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16
16화 같이 가라앉지 마
다음 날.
현호는 레스토랑 룸에서 엄수경을 만났다.
“누나, 차명재산은 잊어버리라고 경고했잖아.”
“무슨 소리야?”
걱정하는 현호의 말에 엄수경이 모르는 척 딴청을 피웠다.
“모르는 척할 필요 없어. 송우미디어의 기관투자자들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니까.”
엄수경은 송우전자와 관련된 비자금 이슈가 터지자마자, 기관투자자들을 상대로 주식 매수에 나섰다.
그러나 어느 한 곳과도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기관투자자들은 가격을 올리며 흥정만 할 뿐, 엄수경에게 주식을 매도하진 않았다.
현호가 서둘러 사건을 정리하는 바람에, 엄상현 회장이 발 빠르게 움직여 기관투자자들에게 언질해 둘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현호가 여기까지 언급하자 더 이상 숨길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엄수경은 표정을 바꾼 채 입을 열었다.
“당연한 거 아냐? 큰아버지가 송우미디어 4퍼센트를 더 가지셨어. 우리도 대책을 세워야지.”
현호가 알고 있다면, 분명 엄상현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엄수경은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 비자금 사건이 불거지면서 구속 수사를 받게 되면, 그사이 모든 일이 끝나 있을 테니까.
“지금 네가 걱정해야 할 사람은 큰아버지야. 최덕일 변호사님이 애쓰고 계시겠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해. 아버지도 좋은 변호사님들 많이 알고 계시니까.”
“그 변호사, 작은아버지가 필요하실 거야.”
“뭐?”
“최 비서.”
현호는 의아한 표정의 엄수경을 보며 최명준 비서를 불렀다.
“예, 이사장님.”
“보여 드려.”
“예.”
최명준이 엄수경에게 로 뜬 기사가 프린트된 문서를 건넸다. 그 문서를 본 엄수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검찰, 송우전자 비자금 무혐의 결론.]
“이, 이게 어떻게……?”
너무 놀라 말을 더듬는 엄수경에게 현호가 진지한 얼굴로 얘기했다.
“누나,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어. 작은아버지와 누나 힘들어질 거야.”
“뭐?”
“아버지는 이미 계획을 세워두셨을 테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현호의 얘기에 엄수경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작은아버지는 송우전자의 비자금을 제보하는 걸로 아버지를 곤란한 상황에 빠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겠지만, 이번 일은 오히려 아버지에게 기회만 만들어 드렸어.”
“그게 무슨 말이야?”
“이제 아버지가 송우미디어와 송우리조트를 뺏기 위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송우그룹의 누구도 작은아버지의 편을 들지 않을 테니까.”
“아……!”
그 말대로였다.
엄상철의 행동은 엄상현만 위험에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송우그룹 전체를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었다.
한 번 자신의 뒤를 노렸던 이를 도울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계획이 실패하리라곤 조금도 생각지 않은 게 패착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작은아버지를 설득하라고 이야기했잖아.”
엄수경이 난감한 기색을 띠며 물었다.
“그래서, 너는 뭘 알고 있는데? 큰아버지가 우리를 상대로 무얼 하려는지 알아?”
“아니, 아버지의 계획은 몰라. 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겠지.”
“네 짐작은 뭔데?”
“자금 압박을 하시겠지. 지금까지 똑같은 방법으로 여러 기업을 인수해 오셨으니까.”
“……!”
엄수경은 뭔가 생각나는 게 있는 듯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했다.
“박 이사, 지난달 한민은행에 대출 신청한 거 어떻게 됐어?”
[사장님, 조금 전 연락 왔습니다. 당분간 신규 대출은 어렵답니다.]
“알았어.”
엄수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모습을 보며 현호가 물었다.
“대출 승인이 안 난 거야?”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기존 대출 상환 날짜는 괜찮은 거고?”
“송우리조트는 아직 괜찮은데…… 송우미디어는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이 있어.”
“상환할 수 있는 거야?”
“몰라. 송우미디어에는 나도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으니까. 하지만 주거래 은행이 한민은행이야.”
한민은행은 송우그룹과 밀접하게 거래를 이어 나가는 은행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한민은행은 결코 만기연장을 해 주지 않을 터였다.
