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대선자금이 만든 기회
여상길이 구현수 상무를 만난 지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PJ캐피탈과 수양제과의 협상에 관한 부정적인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PJ캐피탈, 수양제과와 협상 난항, 세부적 부분 의견 차이 커]
[수양제과, PJ캐피탈 측의 지나친 요구조건으로 협상 진척 어려워]
일각에서는 협상을 자기 쪽에 유리하게 만들려는 언론 플레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기업의 협상이 최종 결렬된 게 언론에 보도되었다.
[PJ캐피탈, 수양제과와 더는 협상 안 한다]
[PJ캐피탈, 다른 인수 희망 기업에 기회 주겠다]
“이게 뭐야?”
이 소식에 누구보다 놀란 건 엄현식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수양제과에게 마음제과 매각 정보를 주고 PJ캐피탈 최고위층과 연결해 준 게 그였으니까.
당황한 엄현식은 아내 채연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신문 기사 봤어?”
[조금 전에 봤어요.]
“어떻게 된 거야? 그 교수는 뭐라고 해?”
수양제과와 PJ캐피탈의 연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명운대학 교수였다.
[최종적으로 협상 결렬이 맞는 거 같아요. PJ캐피탈 대표가 수양제과에 매각하지 않겠다고 했데요.]
“아니, 왜에?”
짜증이 난 엄현식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유는 얘기하지 않아서 교수님도 모른다고 하세요.]
“이렇게 되면 현주가 PJ캐피탈과 협상하는 거 아냐?”
[기회가 왔으니 잡으려 하겠죠.]
“아이, 씨발.”
엄현식이 솟구치는 화로 거친 말이 튀어나오는 그때, 엄현주는 활짝 웃으며 여상길과 얘기하고 있었다.
“협상 결렬…… 이거 여 팀장님 작품이죠?”
여상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결과만 기다리시라고 했는데, 만족하십니까?”
“저는 여 팀장님이 해내리라 믿었어요.”
“물줄기를 우리에게 돌려놓았을 뿐입니다.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알아요. 방심하면 안 되죠. PJ캐피탈과의 접촉을 서둘러야겠어요. 또다시 다른 기업이 끼어들면 안 되니까요.”
“이미 조치해 두었습니다. 늦어도 내일까지는 PJ캐피탈에서 연락이 올 겁니다.”
“어머, 팀장님…….”
엄현주가 감동한 눈빛으로 여상길을 봤다.
지시하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척척 알아서 하니, 마음이 어찌 흐뭇하지 않겠는가.
“제가 여 팀장님을 스카우트하길 정말 잘한 거 같아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그럼요. 제 일이니까요.”
그의 대답에 엄현주가 환한 미소를 보였다.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하는 직원이 어찌 듬직하지 않겠는가.
그녀의 따뜻한 시선에 여상길도 미소 지었다.
그녀와는 다른 의미의 미소였다.
그녀가 사무실에서 나간 후, 여상길은 엄현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상길입니다.”
* * *
송우미디어 사장실.
현호는 여상길과 통화 중이었다.
“신문 보도 봤습니다. 축하합니다.”
[사장님이 도와준 덕분입니다. 내게 보내 준 주가조작 자료가 큰 힘이 됐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이제 협상 준비를 하겠군요.”
[그렇습니다.]
“협상이 잘되길 바랍니다.”
[잘해야죠.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그와의 통화가 끝나자 곁에 있던 최명준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사장님, 협상 결과는 이미 끝난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시작도 안 한 협상이 끝나다뇨?”
“여 팀장님이 PJ캐피탈 주가조작 자료를 가지고 있으니, 라이스타에게 매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여 팀장님은 협상에서 그 자료를 언급조차 하지 않을 겁니다.”
“예……?”
예상하지 못한 현호의 대꾸에 최명준 실장의 눈이 커졌다.
“라이스타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는데, 왜 자료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그 자료는 수양제과를 떨어뜨리기 위해 사용한 겁니다. PJ캐피탈이 이런저런 요구조건을 내세워 협상이 깨졌으니, 여상길 팀장의 목표는 달성됐습니다.”
“…….”
