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78
김록기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암튼 굿엔터 ‘하이걸즈’는 남은 4명의 멤버만 데리고 이번 겨울 싱글 앨범을 준비 중이라고 하네요. 2.5세대 신인들한테 묻히지 않고 합류하기 위해 아주 작정했다고 들었어요. 아직 공식 발표는 전이지만.”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는 선오였다.
하이걸즈가 유리아이를 비롯한 2.5세대 신인들을 위협할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생의 흐름과 같다면 말이다.
방심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긴장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우리는 이번 겨울은 예정대로 쉬어가면서 내년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쓰려고 해요. 129 팀장도 좀 쉬는 게 좋을 것 같고요. 올해 쿼드스텔라로 크게 한 건 했으니···.”
“한 건 했다기에는 저 혼자 만든 건 아니라, 쑥스럽습니다···. 쿼드스텔라가 잘 된 건 메인 프로듀서였던 정기석 선배님과 대표님께서 뒤에서 서포트 해주신 덕이 큰 거 압니다. 감사드려요.”
이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김록기였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제 다음에는 129팀장이 단독 프로듀싱을 해보는 거 어떻습니까?”
선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 팀장으로서 팀원들을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서포트하는 임무를 맡길 줄 알았으니까.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소 평가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남에게 공을 돌릴 수 없게, 129팀장 단독으로 프로듀싱을 맡겨보고 싶어요, 내가.”
쪼르르르——
김록기 이사는 마지막 남은 술을 선오의 잔에 따라주었다.
짠——
두 잔이 경쾌하게 부딪침과 동시에,
“쿼드스텔라 자리 잡은 것도, 핫초코 로고송도, 추석 특집 예능도.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김록기가 이렇게 말하며 선오를 향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부하직원의 마음을 잘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없던 스트레스도 싹 가시는 것 같네.’
선오의 얼굴에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푹 쉬면서 단독 프로듀싱 고민해봐요. 내년 대비 맡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는지.”
“네, 찾아보겠습니다.”
* * *
한편,
업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소문의 주인공. ‘하이걸즈’의 리원은 방구석에서 홀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리원아, 나 진짜 실망. 이렇게 우릴 배신해?] [왜? 솔로로 나가게? 우리 버리고 너 혼자 잘 될 수 있을 것 같니?] [리원쓰! 이사님 말이 네가 정산 비율 마음에 안 든다고 나갔다던데ㅋ 진짜야? 거짓말이라고 해줘. 안 그럼 쌍욕 할 거 같으니까ㅋ] [리더로서, 언니로서 하고 싶은 말은 존나 많은데···. 긴말 안 할게~ 얌전히 재계약 해라~]다른 멤버들로부터 계속해서 협박에 가까운 문자를 받고 있을뿐더러,
[ – 부재중 전화 21통 – ]굿엔터의 이사를 비롯한 직원들로부터 빗발치는 전화를 애써 피하고 있었다.
“분명히 말했잖아요···. 그런 조건으로는 재계약 못 한다고···.”
5명의 멤버 모두 동등했던 정산 비율을, 이번 재계약 계약서에서는 멤버별로 차등을 두고 있었는데, 5명의 멤버 중 리원이 꼴찌였다.
그것도 다른 멤버들과 상당한 격차를 두고서.
그동안 점차 줄어들었던 자신의 보컬 파트처럼 말이다.
“파트가 줄어도 내 잘못이려니, 더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날 완전히 꼭두각시에 병풍 취급하는 거잖아. 그냥 전원 재계약 구색만 맞추려고···.”
리원은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며 이것저것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 더는 못 참아!”
자신을 구원해줄 새로운 소속사, 새로운 프로듀서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 * *
며칠 후,
“하필이면 JK엔터를 찾아오신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팀장실에서 의외의 손님과 독대한 선오였다.
선오의 앞에는 리원이 앉아있었다.
그녀에게는 직전 활동의 흔적이 역력했다.
아직 금발을 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모자를 푹 눌러쓴 채였지만, 커다란 눈망울과 오똑한 코. 또렷한 이목구비까지 가릴 수는 없었다.
‘굿엔터가 이 친구를 버린 건 아니고, 이 친구가 제 발로 나온 거였구나.’
굿엔터와의 재계약을 거절하고 라이벌 기획사를 찾아온 멤버라니.
