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88
“서두르세요! 리원이 솔로 앨범 나온다는 소식 들었죠? 미니 앨범으로.”
“네⋯.”
“적어도 그것보다는 성적이 좋아야 해. 알죠? 하이걸즈는 무조건 잘 돼야 한다고.”
이사는 최근에 낸 싱글이 망한 후, 울상을 지으며 자신의 품에 안기던 리더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가 꼭 그렇게 만들어주기로 약속했으니까.”
“네, 이사님.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말끝을 흐리는 팀장을 향해,
이사가 답답하다는 듯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리원이 솔로 앨범에 리메이크곡이 실리는 모양입니다.”
“리메이크?”
“네, 서희한테 리메이크 허락을 받아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서희? 에이⋯. 그건 너무 갔다. 데뷔한 이래로, 단 한 번도 리메이크 허락을 한 적 없는 양반인데?”
“⋯ 그래서 문제인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슈가 될 테니까요.”
“⋯ 정말 확실한 겁니까? 서희 리메이크?”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눈썹을 치켜뜨는 이사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조필영 선생님께도 리메이크 허락을 구하러 접근했다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조필영 선생님?”
이렇게 되묻는 이사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쪽은 또 내가 바로 확인해볼 수 있지.”
곧바로 전화를 들더니 익숙한 듯 번호를 누르는 이사였다. 몇 번의 신호가 가더니,
“선생님! 잘 지내셨죠?”
전화 너머로 조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하이걸즈 애들 다음 앨범에 선생님 곡을 리메이크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이에 옆에서 잠자코 있던 기획팀장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직 하이걸즈 앨범의 컨셉조차 불분명한 상태인데, 일언반구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네, 구체적인 건 조만간 저희 애들이랑 찾아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혹시⋯.”
잠시 말을 고르더니,
“저희 말고도 최근에 선생님 곡을 리메이크하고 싶어하는 곳이 또 있었나요?”
본론을 내뱉는 이사였다.
“아⋯. 있었군요. JK엔터⋯.”
그가 고개를 들어 기획팀장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획 팀장의 말대로 JK엔터에서 조필영에게 리메이크 제안을 건넨 모양이었다.
“물론 선생님께서 리메이크 허가를 쉽사리 내주시지 않겠지만, 만약 허락해주신다면 그건 저희 회사 앨범이었으면 합니다. 저희가 선생님을 최고로 대우해드릴 수 있는 곳이니까요. 편곡이든, 개런티든 모든 면에서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것 그 이상을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아시죠? 제가 선생님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하는지?”
이사는 전화에 대고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거의 읍소했다.
“네, 그럼 선생님 편하신 시간 2, 3개 정도 저한테 문자로 보내주시면 맞춰서 찾아뵙겠습니다. 넵!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일단은 저희가 1순위인 거 맞죠?”
재차 확인하고는 이내 안심한 표정이 되는 이사였다.
“넵! 선생님,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확 차갑게 돌변한 얼굴로, 팀장을 향해 말했다.
“하이걸즈의 다음 앨범에 리메이크곡 1개가 들어가는 걸로 결정된 겁니다. 조필영 선생님의 곡으로.”
“⋯ 네, 음악제작 팀에도 전달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사님, 조필영 선생님께서 허락을 해주실지는 아직 미지수⋯”
“그러니까 어떻게든 허락을 받아내란 뜻이지! 사과 박스를 준비하든 뭘 하든! 말귀를 그렇게 못 알아들어?”
이제 팀장은 완전히 질려버린 얼굴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도망치듯 이사실을 빠져나왔다.
그의 깊은 한숨에 굿엔터 사옥 복도가 꺼질 듯했다.
‘조필영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본인이 더 잘 알면서⋯. 이사 새끼⋯.’
팀장은 이사실 푯말을 노려보다가,
‘JK엔터는 서희를 어떻게 설득한 거지? 그 방법이라도 알면 벤치마킹할텐데⋯. 서희를 설득했으면 조필영도 설득하는 거 아냐? 하아⋯. JK는 해내고 우린 실패하면 진짜 나는 사표 써야한다⋯.’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쳤고,
‘진짜 사과 박스라도 준비해야 하나? 소문에는 조필영이 돈독이 올라서 판권료 많이 쳐주면 허락한다는 말도 있던데⋯.’
