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네, 있습니다.”
엄현주가 엷은 미소를 띠며 얘기하자 박명진이 다시 물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특혜 분양 자료를 내게 넘기세요.”
“그걸 넘기면 내게 뭘 해 줄 수 있습니까?”
“박 사장님과 가족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충분한 자금을 드릴 수 있습니다.”
“…….”
박명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특혜 분양 자료는 내게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내 회사와 집을 뒤져도 특혜 분양 자료는 없습니다. 엄현태 사장이 모두 가져갔습니다.”
그의 대답에 엄현주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모든 자료를 없앴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장님이 모르는 파편처럼 흩어진 증거들이 있죠. 검찰이 그 증거를 모으고 있고, 제보자가 얘기한 리스트도 검찰이 확보했어요.”
“……!”
그녀의 얘기에 박명진은 엄현호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그 자료를 이용해 허위문서를 만들고 있다던데요.
‘엄현태는 검찰 움직임을 알았던 거야. 그래서 나를 희생양으로 삼을 허위문서를 만들었겠지.’
박명진은 이제 결정해야 한다.
이대로 있다가 엄현태의 뒤통수에 당하던지, 먼저 그의 뒤통수를 치든지.
결국, 결심한 박명진이 입을 열었다.
“엄현주 사장님의 제안은 제가 받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이유도 설명했고요.”
“그러면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겠군요.”
엄현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박명진이 얘기했다.
“저의 제안을 받겠다고 하면, 다른 것을 드리죠.”
“다른 것이라고요?”
엄현주가 다시 제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특혜 분양 자료 대신 뭘 줄 수 있죠?”
“차명으로 된 엄현태 사장의 송우생명 주식을 드리죠.”
“송우생명 주식이요!”
놀란 엄현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엄현태 사장이 차명으로 송우생명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죠?”
“그건 알았지만…… 아!”
엄현주가 뭔가 알아차린 듯 물었다.
“송우생명 주식 관리인이 박 사장님이세요?”
“그렇습니다.”
“……!”
그의 대답에 엄현주는 순간적으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송우아파트 특혜 분양에 대한 자료를 확보해서 현태 오빠를 곤란하게 할 계획이었는데…….’
엄현태의 송우생명 주식 관리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몸이 하늘로 떠오른 듯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한편, 이런 그녀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여상길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흘렀다.
‘엄현호 사장의 계획대로 흘러가는군.’
하지만 여상길은 전혀 몰랐던 것처럼 그에게 물었다.
“박 사장님이 저희에게 하려는 제안이 뭡니까?”
“범죄자가 아닌 일반인의 신분으로 가족과 함께 한국을 떠나고 싶습니다.”
“……!”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여상길은 곧장 엄현주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요구에 그녀가 놀라기는 했지만, 이내 차분한 표정으로 그의 말에 집중했다.
“송우생명 주식을 넘기면 엄현태 사장 얼굴을 볼 수가 없고, 이곳에서 편안히 생활할 수도 없습니다.”
“…….”
“가족들과 함께 외국에서 새 생활을 할 충분한 자금 또한 마련해 줘야 합니다.”
“…….”
“송우생명 주식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엄현주 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엄현주는 그의 생각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며 얘기했다.
“박 사장님, 가족분과 함께 외국에서 새 생활을 할 충분한 자금은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는…….”
박명진이 그녀의 말을 자르며 얘기했다.
“엄현주 사장님이 하실 수 없다면, 다른 두 분에게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
엄현주는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자신이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엄현식 또는 엄현호에게 제안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온 식구가 엄현태의 차명 주식 관리인의 존재를 알게 된다.
‘내가 그 주식을 차지하기 어려워질 거야.’
그 순간 엄현주는 송우생명 주식을 잃어버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 송우생명 주식은 현태 오빠 때문에 잃었어.’
그가 구창준 지점장을 움직여 대출 재연장을 방해하는 바람에 그녀는 대한은행과 M&H 인베스트먼트에게 갚을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했다.
라이스타와 마음제과를 살려야 하는지, 송우생명 주식을 찾을 것인지를 두고 선택해야만 했다.
‘내가 이룩한 성과를 모두 잃을 수는 없었어.’
그래서 엄현주는 라이스타와 마음제과를 선택하고 송우생명 주식을 잃었다.
‘현태 오빠의 방해가 없었다면 송우생명 주식을 잃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갚아 줄 기회가 행운처럼 왔다.
애초 그녀의 계획은 송우건설을 곤란하게 하는 거였지만, 엄현태의 송우생명 주식을 빼앗을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그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그녀는 다시 선택해야만 한다.
박명진의 요구를 들어주든지, 거절하든지.
‘다시 오지 않을 기회야.’
이 시간이 지나면 차명 주식 관리자가 자기 스스로 주식을 넘기겠다고 하는 상황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고민할 필요 없어.’
엄현주는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박명진 사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이죠.”
* * *
박명진을 만나고 회사로 돌아온 여상길은 아무도 없는 건물 옥상에서 현호와 통화 중이었다.
[만남은 어땠습니까?]
“박명진 사장이 우리 쪽에 제안을 했습니다.”
[어떤 제안이죠?]
“무혐의와 외국에서 새롭게 시작할 충분한 자금을 조건으로 송우생명 주식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훗.]
수화기를 통화 그의 엷은 웃음소리가 전해졌다.
“엄 사장의 계획대로 되어 가는군요.”
[아직은 아닙니다. 앞으로 여 팀장님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제가 뭘 해야 합니까?”
[박명진 사장에게서 송우생명 주식을 넘겨받기 전 엄현주 사장이 결정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여상길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누구의 명의로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겠죠?”
[그렇습니다.]
“엄현주 사장 명의로 하기에는 부담스럽겠죠?”
