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엄현호가 놓은 덫
“후우.”
골치가 아픈 듯 정재일 대표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관자놀이를 눌렀다.
“어떻게 청산을…….”
정재일은 혼잣말하며 최덕일 변호사의 요구를 어떻게 실행할지에 대해 고심했다.
‘하필이면 송우그룹이니…….’
대한민국 대표 그룹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다.
더구나, 자신의 안위와 관련된 문제 아닌가.
‘애초에 엄수경 사장의 제안을 받는 게 아니었는데…….’
송우그룹 가족의 일원으로서 어려운 상황인 송우바이오를 돕고 싶다고 했었다.
그녀의 말이 진심이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라이트랜드는 성과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펀드로 인해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게 되었다.
‘엄수경 사장에게 사실대로 얘기할 수는 없어.’
그때, 비서실에서 걸려 온 인터폰이 울렸다.
“무슨 일이야?”
[사장님, 송우미디어 최명준 비서실장이라는 분이 통화를 원하십니다.]
“방금 어디라고 했어?”
[송우미디어입니다.]
정재일은 흠칫 놀랐다.
‘송우미디어라면…….’
송우그룹 엄상현 회장의 막내가 경영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송우그룹 막내가 왜……?’
정재일은 의아했지만 이내 차분히 물었다.
“전화한 용건이 뭐지?”
[송우미디어 사장님께서 만나고 싶어 한다고 하셨습니다.]
‘나를……? 희한하군.’
송우그룹 법무팀장인 최덕일 변호사를 만나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송우그룹 막내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니.
‘뭐지?’
이래저래 의구심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데, 답을 알 수가 없자 정재일은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연결해.”
[알겠습니다.]
잠시 후, 수화기에서 최명준 실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정재일 사장님. 최명준이라고 합니다.]
“송우미디어 비서실장님이시라고요?”
[그렇습니다.]
“제게 왜 전화를 했습니까?”
[엄현호 사장님께서 정재일 사장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저를 왜 만나려고 하십니까?”
[엄현호 사장님께서 이렇게 얘기하셨습니다. 최덕일 변호사의 협박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려 드리겠다고요.]
“……!”
예상하지 못한 충격에 정재일 사장은 잠시 멍해져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수화기에서 최명준 실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재일 사장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재일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예.”
[언제쯤 시간이 되시겠습니까?]
“아니, 그 전에. 나와 최덕일 변호사가 만난 걸 어떻게 아는 겁니까?”
정재일에게 이 문제는 중요했다.
자신이 최덕일에게서 협박받았다는 사실을 안다는 건 라이트랜드가 위즈넷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안다는 것이다.
[최덕일 변호사님의 스케줄을 아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최덕일 변호사님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저희 사장님께서도 가지고 계시니, 만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죠.]
“…….”
정재일은 충격을 받아 잠시 말을 잇지 못했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얘기했다.
“엄현호 사장님께서 나를 협박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는 얘깁니까?”
[네, 그렇습니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예?]
“같은 자료를 가지고 있으면서, 도와주겠다고요?”
[믿는 건 사장님 마음이지만, 협박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다고 할 사람이 사장님 주위에 계실까요?]
“……!”
최명준의 말이 사실이라, 정재일은 달리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다.
“왜 나를 도와주려는 겁니까?”
[자세한 것은 만나서 말씀 나누시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음…….”
정재일은 잠시 생각했다.
엄현호는 최덕일 변호사처럼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덕일의 요구와는 전혀 다르다.
궁하면 지푸라기도 잡는다고 했다.
지금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을 거절할 이유는 없다.
일단, 만나 보는 게 그리 손해일 것 같지는 않았다.
정재일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만나죠.”
* * *
“처음 뵙겠습니다. 엄현호라고 합니다.”
“정재일입니다.”
서로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앉았다.
궁금한 게 많았던 정재일이 먼저 얘기를 시작했다.
“비서분께 대충 얘기는 들었습니다. 곤란한 저를 도와주시겠다고요?”
