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17
17화 갈라치기
엄수경과의 통화를 끊었을 때였다.
똑똑.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들어온 이는 어머니, 최유경이었다.
“어머니.”
“쉬는데 방해한 거 아니니?”
“아니에요. 괜찮아요.”
예상치 못해 놀라기는 했지만, 어머니의 방문에 기분은 좋았다. 그녀가 옆으로 와서 앉자 현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세요?”
“음…….”
최유경은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현호의 손을 지그시 잡으며 말을 이었다.
“현호야,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예……?”
“네가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한 약속을 지키려고 애쓰는 거 같아서.”
“……!”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현호는 그녀에게 약속했다.
더는 망나니짓으로 어머니 속 썩이지 않고 좋은 아들이 되겠다고.
“네가 재단에서 일하고, 송우그룹 비자금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한 것도 모두 그 약속 때문이잖아.”
“…….”
“마음은 고맙다만, 네가 맘고생을 하길 바라진 않는단다.”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져 왔다.
전생에도, 지금도 유일하게 실리와 상관없이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
그녀만이 다른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 주고 있었다.
그 마음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어머니, 전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왜 놀기만 했을까 싶었을 정도로 요즘 매일이 새롭고 즐거워요. 물론 힘든 일도 있지만 그래도 계속해 보고 싶어요.”
“정말이니?”
최유경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했다.
“그럼요. 잘해 보고 싶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최유경은 따뜻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해 보고 싶은 만큼 해 봐. 그런데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얘기해 줘. 알았지?”
“네, 그럴게요.”
미소를 머금던 현호는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최유경에게 물었다.
“아, 맞다. 이제 곧 외숙부 생신이신데 선물로 뭐가 좋을까요?”
“어머, 그걸 다 기억하고 있었니?”
엄씨 집안에서 가족들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는 건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비서들이 알아서 선물까지 챙겨주었으니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기도 했고.
그런데 현호가 외숙부 생신을 직접 챙기려는 모습을 보이니, 최유경의 입장에선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넥타이 정도면 괜찮지 않겠니?”
“넥타이는 이미 많지 않으실까요? 다른 걸로…….”
현호의 대답에 최유경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현호야, 외숙부 공무원이셔.”
그녀의 말대로 현호의 외숙부, 최해식은 공무원이었다.
그것도 나라의 돈줄과 정책을 휘어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재정경제부, 훗날 기획재정부라 불리는 부서에 속해 있는 고위공무원이었다.
“트집이라도 잡히면 안 좋은 거 알잖니.”
현호는 최유경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았다.
최유경의 집안은 대대로 경제관료를 배출해 낸 엘리트 집안으로, 외할아버지는 재경원 장관을 역임하셨다.
그런데 집안이 무려 송우그룹과 사돈지간으로 엮이게 되었으니, 주변 시선이 곱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최유경이 혹시라도 생일선물 하나 때문에 책이라도 잡히지 않을까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다만 그녀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최유경의 집안은 결코 청렴하지 않았다.
외할아버지는 송우그룹과의 뒷거래로 막대한 재산을 쌓았으며, 그것은 외숙부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 월급으로 사는 거라 비싼 선물 하고 싶어도 못해요.”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최유경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러한 사실도 모른 채 집안을 걱정하는 최유경의 모습에 현호는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사실 생일선물은 외숙부를 만날 핑계일 뿐이었다.
현호는 그를 앞으로의 계획에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어머니, 정원 꽃이 예쁘게 피었어요. 저와 산책해요.”
“그래도 되겠어? 안 피곤해?”
이렇게 묻지만, 어머니의 표정은 기쁜 듯 들떠 보였다. 그녀가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정원에 심었지만, 가족들은 관심이 없어 내심 섭섭했으리라.
“어머니와 산책하면 오히려 기운이 나죠.”
“호호. 그래, 오랜만에 같이 가자.”
현호는 어머니의 손을 다정하게 잡고 방 밖으로 나갔다.
* * *
“알았어. 지금 갈게.”
통화를 끊은 엄현태는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여동생 엄현주의 방으로 가기 위해서 몇 걸음을 떼었을 때.
“형.”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현호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너, 여기서 뭐해?”
“어머니랑 잠깐 산책하고 형한테 가던 길이야.”
“나한테? 왜?”
“의논할 게 있어서.”
“무슨 일인데?”
“그게…….”
현호의 표정이 난처해 보였다. 잠시 망설이더니 나지막이 그의 입이 열렸다.
“누나에 관한 거야.”
“현주?”
“음.”
그때였다. 엄현태의 휴대폰이 울렸다. 만나기로 한 엄현주의 전화였다.
“바쁘면 다음에 얘기할까?”
“아니야.”
엄현태는 울리는 전화를 꺼 버렸다.
“전화 안 받아도 되는 거야?”
“괜찮아. 중요한 전화 아냐. 그런데 무슨 얘긴데?”
“여기서 얘기하는 건 좀 곤란한데…….”
“그럼 내 방으로 가자.”
엄현태는 자기 방으로 앞장서 걸으며 현주에게 빠르게 문자를 보냈다.
[급히 통화할 일이 생겼어. 좀 이따 다시 연락할게.]
방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소파에 마주 보며 앉았다.
현호는 엄현태의 표정을 살폈다. 아닌 척하지만 무척 궁금한 듯한 기색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현주와 무슨 문제 있어?”
“나와는 문제없지. 근데 아버지에게는 문제지.”
“그게 무슨 말이야?”
“누나가 문화재단에서 내가 준비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관련된 정보를 빼냈어.”
현호는 온 가족 앞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형과 누나가 반드시 움직임을 보일 거라 확신했다.
갑자기 자신이 아버지 엄상현의 신임을 받는 듯한 모습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니까.
