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9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미래가 기억나지 않으니 과거에서 힌트를 찾기로 했다.
예전의 경제 위기, 금융 위기에 대해 검색하고 읽어보고 또 찾아보았다.
이전 삶의 기억 또한 조금이라도 되살리려 애썼다.
그리고는 휴대폰에 안 실장의 번호를 검색했다.
안 실장은 이 집에 들어오던 날 개인 비서로 붙여준 사람이었다.
“안 실장님, 부탁드릴게 있어서요. 제 명의로 된 자산 규모를 전액 파악해주세요. 그리고···.”
잠깐 생각을 고르던 선오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달러랑 원유를 사려고하니 이것도 루트를 알아봐주시고요. 최대한 빠르게 부탁드릴게요.”
기억 속의 그녀
* * *
2008년 새해가 밝았다.
선오는 정글 오디오에 접속해서 새해 인사 겸 소식을 남겼다.
그동안 자신의 곡을 기다려주고 좋아해 준 사람들에게 이 정도 인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당분간 정기적인 곡 업로드가 힘들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 JK엔터로 출근해야하기 때문이지만 이런 것까지는 굳이 밝히지는 않았다.
그간의 관심에 대한 감사 인사와, 앞으로도 변함없이 음악을 할 것이나 개인적인 이유로 전처럼 자주 정글오디오에 접속하지는 못할 거라는 말을 남겼다.
– 그래도 여유가 생길 때마다 곡 갖고 들르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당연히 댓글 창은 순식간에 난리 통이 됐다.
ㄴ뭥미;; 129님 군대 가세요?
ㄴ 이건 백퍼 군대다.. 잘 다녀와요ㅠㅠ
ㄴ 정글러들 단체로 강제 곰신 되겠네ㅜㅜㅜ
ㄴ 그래도 올해부터 군 복무 기간 줄어듦 ㅅㄱ
ㄴ 건강하게 다녀오세요! 덕분에 그간 귀 호강했습니다..!
이는 선오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이었다.
“지선오 당연히 군필 아니었나?”
지선오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말해준 적은 없었으나 당연하게 군필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러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22살, 아니 이제 23살이지. 23살까지의 공백이 설명이 안 되잖아.”
선오는 이를 확인해보기 위해 곧장 지선재의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무슨 일?”
“형, 나 군대 말인데···.”
“군대? 왜? 너 면제 받은 거 때문에 JK에서 뭐라고 해?”
면제···?
“아, 아니. 뭐라고 하는 거까진 아닌데···. 사유를 궁금해하긴 하시더라고.”
“··· 대충 적당히 둘러대. 뇌종양 수술을 했었고 지금은 괜찮다든지.”
선오는 예상치 못했던 ‘면제’라는 단어에 잠시 어안이벙벙해 고개만 느릿하게 끄덕일 뿐이었다.
지선오처럼 부모님도 계시고 신체 건강한 놈이 면제일 줄은 생각도 못했으니까.
“내키지 않아도 그렇게 해.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잖아, 중증 우울증을···. 이젠 다 나았대도 보통 회사에서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시선이 곱진 않지.”
“그..렇지. 알겠어. 그렇게 해야겠다. 고마워.”
형의 방문을 닫고 작업실로 돌아오는 동안 선오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가족들한테 지선오가 아픈 손가락이었구나···.’
어쩐지. 아무리 나이 차 많이 나는 막내라지만 유독 애지중지한다 싶었다.
특히 형과 엄마의 특별 취급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밥만 잘 먹어도 감동하던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뭐든, 군대 안 가도 되는 게 어디야.’
이제부터 앞만 보고 달릴 생각이었기에 안도하는 선오였다.
* * *
이튿날.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JK엔터.
이곳의 꼭대기 층에 자리한 두 사람은 새해 첫날부터 마주 앉아 덕담을 나누었다.
‘조영준 대표 프로듀서’와, ‘김록기 이사’였다.
“새해 복 많이 받아, 록기 형.”
“영준이 너도.”
한 때는 마음이 맞아 동업을 했고,
지금도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에 어쩔 수 없이 함께하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올 상반기는 더블비 미니 앨범 스케줄 있고 하반기는···.”
“하반기 전에 초여름쯤 유리아이 애들 새 앨범도 있잖아.”
