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폭풍 전야
“어서 오세요, 엄 사장.”
현호가 약속 장소인 룸으로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남정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했다.
“마음이 안 좋으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엄상현 회장은 예고한 대로 송우병원 전공의 선발이 불공정했던 점을 사과했고, 남정수 원장은 송우병원을 떠났다.
“안 그래도 밤새 한숨도 못 잤어요. 내가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회장님이 내게 이러실 수는 없는 거잖아요.”
얘기하는 그의 말투에 분함과 원망이 섞여 있었다.
그에게 엄상현 회장의 배신은 청천벽력 같은 것이었으리라.
이에 현호는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사기꾼한테 속았다면 이렇게까지 분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
“그나마 이렇게 복수할 수 있다는 게 위안이 됩니다.”
그가 말한 복수란 송우의료재단이 관련된 비리 자료를 현호에게 넘기는 것이다.
“엄 사장이 내게 요청한 자료에요.”
남정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현호에게 서류 봉투를 건넸다.
“엄 사장이 미리 내게 얘기했었기에 서둘러 준비할 수 있었어요.”
현호는 그가 건넨 봉투 속에서 자료를 꺼내 살펴봤다.
‘아! 장부구나.’
송우병원에 약품을 납품하는 제약사가 납품가의 20%를 사례금으로 송우의료재단에 낸 장부인데, 제약사와 금액 그리고 날짜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어떻습니까? 쓸 만하겠습니까?”
궁금한 기색의 남정수가 물었다.
“네.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자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도움이 되겠다니 다행이네요.”
남정수는 지난번 만남에서와는 달리 그 자료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 묻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혹시라도 엄상현 회장에게 불이익이 될까 조심하는 눈치였는데, 그런 기색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원망이 크다는 거겠지.’
엄상현 회장이 곤란해지는 게 이젠 남정수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약속한 대로 자금지원을 해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엄 사장.”
* * *
송우병원 문제가 일단락되고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최덕일 변호사가 성북동으로 찾아왔다.
“회장님.”
그가 서재로 들어갔을 때 엄상현 회장은 박경국 과장과 함께 있었다.
“최 변호사님, 오셨습니까?”
박경국 과장이 먼저 그에게 인사하자, 엄상현 회장이 뒤이어 얘기했다.
“어서 오게, 최 변.”
“최 변호사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차 한잔 드리겠습니다.”
“아, 예.”
박경국 과장은 엄상현 회장을 위해 가져온 따뜻한 차를 최덕일에게도 건넸다.
“고마워요, 박 과장.”
그의 말에 박경국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최 변, 내게 할 얘기가 있다고?”
“예, 회장님.”
“뭔가?”
“일전에 송우생명 주주들에 대해 알아보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뭐, 송우생명 주주를?’
박경국 과장은 속으로 놀랐지만, 겉으로는 침착한 모습으로 엄상현 회장 앞으로 다과 접시를 놓으며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랬지. 뭔가 발견한 게 있나?”
“차명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시만.”
엄상현 회장이 최덕일 변호사에게 말을 멈추게 한 뒤 박경국 과장을 쳐다봤다.
“박 과장.”
“예, 회장님.”
박경국 과장이 흠칫 놀라기는 했지만,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얘기했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최 변과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으니, 자네는 나가서 일 보게.”
“아, 예. 회장님.”
박경국 과장은 그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두 사람이 긴요하게 할 얘기가 있으니, 자리를 피해 달라는 의미였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불러 주십시오.”
박경국 과장은 미소를 머금은 채 인사한 후 돌아섰다. 그리고 서재 밖으로 향하는 그의 얼굴에선 방금까지 있던 미소가 사라지고 눈에 날이 섰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엄상현 회장이 최덕일 변호사에게 물었다.
“차명 관리인으로 보이는 주주가 있다고?”
“예, 회장님.”
