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한종혁의 위기
“어서 오세요, 한 팀장.”
흔들리지 않는 당당한 눈빛.
평온한 목소리에 여유로운 태도.
최해식은 첫 만남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이런 그의 모습에 한종혁은 왠지 긴장되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원장님.”
“한 팀장을 만나니 그런가 봅니다.”
“저를 좋아하시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요.”
“상황에 따라 마음도 달라지는 법이죠.”
“지금 상황이 원장님께 유리하다 생각하시나 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닙니까?”
최해식의 물음에 한종혁이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냉랭하게 얘기했다.
“너무 쉽게 생각하시네요. 윤형기 본부장과 서석주 의원의 약점을 잡고 계신 것 같은데, 그게 성국그룹과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관계가 없는데 한 팀장은 왜 이 자리에 나왔죠?”
“어찌나 원장님을 만나 달라고 간청을 하던지.”
“우는 아이 사탕 주는 심정으로 나왔다는 건가요?”
“어떻게 생각하시든 원장님 자유이시지만, 이왕 나왔으니 원장님 얘기를 들어 보죠.”
최해식은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부터 보시죠.”
최해식이 한종혁에게 서류 봉투를 건넸다.
그 봉투 속에서 문서를 꺼내 살피던 한종혁이 놀랐는지 순간적으로 눈이 커졌다.
문서는 다름이 아닌, 성국유통에서 윤형기 유가증권시장본부장과 서석주 국회의원에게 뇌물로 건너간 자금의 자료들이었다.
그걸 확인한 순간 한종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모습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최해식이 입을 열었다.
“윤형기 본부장과 서석주 의원이 왜 그리 간청했는지 이제야 아시겠습니까?
“…….”
최해식의 물음에 한종혁은 잠시 생각했다.
최해식이 가진 자료의 실체가 밝혀진다면 성국그룹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자료들이 세상에 드러난다고 해도 변명거리를 만들면 된다.
의혹과 비난을 받을 수는 있지만 두 사람과 함께 말을 맞추면 법적 처벌까지 가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다.
‘내게는 무기도 하나 있지.’
박만희 자백 영상이다.
그 영상은 최해식의 인생을 위기로 몰아넣을 만한 것이다.
그가 성국그룹의 비리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자기 인생을 걸 수는 없으리라.
이에 한종혁은 자신만만하게 최해식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재경부에 계셔서 아시지 않습니까. 어떤 비리가 나와도 성국그룹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지금껏 그랬죠. 누군가 꼬리가 되어 책임을 뒤집어쓰고, 안명기 회장은 처벌받지 않았죠.”
“하지만 제가 가진 영상이 세상에 드러나면 원장님의 인생이 무너질 겁니다.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죠.”
‘정말 현호가 예상한 대로 얘기하는구나.’
최해식은 한종혁을 만나러 오기 전 현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종혁 팀장은 그가 가진 영상의 힘을 알아요. 그래서 외숙부의 인생이 무너질 거라며 겁을 줄 거예요.
“원장님, 인생은 한 번입니다. 원장님의 인생을 포기하실 겁니까?”
“…….”
“안타깝게도 원장님이 가지고 계신 자료는 제게 있는 영상보다 가치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안은 제가 하겠습니다.”
“……?”
“가지고 계신 자료를 저에게 넘기고 성국과 손을 잡으시면 원하시는 미래를 얻게 되실 겁니다.”
“내가 원하는 미래가 아니라 성국이 원하는 미래를 위해 이용하려는 거겠죠.”
최해식의 대꾸에 한종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얘기했다.
“성국이 원하는 것을 원장님도 원하게 될 겁니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최해식이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한 팀장이 얘기했죠.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그렇습니다. 선택을 잘 하셔야죠.”
최해식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인생은 한 번뿐이죠. 이 말을 한 팀장에게도 해 주고 싶네요. 선택을 잘해야 할 겁니다. 꼬리가 되어 책임을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뭐라고요?”
한종혁의 신경질적인 반응에도 최해식은 태연히 테이블 위에 녹음기를 올려놓고 틀었다.