“유리아이 컴백은 7월 아니었어?”
“6월이 낫지 않나? 휴가철 전에.”
“······. 그래. 그리고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에 새 걸그룹이랑 보이그룹 한 팀씩 런칭있고.”
대표실 테이블을 사이에 둔 채로
조영준 대표와 김록기 이사는 각자 2008년 신년 기획안을 살펴보며 대화를 나눴다.
꼼꼼한 성격에 큰 그림을 조망할 줄 아는 김록기 이사가 한마디씩 보탤 때마다,
조영준 대표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에게 태클을 거는 것 같은 말투가 거슬렸기 때문이다.
“새 보이그룹은 런칭이 거진 1년은 미뤄진 거네?”
“어줍잖게 내보내는 것보다 잘 준비해서 제대로 보여줘야지.”
“그건 그래도 애들이 연습생 너무 오래 하면서 많이 지쳤을 텐데 빨리 데뷔시켜주자고.”
“······.”
“올해도 마음 맞춰서 잘해보자, 영준아.”
김록기 역시 내키지는 않았지만 먼저 손을 내밀었고, 조영준이 이를 맞부딪히면서 두 사람은 짧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촤악———
허공에 마주한 두 사람의 눈에서는 스파크가 튀는 것 같았다.
김록기 이사가 화제를 돌렸다.
“참, 오늘 음악제작팀 수습 들어온대. 2명.”
“어. 이번에는 잘 버텨줘야 할 텐데. 올해 앨범 낼 게 많잖아.”
“그러게. 둘 중 하나가 129라고 언더에서 최근에 유명세 탄 놈이더라.”
“129? 래퍼야?”
조영준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는 듯이 되물었다.
“아니. 작곡만으로 정글 오디오에서 맨날 순위권에 오르던 놈.”
“아, 정글 오디오···.”
“요새는 디깅 안 하나 봐? 그쪽은 원래 영준이 네 전문이었잖아.”
“형도 알다시피 내가 좀 많이 바빠졌잖아.”
김록기는 잰 척하는 조영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골프치고 술 마시고 여자 만나러 다니느라 바쁜 거 다 아는 데 말이다.
“아, 그놈이 그놈이구나!”
갑자기 조영준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팀장이 그러더라고. 오늘 들어오는 신입 중 하나가 계약할 때 조건을 붙여서 어이없었다고.”
“조건?”
“팀장이 직접 만나본 건 아니고 시니어 작가 하나가 강력 추천해서 영입하긴 했는데, 계약할 때 개인 활동 터치하지 말라는 조건을 달았다대?”
미간을 찌푸리며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을 하는 조영준과 달리,
김록기는 흥미롭다는 듯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129가?”
“걔겠지. 신입이 그것도 수습인데 개인 활동 보장해달라는 게 딱 유명세 등에 업고 하는 짓거리잖아. 그래봤자 언더에서 막 올라온 주제에···.”
“실력은 괜찮은 거 같더라.”
김록기가 두둔하자 조영준은
‘형이 뭘 알아? 음악을 알아?’
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간신히 눌렀다.
“그래봤자 신인이야. 크레딧 하나 없는 신인 나부랭이가 개인 활동? 재수 없어.”
“그 말 들으니 난 오히려 더 흥미가 생기는데? 129같은 친구가 우리 회사에서 어떤 음악을 할지 기대도 되고.”
조영준 대표와 김록기 이사는 오늘도 동상이몽이었다.
언젠가부터 의견이 맞는 법이 잘 없었다.
이사회에서 두 사람의 협업을 좋아했고, JK엔터의 실적도 분기마다 오르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한배에 머무르고 있는 것뿐이었다.
‘영준아, 누구 안목이 맞는지 두고 보자고.’
김록기 이사는 대표실에 더는 있고 싶지 않은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년 첫 회의는 이걸로 끝? 점심 같이 하고 싶지만 선약이 있어서 먼저 일어날게.”
“나도 외부 미팅이 있어.”
그렇게 김록기 이사가 대표실을 나가자마자,
조영준 대표는 물티슈를 신경질적으로 뽑았다.
하이파이브했던 손을 빡빡 닦았다.
“형 대접해 주니까 지가 상전 같고 그러지? 엔터사 임원이 프로듀싱 능력도 없는 주제에···.”
