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77
“이렇게 레슨 받는 건, 부모님 말고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돼. 비밀이야. 처음에 안 실장님 만났을 때 이야기 들었지?”
“네. 잘 지키고 있어요.”
“그래, 좋다.”
“쌤한테 작곡 레슨 받는 것도 비밀로 할게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으며, 어떻게든 그 길을 찾아 걸으려는 뚜렷한 욕망.
선오는 여느 초등학교 6학년 아이에게서 쉽게 볼 수 없는 눈빛을 윤설에게서 보았다.
“그럼 오늘은 설이가 좋다고 했던 곡을 분석해보는 걸로 레슨 시작하자.”
선오가 오선 노트에 펜을 들고는 레슨을 시작했다.
“내중너의 멜로디 라인을 살펴보면, 이렇게···. 인트로-벌스-프리코러스-코러스 구조로 1절을 나눌 수 있고, 2절도 역시 벌스부터 시작해서 같은 구조가 반복돼.”
“오오! 진짜네요?”
윤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총명하게 빛나는 눈빛, 신기하고 즐거워하는 표정. 가르칠 맛이 나는 아이였다.
곡의 형식에 대한 레슨이 끝난 뒤,
“설이가 좋아하는 곡들 전부 분석해서 여기 이메일 주소로 보내줘. 선생님 주소야. 매주 금요일 밤까지 보내주면, 일요일까지 답장 줄게.”
“전부요?”
“응, 설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만.”
“네!”
숙제를 내줬는데 잔뜩 신나 보이는 윤설이었다.
“설이 숙제 좋아하는구나?”
“숙제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는 거예요. 이런 얘기 할 수 있는 사람이 평소에는 없었거든요. 레슨 쌤들이랑만 할 수 있어요.”
윤설의 설레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이러려고 만들었구나. 지평 키다리.’
선오는 뿌듯함을 느꼈다.
윤설의 방을 나서며 부모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이 아이의 음악적 열정과 재능, 특히 독보적인 음색과 보컬에 대해 가감 없이 설명을 했고,
“저를 비롯한 지평 키다리의 시스템과 다른 후원자들이 설이를 도울 겁니다. 비밀유지조항만 신경 써서 잘 지켜주시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설이 말이 유명한 작곡가 선생님이라고 하시던데···. 정말 우리 설이가 그렇게 뛰어난가요?”
“네, 뛰어납니다.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새 역사를 쓸 그런 아티스트가 될 겁니다, 설이는.”
선오가 힘을 주어 진지하게 말했지만,
설이의 부모님은 못 믿겠다는 듯이 다시 묻거나 두 눈을 끔벅이며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했다.
상관없었다.
선오의 말은 시간이 증명해줄 테니까.
이번 삶을 살게 된 이후로 미래는 언제나 선오의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대가 됐다.
윤설의 미래 그리고 선오 자신의 미래까지 말이다.
* * *
“팀장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 먹여 키워주시느라···.”
유은주, 고혜리, 그리고 최철수.
세 사람은 선오가 출근을 하자마자 팀장실 문을 두드렸다.
그들이 쪼르르 서서 선오에게 내민 것은,
“이게···. 뭡니까?”
“지갑이요.”
“방금 ‘추석 오락실’ 마지막 모니터링 보고서까지 올리고, 오늘로 이 TF팀은 이제 진짜 마지막이잖아요.”
“그동안 팀장님께 정말 감사했고, 많이 배웠는데 그냥 헤어지기는 저희가 너무 섭섭해서요.”
유은주와 고혜리가 징징거림이 묻어나는 투로 재잘댔다.
그들의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자그마한 선물 상자를 받아드는 선오였다.
“다음부터는 이런 거 절대로 하지 마세요. 오늘은 받겠습니다. 거절도 예의가 아닌 거 같으니···. 하지만 정말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다음부터는 얄짤없어요.”
“네!”
그러고 보니 지갑이 살짝 낡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드를 꺼낼 때 직원들의 눈에 띌 정도였나보다.
기존에 갖고 있던 계속 지갑을 쓴 거라 얼마나 오래됐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때,
“팀장님, 그동안 많이 배웠습니다. 보여주신 추진력, 열정, 리더십···.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멀뚱히 서 있던 최철수가 거의 폴더처럼 숙이며 인사했다.
“제가 아직 작곡 실력이 미숙해서 입사한 후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었는데···. 이번 팀에 들어와서 보람도 많이 느끼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도 많이 생겼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팀장님.”
그 모습을 보며 빙긋 웃는 선오였다.
“철수 씨는 배우는 속도가 빨라서 잘 할 겁니다. 지금처럼만 계속하면 나중에는 곡도 잘 쓰게 될 거고요.”
이는 사실이었다.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철수는 팀장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소리로 인사했다.
덩치는 커다란 그였지만 어쩐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이다.
“허허···.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표정들이 왜 그래요?”