“…….”
그로 인해 이어질 참상을 상상한 엄수경은 공포로 안색이 창백해져 갔다.
“호, 혹시 아버지가 큰아버지께 가서 사과하면 용서해 주실까?”
새하얗게 질린 엄수경을 바라보던 현호는 이제 자신이 준비한 얘기를 꺼낼 차례라고 판단했다.
“누나는 아직도 우리 아버지랑 작은아버지를 몰라? 아버지가 그걸로 끝내실 분이 아닌 건 물론이고, 작은아버지도 절대 머리를 숙이지 않으실 거야.”
현호의 말에 엄수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도 현호의 판단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누나, 같이 가라앉을 필요는 없지 않겠어?”
“뭐?”
현호는 이런 상황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을 이용하려 했던 그녀가, 자신에게 매달리는 상황이 오기를.
“작은아버지는 자금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나의 리조트 자금을 이용하려 할 거야.”
“……!”
“그런다고 상황이 해결될까? 아니, 송우리조트도 덩달아 가라앉을 뿐이야.”
“하…….”
현호의 지적이 일리 있다고 판단한 엄수경은 현기증을 느꼈는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아버지와 함께 침몰하지 않고 누나의 리조트가 살 방법이 있어.”
“방법이 있다고? 뭔데?”
“조금 전에도 얘기했지만, 작은아버지가 리조트의 자금을 쓰거나 누나에게 자금을 구해오게 할 거야. 빈손으로 내주지 마.”
“……?”
“대가를 받아. 송우미디어 주식으로.”
현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엄수경은 의아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자 현호는 자세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누나가 바란다면, 송우문화재단이 보유한 송우미디어 지분을 누나에게 힘을 실어 주는 데 쓸 의향이 있어.”
“뭐? 너, 그 말은…….”
“맞아. 누나가 송우미디어의 새 주인이 돼.”
소스라치게 놀란 엄수경은 말문을 열지 못했다.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자신의 지분에 송우문화재단이 보유한 지분을 더하고, 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지분을 받아 낼 수만 있다면…… 최대주주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엄수경은 잠시 고민하더니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설령 네가 문화재단의 지분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큰아버지의 자금 압박이 이어진다면 어차피 송우리조트는 대출금을 상환할 수 없어.”
“음…… 그건 좀 큰 문제네.”
현호는 일부러 인상을 찌푸리며 고민하는 척했다. 그러다 뭔가 번뜩 생각이 난 듯 소리를 냈다.
“아, 좋은 생각이 있어!”
“뭔데?”
흥미로운 듯 엄수경의 눈이 커졌다.
“내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한다고 했잖아? 그 사업 때문에 대출을 받아 놓은 게 있어.”
이건 거짓이었다.
엄상현이 사업을 허락해 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막대한 자금을 융통할 만큼의 대출을 허락해 줄 위인은 아니었다.
지금 현호가 이야기 꺼낸 자금은, 할아버지가 남긴 판교 땅을 담보로 하여 대출받은 자금이었다.
“그걸 빌려주겠다고?”
“단, 조건이 있어.”
“뭔데?”
“임시 주총을 서둘러 열어 아버지와 협상을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 나도 사업을 위해 대출한 자금이라 오랫동안 빌려줄 수는 없어. 이해하지?”
“음…….”
엄수경은 머릿속이 복잡하여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런 마음을 읽은 현호는 조용히 다시 얘기했다.
“누나,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 없어. 누나를 위해서 한 얘기니까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해.”
“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호는 자기주장을 강하게 관철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녀는 자신을 찾게 될 테니까.
* * *
엄상철의 사무실.
“야, 이 새끼야! 송우미디어가 그깟 돈 못 갚을까 봐 만기연장을 취소시켰냐? 제발 거래해 달라고 고개 숙일 때는 언제고!”
엄수경이 사무실로 들어왔을 때 귓불까지 붉어진 엄상철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재무이사가 불안해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엄수경이 재무이사에게 물었다.
“저희와 거래하는 은행에서 대출 만기연장을 못 해준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모든 거래 은행에서요?”
“예.”
엄수경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현호에게서 들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상환해야 할 총액이 얼마에요?”
“8천 억입니다.”
“얼마나 상환 가능해요?”
