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현호와 여상길의 합작
“협상을 결렬시킬 방법이 있는 거예요?”
호기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엄현주가 물었다.
“엄상현 회장님을 닮으셨네요.”
“예……?”
물음에 대한 대답 없이 갑작스레 엄상현 회장 얘기가 나오자 엄현주는 당황스러웠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 듯 여상길이 다음 말을 이었다.
“하이큐브 반도체 매각 협상이 타결됐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을 때, 사장님처럼 회장님께서도 제게 화를 내셨죠.”
“……?”
“그때, 제가 회장님께 얘기했습니다. 과정은 신경 쓰지 말고 결과만 기다리시라고.”
“…….”
“그 결과는, 주주총회에서 부결되어 매각이 무산되었죠. 회장님께 약속한 것을 지켰습니다.”
“……!”
엄현주는 그가 왜 아버지에게 의뢰받아서 했던 일을 얘기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장님께도 같은 얘기를 해 드리고 싶네요.”
“과정은 신경 쓰지 말고 결과를 기다리라는 말씀이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팀장님의 계획을 얘기해 줄 수는 있잖아요.”
“회장님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묻지 않으셨죠. 회장님이 궁금하지 않아서 묻지 않았을까요?”
“……!”
엄현주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아버지는 책임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제 계획을 들으시겠습니까?”
여상길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 눈빛으로 현주를 쳐다봤다.
엄현주는 잠시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기다리죠.”
엄현주는 그의 말처럼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협상의 시작은 사실 과정에 불과할 뿐이다.
그의 얘기처럼 시작이 좋았던 협상이 엎어지고, 결렬되는 것은 흔한 일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여상길 팀장에게 계획이 있으니 최종결정까지 상황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기다린 끝에 아버지도 원하는 결과를 얻었잖아.’
엄현주는 여상길을 믿기로 했다.
어차피 아버지 엄상현 회장에게 마음제과 인수를 허락받은 이상, 여상길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여 팀장님, 필요한 게 있거나 의논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제게 연락하세요.”
“그렇겠습니다.”
엄현주가 사무실을 나가자 여상길은 현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상길입니다.”
[팀장님, 보낸 서류를 보셨습니까?]
“네. 좋은 재료가 되겠더군요.”
[요리 한번 잘해 보세요.]
“그러죠.”
* * *
그날 저녁 식사를 함께한 엄상현 회장 가족들은 거실에서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은근슬쩍 엄현주의 기색을 살피던 엄현식은 마치 방금 생각이 난 듯 그녀에게 얘기했다.
“아 참! 현주야, 너 마음제과 알지?”
“당연히 알지.”
엄현주는 그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짐작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마음제과가 매각되려나 보더라. 수양제과와 PJ캐피탈이 매각 협상 시작했다는 기사가 났어.”
“나도 봤어.”
엄현주는 대답하면서 아버지 엄상현 회장의 기색을 슬쩍 살폈는데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여상길 팀장을 왜 스카우트했는지 아시니까.’
지난번 여상길 팀장 문제로 호출받았을 때, 다른 기업이 끼어들었다고 얘기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너는 마음제과 인수에 관심 없어?”
“라이스타와는 체급이 다르잖아.”
“아, 그렇지.”
대답하는 엄현식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그녀가 인수를 포기했다고 생각한 것.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는 현호, 안타까운 듯 고개를 저었다.
‘마음제과가 라이스타에 인수되면 얼마나 놀랄까.’
은밀히 일이 진행되고 있는 줄 모르는 엄현식은 집안의 맏이답게 그녀를 위하는 척 얘기했다.
“아쉽네. 어쨌든 그 기사보니까 네 생각나더라. 다음에 기회 있을 때 얘기해. 이 오빠가 도와줄 테니까.”
그의 말에 엄현주가 생긋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고마워. 오빠가 한 말, 잊지 않을게.”
* * *
이틀 후.
여상길을 흐뭇하게 하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되었다.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비정상적인 코스닥 상장사 주식투자 정황]
[주가조작으로 엄청난 수익 올리는 글로벌 투자사를 경계해야]
여상길 팀장은 현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상길입니다.”
[신문 기사 봤습니다. 괜찮네요.]
기사 내용에는 PJ캐피탈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PJ캐피탈 관련자가 보면 알 수 있을 만했다.
“최해식 금감원장님과 식사 약속은 되셨죠?”
[그렇습니다. 그곳에서 곧 보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여상길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 * *
PJ캐피탈이 있는 빌딩 앞.
“구 상무님, 여깁니다!”
여상길은 빌딩에서 나오는 구현수 PJ캐피탈 상무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를 본 구현수가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오랜만이네요, 여 대표님.”
구현수 상무는 여상길을 여전히 컨설팅 대표로 알고 있었다.
“좀 바빴어요. 어서 타세요.”
여상길은 차 문을 열어 주었다.
그의 옆자리에 구현수 상무가 앉자 여상길은 차를 출발시켰다.
“제 차로 찾아가도 되는데.”
“풍광도 좋고 음식도 일품인 곳인데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어요. 단점이 외진 곳이라 찾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 곳이면 음식값도 꽤 비싸겠군요?”
“재벌가 사람들이 단골이라고 하더군요.”
“아이고, 그런 곳이면…… 부담이 되는데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한평생 살면서 그런 곳도 가 봐야죠. 안 그래요?”
“하하하. 어쨌든 여 대표님 덕분에 좋은 곳을 구경하겠네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이 탄 차는 서울을 벗어났고, 그러고도 한참을 달린 후 도착했다.