“협상이 시작된 이후에도 그 자료로 협박하면, 반작용이 있기 마련입니다.”
“반작용이요?”
“협상을 길게 끌면서 라이스타 약점을 찾으려 할 겁니다.”
“아, 예.”
최명준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며 얘기했다.
“여 팀장님은 협상 때 그 자료를 이용하지 못해 아쉽겠네요.”
“자료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라이스타가 협상에 불리한 것은 아닙니다.”
“…….”
“라이스타가 얘기하지 않아도, PJ캐피탈은 그 자료를 염두에 두고 협상할 테니, 지나친 요구는 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겠네요. 협상이 깨지면 주가조작 자료가 세상에 드러나게 될 위험이 있으니까요.”
현호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사실 PJ캐피탈의 주가조작은 몇 년 후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협상이 곧 시작되겠죠? 우리는 일단 지켜보고 있으면 되는 겁니까?”
“여상길 팀장이 잘할 겁니다.”
“혹시, 여상길 팀장 때문에 엄상현 회장님이 간섭하려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못할 겁니다.”
“어째서죠?”
“나라 돌아가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으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최명준 실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현호는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불법대선자금 모금이 문제가 될 거 같네요.”
사실, 작년 말부터 대선자금에 대해 문제 제기가 있었다.
처음에는 야당이 여당을 압박하는 듯 보였지만, 불법대선자금 모금이 갑작스레 이슈화되고, 여당이 대선자금을 공개하자 야당도 곤혹스러운 처지가 되었다.
“엄상현 회장님이 그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
“라이스타 인수 협상에 간섭할 정신은 없으실 겁니다.”
“하지만 사장님께는 좋지 않은 일이죠. 혹시라도 회장님이 법적 처벌이라도 받게 되면 후계자 문제가 갑작스레 떠오를 수 있습니다.”
현호는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것 같았다.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후계자 문제가 갑작스레 떠오르면 엄현식이 주목을 받게 될 테니, 현호에게 좋을 리 없다.
현호는 자신을 걱정하는 그가 고마웠다. 하지만 미래를 아는 현호는 그의 걱정을 덜어 줘야 했다.
“법적 처벌은 아버지가 제일 싫어할 테니, 방법을 마련하실 겁니다. 그러니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우리는 계획대로 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 * *
[PJ캐피탈, 라이스타와 마음제과 매각 협상을 시작하다]
현호의 예상대로 라이스타와 PJ캐피탈의 협상이 빠르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매각 협상이 시작된 직후 사람들이 놀랄 만한 사건이 터졌다.
[야당 대표, 대선자금 모금 시인]
그가 시인함에 따라 발등에 불 떨어진 이가 생겼다.
바로, 기업의 회장님들이었다.
“최 변호사에게 연락했어?”
엄상현 회장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박경국 과장에게 물었다.
왜 아니겠는가.
정치권에서 대선자금 모금을 시인했기에 앞으로 검찰 수사라는 화살이 기업으로 쏟아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예, 오고 계십니다.”
박경국 과장이 대답했을 때였다.
“회장님.”
서재 문이 열리며 최덕일 변호사가 들어왔다.
“최 변, 대선자금 수사에 대해 알아봤어?”
“예. 유태규 검사와 다른 몇몇 분에게 연락했습니다.”
“대선자금과 관련해서 검찰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나?”
“언론에 알려진 내용 정도인 것으로 압니다만, 실제로는 더 많은 대선자금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엄상현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걸 짐작 못 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한 기업에서 제공한 대선자금 액수만 공개되었다.
그러니 대선자금을 한 곳에서만 받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검찰의 분위기나 상황은 어때?”
“검찰도 곤혹스러워 보였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수사를 확대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렇게 되면 대기업 최고위층까지 수사할 수밖에 없는 터라…….”
최덕일이 말끝을 흐렸지만, 엄상현 회장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들었다.
대기업 사장과 회장도 검찰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은 검찰 내에서 어떤 결론이 난 것이 아니어서 자세히 알기는 어려웠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해? 우리까지 수사가 될 거 같아?”
짧은 한숨을 내쉰 최덕일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예, 회장님. 송우그룹도 수사를 받게 될 겁니다.”
“……!”