“제 비서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을 텐데요.”
“예?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그렇게 듣고 이 자리에 나왔는데.”
정재일 사장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현호를 쳐다봤다.
하지만 현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제 비서는 이렇게 얘기했을 겁니다. 최덕일 변호사님의 협박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다고. 제가 그렇게 지시했거든요.”
“그게 그 얘기 아닙니까?”
현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같은 얘기는 아니죠.”
“예……?”
정재일 사장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제 비서에게 왜 사장님을 도와주려 하는지 물으신 걸로 압니다.”
“그렇습니다.”
“사장님을 도우려는 게 아닙니다. 저와 사장님의 니즈가 딱 맞아떨어질 뿐이죠.”
“아, 그런 얘기였군요.”
정재일의 표정이 한층 유하게 풀어졌다.
이곳에 오기까지 왜 자신을 도와주려고 하는지 무척 궁금했었다.
자신을 도와주고는 더 큰 궁지로 몰아넣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니, 다행이기는 한데.
“그러니까 엄 사장님의 말씀은, 저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협력한다면 서로가 윈윈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
정재일은 이곳에 오기 전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었지만 여전히 의아한 점은 남아 있었다.
“엄 사장님, 최덕일 변호사는 엄상현 회장님의 측근이고, 엄 회장님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엄 사장님이 저와 협력한다는 것은 회장님의 뜻을 거역하는 건데, 그래도 괜찮은 겁니까?”
그의 물음에 현호는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정 사장님, 자녀분이 어떻게 되십니까?”
“대학생인 아들과 고등학생인 딸이 있습니다.”
“자녀분들은 정 사장님의 의견에 백퍼센트 따릅니까?”
“예? 아!”
정재일 사장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지 않죠. 자기 생각과 고집대로 하죠. 그래도 회장님이 아시면 대단히 노여워하실 텐데요.”
“회장님은 모르셔야죠. 그게 정 사장님께도 이로울 거고요.”
“아…….”
“답이 되었습니까?”
“예, 됐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그의 얼굴에서 어느새 의아함이 사라졌다.
또한, 조금 전까지 긴장하고 굳어 있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런 변화를 본 현호는 다음 말을 이었다.
“저와 협력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대답하기 전에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얘기하세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아실 겁니다. 엄 사장님이 원하는 건 뭡니까?”
“송우바이오 주식을 송우리조트 엄수경 사장에게 넘기는 겁니다.”
“그게 다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건, 엄수경 사장과 얘기만 되면 어렵지 않습니다.”
현호의 요구 조건을 들은 정재일은 더욱 안심이 되는지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좋습니다. 엄 사장님과 협력하죠. 뭐부터 해야 합니까?”
“어떤 협박을 받았는지 짐작이 됩니다만, 그래도 사장님께서 얘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송우바이오 주식에 투자한 펀드를 청산하고, 송우바이오 주식을 넘기라고 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가지고 있는 자료가 언론에 넘어갈 거라고 했어요.”
“무척 곤란하시겠군요.”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느끼자 정재일이 티가 나게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자료가 공개되면 검찰 수사를 받게 될 겁니다. 그 단계까지 가지 않고 해결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방법이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놀란 정재일의 눈이 커졌다.
“그 방법이 뭡니까?”
“라이트랜드가 하는 일에 송우그룹 계열사를 끼워 넣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비자금이라고 하든지 아니면 특별자금이라고 하든지,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산운용사가 이용하는 거래에 송우증권을 자금흐름의 통로로 이용하는 겁니다.”
“아……!”
현호의 말을 이해한 정재일이 탄성을 내뱉었다.
“아주 좋은 방법이네요!”
라이트랜드의 흙탕물을 송우증권에도 묻히겠다는 것이다.
만일 라이트랜드가 수사를 받아야 할 상황이 온다면 송우증권도 수사를 받게 될 처지가 된다.
그렇게 되면 드러나지 않았던 송우증권의 비리가 밝혀질 수도 있다.