“3천억까지는…… 그런데…….”
재무이사가 말끝을 흐렸다.
그녀도 안다. 그것으로는 송우미디어를 살릴 수 없다. 일시에 상환하지 못하면 그 소식이 주식시장에 알려지게 될 거고, 주식은 폭락하게 될 거다.
그뿐만 아니라 거래업체에서는 밀린 대금을 갚으라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야! 눈이 있으면 송우미디어 가치가 얼만지 봤을 거 아냐? 어? 야, 야! 이 새끼가, 끊어?”
타악!
화가 솟구친 엄상철 회장이 전화기를 집어 던졌다.
“이 새끼가 날 뭘로 보고……!”
“아버지.”
“어, 수경아. 마침 잘 왔다.”
“아버지, 소식 들었어요?”
“우리 거래 은행들이 일제히 미쳤다는 소식?”
“큰아버지 비자금 사건, 무혐의가 났어요.”
“뭐?”
예상치 못한 소식에 놀란 엄상철은 멍한 표정으로 엄수경을 쳐다봤다. 그러자 엄수경이 인터넷 기사를 프린트한 문서를 건네며 얘기했다.
“조금 전에 검찰에서 발표했어요.”
그 기사를 보는 엄상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송우전자 비자금 무혐의 발표된 날, 대출연장이 거부된 게 우연이라고 생각하세요? 큰아버지가 막은 거예요.”
“…….”
“현호가 얘기해 줬어요. 비자금 제보자가 아버지라는 걸 큰아버지가 알고 계세요.”
“아……!”
이제야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된 엄상철은 솟아오르는 분노에 손을 부르르 떨었다.
“흥! 누가 먼저 속였는데? 이렇게 나를 상대로 해 보겠다는 거지? 그러면 내가 겁먹고 꼬리 내릴 줄 알았나 본데, 형님 뒤꽁무니 쫓아다니던 옛날의 내가 아니야!”
엄수경은 아버지의 반응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한 딸의 걱정도 모른 채 엄상철은 재무이사에게 명령했다.
“정 이사, 대출금 상환은 내가 해결할 테니까 은행에 연락해서 대출금 갚을 여력 충분하고 연장 필요 없다고 얘기해.”
“…….”
“대출연장 거부됐다는 얘기가 나돌아서는 안 돼.”
그 소문이 시중에 퍼지기라도 하면 회사의 주식 가격이 폭락할 것을 그도 안다.
“그리고 지금부터 거래할 다른 은행 조용히 알아봐. 송우미디어 멀쩡하고 내 개인 재산도 있어. 내 말 알아들었어?”
“예, 회장님.”
재무이사가 허겁지겁 밖으로 향하자 엄상철이 엄수경을 쳐다봤다.
“수경아, 이번 대출금 상환은 네가 해결해야겠다. 내 부동산이랑 회사 자산은 다른 은행이랑 거래할 때 쓸 일이 있을 거야.”
엄수경은 현호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작은아버지는 자금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나의 리조트 자금을 이용하려 할 거야.
“아버지, 리조트도 신규대출 거절됐어요.”
“뭐?”
엄상철 회장은 왜 거절됐는지 알아차렸다.
“이 양반이 정말……! 수경아, 넌 걱정할 필요 없어. 아버지가 곧 해결할 거다. 사채 쪽으로 알아봐.”
“시중 은행을 막으면 우리가 사채시장으로 접근하리라는 것도 큰아버지는 짐작하실 거예요. 그것도 막으려 하시겠죠.”
“형님이 아무리 발이 넓어도 사채시장을 모두 장악할 수는 없어. 이번만 넘기면 돼. 그러면 방법이 있어.”
엄수경은 아버지가 이렇게 반응하리라는 걸 짐작했다. 그리고 이제 결정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안 그래도 이미 알아보고 왔어요.”
“벌써?”
“송우미디어가 위기잖아요. 서두르는 건 당연하죠.”
“역시! 잘했어. 얼마까지 빌려준대?”
“5천억 원이요.”
“담보는 뭐로?”
“송우미디어 주식이요.”
* * *
현호의 방에는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현호가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음악을 감상하고 있던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현호야, 나야. 결정했어.]
“어떻게?”
[침몰하는 배에서 내리기로.]
현호는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