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a wealthy family is really good at music RAW novel - chapter 96
지금은 선오나 설이가 유명인이 아니라 문제가 없더라도, 나중에 설이가 데뷔한 후에 이상한 구설수로 둔갑하여 억측이 퍼질 수 있으니까.
이 업계에서 일하며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아아—— 하하—— 아아——
히—— 아에이오우——
윤설이 목을 푸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나온 선오였다.
“내 앞이라고 긴장할 필요 없는 거지 알지? 실수해도 상관없으니까 연습이다 생각하고 편안하게 해봐.”
이윽고,
잠에서 깨어난 작은 이슬방울——
풀잎에 딸린 작은 마음——
윤설의 손가락이 어쿠스틱 기타 줄 위에 자유로이 미끄러지며 아르페지오와 핑거스타일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한 편의 시를 읊조리는 듯한 보컬.
‘화려한 연주나 튀는 멜로디 없이도 지루하지가 않다.’
담백했다. 설이의 연주도 노래도.
그래서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했다.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조용히 귀를 기울이게 만들고 집중시키는 재주가 있었다.
‘설이가 자기 악기의 장점을 잘 찾아서 곡에 썼네.’
클라이막스에도 과한 고음은 나오지 않았다.
지난 시간에 선오와 나눈 대화에서 뭔가 깨달은 걸까.
고음이 부족하다며 고민하던 아이가 악기의 음색 자체에 집중하는 곡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 어떤 기교 대신, 듣는 이에게 편안하게 감정선을 태워 보내는 그런 멜로디였다.
‘정말이지. 넌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구나.’
며칠 전 레슨 때와는 또 다르게 발전한 모습에
선오의 입꼬리가 저절로 씨익 올라갔고,
풀잎 미끄럼틀 아래 새로운 세상——
땅을 적시며 새롭게 피어나요——
깔끔한 아웃트로까지 퍼포먼스를 마친 후 그 표정을 본 윤설도 선오를 보며 씨익 웃었다.
짝짝짝짝짝짝——
선오는 말없이 박수부터 쳐주었다.
“1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엄청난 완성도였다, 설아.”
“예전에 숙제 검사 받은 곡에서 변주하고 디벨롭시킨 거예요.”
뿌듯한 얼굴로 대답하는 윤설.
“작사도 직접 한 거야?”
“네.”
“설이다워서 좋았어. 시적이고. 가사의 풍미를 배가시켜주는 멜로디나 반주 선택도 세련됐고.”
선오의 칭찬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 그 모습이 귀여웠다.
그럴만했다. 윤설이 직접 작곡, 작사를 한 곡으로 연주하며 노래 부른 경험은 오늘이 처음이었으니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온몸으로 뿌듯해하는 게 선오에게까지 전해졌다.
“어땠어? 이거 준비하는 거?”
“재밌었어요! 완전! 곡 쓰는 것도 이제 너무 재밌고, 작사가 처음이라 조금 오래 걸렸지만 또 해보고 싶어요!”
윤설에게 지금의 이 마음을 간직하게 하는 것, 음악에 대한 재미를 잃지 않는 선 안에서 이끄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 그러면 선생님이 당분간 이렇게 직접 못 와도, 한 달에 한 번 영상으로 보내주는 거 어때?”
“영상이요?”
“어. 설이가 자작곡 써서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는 거. 숙제는 아니야. 설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야. 하고 싶을 때만.”
설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좋아요! 근데 한달에 1곡만 보내야 해요?”
“어? 여러 개 보낼 수 있으면 더 좋지.”
이는 예상 밖의 물음이었다.
“근데 숙제처럼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곡을 억지로 쓰지는 말라는 뜻이야.”
“넵!”
“선생님은 언제나 설이의 곡을 기다리겠지만, 안 보내줘도 실망하거나 그러지 않으니까. 음악을 올해나 몇 년만 하고 말 거 아니잖아.”
“맞아요! 저 평생 할 거예요, 음악!”
해맑고도 단단한 대답.
“그래. 그러니까 처음부터 너무 조급하게 달릴 필요 없어. 천천히 걷다가, 뛰고 싶을 때 살짝씩 뛰다가 숨차면 다시 또 걷고. 그렇게 길게 보자.”
선오의 말에 씨익 웃으며 씩씩하게 답하는 윤설이었다.
“자아, 그럼 미디 수업으로 넘어갈까?”
윤설의 작곡 레슨은, 설이의 엄청난 소화력 덕분에 진도가 빠르게 나가고 있었다.
설이에게 미디를 가르치는 내내 선오의 머릿속 한쪽에서는 어떤 생각 하나가 커다랗게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설이 때문에라도 내 레이블이나 회사를 얼른 만들어야겠어.’
