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내부의 싸움
성북동 거실에서 엄현주가 재무 담당 임원과 통화 중이었다.
“자금 마련할 수 있겠어요?”
[시간이 필요합니다.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현주는 그의 말을 끊으며 얘기했다.
“그럴 시간이 없어요. 내일 오후까지 필요해요.”
[사장님, 그 큰 자금을 내일 오후까지 마련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우리 자금 사정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알겠어요.”
통화를 끊은 엄현주는 솟아오르는 분노를 누르려 눈을 질끈 감았다.
리스트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졌다는 게 확정된 순간이었다.
졌다. 돈이 없어서?
아니, 시간이 없어서다.
자신의 개인 자금까지 하면 120억 원까지 올라간 리스트 가격을 마련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내일 오후까지 마련하기는 불가능하다.
억울하고 분했다.
단기간의 자금 융통도 능력이기는 하지만, 이것 때문에 오빠와의 경쟁에서 패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엄현주는 솟구치는 화를 참으려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어서 순간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악~! 짜증나! 악!”
그녀의 외침에 놀란 유태규와 현호가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현주 씨!”
“누나, 무슨 일이야?”
거실에 다른 식구들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이성을 잃은 듯한 그녀의 모습이 어쩌면 다른 식구들에게 비웃음을 샀을지 모른다.
그렇게 악을 썼던 엄현주는 갑작스레 힘이 빠지는지 소파에 풀썩 주저앉고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리스트를 현태 오빠에게 뺏겼어요. 졌다고요.”
“아…….”
유태규는 어떤 말도 이을 수 없었다.
그녀가 명동 오 부장을 찾도록 도움을 주었고, 그에게서 리스트를 받기로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뺏겼고, 졌다니.
“누나, 졌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진정하고 얘기를 좀 해 봐.”
현호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물었다.
그런 현호의 물음에 얼굴에서 손을 뗀 엄현주가 시무룩하니 입을 열었다.
“명동 오 부장을 만났고, 리스트를 받기로 했어. 그런데 나보다 거액을 주고 현태 오빠가 차지하게 됐어.”
그녀의 대답에 현호는 한심하다는 투로 얘기했다.
“돈으로 시소게임을 하셨네.”
이에 엄현주가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야! 시소게임이라니! 송우전자 주식이 걸린 리스트였어.”
“형들과 누나가 잘 협의했으면 거액을 주고 리스트를 사는 일은 없었을 거야. 그러면 세 사람이 주식을 나누기는 하겠지만 그만큼 위험부담도 낮아졌겠지.”
“리스트를 가진 현태 오빠가 보상으로 송우전자 주식을 받는데 무슨 위험부담? 지금쯤 콧노래를 부르고 있을 텐데.”
“나보고 낭만적이라고 하더니, 누나도 나처럼 변하는 거야?”
“너, 말조심해. 내 기분 엉망이라 내가 무슨 짓…….”
현호가 그녀의 말을 자르고 얘기했다.
“리스트가 있다는 사건 중 제대로 풀린 걸 본 적 있어?”
“뭐?”
순간 엄현주가 당황했는지 말을 못 하고 눈을 깜빡였다.
“리스트가 조작됐느니, 원본이 아니라느니, 말들이 많았잖아.”
“…….”
“아……!”
엄현주는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유태규가 뭔가를 깨달은 듯했다.
‘역시 검사라 내 말을 바로 알아듣네.’
하지만 현호는 모른 척하며 하던 말을 이었다.
“세 사람이 함께 리스트를 사고 아버지께 드렸으면, 계획이 틀어져도 함께 대응했을 텐데. 난, 누나가 아니라 현태 형이 걱정돼.”
“뭐라는 거야?”
“나는 서류 검토할 게 있어서 그만 방으로 가야겠어. 매형, 안녕히 주무세요.”
“어, 처남도 잘 자.”
현호는 두 사람만 남을 수 있게 거실에서 나갔다.
그가 시선에서 보이지 않자 엄현주는 의아한 표정으로 유태규에게 물었다.
