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혼자 죽지 않는다
엄상현 회장 가족들은 무거운 침묵 속에 송우식품 관련 뉴스를 보고 있었다.
TV 화면에 보건환경연구원 건물의 모습이 보이며 기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자 : 보건환경연구원 발표가 있기 한 달 전, 송우식품의 직원이 사비를 들여 자사 포장지를 검사업체에 의뢰했습니다.]
화면이 바뀌어 검사 업체 직원의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기자 : 의뢰한 직원에게 결과를 알렸습니까?]
[검사 업체 직원 : 네. 그때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어서 의뢰인에게 분명히 알려 드렸습니다.]
다시 화면은 송우식품 건물이 보이며 기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자 : 그 검사를 의뢰했던 직원은 결과를 사장과 부사장에게 알렸지만, 오히려 거짓말로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3개월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TV 화면에 모자이크 처리된 김수환이 기자와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왔다.
[김수환 : 사장님과 부사장님께 말씀드렸지만 제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화면은 다시 바뀌어 송우식품 건물 앞에서 기자가 마지막 멘트를 이어 갔다.
[직원의 보고를 검증할 생각도 하지 않고 뭉갠 경영진으로 인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몫이 되어 버렸습니다.]
“최 변호사 불러!”
노기가 섞인 엄상현 회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예, 회장님.”
박경국이 TV를 끄면서 대답하자 엄상현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밖으로 향했다.
뒤따라 일어선 최유경도 밖으로 향하자 박경국이 뒤따랐다.
집안 어른이 사라지자 장남 엄현식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엄현주를 보며 얘기했다.
“현주야, 뭉개려고 했으면 제대로 했어야지. 들켜서 이 망신이 뭐냐?”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엄현태도 거들었다.
“현주, 네가 책임지게 생겼네? 어떡하냐?”
“오빠들, 쓸데없는 걱정은 사양할게.”
솔직히 그들의 눈빛이 그녀의 신경을 자극했다.
걱정해 줄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재밌는 구경거리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면 그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기에 애써 담담한 모습으로 얘기했다.
“빠져나올 구멍이라도 만들어 놓은 거냐?”
“그게 왜 궁금하실까?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엄현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다시피, 일이 생겨서 나 먼저 갈게.”
식당 밖으로 향하자 유태규도 덩달아 일어나 그녀 뒤를 따랐다. 그러자 이어서 엄현태가 일어났다.
“나도 먼저 갈게.”
엄현태 부부 내외가 함께 나가자 엄현식이 투덜대듯 중얼거렸다.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처럼 왜 식사도 안 하고 나가는 거야.”
엄현식이 멈췄던 식사를 다시 시작했다.
‘발등에 불 떨어졌지.’
조용히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현호의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번졌다.
급히 나간 엄현태가 무엇을 하려는지 현호는 알기 때문이다.
* * *
“당신이 도와줄 일이 있어.”
방으로 돌아온 엄현태는 아내 배희진에게 얘기했다.
“무슨 일이에요?”
“대한은행 방배동 지점장에 대해서 알아봐 줘.”
“그 은행이면, 아가씨가 마음제과 인수 때 대출 거절한 은행이잖아요.”
“그때는 형의 도움을 받아서 대출을 막았지만, 그 후, 지점장과 현주 사이가 가까워졌어.”
배희진이 의아한 표정을 물었다.
“대출을 거절해서 어려움을 겪었는데, 어떻게 둘 사이가 가까워졌죠?”
“대한은행 방배동 지점은 라이스타와 거래하고 있었어. 현주가 송우식품 사장이 된 이후 라이스타 대출금 상환을 연기해 주면서 송우식품과 거래하고 있어.”
“아아.”
이제야 이해된다는 듯 배희진이 얘기했다.
“서로 얻는 게 있으니 가까워졌군요. 그런 은행 지점장에 대해 알아봐서 뭐 하려는 거예요?”
“현주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내버려 둘 수 없어.”
“무슨 말이에요?”
“현주는 마음제과를 인수하면서 송우식품 사장이 됐어. 그런데, 그 인수자금이 어디서 나온 건지 알아?”