굿엔터의 기획팀장은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봅니다만
* * *
조필영의 자택.
한강이 훤히 내다보이는 고급 주택이었다.
“안된대두! 그만 돌아들 가.”
조필영은 손을 훠이훠이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선오와 리원은 포기할 수 없었다.
“선생님, 저희가 보내드린 음원이라도 한 번만 들어봐 주시면···.”
“어허, 젊은 사람들이 말귀를 이렇게 못 알아들어? 됐대두. 딱 봐도 내 곡의 감성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시간 낭비라니까?”
리원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다시금 확고하게 거절 의사를 내놓는 조필영이었다.
“나는 20대 초반 아이돌이 내 노래 가지고 장사하는 게 싫어. 감성도 소화 못 하는 것들이···. 쯧쯧···. 리메이크를 정 하고 싶거들랑 나이 더 먹고 서른 즈음에 다시 와.”
이제는 아예 소파에서 일어나 선오와 리원을 몰아내려는 시늉까지 하는 그였다.
선오가 예상했던 대로 섭외 난이도 1순위 조필영다웠다.
그때,
내 고향——
그곳에 두고 온 내 꿈——
이제 그 꿈을 다시 꿔보려 합니다——
리원이 돌연 노래를 시작했다.
조필영의 ‘서울살이’.
리메이크 허락을 구하고자 데모 음원을 보냈으나 이마저도 한사코 거부하고는 듣지 않은 그의 앞에서,
무반주로 시키지도 않은 노래를 시작한 그녀였다.
선오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놀라지 않고 빙긋 웃었다.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조필영이었다.
아니, 당황한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그사이 어딘가의 얼굴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다시 뒷걸음질 치듯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렇게 소파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두 눈을 끔벅거리며, 리원의 노래를 감상했다.
고단한 매일 속에——
고향과 함께 잊어버렸던 꿈——
이제는 다시 꺼내 보려 합니다——
이제 다시 꿈 꾸려 합니다——
고요하게 울려퍼지던 그녀의 노래가 끝나자,
조필영의 자택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선오는 조필영을 살피며 침을 꼴깍 삼켰고,
조필영은 두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얼마쯤 흘렀을까.
“··· 들어나 보자. 데모.”
그가 툭 내뱉은 말에,
선오는 부리나케 휴대폰과 휴대용 고급 스피커를 꺼내어 연결했고,
조금 전 무반주로 들었던 리원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스트링, 기타, 베이스 등등 여러 가지 악기 소리와 함께 말이다.
“··· 편곡을 잘했네.”
이를 잠자코 듣던 조필영은 또 한마디를 툭 던지더니, 데모 음원 재생이 모두 끝난 뒤에는 아무 말 없이 선오와 리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한 번 더 들려드릴까요, 선생님?”
리원이 조심스럽게 묻자,
조필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충분하다.”
한숨을 한 번 푸욱 내쉬고는,
“리원이라 했지? 니 혹시 타향살이하나?”
리원을 향해 물었다.
“네? 아, 네···. 포항 출신입니다.”
“포항?”
“부모님이랑 가족, 친척들은 전부 포항에 계세요.”
“그래? 근데 말투에서 티가 하나도 안 나네?”
“감사합니다. 연습생 때 사투리 엄청 혼나가면서 고쳤거든요.”
“어이구, 경상도 사투리 고치기 힘든데···.”
“하하. 죽도록 노력하면 안 되는 건 없더라고요.”
“··· 근데 다행히 그 감성은 안 잊고 잘 간직하고 있구나.”
이렇게 말하며 리원을 바라보는 조필영의 눈빛이 어쩐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 * *
“천천히 먹어요.”
“아침부터 긴장돼서 아무것도 못 먹었거든요. 너무 맛있네요, 이 집 떡볶이.”
리원은 매운지 연신 씁씁거리며 물을 마셨다.
“매워 보이는데···.”
“제가 맵찔이기는 한데, 오늘은 매운 게 당겨서요.”
조필영에게 가까스로 허락을 받고 나오자마자 이 떡볶이 집을 가리킨 그녀였다.
‘피디님! 우리 떡볶이 먹고 가요!’
라고 소리치면서 말이다.
새빨개진 입술로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 그녀를 보며 선오는 피식 웃었다.
“리원 씨, 나이스 타이밍이었어요.”