“태규 씨, 쟤 뭐라는 건지 이해했어요?”
“현주 씨, 방으로 가요. 할 얘기 있어요.”
리스트 경쟁에서 엄현주의 패배를 알게 된 후 얼굴이 굳어졌던 유태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얼굴이 환히 밝았다.
* * *
“둘째 형님이 송우전자 주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할 방법이 있어요.”
방으로 돌아온 유태규가 얘기하자 엄현주가 반색하며 물었다.
“정말 그렇게 할 방법이 있어요?”
“처남이 똑똑한 건 맞는 거 같아요.”
“웬 뜬금없이 현호 칭찬이에요?”
“처남이 거실에서 한 말 때문에 아이디어가 떠오른 거예요.”
“아, 그래요? 만약 성공하면 현호에게 고맙다고 해야겠네요.”
“아쉽게도 처남에게는 말 못 할 거예요.”
“왜요?”
“성국그룹을 도와야 하거든요.”
“예에?”
엄현주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태규 씨,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죠?”
“현주 씨의 허락이 필요해요. 싫다고 하면 하지 않을게요.”
“태규 씨가 생각하는 방법이 뭔데요?”
“둘째 형님이 가진 리스트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거예요. 그렇게 하려면 성국그룹이 내 계획대로 움직이게 만들어야 해요. 결과적으로 성국을 돕게 되는 거죠.”
“…….”
엄현주는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선택해야 한다.
리스트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성국그룹을 도울 것인지, 아니면 패배를 인정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인지.
‘만약 전자를 선택하면…….’
성국그룹에 대한 아버지의 복수가 실패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둘째 오빠 엄현태가 지주사 지분에서 가장 앞서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승계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후자를 선택하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버지의 계획이 잘되든 잘못되든, 그저 둘째 오빠의 반응을 지켜만 봐야 한다.
‘만약 아버지의 계획이 잘되면, 우리 셋 중에서 현태 오빠가 가장 앞서게 되는데…….’
결정해야 하는 이 짧은 순간, 엄현주는 과거 일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자신이 송우식품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라이스타를 런칭하고 발전시킬 때, 현태 오빠는 잘나가는 송우건설에서 임원들 도움을 받아 가며 성과를 쌓았다.
둘째 아들이라는 이유로 라이스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금을 움직이는 송우건설을 맡게 된 것이다.
결코, 자신보다 우월해서 송우건설 사장이 된 것이 아니다.
그의 능력으로 자신과의 경쟁에서 이긴 게 아니다.
그렇기에 그가 송우전자 주식을 추가로 갖게 되고, 승계에서 앞서 나가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 없다.
“현주 씨, 어떻게 할까요?”
마침 유태규가 다시 의견을 묻자 결심이 선 그녀가 얘기했다.
“태규 씨 생각대로 하세요.”
그녀의 결정에 유태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 * *
성북동 서재.
“아버지.”
상기된 표정의 엄현태가 엄상현 곁으로 다가왔다.
“어젯밤 말씀드렸던 대로 리스트를 가져왔습니다.”
엄현태는 명동 오 부장에게서 받은 잠실 탑힐 특혜 분양 리스트를 엄상현 회장에게 건넸다.
그 리스트를 훑어본 엄상현 회장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수고 많았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약속하신 보상을 받고 싶습니다.”
“약속했으니 주어야지. 하지만 너에게 바로 넘기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해. 법무팀과 상의해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넘겨주마.”
“고맙습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엄현태의 얼굴은 기쁨으로 환하게 물들었다.
* * *
엄현태가 승리의 기쁨을 느끼고 있는 그 시각.
성국그룹 안명기 회장은 심기가 불편했다.
“명동 오 부장과 못 만났다고?”
“저희 쪽을 피하는 것 같습니다.”
한종혁 법무팀장이 대답했다.
“우리를 피해? 그렇다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수도 있겠군.”
“계속 접촉을 시도할까요?”
안명기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를 만나려고 했으면 진즉에 연락해서 돈을 요구했겠지. 하지만 우리를 만나지 않는 건, 그 리스트를 드러내겠다는 거야.”