여러모로 튀었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JK엔터가 아니라, 129 피디님을 찾아 온 거예요.”
지금 리원은 툭 건드리면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모르지 않는 선오였기에 대화는 짧게 본론만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솔로를 하고 싶다고요. JK엔터.. 아니, 저랑?”
“네.”
“솔로를 원하는 이유는 리원 씨의 실력을 팬들과 대중들에게 증명하고, 무엇보다 ‘하이걸즈’를 이기고 싶은 거겠죠?”
맞은 편에 앉은 그녀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디님께서, 유리아이와 쿼드스텔라를 성공시키신 장본인이시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어요. 지금 저는 절박하거든요.”
선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제게 솔직하게 말씀을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저도 판단이라는 걸 내릴 수 있을 테니까요.”
이에 리원이 물음표를 띄우며 선오를 보았다.
“소속사에서 파트 차별을 한 건 이미 드러난 거고, 그뿐만 아니라 멤버들 사이에서도 은따를 당했다고 알고 있어요. 맞나요?”
이는 전생에서도 추측으로만 꼬리에 꼬리를 물었을 뿐인 소문이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리원이었다.
“네···. 맞아요···.”
“아픈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물어볼게요. 은따를 당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이 질문에 리원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 처음에는. 제가 좀 소심해서 대화에 잘 못 꼈어요. 그러다가 싱글 2집부터 제가 살이 쪄서···.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했고요.”
“하지만 다이어트에 성공했잖아요.”
지금 눈앞의 그녀는 여느 걸그룹 멤버들처럼 마른 체구였다.
화면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여리여리하고, 외모도 ‘하이걸즈’의 센터 2명에 비해 별로 밀리지 않았다.
“그냥 멤버들은 저를 따돌릴 이유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선오는 입술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테스트를 위해 던진 질문이었다.
일종의 멘탈 테스트.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줄 아는 걸로 봐서 멘탈은 건강하네요. 그동안 리원 씨가 많이 힘들었을 텐데···.”
이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녀였다.
선오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지난 삶의 일이 떠올랐다.
4명으로만 활동하던 ‘하이걸즈’는 성적이 시원치 않자 훗날 새 멤버를 영입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새로운 멤버를 은따시킨 정황이 드러나며 대중들의 비난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그룹이 되고 말았다.
그때 하이걸즈의 오랜 팬들 사이에서는 리원의 이름도 오르내렸다.
– 예전에 리원이도 은따시켜서 재계약 안 한 거 아냐?
– 아니면 쟤네가 리원이 재계약 못 하게 막았던지.
– 음색은 리원이가 최고였는데···. 음색 요정 리원이 그리워ㅠㅠ
– 노래도 잘하고 분위기 존예인데 굿엔터는 리원이를 왜 버렸지?
– 항상 의문이었어. 왜 센터 2명만 밀어주는지! 리원이도 푸쉬 받았으면 센터 못지않게 떴을 텐데!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나 솔로로 활동하며 간간이 음반을 내던 리원을 선오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선오는 굳게 다물었던 두 입술을 떼며 말했다.
“내가 언제까지 결정하면 되죠?”
“피디님 편하신 대로요. 저한테는 지금 플랜B가 없거든요. 오직 129 피디님이라는 플랜A 하나예요.”
확고한 어조로 말하며 선오를 향해 두 눈을 빛내는 그녀였다.
2연타 홈런
* * *
이튿날 점심.
선오는 오랜만에 정기석 선배와 밥을 먹었다.
“3팀 애들이 수군대던 거 진짜냐?”
정기석의 물음에 선오는 계속해서 삼계탕 국물을 떠먹을 뿐이었다.
그가 주위를 의식했는지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다시 물어왔다.
“하이걸즈 리원이가 진짜 우리 회사, 아니 널 찾아왔어?”
“네.”
짧고 명료한 대답.
정기석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벌써 굿엔터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 건지···. 기사가 너무 편파적으로 났더라.”
선오도 점심을 먹으러 오기 전에 그 기사들을 접했다.
