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박원식을 위한 기회
“아버님, 저 왔어요”
채연희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서재 소파에 자리한 최덕일 변호사가 그녀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엄상현 회장이 무슨 일로 자신을 불렀는지 알면서도 전혀 모르는 척 순진한 미소로 얘기했다.
“아버님, 무슨 일로 부르신 거예요?”
“네게 묻고 싶은 게 있구나.”
“말씀하세요.”
“명운대학재단에 이태민이라는 직원이 있지?”
“글쎄요. 저는 대학 업무를 하고 있어서 재단 직원은 모르는데, 그런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드릴까요?”
엄상현 회장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언짢은 듯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런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주겠다고?”
“네, 아버님.”
“사람들은 보통 모르는 이에 대해 물으면, 왜 그런 사람을 찾는지부터 궁금해하는데, 강인 애미는 전혀 궁금하지 않은가 보구나.”
“……!”
채연희는 뜨끔했지만, 애써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얘기했다.
“아버님이 물으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오냐, 지금 그 사람에 대해 알아봐 줄 수 있겠지?”
“그럼요.”
채연희는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채연희에요. 직원 중에 이태민 씨라는 분이 계신가요? 아, 그래요? 알겠어요.”
통화를 끊은 채연희가 얘기했다.
“아버님, 재단 직원 중에 이태민 씨라는 분이 있기는 한데, 지금 해외 출장 중이라고 하네요.”
“그 출장이 한 달이 넘을 거라고 하더구나.”
“아, 예. 알고 계셨네요. 그런데 왜 제게 물으신 거예요?”
“명운대학재단은 자금에 여유가 많으냐?”
엄상현 회장은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사장도 한 달씩 해외 출장이 힘들 텐데, 일개 직원이 한 달이 넘으니 말이다.”
“글쎄요. 재단 일은 제가 잘 몰라서요.”
“허허허.”
엄상현 회장은 조소가 담긴 웃음을 터트린 후 얘기했다.
“알았으니, 나가 보거라.”
“아, 예.”
깍듯이 인사한 후 돌아선 채연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최덕일 변호사가 소파에서 일어나 엄상현 회장 곁으로 다가갔다.
“회장님, 왜 묻지 않고 보내셨습니까?”
“강인 애미 태도가 이미 얘기했네.”
“예?”
“내가 무엇을 묻던지,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이곳에 들어온 거야.”
“……!”
“애써 시간 낭비할 필요 없지.”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명운대학재단이 특별 감사를 받게끔 만들어.”
“아!”
최덕일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명운대학재단을 비리사학으로 만들 자료를 모아 터트리라는 것이다.
세상이 시끄러워지면 감사를 받게 되어 더 많은 비리까지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돈인 명운대학재단의 이사장이 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재단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사돈이자 교육계의 거물인 이사장과 지금껏 잘 유지해 온 관계가 한순간에 틀어질 수 있음에도 그가 이런 지시를 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엄상현 회장을 화나게 하면, 사돈이라도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거군.’
사돈과 관계가 틀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나라일보 배원우 사장과도 충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충돌은 큰아들이 설립한 SW시스템로 때문이어서 엄상현 회장이 깊게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좀 다르지.’
송우그룹뿐만 아니라 자식들도 모두 완벽히 장악해서 관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무너진 것이다.
지금은 그의 분노가 명운대학재단으로 향하지만, 언제든 큰아들에게도 갈 수 있다.
“교직원 채용시 금품수수나 재단 자금 횡령 등 재단 내부인을 통하면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최덕일은 엄상현 회장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알기에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 * *
한편, 상황이 더 심각해진 것을 모르는 채연희는 남편 엄현식과 통화 중이었다.
“아예, 재단 직원을 모른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아버지는 뭐라고 하셨어?]
“내가 모르는 사람 얘기를 더 물으실 수는 없죠.”
[잘했어. 일단 닥친 소나기는 피해야지.]
“하지만 언제까지 그 직원을 해외에 둘 수는 없잖아요.”
채연희는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아무래도 주식을 옮겨야겠어.]
“어떤 방식으로요?”
[그건 좀 더 생각을 해 봐야지. 원식이한테 얘기해서 신박한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할게.]