“팀장님이랑 같이 야근하던 거 많이 그리울 것 같습니다.”
“야식먹던 게 그리운 게 아니고요?”
“아..아닙니다!” “아뇨!”
“앞으로도 팀 안에서 같이 일할 날이 많이 있을 겁니다. 나도 그동안 세 분과 함께여서 힘이 많이 됐고, 즐거웠습니다.”
선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 사람의 손을 한 번씩 잡아주었다.
처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팀장이라는 자리에 앉았을 때,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고 생각했던 선오였다.
다만 자신의 목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앉아야만 하는 자리, 견디고 적응해야만 하는 자리라고 여겼다.
‘해볼 만 하네. 나름 보람도 있고.’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어느새 부하직원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능력을 끌어내어 주며 협업하는 법에 익숙해지는 중이었으니까.
* * *
치이이이익——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삼겹살이 익어가는 불판을 사이에 두고 김록기 대표가 선오를 향해 물었다.
그동안 점잖고 조용한 식당을 주로 다니던 김록기는 오늘은 어쩐 일인지 소주와 삼겹살이 당긴다며 이곳으로 왔다.
“M프라임과 일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정년을 1년 남겨놓은 예능 국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합니까?”
“아···. 그렇게 됐군요. 처음 듣습니다.”
선오 역시 적잖이 놀랐다.
“네, 내일 엠바고가 풀리니까요. 조금 전에 M프라임 사장이 나한테 직접 사과하면서 전해준 소식이었습니다. 거기에 대고 티는 안 냈지만 무슨 일인지 전혀 보고를 받은 바가 없어서 당황했습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씀을 안 드렸습니다.”
선오는 김록기에게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자신이 낸 아이디어로, 장영호 피디와 기획을 함께 했던 일.
그런데 그 기획을 예능 국장이 완강하게 반대해서 난항을 겪었던 것.
그러다 광고 투자를 받았고, 다행히 거기서 선오와 장영호의 기획을 마음에 들어 해주어 위기를 헤쳐나갔던 일까지 말이다.
“많은 일이 있었군요···.”
쪼르르르르——
김록기는 선오의 술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선오도 소주병을 받아들고 김록기의 잔을 채웠다.
두 개의 술잔이 불판 위에서 경쾌한 소리를 내며 맞닿았고, 두 사람은 원샷으로 시원하게 술잔을 비웠다.
“예능 국장님이 사퇴까지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선오가 삼겹살을 집어 먹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 사장도 나처럼 이런 전말을 몰랐다가 ‘추석 오락실’이 대박 터진 후에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장영호 피디 그 사람 KBC로 갔다는 말이 있던데, 그거랑 관련 있지 않을까요?”
“네, M프라임 사장님은 정규 편성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내일 언론에는 이런 속사정은 숨기고 예능 국장의 사퇴만 발표되겠죠.”
삼겹살집에 들어설 때부터 잔뜩 굳었던 김록기의 표정이 이제는 많이 누그러졌다.
“나는 굉장히 심각한 일이 있었던 건 줄 알았습니다.”
“국장님 때문에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장영호 피디님이랑 마음 맞춰서 재밌게 잘했습니다.”
“다행입니다. 결과도 초대박이었고요. 정말 수고 많았어요, 129 팀장.”
“감사합니다.”
김록기가 웃으며 말하자 선오도 미소가 지어졌다.
“팀장 되고 맡기에는 가볍지 않은 업무였는데 내 기대 이상으로 정말 잘 해줬어요. 시청률 10%대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공중파도 아니고 케이블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김록기였다.
“결국 그 광고 투자가 구세주였던 거네요.”
“네?”
“M프라임 국장과의 사투에서 단번에 판을 뒤집어준 게 광고 투자였다면서요. 거기서 129 팀장의 아이디어를 마음에 들어했다고.”
“아, 네···.”
“어디였습니까? 그 광고?”
김록기의 물음에 선오는 쉽사리 ‘지평그룹’ 이라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지평그룹과 얽히고 있는 선오였으니까.
작년 CM송부터, 올해 로고송도 그렇고,
게다가 지평학 회장이 JK엔터와 129라는 작곡가에게 적잖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을 김록기 대표 정도라면 모를 리가 없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건지는 몰라도 쉽게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 선오였다.
“아, 그게 어디였더라···. 사실 제 일은 프로그램 내적인 부분 관련 협업과, 저희 아티스트를 돋보이게 하는 부분 위주로 신경을 써왔던 터라···. 어느 광고였는지 듣긴 한 것 같은데 잊어버렸습니다.”
궁색한 변명이라고 해도 할 수 없었다.
혹여 나중에라도 문제가 될 만한 의심의 빌미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지평그룹 쪽이라고 들었는데···. 아니었나요?”
이어진 김록기 대표의 되물음.
선오는 침을 꼴깍 삼켰다.