김록기도 건너편 이사실로 돌아가서는 겉옷을 챙겨입으며 읊조렸다.
“회사 경영은 뭣도 모르고 안목도 나날이 퇴보하면서···. 조영준, 내가 우리 JK 식구들 봐서 참는 거야. 알아?”
이윽고, 이사실 문을 슬쩍 열어서 조영준이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걸 확인한 후에야 겉옷을 걸치고 나서는 김록기였다.
잠시 후, JK엔터의 사원 사무실.
“안녕하십니까, 129 입니다.”
“백희연 입니다! JK에 뼈를 묻겠습니다아!”
수습 작곡가 2인의 우렁찬 목소리에 사무실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짝——
“119? 일일구? 예명 좋네요. 기억하기 좋아.”
“아뇨, 선배! 129래요. 일.이.구.”
“어? 정글 오디오에 그 129?”
“와아, 그래서 어제 그 글···. 만나서 반가워요!”
선오의 예명을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다.
“이상하게 음악제작팀은 정규 채용보다는 비공개 모집으로 들어온 애들이 오래 버티더라. 잘들 해봐요!”
“수습 기간 무사통과해서 하나는 1팀 하나는 2팀에 배정되면 딱 좋겠네.”
선배들이 덕담이랍시고 한 마디씩 던졌고,
“두 사람, 따라오세요. 건물 안내해드릴게요.”
정기석이 그들을 뒤로하며 앞장서 안내하기 시작했다.
JK엔터의 구사옥.
묘한 기시감이 일었다.
선오에게 신사옥이 있기 전의 구사옥은 머나먼 기억 속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JK도 이랬던 적이 있었지.’
낡고 좁은 이곳에서 추억 여행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설렘까지 느껴졌다.
띵——
먼저 엘리베이터를 탔다.
선오의 눈이 꼭대기 층의 버튼으로 향했다.
저곳에 오를 때면 느꼈던 여러 가지 기억과 복잡다단한 심경이 떠올라 지그시 바라보자, 정기석이 설명을 이었다.
“꼭대기 층은 ‘대표 프로듀서실’과 ‘이사실’이 있어요. 우리 JK의 수장이신 두 분이 계시죠.”
“우와아···.”
백희연이 입을 떡 벌렸고,
“두 수장님들은 지금 자리에 안 계세요. 수습 딱지 떼고 주니어 작곡가로 정식 출근하는 날 뵙게 될 겁니다.”
정기석은 이렇게 말하며 꼭대기 바로 아래층을 눌렀다.
“여긴 회의실이랑 영상팀 사무실이 있고요.”
그렇게 차례차례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기획팀, 홍보팀 사무실과 보컬 연습실, 댄스 연습실, 녹음실, 작업실 등등을 안내받았다.
이때는 아직 구내식당도 없을 때였다.
“두 분은 여기 작업실을 같이 쓰시면 됩니다.”
정기석이 문을 열며 보여준 지하 작업실은 한 눈에 봐도 낡은 곳이었다.
스윽 둘러보니 선오의 집에 있는 장비보다 구식인 것들로 가득했다.
“아시겠지만 고가 장비가 많아요. 나중에 시니어 될 때까지는 여기서 물도 금지입니다. 뚜껑 안 열리는 용기에 빨대 쓰는 음료만 허용돼요.”
선오와 백희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고,
정기석이 설명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 회사에서 음주 작업은 계약 취소예요.”
경찰이 ‘음주 운전은 면허 취소예요.’ 하는 것처럼 건조한 목소리로 경고하는 정기석이었다.
‘정말 한결같다. 기석이 형.’
선오는 익숙한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날 뻔했다.
“그럼 두 사람 인사들 나누시고, 앞으로 수습 기간 동안 더블비 새 앨범에 참여할 거니까 준비들 해두세요. 모레가 컨셉 회의예요.”
“더블비 예전 앨범 분석이랑 래퍼런스 찾아두면 될까요?”
백희연이 의욕에 찬 목소리로 되물었다.
더블비는 두터운 팬층을 가진 20대 초반 남성 듀오였다.
“네. 선배들 자잘한 심부름도 해주시고.”
정기석은 선오와 백희연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작업실 문을 나섰다.
선오와 백희연.
단둘이 남겨진 작업실.
먼저 입을 건 것은 백희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