그러자 남자의 목소리가 녹음기에서 흘러나왔다.
[한종혁 팀장이 찾아와 부탁했습니다. 이번 성국유통 상장 못 하면 성국그룹에 피해가 생긴다고. 처음에는 거절했죠. 하지만 여러 차례 찾아오며 부탁하니, 마음이 움직이더라고요.]
“헉!”
녹음기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윤형기 본부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한종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상해 달라고 제 입으로 얘기하지 않았어요. 한종혁 팀장이 먼저 건물 얘기를 했어요.]
“원장님, 이, 이건…….”
당황한 한종혁이 뭔가 말하려는 걸 최해식이 자르며 얘기했다.
“아직 안 끝났어요. 다음 분의 얘기도 들어봐야죠.”
[한종혁 팀장이 지역사무실로 찾아왔어요.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상장해서 더 발전하면 일자리도 만들어지니 국가 경제에도 좋다고.]
“아……!”
한종혁은 서석주 국회의원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땅도 내가 먼저 달라고 한 게 아니라, 한종혁 팀장이 선물이라며 준 겁니다. 그리고 내 가족 휴가를 어떻게 알고는 한종혁 팀장이 먼저 연락 와서 비행기와 호텔 숙박비를 내주겠다고 했어요.]
최해식이 녹음기를 끄고 한종혁을 보니,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최해식이 입을 열었다.
“내 자료가 세상에 공개됐을 때 누가 꼬리가 되어 책임을 뒤집어쓸지 알 것 같군요.”
“…….”
“한 팀장, 인생 한 번이에요. 어떻게 할 겁니까? 내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지금처럼 살아갈 겁니까? 아니면, 인생 무너지는 경험을 해 볼 겁니까?”
“…….”
입술을 깨문 채 한종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최해식의 자료가 세상에 드러나면 자신이 희생양이 되리라는 건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과거 비리 의혹 사건이 터졌을 때 안명기 회장을 위해 자신이 임원을 설득하고 회유한 적이 있다.
교도소에서 몇 년 만 고생하라고. 그에 맞는 보상을 해 주겠다고.
하지만 한종혁은 안다.
교도소에서 나오면 돌아갈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지금 선택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감았던 눈을 뜬 한종혁이 나지막이 소리를 내었다.
“원장님의 요구사항이 뭡니까?”
“잘 결정했어요.”
최해식이 미소를 지으며 문서를 그에게 건넸다.
“살펴보세요.”
그 문서를 본 한종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당연히 있을 거로 생각했던 박만희 영상자료 폐기가 문서에 없었다.
다만, ‘선결처리 사항’ 항목 아래 곽창명의 성국유통 복귀 그리고 곽창명과 장복호에게 지급할 돈이 적혀 있었다.
“선결처리 사항, 이게 뭡니까?”
“곽창명 씨와 장복호 씨 아시죠? 2년 전 상장 특혜라는 언론 보도 때문에 곽창명 씨는 해고되고, 장복호 씨는 협박을 받았는데.”
“곽창명 씨는 지금 소송 중인 것으로 압니다.”
“소송을 취하하세요.”
“회사로 복귀하려는 곽창명 씨에게 이렇게 많은 돈을 주라고요?”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부당해고를 당했던 분이죠. 퇴사를 하더라도 복귀한 후 자기 의지로 하고 싶다고 하네요.”
“…….”
“장복호 씨도 더는 괴롭히지 마세요. 그리고 보상할 돈이 많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계획적으로 사람을 그렇게 괴롭혔으면 그 정도 보상은 해 줘야 하는 거죠.”
“…….”
“그 선결처리 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자료 교환은 없을 겁니다.”
“…….”
한종혁은 당황스럽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위해서.
* * *
최해식을 만난 후.
한종혁은 안명기 회장에게 최해식이 가진 자료에 관해 보고했다.
“회장님, 박만희 영상자료와 교환하며 요구를 들어주는 게 최선입니다.”
그의 보고에 안명기 회장의 기분은 가라앉았다.