[물론이죠. 만약 송우생명 주식을 확보한 게 온 식구에게 알려지면 싸워야 할 사람이 갑자기 늘어나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회사 임원 중 한 사람이 맡게 되겠군요.”
[그것도 어려울 겁니다.]
그의 대답에 여상길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죠?”
[엄현주 사장은 송우식품에 취임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신뢰와 믿음이 없는데 송우식품의 임원들 중 누가 엄현주 사장에게 자기 명의를 빌려주겠습니까?]
“그렇다면 처음 명의를 빌려준 분에게 다시 부탁해야겠네요.”
[그분도 안 될 겁니다. 내가 작업을 해 놓았거든요.]
“아……!”
그의 대답을 들은 여상길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엄 사장이 원하는 사람이 있군요? 누굽니까?”
[매형의 친형입니다.]
“유태규 검사의 형님이요?”
[그렇습니다.]
“그분의 명의로 하면, 엄 회장 가족들이 금방 알아차리지 않을까요?”
[우리 가족을 너무 좋게 보시는 것 같군요.]
“예?”
[성북동 살림을 오랫동안 맡고 계신 박 과장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회장님과 어머니, 그리고 나뿐이에요. 다른 성북동 직원분들의 이름은 몰라요.]
“아……!”
여상길은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엄상현 회장과 자녀들은 그 가족의 외에는 타인의 이름조차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
가까이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도 관심이 없는데 유태규 검사 친가 쪽 사람들의 이름을 알 리 없다는 것.
[더구나 유태규 검사와 친형은 돌림자도 쓰지 않습니다.]
그의 말에 여상길이 피식 웃었다.
벌써 유태규 검사의 친형 이름까지 알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을 이용해서 송우생명 주식을 차지할 계획도 마련해 놓았을 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명의자를 추천할 기회가 온다면 그렇게 하죠.”
여상길은 확답을 주지 않은 채 통화를 마무리했다.
송우생명 주식 명의자 문제는 엄현주 사장의 생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억지로 설득하려 하다가는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리되면 지금껏 해 왔던 일들이 물거품처럼 허물어질 테니까.
여상길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막내 팀원이 불렀다.
“팀장님.”
“무슨 일이에요?”
“사장님께서 찾으십니다.”
“무슨 일로 찾으시는 겁니까?”
“모르겠어요. 사장실로 오시라는 연락만 받았습니다.”
“알았어요. 다녀오죠.”
여상길은 다시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 * *
“찾으셨습니까, 사장님?”
“어서 오세요, 여 팀장님.”
여상길이 사장실로 들어가자 엄현주가 소파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이에 그가 소파에 앉자 그녀가 맞은편으로 와서 앉았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오래전 송우생명 주식 취득 때 명의를 빌려준 분이 이번에는 안 되겠다고 하네요.”
‘아, 엄현호!’
여상길은 조금 전 통화할 때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처음 명의를 빌려준 분에게 다시 부탁해야겠네요.
-그분도 안 될 겁니다. 내가 작업을 해 놓았거든요.
여상길은 현호의 계획대로 이뤄지는 것에 속으로 놀랬지만 겉으로는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며 얘기했다.
“그러면 명의를 빌려줄 다른 분을 찾아야 하는 겁니까?”
그의 물음에 엄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 임원분 중 한 분이 어떠시겠습니까?”
여상길은 유태규 검사 친형을 말하지 않았다. 임원에 대한 엄현주의 반응을 살핀 후 얘기하는 게 좋을 듯싶었다.
“음…… 임원은 안 될 것 같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시겠지만 송우식품의 임원 대부분은 전 대표님과 인연이 있으신 분들이에요. 차명 주식을 부탁할 만큼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어요.”
“사장님 말씀이 맞는 거 같네요. 아무에게나 부탁할 일은 아니니까요.”
“저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 온 계열사나 협력사 임원에게 부탁하는 게 좋을까요?”
그녀의 물음에 여상길은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면 모를까…… 자칫 박명진 사장과 같은 케이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
그의 말뜻을 엄현주가 알아차린 듯했다.
박명진 사장은 송우건설 협력사 사장이다. 오랫동안 엄현태 사장과 인연을 맺어 일해 오면서 신뢰를 쌓았다.
그래서 그에게 송우생명 차명 주식 관리인을 맡겼는데, 불리한 상황에 이르자 엄현태 몰래 송우생명 주식으로 거래를 시도한 것이다.
“여 팀장 말이 일리가 있어요. 사람 마음은 흔들리기 마련이니까요.”
이 맡을 뱉어낸 엄현주가 한숨을 쉬며 투덜거리듯 얘기했다.
“그럼 누구를 내세워야 하죠? 사람이 없어요.”
‘이제 얘기해야겠군.’
여상길은 이제 현호가 얘기한 사람을 추천할 때라고 생각했다.
“명의를 빌려줄 분은 사장님과 가까운 사이지만 금융 쪽에 관심 없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금융 쪽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요?”
“금융 쪽에 관심이 많으면 당연히 주식 거래에 관심을 갖게 되겠죠.”
“…….”
엄현주가 그의 말이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자 여상길이 다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장님이 언제든 위임받은 대리인 자격으로 의결권과 처분권 행사가 쉬워야 합니다.”
“그렇죠. 그게 중요하죠. 박명진 사장과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면요.”
박명진 덕분에 엄현태의 송우생명 주식을 차지할 수 있게 된 그녀였다.
하지만 그와 같은 사람의 명의를 빌리고 싶지는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없어요.”
실망한 기색의 엄현주를 향해 여상길이 얘기했다.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있다고요? 누구죠?”
“유태규 검사의 형입니다.”
여상길의 얘기에 놀란 엄현주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