선오는 윤설을 처음 봤을 때부터 남의 회사, 남의 손에서 데뷔시킬 생각은 없었다.
다행히 설이가 아직 중학교 1학년이니 시간은 있었다.
적어도 중학교는 졸업시키고 데뷔시키고 싶었다.
‘솔로 아이돌이면, 고2나 고3쯤?’
아무리 선오의 그늘 안에 둔다고 해도 연예계는 험난한 곳이었으니까.
이러한 선오의 생각이 저 높은 곳 어디엔가 닿기라도 한 걸까.
지이잉———
선오의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방금 괜찮은 건물 하나가 매물로 나왔다고 합니다. 윤설 학생 레슨 끝나면 전화 주십시오.]발신인은 안 실장이었다.
초심의 맛
* * *
“이 물건은 오늘 오전에 나오자마자 벌써 문의 전화만 열 몇 통이 왔어요.”
윤설과의 레슨을 마치고 선오가 도착한 곳은 서울 강남 신사동이었다.
강남 빌딩 전문 중개인과 함께였다.
몇 년 전에 안면을 트고는 매달 회원비를 납입해가며 연을 이어오고 있는 이였다.
“회원들에게만 먼저 연락을 주신 거 아니었나요?”
안 실장이 중개인에게 물었다.
“그 회원들한테 연락이 몇십 통 왔다니까요. 몇 시간 만에. 아시다시피 그냥 흔한 꼬빌이 아니잖아요, 이게.”
선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도산대로.
대한민국 빌딩 부동산의 중심 강남에서도, 양대 핵심지는 테헤란로와 도산대로였으니까.
선오 역시 이런 물건을 만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강남 빌딩 전문 중개인을 찾았고, 지금껏 기다려왔다.
선오는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건물을 올려다보았다가 주위 풍광을 훑어보았다.
널찍한 도산대로 한복판의 코너 목에 우뚝 선 건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의 햇빛이 건물 유리창 곳곳에 반사되어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다들 전화로 매가랑 매도자 상황만 물어보고, 지금쯤 대출들 알아보고 계실 거예요. 그냥 현금 박치기하기에는 너무 큰 건인데, 오늘이 또 토요일이잖아요.”
“근데 왜 파시는 거래요?”
이런 매물은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빌딩이었다.
연식은 주위의 다른 건물 보다 낡았지만, 한 번 매입하면 평생 움켜쥐고 대대손손 물려주는 게 당연한 그런 건물 말이다.
공실 따위 걱정 안 해도 되고, 가지고만 있어도 시세차익이 보장되는 그런 입지였기 때문이다.
“건물주가 급사하셨어요. 이 건물은 어떻게 물려줄지 따로 정리가 안 되어있던 모양이에요.”
“아···.”
“잘은 모르지만 자식들 사이가 별로 안 좋은지, 공동명의로 보유하기보다 매도를 택하셨더라고요.”
이에 선오가 빌딩을 다시 올려다보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 빌딩이 이렇게 낡아서 100억대지, 신축이었으면 200억까지도 갔을 입지예요. 사장님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요.”
부동산 중개인은 선오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 말에 선오는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었으니까.
앞으로 오를 것까지 셈한다면 매매가가 100억대가 아니라 200억대라도 저렴한 축에 속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대신 선오는 뭔가 잔뜩 생각하는 얼굴을 하더니 빌딩 뒤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골목 안쪽에 발을 들이자 아까부터 신경이 쓰이던 꼬마 빌딩이 가까이 보였다.
다 쓰러져가는, 아니 거의 썩어가는 꼬마빌딩이었다.
“소장님, 해당 물건 바로 뒤에 있는 저 꼬마빌딩이요. 저것도 혹시 매수 가능한지 알아봐 주실 수 있나요?”
“아, 필지 합쳐서 신축하시게요?”
역시 빌딩 전문 중개인답게 이야기가 빨랐다.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네, 주말도 괜찮으니 연락주시고요. 오늘은 일단 빌딩 계약금 먼저 넣겠습니다.”
“아···. 계약하시는 겁니까?”
순간 중개인의 얼굴이 확 피었다.
“일단은요. 계약금 넣고서 고민을 더 해보겠습니다.”
아직 완전히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계약금을 넣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지오홀딩스와 선오의 입장에서 계약금 몇천만 원 정도는 배팅에 쓸 수 있는 금액이었다.
세 사람은 곧바로 근처에 있는 중개인의 부동산 사무소로 들어갔다.
앞장서서 걷는 중개인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사무소에서 안 실장이 중개인과 이를 처리할 동안 선오는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비트코인]국내 포털에는 뜨는 게 없었지만,
‘구글에 영어로 치니까 뭔가 뜨네?’