“그 사람이 차명 관리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
“그 사람과 주변에 대해 알아봤는데, 그만한 주식을 소유할 만한 재력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야?”
“그게…… 명운대학재단 직원입니다.”
“뭐어?”
화들짝 놀란 엄상현 회장의 눈이 커졌다.
“그 직원이 살고 있는 집이나 직장 그리고 가족들의 형편으로 볼 때 지금 소유하고 있는 주식에 투자할 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겠군. 실소유주가 강인 애미이거나 현식이거나.”
“큰며느님일 가능성이 크지 않겠습니까?”
“현식이의 부탁을 받고 강인 애미가 자기 학교 직원 명의를 빌렸을 수도 있어.”
최덕일 변호사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겠네요.”
“어쨌든 두 사람이 날 속이고 송우생명 주식을 차명으로 소유한 것으로 보이는군.”
화가 솟구치는지 엄상현 회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말을 안 한 게, 속인 것과 같을 수는 없는데…….’
최덕일 변호사는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는 엄상현 회장의 소유욕을 알고 있다.
자신이 송우그룹을 장악하기를 원하는 만큼 자식들도 통제하고 관리하고자 한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껏 자식들은 엄상현 회장이 허락한 범위에서만 주식을 소유할 수 있었다.
허락하지 않은 차명 주식 소유는 엄상현 회장을 화나게 할 것이다.
‘아버지로서의 권위가 무너졌다고 느낄 테니까.’
더구나, 다른 계열사 주식이 아니고 송우생명 주식이다.
송우생명은 여러 그룹 계열사와 금융거래를 하고 있는 만큼, 송우그룹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엄상현 회장의 허락 없이 송우생명 주식을 취득했다는 사실은 집 안에서 회장 권위의 추락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래서 회장님은 큰아들 내외가 자기를 속였다고 느끼는 거야.’
최덕일 변호사는 엄상현 회장이 시킨 일을 했으며, 그 결과를 알렸다.
이제 엄상현 회장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말해야 하는데, 그의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잠시 지켜보던 최덕일 변호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회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흠…….”
잠시 생각하던 엄상현 회장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명운대학재단 직원을 만나서 알아봐. 확인은 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 * *
엄상현 회장과 최덕일 변호사가 차명 주식 관리인에 대해 얘기하는 그 시각, 채연희는 강의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디리리리.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려서 보니 박경국 과장이었다.
“박 과장이 무슨 일이지?”
그는 자신이 대학에 있을 때 연락한 적이 거의 없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전화했으니, 채연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채연희에요.”
[사모님, 박경국 과장입니다.]
“박 과장, 무슨 일 있어요?”
[사모님께 긴히 알려 드릴 게 있어 전화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얘기해요.”
[회장님께서 송우생명 주주들을 뒷조사한 것 같습니다.]
“뭐라고요?”
깜짝 놀란 채연희는 믿기지 않아 다시 물었다.
“박 과장, 그게 무슨 말이에요?”
[조금 전 최덕일 변호사님이 회장님께서 지시하신 일 때문에 오셨습니다.]
“그런데요?”
[그 지시사항이 송우생명 주주들 뒷조사인 것 같습니다.]
“…….”
[최 변호사님이 차명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정말이에요?”
놀란 채연희의 눈이 커졌다.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차명 관리인에 대한 얘기도 들었어요?”
[아뇨. 듣지 못하고 서재를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최 변호사가 알아낸 차명 관리인이 우리 쪽 사람이면 어떡하죠?”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 주식 명의자를 뒷조사했으면 명운대학재단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았을 겁니다.]
그의 얘기에 채연희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일단 외부인이 그 직원을 접촉하지 못하게 할게요. 아버님은 분명 직원을 만나서 확인하려고 하실 테니까요.”
[좋은 생각이십니다.]
차명 관리인이라고 확인해 줄 수 있는 직원과 만날 수 없다면 엄상현 회장은 의심되더라도 확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장님과 의논해서 명의자를 바꾸셔야 할 겁니다.]