“투자받았잖아요.”
엄현태가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마음제과 인수자금은 M&H 인베스트먼트로부터 투자받은 게 아니고, 빌렸어.”
“정말이에요?”
놀란 배희진이 확인하듯 묻자 엄현태가 덧붙였다.
“나해철 대표에게서 직접 들었어. 현주가 송우생명 주식을 담보로 잡았다고.”
“어머! 아가씨에게 담보로 맡길 송우생명 주식이 있었어요?”
“은밀히 승계 경쟁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두 마리 토끼 얘기를 했군요”
“그런데 M&H 인베스트먼트에서 빌린 인수금을 곧 갚아야 해.”
“송우식품 사장인데, 대한은행 이외에서도 대출 받을 수 있잖아요?”
“문제는 상환 연기된 라이스타 대출금이야. 그 기간도 곧 만료가 되고 있어. 더 연장하지 않으면 라이스타가 어려워져.”
“아……!”
배희진은 그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엄현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려는 것이다.
마음제과와 라이스타를 가질 것인지, 아니면 송우생명 주식을 가질 것인지를.
“알겠어요. 아버지께 부탁해서 알아볼게요.”
* * *
엄현태가 아내 배희진과 얘기를 나누는 그 시각, 엄현주는 여상길과 통화 중이었다.
[뉴스를 봤습니다.]
“여 팀장이 예상했던 일이죠?”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빨랐네요.]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부사장이 책임지게 할 겁니다.]
엄현주는 답답한 듯 머리를 쓸어 올리며 얘기했다.
“그건 지난번에도 얘기했잖아요. 당장 내일부터 비난이 쏟아지고 여론이 급격히 악화될 거예요.”
[그래서 지금 작업 중입니다.]
“지금요?”
[네. 결과를 기다리시면 됩니다.]
그의 대답에 엄현주는 일단 안심이 되었다.
여상길을 지켜본 바에 의하면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켰기 때문이다.
“알겠어요. 결과를 기다리죠.”
통화를 끊자 곁에 있던 유태규가 물었다.
“누구와 통화한 겁니까?”
“마음제과 인수 전 스카우트한 사람이 있다고 했죠? 여상길 기획전략팀장이에요.”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겁니까?”
유태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번 환경호르몬 검출 사건에서 부사장이 책임지게 만들 거예요.”
“그럴 능력이 있어요?”
“능력 있는 사람이에요. 약속한 것은 모두 지켰어요.”
“만약, 약속을 못 지키면요?”
“당신이 플랜B를 만들어 봐요. 내가 못 빠져나오면 검찰 조사를 받게 될 테니까요.”
“알겠어요.”
* * *
한편, 엄현주와 통화를 마친 여상길은 승용차에서 내렸다.
그는 송우식품 포장지 생산업체에 왔다.
포장지를 생산하는 공장에는 모두 불이 꺼져 있고, 사무실 건물에서만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여상길은 반쯤 열린 정문으로 들어갔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경비로 보이는 남자가 여상길을 막으며 물었다.
“송우식품에서 왔습니다.”
“사장님을 만나시려고요?”
“그렇습니다.”
“약속은 되어 있으십니까?”
“지금 사장님이 송우식품 말고 다른 사람과 만날 만큼 여유롭습니까? 오늘도 뉴스가 나왔는데.”
최근에 갑작스럽게 터진 환경호르몬 검출 사건 때문에 대책을 마련하러 온 것 같은 뉘앙스 풍기자 그가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한창일 사장님, 사무실에 계시죠?”
“아, 예. 아직 퇴근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장실에 손님 오셨다고 알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경비가 인터폰으로 사장실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송우식품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그가 여상길을 보며 얘기했다.
“들어가세요.”
허락을 받은 여상길은 곧장 사장실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 * *
“뭐라고요? 연구원이라는 자가 연락하고 찾아오고 했을 때, 얘기했잖아요! 그게 문제였으면 단가를 올려 줬어야지! 빼먹을 거 다 빼먹고 이제와서 발뺌하겠다는 겁니까?”
