 웃었다.
“그러세요. 회장님은 잘 계시죠? 이렇게 자식 농사를 둘이나 다 성공하시고.”
국장이 아버지의 안부를 묻자 지선하는 그저 슬며시 미소 지었는데,
“아니지, 자식이 셋이 있으시죠?”
갑자기 튀어나온 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버린 그녀였다.
셋이라니. 들켜버린 건가 하고 말이다.
“지평그룹이라는 자식까지 합하면요, 껄껄껄···. 지 회장님께서는 세 농사를 다 잘 짓고 계시지 않습니까.”
함박웃음을 짓는 국장을 보며 지선하도 안도했다.
“그런데 JK엔터 129팀장은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그 친구가 유학파 출신은 아닌 걸로 아는데···. 지선하 양은 뉴욕에 계시지 않습니까?“
지선하는 가장 피하고 싶었던 질문을 받아버렸지만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둘러대기 시작했다.
“아···. 그래두 이렇게 중간중간 한국에 들어오니까요. 건너건너 소개받았어요. 알고 보니 같은 지 씨더라고요.”
“129 팀장 본명이 지 씨인가요?”
“네···. 그분 본명은 저도 기억이 안 나는데, 성이 같아서 친해졌어요.”
“그럴 수 있죠. 특이한 성씨니. 근데 지 씨도 본관이 여럿 있는 걸로 압니다.”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국장이었다.
지선하는 이 주제로 더 대화를 이어나가서는 안 된다는 직감이 일었다.
“아아, 그런가요? 그런데 국장님, 죄송하지만 제가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여기서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추석 특집에 광고 넣는 건 저희 아버지네 회사 실장님 통해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소곳하게 인사를 건넸고,
국장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나가 그녀를 배웅해주었다.
* * *
“네, 피디님. 안 그래도 지금 보내주신 세부 기획안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 벌써요? 메일 드리자마자 전화드린 건데.
“초반에 시간을 낭비한 만큼 이제는 앞만 보고 달려야죠. 이대로 가시죠.”
– 1부랑 2부 순서도 괜찮으신가요?
“좋습니다. ‘목소리를 맞춰봐’로 시작해서 출연자들을 하나둘 공개한 후, 그들을 데리고 팀을 짜서 ‘음악 오락관’의 여러 퀴즈와 게임을 하면서 중간에 가장 궁금한 타이밍에 1부를 끊으실 거죠?”
선오는 벌써 분석을 마친 상태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2부에서 마저 이어나가다가···.”
“마지막을 ‘너네곡 우리곡’으로 서로 바뀐 무대 보여주는 걸로 끝내는 게 특히 마음에 듭니다. 음악에서 시작해서 음악으로 끝나고, 중간에 퀴즈와 게임을 배치해주신 게 좋았어요.”
역시 장영호 피디는 선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가 보내온 세부 기획안은 손댈 데가 없었으니까.
그의 장점 중 하나였던 ‘구성력’이 발휘된 기획안이기도 했다.
“그럼 ‘목소리를 맞춰봐’에서 어떤 아티스트가 어떤 곡을 부를지, ‘너네곡 우리곡’에서 어떤 조합으로 무대를 바꿔서 할지. 저희가 안을 여러 개 만들어서 드려보면 될까요?”
“네, 그것 때문에 전화드렸어요. 그런데 벌써 이렇게 세부 기획안을 다 읽으시고 척하면 척이니 제가 정말 일하기 편하네요.”
그렇게 장영호 피디와의 통화는 경제적으로 끝이 났다.
지이잉——
선호가 전화를 내려놓기 무섭게 문자가 왔다.
[아버지 통해서 네가 하는 추석 특집 프로그램 앞뒤로 광고 넣었어. 지평칠성에서 하는 신제품 핫초코래. 이거 모델이 쿼드스텔라에 로고송도 네가 썼다며?]지선하의 연락이었다.
“뜻밖의 카드 등장으로 깔끔하게 해결됐네.”
선오는 피식 웃으며 짧게 답장 했고,
곧바로 사내 메신저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3팀 팀원들을 대상으로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 M프라임 ‘추석 특집 예능(가제)’ TF팀 3명을 모집합니다. 내일 오전까지 지원자를 받고 제가 임의로 선발하겠습니다.1. 우리 아티스트끼리 곡 바꿔서 무대
2. 우리 아티스트가 얼굴 가리고 철 지난 유행가 부르기
등등의 코너를 함께 준비하게 될 겁니다.
*추신) 매번 회의 전후로 식사 같은 간식 무한 제공 ]
전송 버튼을 누른 후 3초, 아니 5초쯤 지났을까.
팀장실 밖에서 탄성을 지르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나누는 그들의 대화가 이 안의 선오에게도 조금씩 새어 들렸는데, 방금 선오가 보낸 메시지를 두고 나누는 대화들 같았다.
뜻밖의 반응.
선오는 자기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고 그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잘 본다고?
“식사 같은 간식이래!”
“게다가 무한제공!”
“와씨···. 진짜 우리 3팀이 최고 아니냐?”
“나 이거 해야겠다. 129 팀장님과 함께라면 난 좋아.”
“이러다 경쟁자 많아지는 거 아닌지 몰라···.”
팀장실 밖에서 들려오는 뜻밖의 반응들에, 선오는 피식 웃음이 났다.
이윽고 선오의 컴퓨터 화면에 작은 창이 파바바밧 떠오르기 시작했고,
[추석 특집 예능 TF팀에 지원합니다!] [추석 예능팀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추석특집팀 신청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사내 메신저로 회신이 쏟아지고 있었다.
선오는 신청자 이름들을 살피며 그들의 능력과 이력을 떠올렸다.