그렇기에 민동재 사무장에게 미리 재단 직원들을 감시하라 지시를 해 둔 상태였다. 덕분에 총무과장이 외부로 문서를 유출하는 현장을 덮칠 수 있었고.
“총무과장이 외부로 자료를 빼돌리고 있더라고. 추궁했더니 누나가 시킨 일이래.”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그런데 왜 그게 아버지에게 문제라는 거야?”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어디까지나 현호가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일이었다.
엄상현과는 무관한 문제였다.
그러나 현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문제는 재단에서 정보를 빼내려고 했다는 거야.”
“그게 왜?”
“형도 알고 있잖아. 송우문화재단의 진짜 주인은 아버지라는 걸. 나는 그룹 승계자가 물려받기 전까지 임시로 맡고 있는 것에 불과해.”
“……!”
엄현태의 눈에 호기심이 들어찼다.
“재단을 왜 승계자에게 물려주신다는 거야?”
“형, 왜 아버지가 재단을 직접 관리하시고 자신의 사람들로 직원을 채운 거라고 생각해?”
엄현태의 표정이 굳었다.
동시에 이전에 엄현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현주도 아버지가 재단 이사장의 자리를 가지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었지…….’
엄현태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재단에……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야?”
“나는 말 못 해. 그룹을 승계한 사람만이 알게 될 이야기니까.”
“이미 알고 있는 너는 뭐야? 아버지가 너에게 그룹을 물려주시려고 한다는 거야?”
현호는 눈빛이 흔들리는 그를 바라보며 내심 미소 지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그룹 승계를 언급하니 그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 거였다면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조건부로 허락하진 않으셨겠지. 물론, 이 정도만 하더라도 내게는 큰 기회지만.”
“설마, 네가 알아낸 정보로 아버지와 딜을 했던 거야?”
“아버지가 내게 사업을 그냥 허락할 분이셔?”
“하긴…….”
까칠해졌던 엄현태의 목소리가 다소 누그러졌다.
그는 현호의 의도대로 완전히 오해했다.
현호가 재단에 대해 무언가 알아냈고, 그에 대해 입 다물고 있는 조건으로 사업을 허락받은 것이라고.
“지금 중요한 건 재단이 아버지 거라는 거야. 누나는 그걸 건드린 거고.”
“…….”
“일단 사무장에겐 내가 아버지에게 얘기하겠다고 하고 입을 막아 놨는데, 언제까지 감출 수 있는 일은 아니야.”
현호가 말하는 바는 간단했다.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엄현주는 승계와는 거리가 멀어질 테고, 너 또한 거기에 엮여 있다면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이걸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었다면, 그 동맹 관계는 깨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거기서 끝낼 인간이 아니지.’
현호는 엄현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부족한 사업 수완을 비열한 짓거리를 일삼으며 메꿨던 인간.
그게 바로 엄현태였다.
그는 반드시 엄현주의 약점을 이용해, 그녀를 끌어내리려 할 터였다.
그리고 그것이 현호가 바라마지 않는 결과였다.
“지금 당장 말씀드려서 좋을 건 없을 거 같으니 방법 좀 생각해 보자. 나도 좋은 방법을 고민해 볼게.”
“고마워, 형. 형에게 의논하길 잘한 거 같아. 큰형이었으면 해결책보다 성질을 먼저 냈을 텐데.”
우쭐해진 엄현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자신이 큰형 엄현식보다 능력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종 큰형과 비교를 당할 때면, 자신에게 부족한 건 그저 늦게 태어난 것밖에 없다고 믿었다.
“이야기 들어 줘서 고마워. 난 형만 믿고 있을게.”
“그래.”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현호가 등을 돌리던 찰나, 엄현태가 다시 그를 불러 세웠다.
“아, 현호야. 혹시 송우전자 비자금 무혐의, 그거 네 작품이야?”
“무혐의는 최덕일 변호사님 작품이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엄현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네가 해결하겠다고 말한 거야?”
“찬스라는 걸 알았으니까.”
“뭐?”
“송우그룹과 악연인 검사가 우리 사건을 맡았어. 시간은 많지 않고, 접근도 쉽지 않아. 그런데 운 좋게도 그 검사에 관해 친구들에게서 들은 정보가 있었어. 송우그룹 법무팀과 연결만 해 줘도 아버지께 점수 딸 수 있잖아. 사업 시작해서 돈 들어갈 곳이 많은데 이렇게라도 해야 아버지 지갑에서 돈이 나오지.”
“하여간 잔머리 굴리는 건 우리 집에서 네가 제일일 거다.”
“내 잔머리가 필요하면 얘기해.”
“하하.”
현호의 꾸며 낸 이야기를 듣고 엄현태는 안심되는지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예상대로 비자금 사건을 해결한 것은 현호가 아닌 송우그룹 법무팀이었으니까.
“그럼 이만 가 볼게.”
“그래, 쉬어라.”
엄현태는 방문 앞까지 나와 현호를 배웅했다. 현호가 복도를 걸어가다 코너를 돌아가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엄현태는 방문을 닫고 엄현주가 기다리고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벼운 걸음으로 가는 엄현태.
그는 현호에게서 들은 정보를 떠올렸다.
현주가 문화재단의 총무과장에게서 엔터테인먼트 사업 정보를 몰래 입수했다는 것.
‘이 정보를 이용하면…….’
간단히 아버지와 현주의 사이를 틀어지게 만들 수 있었다.
아버지 엄상현은 결코 자신의 등 뒤를 노렸던 자를 곁에 둘 사람이 아니었다.
큰형 엄현식을 견제하기 위해 손을 잡고는 있었지만, 다른 경쟁자를 간단히 떨어뜨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엄현태의 입가에 편안한 미소가 흘렀다.
자신의 뒤에서 현호가 활짝 웃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