최고의 걸그룹, 비운의 멤버
“아아, 네! 그랬던 거 같아요. ‘달달 핫초코’ 였던 것 같아요. 맞을 겁니다.”
김록기 대표가 던진 말에 불현듯 생각이 났다는 듯,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둘러대는 선오였다.
“지평그룹이 129팀장한테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쪽에서 저한테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아마도 이든이한테 관심이 있는 듯합니다.”
이 말에 김록기 이사가 입술을 오므리며 눈을 깜박거렸고, 선오는 얼른 말을 이어나갔다.
“작년 ‘미녀는 자연을 좋아해’ 때도 그랬고, 이번에 ‘달달 핫초코’도 그랬고요. 저는 단지, 이든이랑 같이 음유에서 상을 탔고 그때 저희 둘의 조합을 좋아해 주는 팬분들이 계셔서 묻어간 건 같습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김록기였다.
그렇다고 깨달은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걸까.
“··· 그럼 혹시 이든킴이 지평그룹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요?”
생각지 못한 김록기의 물음.
선오는 그저 눈만 끔벅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다른 멤버들은 계약할 때 부모님 중 적어도 한 분은 동행을 하셨거든요. 근데 이든킴만 혼자였어요. 그러고 보니 그 아이는 가족이나 집안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네요···.”
김록기 이사는 아티스트를 뒤에서 잘 챙겨주기로 유명했다.
대놓고 생색을 내기보다는, 아티스트의 신상이나 기호를 섬세하게 파악해두고 있다가 필요한 타이밍에 잘 나서곤 했다.
“쿼드스텔라는 물론 우리 아티스트 전체에서 이든킴 그 친구만 베일에 싸인 느낌입니다. 저한테는···.”
하지만 선오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든킴의 집안 사정은 김록기 이사가 지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것과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이든이가 밝히고 싶지 않아 하는 부분이니 내가 나서면 안 되지.’
때문에 선오는 김록기의 말에 동조하지도 않고, 진실을 떠벌리지도 않은 채 함구하기로 했다. 이든킴을 위해서, 선오 자신을 위해서.
만일 나중에 모든 게 밝혀지는 날이 왔을 때, 김록기 대표라면 결국 이렇게 함구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해주지 않을까 내심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그건 그렇고. 굿엔터에 ‘하이걸즈’ 재계약 소식 들었어요?”
다행스럽게도 김록기가 먼저 화제를 돌렸다.
“하이걸즈 재계약이요? 어떻게 됐습니까?”
“5명 중에 1명 빼고 4명만 재계약에 성공했다는 말이 돌고 있어요.”
“그 1명은···.”
“리원. 메인보컬이요.”
“아···.”
이것은 이전의 삶과 같은 흐름이었다.
굿엔터의 걸그룹 ‘하이걸즈’는 2세대를 대표하는 여자 아이돌이었다.
한때 연말 시상식을 휩쓸고 몇 년 전에는 ‘초통령’이라는 별명까지 붙을 만큼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으니까.
허나 작년쯤부터 가요계에는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었다.
새로운 그룹들이 하이걸즈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고,
요즘 선전하기 시작한 아이돌들을 2.5세대라고 칭했으며, 이제 데뷔 5년 차가 넘어가는 그룹은 2세대라고 칭했다.
“리원이 그 멤버만 재계약이 불발된 건, 굿엔터의 결정이었나요, 아니면 리원 본인의 결정이었을까요?”
“그건 모릅니다. 양쪽다 가능성이 있거든요.”
그랬다.
그동안 ‘하이걸즈’가 너무 대놓고 센터 2명만 밀어준다는 말이 앨범을 낼 때마다 돌았다.
“직전 싱글 앨범에서도 리원이 그 친구 파트가 8초였나? 다른 멤버들은 20-30초인데 반해, 메인보컬치고 너무 파트를 못 받아서 말들이 많았잖아요. 굿엔터에서 꾸준히 차별한 걸 보면, 애초에 리원은 방출할 생각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
김록기의 말에 선오도 고개를 끄덕이며 지난 기억 그리고 전생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최고의 걸그룹, 비운의 멤버.”
“딱 그 말이 맞네요. 근데 또, 리원을 대놓고 내쳤다기에는 그럼 이제 ‘하이걸즈’의 보컬 라인이 너무 약해진다는 문제가 있어요. 걔네 데뷔할 때는 립싱크도 통했지만, 이제는 라이브 안 하면 안 되는 시대가 되어버렸으니까요.”
“그럼 리원이 본인의 의지로 재계약을 거부했을 가능성도 있네요.”
이것만큼은 지난 삶에서도 끝끝내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때도 온갖 추측만 난무했었다.
“뭐가 됐든. 우리야 좋죠. ‘하이걸즈’가 다시 치고 올라와서 ‘유리아이’의 자리를 위협할 가능성은 낮아졌다고 봐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