“네? 아···. 노래요?”
조필영을 만나기 전, 정 안되면 무반주로 노래를 불러보자는 계획을 먼저 내뱉은 건 선오였다.
그리고 리원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판을 깔아주려 부단히 노력한 선오였다.
하지만 그렇게 조필영이 대놓고 내쫓는 타이밍에 리원이 철판을 깔고 노래를 부를 줄은 몰랐다.
“자꾸 내쫓으려 하시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고 불러버렸어요.”
“하하하. 잘했어요.”
“어찌나 떨리던지···. 사실 피디님 옆에 계셔서 눈 딱 감고 부른 거지, 혼자였으면 절대 못 했을 거예요.”
“리원 씨 떨었어요? 너무 자연스럽게 잘 불러서 전혀 눈치 못했는데요?”
“어휴···. 심장 튀어나오는 줄···. 하마터면 피디님 손을 덥석 붙잡을 뻔했다니까요.”
그 순간을 떠올리고 있는 것인지 리원이 한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데 어떻게 아셨을까요? 제가 서울 출신 아니고 타향살이하는 거.”
“리원 씨의 노래에서 감성을 읽으셨던 것 같아요.”
“그런 게 느껴져요?”
“그런가 봐요. 조필영 선생님 같은 분은 우리가 살아온 날보다 더 오랜 시간 음악을 하신 분이니까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리원이었다.
“열심히 해야겠어요. 제 노래, 제 감성을 믿고 리메이크 허락해주신 거니까요···. 아, 그렇다고 다른 선생님들 곡을 덜 열심히 한다는 뜻은 아니고요. 다 열심히 해서, 이번 앨범 잘 해내고 싶어요. 정말로···. 제 가수 인생을 걸고요.”
리원은 그렇게 다짐을 하더니 고개를 들어 선오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내가 확실히 안목이 좋은 것 같다. 이번 앨범, 대박 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전의 삶에서부터 터득해온 감일까.
음악적 재능을 얻으며 안목 또한 얻은 걸까.
선오는 모두가 만류하던 리원과의 계약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선택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이제 선오의 감은 다음을 말해오고 있었다.
이번 앨범은 대박 예감이라고.
* * *
몇 주 후, 굿엔터의 어느 이사실.
이 이사실의 주인이 콧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는 사이,
똑똑똑——
“어, 들어와.”
이사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하이걸즈의 다음 앨범을 맡은 기획팀장이었다.
“이사님···.”
“왜? 하이걸즈 앨범은 잘 진행되고 있지? 조필영 선생님이 허락해주신 리메이크 작업도?”
“네···. 그건 잘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잘 되고 있는데 표정이 왜 그래?”
“조필영 선생님께서 저희한테만 허락해주신 게 아닌 거 같습니다.”
“··· 그러면?”
“······.”
“JK엔터? 리원이 앨범에도 리메이크를 허락하셨다는 말..이야?”
“··· 네, 이사님.”
“그럴 리가!!”
어느새 낯빛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한 이사는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들고 조필영의 번호를 눌렀다.
“아, 선생님. 그···. 다름이 아니라 저희 리메이크 허락해주신 다음에 혹시 또 다른.. 아티스트한테도 곡을 주셨는ㅈ···”
말을 전부 잇기도 전에, 듣고 싶지 않던 답이라도 들은 듯 이사의 낯빛이 더욱더 어두워졌다.
“아, 네···. 그..그럼요! 선생님께서 워낙 명곡을 많이 갖고 계시니까요···. 그러면 혹시 그 아티스트가···.”
전화를 들지 않은 다른 손으로 책상 위의 서류를 구기는 그였다.
“아, 네···. JK엔터 리원···. 알죠. 원래 저희 하이걸즈에 소속되어 있던 친구인데···. 이런 말씀 드리기 좀 그렇지만, 그 친구 사생활 문제가 있어서 저희가 조용히 방출했거든요. 네? 아···. 그..그렇죠. 그 친구가 그렇게는 안 보이죠.”
이제는 식은땀까지 삐질삐질 흘리기 시작했다.
“아···. 선생님께서 리원이를 그렇게 보셨다면···. 네, 네···. 그렇지만 저희 곡이 더 좋을 겁니다.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선생님.”
어느새 두 손으로 공손히 수화기를 쥔 모습이 된 그였다.
“네, 들어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