“관련자가 우리 회사 내부에만 있다면 커버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군 시설 유류 납품 특혜 사건 때처럼 문서를 조작하고 차경환 송우정유 사장처럼 희생양을 만들면 되니까요.”
“…….”
“하지만 이번 사건은 관련자가 외부에 더 많습니다. 정당 정치인과 대선자금 담당자 모두의 입을 맞추기 어렵습니다.”
“…….”
“또, 알아보니, 정당에서 자금 관리를 꼼꼼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어딘가에 약한 고리가 있을 것이고, 검찰이 수사하면 그 고리가 드러나게 될 겁니다.”
“그렇다고 수사가 시작될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엄상현 회장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내었다.
최덕일은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해법을 제시하듯 얘기했다.
“회장님, 미국에 있는 박영준 전 검찰총장님을 귀국시켜야겠습니다.”
“아! 맞아. 박영준이 있었지.”
대검 차장 시절, 남현민 검사의 도움으로 검찰총장이 된 박영준이었다.
한동안 재계 인사들과 만나는 것을 피했던 그였지만, 엄현주와 유태규 검사의 결혼을 앞두고 엄상현 회장을 만났었다.
퇴임한 박영준 총장은 엄상현 회장의 지원으로 미국에서 정치인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원래라면, 내년 초에 귀국해야 하지만…….’
내년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엄상현 회장의 지원 아래 원하는 정당에서 공천을 받고, 선거해서 국회의원이 되는 게 계획이었다.
“회장님, 여론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어차피 수사를 피할 수 없다면 결론이라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나야 합니다.”
엄상현 회장은 최덕일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국민의 분노를 사게 된 대선자금 수사는 결국 대기업으로 향할 수밖에 없고, 그 자신도 검찰 조사를 받게 되리라는 것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박영준 전 총장 라인이 검찰청 고위직에 자리한다는 것.
‘검찰을 떠났다고는 해도 박영준을 무시할 수는 없을 거야.’
엄상현 회장은 결심한 듯 최덕일 변호사에게 얘기했다.
“최 변, 박영준 총장 당장 귀국시켜.”
“예, 회장님.”
* * *
불법대선자금이 이슈가 되자 불안해진 엄상현 회장과는 달리 기다리던 기회가 온 듯 눈을 반짝이는 이가 있었다.
바로, 송우생명 김진명 사장이었다.
“됐어! 바로, 이거야!”
불법대선자금에 관한 신문 기사를 보며 벼락같이 소리를 높인 김진명 사장.
그의 곁에 있던 비서가 화들짝 놀랐다.
왜 아니겠는가.
모든 신문과 인터넷에는 불법대선자금 수사가 어디까지 갈까를 얘기하고 있다.
자칫 송우그룹 엄상현 회장도 조사받게 될 수 있는데, 즐거운 사람처럼 보이니.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음? 그게 무슨 소리야?”
“불법대선자금에 관한 기사를 보고 계셨던 게 아닙니까.”
“당연하지. 지금, 이게 제일 핫한 이슈잖아.”
“엄상현 회장님께 전할 좋은 아이디어라도 생각나신 겁니까?”
“뭐어? 으하하하.”
헛다리를 짚고 있는 비서의 말에 김진명 사장이 크게 입을 벌려 웃었다. 그러다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돌변했다.
“자네, 내가 회장님의 후계자에 대한 고민을 덜어 드려야겠다고 한 말, 기억하나?”
“아……! 그럼요. 곽태수 송우카드 사장 해임안이 부결된 뒤에 그런 얘기를 하셨죠.”
김진명 사장은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곽태수 송우카드 사장을 해임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엄현호 때문에 실패했다.
엄현호가 송우카드 이사로 있는 한 자신의 뜻이 송우카드 경영에 펼쳐지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
엄현호를 찍어 누를 힘을 가진 사람.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거뜬히 엄현호를 제압해 줄 사람.
그룹 후계자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
“그 기회가 온 거야.”
“예……?”
“회장님이 후계자를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고민을 깊게 할 필요가 없으시겠지. 으흐흐흐.”
김진명은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며 비서에게 지시했다.
“송우중공업 엄현식 사장에게 연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