이것을 빌미로 최덕일 변호사의 협박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송우증권 직원 중 우리 계획에 이용할 직원이 있어야 합니다.”
“한 분을 추천해 드리죠.”
현호는 정재일에게 남자 사진 한 장을 건넸다.
“이분이 누굽니까?”
“송우증권 박원식 과장입니다.”
박경국 과장이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이다.
그는 자기 아들이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미래에는 엄현식 옆에서 송우그룹을 좌지우지할 거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아들의 좌절을 보게 될 거야.’
그 좌절의 분노는 엄상현 회장에게로 향하게 되리라.
결국 이번 일로 아버지 엄상현 회장과 박경국 과장 사이에 균열이 생길 것이다.
“과장이면 괜찮을 거 같네요.”
“차장 승진을 위해서 성과를 내야 할 상황입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우리의 미끼를 쉽게 물 수도 있겠군요.”
“해 보시겠습니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죠. 타깃도 정해졌으니 늦출 이유가 없습니다.”
“…….”
“제 인맥을 동원하면 박원식 과장에게 접근할 방법이 생길 겁니다.”
확신에 찬 그의 대답에 현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현호의 협력을 얻은 정재일 사장은 제일 먼저 송우증권 박원식 과장에게 접근할 사람을 물색했는데,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라이트랜드 내에 박원식 과장의 대학 동기가 있었던 것.
그 덕에 정재일 사장은 계획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송우증권 박원식입니다.”
박원식은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원식아, 나 곽진현이야.]
“누구시라고요?”
고객이나 거래처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친숙하게 얘기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박원식이 당황했다.
[곽진현, 국성대 경영학과 동기. 대학가요제 나갔을 때 네가 응원단 이끌고 왔잖아.]
“아, 아! 곽진현!”
이제야 생각이 난 듯 박원식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나야. 인터넷이 좋긴 좋네. 연락이 끊어진 친구도 찾게 되고.]
“내 연락처 어떻게 알았어?”
[사이버월드 하다가 우식이랑 연락이 닿았어. 그 자식한테서 네 연락처 받은 거야.]
“야, 곽진현. 반갑다.”
[야, 너무 반갑다. 지금 일하고 있지?]
“어, 일하고 있어.”
[이렇게 연락도 된 김에 저녁에 퇴근하고 만날까? 오늘 시간 어때?]
“좋아. 별다른 약속 없어.”
[내가 장소를 문자로 보내 줄게.]
“그래, 나중에 봐.”
통화를 끊은 박원식은 친구 차우식에게 전화를 했다.
[왜?]
“야, 전화 좀 친절하게 받으면 안 되냐?”
[넌 줄 아는데, 뭔 친절. 그래서 왜 전화했는데?]
“너, 진현이 만났어?”
[아! 맞다. 사이버월드하다 연락됐어.]
“야, 그러면 나한테도 알려 줬어야지.”
박원식은 섭섭하다는 듯 말을 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곽진현을 만나기 전 정보를 얻기 위해 그에게 전화한 것이다.
오랜만에 연락 오는 친구는 자칫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현이랑 연락된 지 얼마 안 되었어. 너 연락처 가르쳐 줬는데. 연락 안 왔어?]
“왔어.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너도 올래?”
[미안해. 나 오늘 야근해야 할 거 같아.]
“알았어. 그런데 진현이 무슨 일하는 줄 알아?”
[진현이 펀드매니저로 돈 많이 번다더라.]
“펀드매니저? 회사 이름이 뭔데?”
[아, 맞다. 금융쪽이니까 네가 잘 알겠네. 라이트랜드라고 했어.]
“아아, 라이트랜드.”
박원식도 그 회사의 명성을 들어서 알고 있다.
[원식아, 지금 나 바빠서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그래.”
통화를 끊은 박원식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펀드 쪽이면 내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는 걸.’
친구를 만나도 자기 이익을 생각하는 박원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른다.
엄현호가 놓은 덫에 발을 들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