“갑자기 바뀌면 더 의심하실 거예요. 어쨌든 그이와 의논할게요.”
[알겠습니다.]
* * *
“네. 어디로요? 명운대학재단 직원이라고요? 알겠습니다. 계속 수고해 주세요.”
누군가와 통화를 끊은 최명준 실장이 현호에게 다가와 얘기했다.
“사장님, 최덕일 변호사가 성북동으로 찾아가 회장님을 만나고 있다고 합니다.”
“직접 대면해서 얘기할 일이 있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정보원 얘기로는 성북동으로 가기 전 최덕일 변호사가 한 남자를 뒷조사했답니다.”
그의 말에 현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뭔가 알아낸 거군요.”
“최 변호사가 뒷조사한 남자는 명운대학재단 직원이라고 합니다.”
“아!”
현호는 최덕일 변호사가 왜 그 남자를 뒷조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큰형수 쪽 사람이었네.’
전생에서 현호는 엄현식의 송우생명 차명 관리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자신이 그 사람을 알아내기 전에 엄현식이 처리했기 때문이다.
“큰형의 송우생명 주식의 차명 관리인이거나 명의만 빌려준 사람일 겁니다.”
“엄현식 사장님이 송우생명 차명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걸 회장님이 아시게 되겠네요.”
“백퍼센트 확신은 아직 못하죠.”
“예……?”
“그 직원에게 확인하려 하실 겁니다.”
“엄현식 사장님은 그 직원에게서 알아내지 못하게 손을 쓰지 않을까요?”
동의하듯 현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그렇게 하겠죠. 하지만 그런 대응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어요.”
“왜죠?”
“큰형과 형수의 대응에 따라 회장님의 판단도 달라질 테니까요.”
“아……!”
최명준 실장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표정을 짓자, 현호가 이어서 얘기했다.
“당분간 집안 분위기가 재밌을 거 같네요.”
현호의 예상대로 집안 식구들은 연극을 하는 것 같았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평소처럼 행동하려는 게 현호의 눈에는 보였다.
아버지 엄상현 회장은 평소처럼 식사 때 감정을 알 수 없는 얼굴이었지만 아주 가끔 입가에 미세한 경련이 이는 것을 포착했다.
큰형은 여전히 큰 소리로 얘기했지만, 슬쩍슬쩍 아버지의 기색을 살폈다.
큰형수 채연희는 아들 강인이를 돌보면서 다른 가족의 기색을 살폈다.
집안은 별 문제없이 평온한 듯 보였다.
폭풍이 닥치기 전 평화로움이랄까.
현호는 안다.
이 평화로움도 곧 깨지게 되리라는 걸.
* * *
[회장님.]
엄상현 회장은 최덕일 변호사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 직원에게 알아봤어?”
[그 직원이 해외 출장을 갔습니다.]
“뭐, 해외 출장? 언제 돌아오는 거야?”
[예정 귀국일은 한 달 후 입니다만, 더 늦춰질 수도 있습니다.]
엄상현 회장은 짐작되는 게 있어 미간을 찌푸렸다.
“큰애가 자네 움직임을 눈치챘군.”
[…….]
“교수가 학회 또는 연구 목적으로 해외 출장을 가도 한 달이 걸리지 않는데, 재단 직원이 그런 출장을 간다는 걸 어찌 믿겠나?”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내 앞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겠어. 성북동으로 오게.”
[예, 회장님.]
통화를 끊은 엄상현 회장은 인터폰으로 비서를 호출했다.
잠시 후, 서재로 비서가 들어왔다.
“회장님, 부르셨습니까?”
“강인 애미 어디 있나?”
“채 교수님께서는 지금 대학에 계십니다.”
“성북동으로 들어오라고 해.”
지시를 내리는 엄상현 회장의 눈에 날이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