지금껏 보여준 성과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생의 기억을 더듬어 그들이 앞으로 보여줄 가능성 또한 함께 떠올리는 선오였다.
“이번에는 곡 쓰는 업무가 아니니까, 작곡 능력은 아직 미숙해도 아이디어를 잘 내던 친구들 위주로 선발을 해봐야겠어.”
이렇게 기준을 세우고 나니 몇몇 이름들이 더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 * *
메신저로 공지가 나간 지 이틀이 지난 오후.
3팀 회의실의 상석에는 선오가 앉아있었고,
그 앞에 3명의 팀원들이 모였다.
유은주, 고혜리, 최철수.
세 사람은 인사를 하고는 선오가 건넨 수제버거를 먹고 있었다.
선오도 이들과 같이 버거를 오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유은주.
선오와 동갑인 입사 선배지만 직급은 낮다.
늘 성장하려는 마인드를 가진 친구이며, 선오와 자주 같은 팀으로 붙었기 때문에 이 팀에 이런 사람 하나 있으면 일하기 수월할 것 같았다.
고혜리.
어린 친구인데 작곡가의 자질보다는 기획자의 자질이 더 뛰어나다.
아이디어 뱅크이며, 이전의 삶에서는 듣는 귀가 상당히 좋기로 유명했다.
최철수.
막내. 1년 차 신입이지만 머리가 좋고 일 배우는 속도도 빠르다. 훗날 곡도 잘 쓰게 될 친구였다.
선오의 상념을 깬 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팀장님.”
최철수의 의욕 넘치는 인사였다.
그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다 먹은 것들을 솔선수범하여 치웠고, 유은주와 고혜리도 다시금 빙긋 묵례했다.
“그럼 회의 시작해볼까요? 여러분이 주신 안들은 잘 받았습니다.”
선오는 어제 팀원들을 발표하면서, 이들에게 회의 준비차 과제를 내주었다.
“먼저 ‘너네곡 우리곡’ 코너에 대해 여러분이 주신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었습니다.”
세 팀원이 오늘 오전까지 보내준 안을 토대로, 자신이 한 차례 정리한 회의 자료를 나눠주는 선오였다.
“남녀 아티스트가 서로 곡을 바꿔서 하는 것, 또는 같은 성별의 아티스트끼리 바꿔서 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이는 중요했다.
키를 아예 바꿔서 편곡이 들어갈지 말지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회의 자료를 훑어보던 팀원들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일장일단이 있을 것 같습니다, 팀장님.”
“여자 아티스트가 남자 아티스트의 무대를 하는 건 색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반대입니다. 남돌이 여돌 곡을 하는 건 개그 요소로 비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 같습니다.”
잠깐의 회의만으로도 선오의 눈에는 각 팀원들의 포지션이 읽혔다.
이는 선오가 예상한 대로였다.
고혜리와 최철수는 일단 말을 던지고 보는 편이었고, 유은주는 항상 노트북을 지참해서 메모하거나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우리 유은주 작가님이 M프라임 장영호 피디님이나 작가진들과 연락을 전담하면 좋겠네요.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를 정리해서 전달하는 역할입니다.”
“네, 팀장님.”
고혜리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 특집 프로그램의 톤에 따라 결정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어떤 톤으로 가는 게 우리 아티스트들에게 유리할까요?”
선오가 질문인지 시험인지 모를 말투로 묻자,
팀원들은 잠시 고민했다.
“저는···. 추석 특집이라는 틀에 맞게 가벼운 톤으로 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우리 아티스트의 이미지만 생각한다면, 개그 느낌은 역시 빼는 게 좋다고 봅니다.”
팀원들의 의견이 갈리자 선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 앞에 섰고,
“자, 프로그램의 톤을 하나가 아니라 여럿으로 나눌 수 있다면요?”
화이트 보드에 세로선을 길게 2개 긋으며 보드를 셋으로 나누었다.
이에 눈치를 챈 팀원들이 상기된 말투로 한마디씩 했다.
“세 코너의 톤을 다르게 가져가자는 말씀이신가요?”
“아아, 그 방법이 있었네요!”
“가운데 ‘음악 오락관’에서 망가지는 모습 보여주는 건 픽스고···. 그럼 시작 부분과 끝부분은 우리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챙겨도 될 것 같습니다, 팀장님.”
유은주의 마지막 정리에 다른 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선오의 반응을 살폈다.
“네, 저도 그게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본업할 때는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거죠.”
“그 말씀은···. 마지막 순서 ‘너네곡 우리곡’은 같은 성별의 선후배 아티스트끼리 곡을 바꿔서 무대 준비를 하면 될까요?”
선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팀원들이 알아서 회의를 이어가는 분위기가 되었다.
상석의 선오는 팀원 선발 때부터 의도하고 예상했던 그 모습을 흐뭇하게 확인하며 바라보았다.
“첫 순서인 ‘목소리를 맞춰봐’도 괜한 개그 욕심은 빼고, 우리 아티스트의 장점이 돋보이는 선곡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첫 코너의 톤이 그렇게 정해진다···. 그럼 출전 아티스트도 무조건 보컬 라인으로만 내보내면 되겠네요.”
이제 JK엔터 소속의 각 그룹 메인보컬 및 리드보컬 그리고 솔로 1, 2세대 가수를 위주로 첫 코너 출연자를 정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팀장님, 쿼드스텔라는 넷 다 내보내도 될 것 같은데요?”
“류치열이 다른 셋보다 조금 아쉬운데, 그래도 다른 그룹이랑 비교하면 보컬라인이 맞긴 해요.”
“그래요? 류치열이요?”
세 팀원이 잠시 갑론을박을 벌였고,
선오가 끝에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