“분양받은 분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안명기 회장은 한종혁이 말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안다.
“우리 일을 도와준 분들이야.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 해. 리스트가 세상에 드러날 것을 대비해 대응책을 마련해 봐.”
“예, 회장님.”
대답을 마친 한종혁이 회장실을 나왔다.
자신의 사무실로 이동하는 한종혁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디리리리.
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응?”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여보세요?”
[한종혁 팀장님.]
“누구십니까?”
[유태규 검사입니다.]
“유태규…… 아!”
들어본 이름이라 한종혁이 기억을 더듬다 그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송우그룹 엄상현 회장의 사위였다.
그런 그가 왜 자신에게 전화를……?
“무슨 용건으로 전화했습니까?”
[특혜 분양 리스트 찌라시 때문에 요즘 힘드시죠?]
“찌라시에 헛소문이 떠도는 것으로 힘들어 하면 어떻게 기업 일을 하겠습니까.”
한종혁은 애써 태연하게 대꾸했다.
[리스트가 세상에 곧 나올 겁니다.]
“뭔가 잘못 알고 있네요. 존재하지 않는 리스트가 어떻게 나옵니까?”
한종혁은 말꼬리가 잡힐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유태규 검사가 뜻밖의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성국그룹이 의혹을 벗어나려면 리스트가 세상에 나와야 합니다.]
“뭐라고요?”
[보호하고 싶은 분이 계시죠?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이봐요, 유 검사. 지금 누굴 떠보는 겁니까?”
[성국이 리스트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알고 싶다면, 저와 만나시죠.]
“뭐요?”
[관심 있으면, 만날 시간과 장소를 메시지로 보내세요. 결정이 늦으면 성국에게 기회가 없다는 걸 명심하세요.]
전화가 끊어졌다.
“이거, 뭐야?”
한종혁은 어리둥절해 잠시 멍했지만, 곧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엄상현 회장의 세 남매도 명동 오 부장을 찾고 있다더니…….’
단순히 성국그룹이 미워서 그렇게 할 사람들이 아니다.
엄상현 회장이 리스트를 찾는 대가로 뭔가 선물을 주겠다고 했으리라.
그 순간, 한종혁은 유태규 검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리스트가 세상에 곧 나올 겁니다.
“아……! 리스트를 손에 넣었구나.”
그런데 왜 유태규가 그 사실을 자신에게 알려 줬을까?
한종혁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엄현주 사장이 갖지 못했어.’
엄상현 회장의 두 아들 중 누가 리스트를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엄현주는 오빠가 선물을 받게 하고 싶지 않은 거야.’
그렇게 되지 않게 할 방법은 리스트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 하나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을 이용해 자신에게 접촉해 온 것이겠지.
‘만나야 할까?’
한종혁은 잠시 고민했지만, 곧 결정을 내렸다.
‘안 만날 이유가 없지.’
송우그룹 형제들끼리 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났으니, 불리했던 상황이 성국그룹에게 유리해질 수 있다.
한종혁은 유태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 *
송우미디어 사장실.
최명준 실장이 문서를 가지고 사장실로 들어왔다.
“사장님, 콘텐츠 가치 창출 회의 보고서입니다.”
최명준이 보고서를 건네자 현호가 차분히 읽기 시작했다.
겨울연정 드라마가 일본에 수출된 후 현호는 송우미디와 글로리 엔터가 함께 하는 프로젝트팀을 구성했다.
송우미디어 음악부문에서 하고 있던 것을 영화와 드라마까지 확대했다.
“내용이 좋네요. 회의가 거듭되면 더 좋은 안들이 나올 거 같네요.”
디리리리.
현호가 말을 마친 그때, 최명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최명준입니다. 예. 누구를 만난다고요?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최명준이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사장님, 유태규 검사가 성국그룹 법무팀장을 만나고 있답니다.”
“그렇군요.”
현호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최명준의 표정이 유하게 풀어지며 대꾸했다.
“예상하셨군요?”
그의 물음에 현호는 싱긋 웃는 것으로 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