“이야~!”
수풀에 둘러싸인 성 같은 모습에 구현수 상무의 입이 벌어졌다.
“들어갑시다.”
“아, 예.”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두 사람은 야외 정원을 지나쳐 레스토랑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상길 팀장님.”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여상길이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엄현호와 최해식이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여상길과 이미 약속한 만남이었다.
하지만 여상길은 마치 우연히 만난 것처럼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아! 엄 사장님, 여기서 뵙네요.”
여상길이 공손히 현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에 현호 또한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다시 뵙게 되니 반갑네요. 아! 이분은 제 외숙부 되십니다.”
현호가 최해식을 가리키자 여상길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여상길이라고 합니다.”
“아, 예. 처음 뵙습니다.”
여상길을 처음 보는 최해식은 그저 아는 사람을 소개받는 정도로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런 후 현호는 여상길을 향해 물었다.
“저는 외숙부님과 식사하러 왔는데, 여 팀장님도 식사하러 오셨군요?”
“예, 그렇습니다. 외숙부님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고맙습니다. 앞으로 저희 누님을 잘 도와주세요.”
“그럼요. 그게 제 일입니다.”
“그럼.”
현호는 약속된 말을 한 뒤 최해식을 이끌고 레스토랑으로 향해 걸어갔다.
멀어져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구현수 상무가 여상길에게 물었다.
“누굽니까?”
“저 두 분을 모릅니까?”
“낯익은 얼굴은 아닌데, 유명한 분입니까?”
“젊은 분은 송우미디어와 글로리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시죠. 송우그룹 엄상현 회장의 막내아들이고요.”
“아! 얘기는 들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요.”
“그럴 겁니다.”
“여 대표님이 발이 넓다는 건 알았지만, 재벌가 사람도 알고 지내는지는 몰랐습니다.”
구현수의 표정이 신기한 것을 본 것처럼 흥미로운 기색을 띠자 여상길은 대수롭지 않은 척 얘기했다.
“저분은 그저 얼굴만 아는 정도입니다. 그 옆에 외숙부 되시는 분은 금융감독원 원장님이십니다.”
“아! 송우그룹 회장 처가댁 분이 금감원장님이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네요.”
“저도 실물은 오늘 처음 봤습니다.”
“그런데, 여 대표님을 왜 팀장님이라고 하는 겁니까?”
여상길은 그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그 얘기는 안으로 들어가서 하죠.”
* * *
룸으로 들어온 여상길과 구현수.
“역시, 재벌가 사람들이 단골이 될 만하군요.”
룸의 디자인과 장식품을 보며 구현수 상무가 감탄하듯 얘기했다.
“음식도 일품입니다. 제가 미리 주문해 두었는데 괜찮죠?”
“그럼요.”
“그럼, 음식 오기 전에 얘기부터 끝낼까요?”
“무슨 얘기를……?”
구현수 상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보며 여상길은 자신의 명함을 그에게 건넸다.
“새로운 제 명함입니다.”
무심히 명함을 받아보던 구현수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그 명함에 ‘라이스타 기획전략팀장 여상길’이라고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여 대표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최근에 라이스타에 스카우트되어 일하게 됐습니다.”
“아……! 그래서 누님을 도와 달라고…….”
야외 정원에서 엄현호를 만났을 때 그가 여상길에게 한 얘기였다.
“그렇습니다.”
“그럼 오늘 만남은…….”
그의 말을 자르며 여상길이 얘기했다.
“친목과 비즈니스를 따로 할 필요는 없죠. 비즈니스를 끝내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면 되는 거죠.”
“비즈니스라니요?”
“마음제과 매각을 얘기하는 겁니다.”
여상길의 말에 구현수가 화들짝 놀랐다.
“여 대표님, 아니 팀장님, 그건 수양제과와 이미 협상하고 있습니다.”
“수양제과와 협상하세요. 협상한다고 매각이 결정되는 건 아니니까요.”
“여 팀장님이 저희 내부 사정을 모르시는 것 같은데, 수양제과와의 매각 협상은 제가 결정한 게 아닙니다. 최고위층에서 결정한 거예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구현수의 말뜻은 이런 것이다.
최고위층에서 수양제과를 선택했으니 그쪽으로의 매각이 정해졌다는 것.
하지만 여상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 바닥을 잘 아시는 구 상무께서 그런 얘기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예……?”
“내 손에 서류와 돈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 세계에서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
구현수는 그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기에 달리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 팀장님, 이번 매각 건은 제 손을 떠났습니다.”
“그럼, 전달자 역할은 하실 수 있겠네요.”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거 한번 보시죠.”
여상길은 가져온 서류 봉투를 그에게 건넸다.
그 봉투 속에서 문서를 꺼내어 살펴보던 구현수 상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게 다 뭡니까?”
“PJ캐피탈이 주가조작을 한 자료죠. 특이사항이 없는 코스닥 상장사의 주식을 집중 매입해 주가를 올려놓고는 팔았죠. PJ캐피탈 대표가 코스닥 상장사 대주주이던데, 대표가 떼돈을 벌었겠네요.”
“……!”
“오늘 자 한국신문에 PJ캐피탈 주가조작에 관한 기사가 나갔습니다. 1차는 PJ캐피탈이라고 언급은 되어 있지 않지만, 2차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구현수 상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표정을 보며 여상길은 쐐기를 박듯 얘기했다.
“정원에서 금감원장님도 만나셨죠? 라이스타와 금감원이 멀지 않습니다. PJ캐피탈 대표님께 잘 전달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