박경국 과장의 아들인 박원식은 송우증권 과장이다.
“알았어요.”
두 사람이 송우생명 차명 주식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얘기하는 그 시각, 현호는 박원식 과장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사장님, 왜 박원식 과장을 만나려는 겁니까?”
최명준 실장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사실 박경국 과장을 싫어했다.
박 과장처럼 박원식이 엄현식 사장과 가까운 것을 알기에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아버지는 명운대학재단 직원이 송우생명 차명 관리인이라는 걸 아셨어요. 하지만 형님과 큰형수는 사실대로 털어놓는 대신 숨기는 것을 택했어요.”
재단 직원이 해외로 출장 간 것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다.
“그건 주식 명의자가 바뀌거나 소유 형태에 변화가 있을 거라는 의미죠.”
“그것과 박원식 과장이 관련 있는 겁니까?”
현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큰형이 믿고 의논할 만한 사람은 박원식 과장뿐이니까요.”
“그래서 의아합니다. 어차피 박원식 과장은 엄현식 사장님 편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얘기는 하지 않을 겁니다.”
“알아요.”
현호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박원식 과장에게서 뭔가 알아내려고 만나려는 게 아니에요.”
“그럼 왜……?”
“정보를 주려는 거죠.”
“……?”
“박원식 과장은 송우증권 역사상 최단 시간 내 사장이 되는 걸 목표했어요. 그래서 라이트랜드와 거래를 성사시킨 거고요.”
라이트랜드는 엄수경 사장이 송우리조트를 엄상현 회장에게서 지키기 위해 이용한 자산운용사다.
그녀는 송우바이오 주식 확보를 위해 라이트랜드의 펀드를 이용했다.
그것을 알게 된 엄상현 회장이 라이트랜드를 협박해 펀드를 청산하고 송우바이오 주식을 되찾아 오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현호의 작전에 의해 물거품이 되었고, 그 작전에 이용된 사람이 박원식 과장이다.
‘다행히 라이트랜드에 대학 친구가 있었지.’
그 친구를 이용해 라이트랜드 비자금 만드는 계획에 박원식 과장을 끌어들였다.
‘원식이에게는 성과가 필요했으니까.’
송우증권 인사를 앞두고 박원식 과장은 욕심을 부렸다. 성과가 조금 더 있으면 가장 빨리 차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원하는 성과를 얻는 대신 송우증권이 라이트랜드 비자금 통로가 되어 주었던 것.
그것으로 라이트랜드는 엄상현 회장의 협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엄수경 사장은 송우바이오 주식을 온전히 확보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분노했고, 그 때문에 박원식은 차장 자리를 빼앗겼지.’
가장 빨리 차장으로 승진한 박원식이었다.
하지만 송우바이오 주식을 빼앗긴 엄상현 회장의 분노로 인해 박원식은 차장에서 과장으로 강등되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박원식은 모멸감을 느꼈겠지.’
송우증권 사장이 되겠다는 목표가 없었다면 그는 회사를 떠났을 것이다.
“그 일 때문에 박원식 과장도 힘들었을 겁니다. 승진에서 밀려난 것도 아니고 강등되었으니까요. 그런 사람과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 겁니까?”
최명준 실장이 의아한 듯 물었다.
“박원식 과장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요.”
“무슨 기회요?”
현호가 싱긋 웃으며 얘기했다.
“복수할 기회죠.”
* * *
약속 장소에 도착한 현호가 레스토랑 룸으로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박원식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현호 사장님.”
그가 격식 갖춘 자세로 나오자 현호는 장난스레 인상을 찡그렸다.
“형, 우리끼리 있을 때 그런 호칭 불편해.”
“아니, 그래도…….”
박원식이 난감한 기색을 보이자 현호가 얼른 얘기했다.
“여기가 공적인 자리도 아니고, 공무로 만나러 온 것도 아니니까, 편하게 얘기하자. 우리끼리 만나는 거 정말 오랜만인데.”
현호가 편안한 태도로 얘기하자 박원식 또한 긴장이 풀리는지 얼굴이 밝아졌다.