“도대체 최해식이 무슨 자료를 가지고 있기에 다 잡은 고기를 놓아주자는 거야?”
“성국유통 상장과 관련한 자료였습니다. 밝혀지면 성국유통뿐만 아니라 윤형기 본부장과 서석주 의원도 큰 곤란을 겪을 자료였습니다.”
“좀 더 자세해 얘기해 봐”
“성국유통 상장심사 즈음 퇴사한 직원이 윤형기 본부장과 서석주 의원에게 건넨 돈의 자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최해식 원장 쪽에 넘긴 것 같습니다.”
한종혁의 대답에 안명기 회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직원이 자료를 빼내서 나갔는데 성국유통 사장은 그걸 여태 모르고 있었다는 거야?”
“그걸 찾아오려고 하려다 오히려 일이 커져서 최해식 원장의 귀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최해식이 그자와 만나 자료를 받았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됩니다.”
사실 그 자료가 최해식의 손에 들어간 것은 현호가 해낸 일이지만 그의 계획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퇴사한 직원이 가지고 있던 것도 우리가 세팅해 놓은 자료잖아. 그 세팅만 확실하면 큰 문제없는 거 아냐?”
“두 분이 자금 관리를 소홀히 한 것 같습니다. 큰 덩어리로 건너간 것 외에 작은 것이 자금 추적에서 걸리면 함께 엮여서 드러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종혁은 정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최해식과 자료를 교환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자신을 위해서였다.
만약 그 자료가 세상에 알려져 성국유통 상장 특혜가 드러나면 안명기 회장은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것이다.
그래서 자료 교환을 해야 하는 진짜 이유를 감추고 윤형기와 서석주를 핑계 삼은 것.
“혹시라도 성국유통 문제가 드러나면 성국생명까지 연결될 수 있습니다.”
뇌물로 건너간 자금이 성국생명에서 대출받은 자금에서 나온 탓이다.
“성국카드가 어려운데 그 문제까지 터지면 성국그룹에 막대한 피해가 예상됩니다.”
“그래서 자네는 자료 교환을 해야 한다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흠…….”
안명기 회장은 잠시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지. 최해식 하나 손에 넣자고 성국을 위험하게 할 수 없으니. 자료 교환은 확실하게 해서 모두 소각시켜.”
“알겠습니다.”
한종혁은 담담히 대답하는 척했지만,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며칠 후.
현호는 장복호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엄 사장님, 장복호입니다.]
“네, 무슨 일 있습니까?”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창명 씨는 회사로 복귀하게 됐고, 약속하신 보상금도 받았습니다.]
“잘됐네요.”
[고맙습니다.]
“인사는 제가 해야죠. 자료를 주신 덕분에 일이 잘 풀린 겁니다.”
[엄 사장님, 그 분식회계 자료는…….]
현호가 그의 말을 자르며 얘기했다.
“장복호 씨에게 피해가 생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약속합니다.”
[고맙습니다.]
장복호와의 통화가 끝나자 약속이라도 한 듯 최해식에게서 전화가 왔다.
[현호야.]
들떠 있는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이 되었다.
“외숙부, 거래는 어떻게 됐어요?”
[방금 마쳤어.]
“잘 됐어요.”
[이게 다 네 덕분이야. 네가 나를 구해 준 거야.]
“도움이 돼서 기뻐요.”
[저녁 시간 비워 둬라. 좋은 곳 예약했는데 함께 가자.]
“알겠습니다.”
현호가 통화를 마치자 곁에 있던 최명준 실장이 얘기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결과는 꽤 좋네요.”
“그러네요. 곽창명 씨와 장복호 씨도 잘 됐고, 외숙부도 홀가분해졌으니까요.”
“저는 사장님 얘기를 한 건데요.”
“예?”
현호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최명준 피식 웃었다.
“성국을 상대할 좋은 자료와 금융계열사 영향력을 확보했죠”
“아아…….”
현호도 동의하듯 피식 웃었다.
그렇다.
성국유통의 분식회계 자료와 금감원장 최해식의 영향력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쓰이고 발휘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