대충 읽어보니 국내 거래는 아직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해외 거래도 아직은 안전하지 않고, 무엇보다 변동성이 너무 컸다.
‘굳이 지금 들어갈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그 돈으로 그냥 건물 투자를 하는 게 더 안전하고 수익도 확실할 것 같다.’
선오는 지난 삶에서 건물주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지만, 연예 기획사가 몰려있던 강남 노른자 땅의 빌딩 가격이 얼마인지 정도는 들어본 바 있었다.
‘야, 이번에 짓는 SYP 신사옥 건물이 2,000억대래. 와···.’
‘뭘 모르네 우리 신사옥 옛날에 200억에 사고 지었는데 지금 얼마인 줄 알아?’
‘얼만데?’
‘2,500억쯤 한다는데?’
‘미쳤네···. 뉴스에서는 일반인들 집값 몇억 씩 오른 걸로 난리인데 건물은 더 하구나.’
지난 삶, 구내식당에서 직원들이 나누던 대화가 기억났다.
본의 아니게 엿듣고 있던 선오의 입장에서도 충격적인 숫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땐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숫자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인생이라는 것이 참 오묘했다.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일이 내 것이 되기도 하고,
움켜쥐려고 안달복달하던 일이 내게 전혀 중요치 않은 일이 되기도 하니까.
“다 끝나셨습니다. 사장님 이거 정말 평생의 운을 다 쓰시는 겁니다. 이런 물건 만나는 게 쉽지 않잖아요. 평일이었으면 아마 몇 시간 만에 이미 나갔을 텐데, 토요일이라 은행 대출 알아보느라 다들 문의만 잔뜩 주셨거든요.”
가계약 성사로 가장 흐뭇해 보이는 건, 선오도 안 실장도 아닌 중개인처럼 보였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아아, 그리고 뒤쪽 골목 안에 그 꼬마빌딩은 주인이 지금 연락을 안 받아서요.”
“천천히 이야기해보시고 연락 주세요.”
“넵! 바로 회신 드리겠습니다!”
허리 숙여 인사하는 중개인을 뒤로하고,
선오와 안 실장은 식사를 하기 위해 근처 밥집에 들어섰다.
“결정하신 겁니까?”
“반 정도요. 우리 지오홀딩스 차도경 대표와도 이야기 해봐야 하고, 아버지께도 자문은 구해보려고요.”
“만약 뒤에 꼬마빌딩도 매입할 수 있게 되면, 합쳐서 신축을 생각하고 계신 거고요?”
“네, 맞습니다.”
안 실장이 중개인 앞에서 묻지 못했던 것들을 물어왔다.
“그럼 완공 후에는 지오홀딩스 사무실만 이전하고 나머지는 전부 임대 주실 계획이십니까? 아니면···.”
“건물 신축이 만만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먼일이긴 하지만 완공하면···. 아마도 일부만 임대로 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시간동안 선오의 곁을 지켜온 안 실장이기에, 이 말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저도 차도경 대표님과 같이 알아보고 미리미리 준비해두겠습니다. 엔터 사업 관련된 거나, 지오홀딩스의 규모가 커지면 대비해야 할 것들 말입니다.”
안 실장이 비장한 얼굴까지 하며 이렇게 말해오자, 피식 웃음이 난 선오는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사실 아직은 고민 중입니다. JK엔터에 들어간 지분을 활용해서 그 안에서 제 레이블을 따로 차릴지, 아니면 아예 독립된 회사를 만드는 게 나을지···.”
“어떤 결정을 하시든 최선의 결과를 위해 일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실장님.”
안 실장이 주문하는 동안,
선오는 잠깐 나와서 차도경과 지평학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내일 점심과 저녁 일정이 순식간에 잡혀버렸다.
내일은 일요일이지만 주말답지 않은 주말이자, 아주 바쁜 마지막 휴가 날이 될 것 같았다.
* * *
“이야! 너 못 본 사이에 더 멀쩡해졌다? 요즘 연애해?”
장충동 본가.
오랜만에 들른 이곳에는 봄의 기운이 완연했다.
유럽식 정원에는 푸르른 나무가 잘 손질되어 있었고, 각종 꽃이 만개해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누나 지선하도 와 있었다.
지선하가 대뜸 건넨 인사에, 볼멘소리로 답하는 선오였다.
“연애는 무슨···. 연애하는 사람은 따로 있잖아.”
오늘 다이닝룸에 모인 식구는 4명뿐이었다.
늘상 있었던 지선재가 오늘은 없었기 때문이다.
“선오 네가 콘서트 티켓 구해다 줬다며? 선재가 자랑하면서 나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