“가끔 집안 행사 있을 때 성북동에서 보긴 했는데, 이렇게 따로 만나는 건 네가 귀국한 이후 처음인 거 같네.”
박경국 과장이 성북동 집안 살림을 맡아서 일했기에 엄상현 회장의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박원식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박원식을 가족처럼 그를 대했던 것은 아니다.
엄현태와 엄현주는 그를 고용인의 아들 이상으로 대하지 않았다.
엄상현 회장 자녀 중 박원식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장남 엄현식이었다. 박경국 과장이 은밀히 그를 돕고 있고, 박원식과 서로의 이익이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현호는 달랐다.
엄상현 회장의 자녀 중 유일하게 이익과는 상관없이 대했던 이는 현호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호는 엄상현 회장마저 포기했던 망나니 같은 존재였기에 사업적 이익을 따질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박원식이 놀고 싶을 때 내게 연락했지.’
박원식은 복잡한 생각 없이 놀고 싶을 때 현호에게 연락했고 잘 노는 게 목적인 현호는 그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현호가 귀국 후 송우문화재단을 맡게 되면서 박원식과 만나는 일이 없어졌다.
“형, 요즘 어떻게 지내?”
“다른 직장인처럼 회사 다니고 일하면서 지내지. 그런데, 너는 능력 있는 경영자가 됐더라.”
“운이 좋았던 거지. 아버지를 비롯해 옆에서 도와주신 분들도 많았고.”
“어쨌든 나도 많이 놀랐어.”
“내 얘기는 그만하자. 사실, 형 사정이 궁금해서 만나자고 한 거니까.”
“내 사정이 궁금하다고?”
박원식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형이 차장으로 승진하지 못한 사정을 알고 있어.”
“아…….”
애써 잊었던 일이 생각나는지 박원식의 표정이 굳었다.
“그 당시에는 어떤 말을 하더라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거 같아서 연락하지 못했어.”
“네 말이 맞아. 그때는 누가 무슨 얘기를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
“사실 형은 회사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 노력했을 뿐인데…….”
“어쩔 수 없잖아. 결과적으로 회장님께 피해를 입혔으니까.”
현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어쨌든 그 시간은 지나갔잖아. 이제 만족할 만한 성과가 있으면 승진할 수 있는 거야?”
어두운 표정의 박원식이 고개를 저었다.
“회장님 화가 풀리셔야지.”
“주식을 잃으셨기 때문에 그건 쉽지 않을 텐데, 무작정 기다리겠다는 거야?”
“다른 방법 없잖아. 그게 싫어서 나가면 지금껏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게 뻔한데.”
그는 송우증권을 퇴사하더라도 다른 회사에 취직할 능력과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더 높은 곳에 있기에 송우증권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네.”
“응?”
금세 박원식의 눈에 호기심이 들어찼다.
“방법이 있다는 얘기야?”
“아버지가 마음을 돌리지 않으시면, 돌리게 만들 수밖에 없잖아.”
“어떻게?”
“형, 내가 받는 찌라시에 아버지 얘기가 나온 게 있어.”
“찌라시에 회장님 얘기가?”
박원식은 혹시라도 자신이 놓친 게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생각나는 게 없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당연하지. 찌라시에 나온 적이 없으니까.’
“내가 받는 찌라시에는 송우그룹 관련 얘기는 없었는데. 네가 들은 내용은 뭔데?”
“내게 오는 찌라시에 우리 아버지가 송우생명 주주들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고 했어.”
“뭐어?”
화들짝 놀란 박원식의 눈이 커졌다.
그의 흔들리는 눈을 보면 현호는 알 수 있었다.
박원식 또한 엄현식 사장의 차명 주식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
하지만 현호는 모르는 척 얘기했다.
“형, 그걸 알아보면, 아버지를 도울 방법이 생길지 모르잖아. 그렇게 되면 아버지 화도 풀리실 거고.”
진심이 아니다.
엄현식 사장이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려고 얘기한 것이다.
엄상현 회장에게 복수하기 위해 곤란한 상황의 엄현식을 이용할 수 있을 테니.
“형, 한 번 알아봐. 형에게 기회가 생길 테니까.”