「굿엔터, “하이걸즈, 리원 외 전원 재계약···4인조 재편”」
「’하이걸즈’4人, 자필편지로 재계약 심경 전해…”리원의 선택에 놀란 것 사실이나, 응원하기로 마음 모아”」
「하이걸즈, 리원 제외 6인과 재계약··· “리원 선택 존중”[공식]」
「굿엔터, “리원의 재계약 불발에, 하이걸즈 멤버들 충격에 빠져있어.”」
「하이걸즈 리원 탈퇴…이유는? “우리도 모르겠다.”」
기사의 내용, 즉 굿엔터에서 뿌린 보도자료는 리원이 단독 행동을 하여 팀원들과 팬들을 배신했다는 뉘앙스로 교묘하게 쓰여있었다.
어제 리원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와 오전에 뜬 이 기사들을 곱씹고 있자니, 선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노력도 미친 듯이 하고, 실력도, 재능도 있는데 정치 싸움에서 밀렸다라···.’
자꾸만 지난 삶의 스스로가 떠올라 표정이 어두워지는 선오였다.
그때의 오선지는 재능이 부족했지만, 리원은 달랐다.
‘만약 내가 프로듀싱하는 걸로, 리원이 하이걸즈 멤버들에게서 완전히 벗어나 훨훨 날 수 있다면? 전생에서보다 더 일찍 솔로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
그래서 선오의 단독 프로듀싱 능력까지 인정받게 된다면 굉장히 뿌듯한 작업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너 리원이 진짜 맡을 거야? 남의 집 싸움에 끼어드는 거 아니랬어.”
정기석은 우려 섞인 목소리로 선오의 반응을 살폈다.
“실력이 없는 멤버면 모르겠는데, 그간 푸쉬를 못 받아서 못 뜬 거잖요. 도와주고 싶어요.”
“내가 너 그런 생각 하고 있을 줄 알아서 너랑 밥 먹자고 한 거야. 괜히 휘말렸다가, 혹여 리원이 솔로 잘 안 되기라도 해봐. 너 본전도 못 찾고 욕만 먹을 수 있어.”
이제 정기석은 아예 팔을 걷어붙이고 선오 쪽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음반이라는 게 잘 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데, 평타쳐도 괜히 하이걸즈랑 비교돼서 폄하 당할까 봐 그러는 거지, 난···. 하이걸즈가 그래도 왕년에는 탑 찍었던 애들인데···.”
이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선오였다.
“네가 들어도 일리 있지? 리원이 건은 거절하는 거다?”
“선배 말 듣고 나니까 해야겠어요.”
“뭐어?”
선오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마음을 정한 듯 후련한 표정으로 말이다.
“최고의 걸그룹, 비운의 멤버. 선배의 걱정과 정반대로 제가 그 친구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는다면, 하이걸즈보다 더 잘 나가게 만든다면···. 재밌지 않겠어요?”
이 말에 정기석은 어안이벙벙한 얼굴이 되었다.
* * *
“정말 후회 안 하겠어요, 129팀장?”
선오는 그 길로 회사에 들어와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리원을 프로듀싱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김록기 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성실하고 재능과 실력 모두 갖춘 친구가 이렇게 억울하게 정치질에 희생당하는 꼴을 지켜만 볼 수가 없습니다.”
피식 웃는 김록기였다.
“129팀장 답네요.”
그리고는 다시 우려가 가득한 얼굴로 선오를 보는 그였다.
“하지만 나는 회사 대표로서,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해합니다, 대표님.”
선오는 리원을 성공시킬 자신이 있었지만,
그 자신을 남들에게 설득할 자신은 없었다.
이미 경험하고 온 미래에 대해 설명할 수는 없었으니까.
때문에 말은 짧게, 대신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겠다는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 이번에도 나는, 129팀장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는 건가요?”
흔들림 없는 선오의 눈빛.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부딪히다가,
먼저 시선을 돌린 건 김록기였다.
“··· 좋습니다.”
그가 결심한 듯 옆에 놓인 인터폰을 누르고는 비서를 호출했다.
“리원 씨 안으로 모셔줘요.”
이윽고,
똑.똑.똑——
“네.”
대표실 문이 열리며 금발의 여리여리한 미소녀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리원은 차분히 인사를 건네고는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리원 씨, 솔직히 말할게요. JK엔터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이 계약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에요.”
김록기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이며 천천히 끄덕이는 그녀였다.
“특히 나는 음악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업하는 사람이라 계산기를 먼저 두드릴 수밖에 없거든요. 그랬을 때, 이 계약은 분명 리스크가 큽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은 계약이라는 뜻입니다.”
김록기 대표가 아티스트에게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