사장실 문 앞에 서 있는 여상길은 안에서 새어 나오는 한창일 사장의 통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누군가와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듯했다.
그 상황에 비서로 보이는 여자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여상길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얘기했다.
“괜찮아요. 저 통화가 끝나고 만나면 됩니다.”
여상길은 사장이 누구와 다투는지 알 것 같았다.
높은 언성으로 말이 몇 번 더 들린 후, 결국 경고성 발언까지 나왔다.
“지금 나 엿 먹이는 거야?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통화가 끊어졌는지 사장 혼자서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똑똑, 여상길이 노크를 했다.
“누구야!”
고함치는 듯한 사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여상길은 대답하지 않고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당신, 누구야?”
처음 본 사람에게 반말할 정도로 그는 화가 나 있었다. 하지만 여상길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차분하게 얘기했다.
“방금 송우식품 이상혁 부사장님과 통화하셨죠?”
“다, 당신 뭐야?”
낯선 남자가 대뜸 알아맞히자 한창일 사장이 당황했다.
“이상혁 부사장이 사장님에게 책임지라고 했죠?”
“…….”
“그래서 억울했어요? 배신당했다고 생각하셨나?
“뭐, 뭐요?”
뜨끔했는지 한창일 사장의 눈이 흔들렸다.
“이런 일 처음 겪는 것도 아니니 아시지 않습니까? 한창일 사장님이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된다는 거.”
“당신 누구야? 어디서 왔어?”
“송우식품에서 왔습니다.”
“부사장이 보냈나? 모든 책임을 안고 가라고 협박하라고 보냈어?”
“…….”
“오늘 뉴스 못 봤어? 사장과 부사장도 환경호르몬 검출된 사실을 알았다는 게 뉴스에 나왔어!”
“잠깐 소란스럽겠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안 될 겁니다.”
“뭐어?”
한창일 사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보자 여상길이 다음 말을 이었다.
“빠져나올 구멍이 있거든요. 이를 테면, 연구원 직원이 얘기해서 생산업체에 문의했더니, 사실이 아니라고 했고, 오히려 연구원 직원이 업무를 방해했다고 했다.”
“……!”
“그 직원이 뇌물까지 요구했다고 알려 와서 징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말이죠.”
“그렇다고 책임이 면해지나? 직원 말보다 남의 말을 믿어서 검사하지 않았다는 말이 통할 거 같아?”
“상식적으로는 통하지 않죠. 하지만 법적으로는 통할 수 있습니다.”
한창일이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내게는 장부가 있어. 그 장부가 증명해 줄 거야. 왜 직원 말을 무시했는지.”
여상길은 그가 말하는 장부가 무슨 의미인지 안다.
송우식품과의 거래에서 돈을 빼돌리기 위해 이중장부를 만들었고, 그 빼돌린 돈이 송우식품에게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흥! 먹거리 안전? 그런 거 걱정하는 놈이 우리한테서 돈을 만들어 챙기나?”
“그 돈, 현금으로 줬잖아요. 어디로 갔는지 흔적이 없는데, 장부가 무슨 소용입니까?”
“내가 돈을 주면서 그렇게 허술하게 했을 거 같아? 돈을 건넬 때마다 녹음했어.”
“잘됐네요.”
“뭐……?”
놀라서 당혹스러워할 줄 알았는데 여상길이 반대로 얘기하자 한창일 사장이 오히려 당황했다.
“그 돈의 세 배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뭐, 세 배?”
세 배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한창일의 눈이 커졌다.
“그 돈이면, 앞으로 이렇게 더러운 일을 해 주며 돈 벌지 않아도 되고, 사장님과 가족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겁니다.”
“정말 세 배를 준다는 겁니까?”
조금 전까지 언성을 높였던 한창일의 목소리가 다소 부드러워졌다.
“그렇습니다. 단, 조건이 있어요.”
“조건이 뭡니까?”
“이럴 때 하는 얘기가 있죠. 혼자 죽지 않는다. 그겁니다.”
여상길은 그를 향해 싱긋이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